
작가 이소연씨가 2024년 7월22일 서울 강남구의 한 스튜디오에서 한겨레21과 인터뷰하고 있다. 한겨레 조윤상 피디
영국의 엘런 맥아더 재단은 매년 발생하는 세계 의류 쓰레기가 약 4700만t(2017년 기준)이며 이 가운데 87%가 쓰레기로 처리된다고 분석했다. 국내에서도 많은 이들이 의류수거함에 넣은 옷들이 재활용될 거라 기대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국내 중고의류 수출업체들이 동남아·아프리카로 판매한 의류 폐기물은 이미 의류 포화상태에 이른 이들 국가에서 재활용되지 못한 채 상당 부분 소각·매립돼 환경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한겨레21은 국내 의류수거함에 버려진 옷들에 스마트태그와 지피에스(GPS) 추적기를 달아 문제의 심각성을 알아보기로 했다. 기획 취지에 공감한 배우 김석훈, 배우 박진희, 베이시스트 한경록, 방송인 줄리안, 작가 이소연씨가 기부한 의류에도 추적기를 달고, 인터뷰했다_편집자
이소연 중고거래장터 ‘당근’ 콘텐츠 에디터는 패스트패션과 환경문제를 다룬 책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의 저자다. 한때 여느 20대처럼 예쁘고 저렴한 옷을 사는 걸 좋아했지만, 미국의 한 쇼핑센터 매대에서 ‘1.5달러(약 2천원)짜리 패딩 점퍼’를 본 뒤 의문이 생겨 본격적으로 의류 환경문제를 취재하게 됐다. 한겨레21의 ‘헌 옷 추적기’ 보도 취지에도 공감한 그는, 취재에 활용할 헌 옷을 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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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 옷 추적기’는 옷의 끝을 보기 위한 기획이다. 옷의 시작과 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시작부터 끝까지 되게 쉽게 만들어지고 쉽게 버려진다고 생각한다. 입을 때는 그래도 기분이 좋고 ‘어딘가로 또 잘 가겠지’ 생각하는데, 사실 이 옷의 끝그림, 이 제품의 생애주기 가장 끝단은 누구도 책임지고 있지 않다.”
—소가 쓰레기산에서 옷을 먹는 충격적인 장면이 화제가 됐다. 의류 환경 측면에서 가장 큰 문제가 뭐라고 보나.
“우리가 입는 옷의 70%가 합성섬유인데 그게 가장 문제다. 옷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다는 것. 우리가 페트병을 마실 때는 ‘페트병은 환경에 안 좋을 거야’ 이런 생각을 하지만 옷은 그렇게 생각을 안 한다. 옷들이 나중에 어떻게 처리되느냐 했을 때 우리가 상상했던 것처럼 재활용되는 게 아니라, 플라스틱들이 미세하게 분해돼서 바다에 흩어지거나 공기 중으로 가 대기를 오염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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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성섬유가 왜 이렇게 생산에 많이 활용될까?
“제품 성능 대비 싸기 때문일 거다. 우리가 플라스틱을 만져보면 알지 않나. 탄성이 되게 좋고 잘 찢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기업들도 ‘그 장점을 이용하면서 저렴하게 만들 수 있는 원자재가 뭐가 있을까’ 찾아봤을 때 그게 합성섬유인 거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저렴한 옷을 좋아하는 소비자들이 있기 때문에, 그 수요가 있다는 걸 분명히 알고 ‘싸게 제품을 만들어 팔아야겠다’는 게 ‘합성섬유 패스트패션’인 것 같다.”
—한국 옷 시장 규모가 전세계에서 14위이고 헌옷 수출도 5~6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인구 대비 옷 생산, 버리는 옷 규모가 큰 것에 대해 어떻게 보나.
“일단 좋게 보면 사람들이 그만큼 트렌드에 민감하다고 볼 수 있다. 인터뷰 오는 길에도 지하철을 타고 왔는데 옷을 안 예쁘게 입은 사람을 지하철에서 보기 드물다. 반면, 내가 미국·유럽 여행을 갔을 땐, 뭐랄까 그냥 제 멋대로 입는 사람들도 많았다. 한국에서는 문화적으로 뭔가 유행이 되게 빨리 돌고, 그 유행을 인지하는 속도도 빨라서, 사람들이 더 쉽게 소비하고 쉽게 잊는 게 아닐까 싶다. 나만 해도 학생 때부터 직장인이 된 삶의 모든 주기에 ‘쇼핑’이라는 취미가 같이 있었다. 기분 좋아서 옷을 사고, 슬픈 일 있으면 또 옷을 사고. 그만큼 문화적으로 쇼핑이란 게 뭔가 잘못됐다. ‘나의 작고 소중한 취미야, 행복이야’란 생각 때문에 쇼핑 주기가 더 빨라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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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에 옷을 떠넘기는 상황에 대해 얘기해달라.
“보통 ‘폐섬유를 수출한다’ 아니면 ‘기부한다’는 명목으로 다른 나라에 보낸다. 그런데 받는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지금 전세계적으로 여름에 여름옷이 없어서, 아니면 겨울에 따뜻한 옷이 없어서 삶이 힘든 사람은 거의 없다. 그보다도 옷이 너무 많아서 우리 집 앞 개천이, 자신이 사는 생태계가 망가지는 경우가 생기는데 과연 그걸 ‘수출’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기부’한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예를 들면 가나 인구가 3천만 명인데, 1주일에 1500만 벌의 옷이 버려진단다. 2주면 인구 전체가 입을 만한 옷이 생기는 거다. 사실은 쓰레기를 그냥 버리는 것에 불과하다.”
—헌 옷을 재활용하기 위해 소재를 분리하는 것 자체가 힘들다고.
“옷은 재활용하기가 정말 어렵다. 우리가 분리배출을 열심히 하는 게 ‘단일 소재’로 만들기 위한 거다. 종이는 종이끼리, 페트병은 페트병끼리. 근데 옷은 복합 소재의 끝판왕이다. 패딩을 예로 들면 외피, 내피, 충전재, 지퍼, 단추, 면과 면을 연결하는 실이 다 다르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분리하는 작업에서 많은 인력·돈·기술력이 필요한데, 과연 개발도상국에 이를 재활용할 만한 기술과 돈이 있느냐 생각해봤을 때, 아니다.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일반 쓰레기보다도 못하게 방치되고 있는 상황인 거다.”
—인도 파니파트시는 니트 실을 풀어서 재활용하기도 하던데, 이런 건 계속되면 좋은 게 아닌가.
“인도 파니파트 마을이 ‘헌 옷의 수도’라 불렸다고 하더라. 옛날에 헌 옷들이 거기 오면 주민들이 그걸 분리, 재활용해 경제생활을 했다. 지금은 그게 안 된다. 왜냐하면 기업 입장에서는 ‘재활용한 비싼 원자재를 쓸 것인가’ 아니면 ‘합성섬유를 싸게 만들어 타깃으로 하는 사람에게 팔 것인가’라고 했을 때 합성섬유 가격이 압도적으로 저렴하기 때문에 후자를 선택한다. 비싼 인력, 돈, 기술을 들여 만든 재활용 자원을 쓰는 것보다 훨씬 합리적 선택인 거다. 반대로 파니파트시처럼 재활용 의류를 만들던 산업은 가격 경쟁력이 없기 때문에 점점 악순환의 굴레에 빠진다.”
—산업과 그 산업 종사자가 무너진다는 시각에 대해선 어떻게 보나.
“나처럼 옷을 안 사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이제 헌 옷이 없대’라고 하는 날이 올까? 생각해보면 나는 안 올 것 같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옷은 계속 소비될 거고, 그 소비되는 옷은 결국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로 향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렇게 옷을 아무도 안 사면 경제가 다 망하는 거 아닌가요’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선 생각이 다르다. 사실 이미 옷가게 사장님들을 만나보면 ‘유행 주기가 너무 빠르고 생산·판매 주기가 빨라져 돈을 잘 못 번다’고 한다. 이익이 가는 특정 상위 집단, 예를 들어 글로벌 기업은 빨라지는 생산과 유행의 주기에 따라 돈을 벌지만, 그 밑에 있는 사람들은 이미 지금 건강하지 않은 상황에서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한겨레21 '당신이 버린 옷의 최후' 보도는 12월27일부터 2025년 1월2일까지 매일 이어집니다. 전체 기사가 담긴 한겨레21 통권호(1545호)는 아래 링크에서 구매할 수 있습니다. https://smartstore.naver.com/hankyoreh/products/11301305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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