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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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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 옷 표백 화학폐수로 마을이 병들다

②버려진 옷의 비명
200여 개 공장, 비용 아끼려 잿빛 오염수 불법 방류
인도 ‘심라구지란’ 마을 주민 10%가 가려움증·혈액암 등 질병
등록 2024-12-28 11:28 수정 2024-12-30 12:07
인도 파니파트의 심라구지란 마을. 수도 뉴델리에서 북쪽으로 90㎞ 떨어져 있다. 파니파트의 헌 옷 공장들에서 버린 폐수가 이 마을로 흘러든다. 한겨레 조윤상 피디.

인도 파니파트의 심라구지란 마을. 수도 뉴델리에서 북쪽으로 90㎞ 떨어져 있다. 파니파트의 헌 옷 공장들에서 버린 폐수가 이 마을로 흘러든다. 한겨레 조윤상 피디.


부유물질이 떠다니는 검은 하천이 한 마을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인도 수도 뉴델리에서 북쪽으로 90㎞ 떨어진 파니파트시 남부의 심라구지란 마을. 이 마을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아온 크리산 랄 샤르마(75)는 이 하천과 3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집을 짓고 산다. 2024년 10월23일 한겨레21 취재팀이 찾아갔을 때 샤르마는 집 1층에 설치한 간이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는 플라스틱 지팡이를 짚으며 힘겹게 침대에 걸터앉은 뒤 천천히 손을 모아 인사를 건넸다. 샤르마는 마비 증세로 다리를 거의 움직이지 못했고, 종아리 쪽 피부는 알레르기성 피부병으로 우둘투둘했다. 그는 입을 떼는 것조차 힘겨워 보이는 상태로 14년째 혈액암 투병 중이라고 말했다.

피부병과 함께 마비 증상 찾아온 샤르마

마을의 이장을 맡기도 했던 샤르마는 평생 심라구지란에서 농부로 살았다. 건강했던 그의 몸 상태가 이상해진 건 2010년께부터다. 농부로 일하던 그에게 갑작스럽게 다리에 마비 증상이 찾아왔다고 한다. 도시에 있는 대형병원에 갔지만, 마비 증상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통원치료를 하다가 암 진단을 받게 됐다.

심라구지란 마을의 하천 인근에 사는 크리산 랄 샤르마(75). 그는 헌 옷 표백 공장에서 나오는 폐수가 마을로 흘러들어 혈액암에 걸렸다. 한겨레 조윤상 피디.

심라구지란 마을의 하천 인근에 사는 크리산 랄 샤르마(75). 그는 헌 옷 표백 공장에서 나오는 폐수가 마을로 흘러들어 혈액암에 걸렸다. 한겨레 조윤상 피디.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치료법과 병의 원인을 함께 물색했다. 그러다 한 의사가 “오염된 물을 마시고 오염된 땅에서 자란 작물을 먹은 게 원인”이라고 말했다. 그제야 샤르마는 자신의 마비 증상이 피부병과 함께 왔던 상황을 떠올리게 됐다. 집 근처 하천이 폐수로 더러워진 시기 역시 발병 시기와 겹쳤다. 심라구지란의 샤르마 집 인근을 흐르는 하천에는 ‘헌 옷의 수도’ 파니파트에서 연간 10만t의 섬유를 재활용하는 표백·염색 공장에서 흘러나오는 폐수가 고스란히 흐른다. 마을이 공장 단지보다 8㎞가량 하류에 있기 때문이다. 심라구지란의 하천이 눈에 띄게 검고 탁해진 건 2010년 초다. 샤르마는 느린 속도로 어눌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제가 어릴 때 이 마을을 기억해보면, 사람들은 강에서 목욕하고 빨래도 했어요. 그런데 2010년 이후 갑자기 2년 만에 물이 더러워졌어요. 사람들은 물을 제대로 쓸 수가 없었어요.”

사람들도 가만있지만은 않았다. 하천 물을 그대로 길어서 쓰던 사람들은 오염수로 물이 더러워지자 200m 아래로 땅을 파서 지하수를 길어내 마시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염 물질을 피할 수는 없었다.

샤르마는 20㎞ 거리의 병원에 다니며 한 달에 치료비와 약값으로만 1만3천루피(한화 21만6천원)를 쓴다. 파니파트시 1인당 월평균 소득이 1만7568루피(29만2천원)인 것을 고려하면, 그의 가족 한 달 소득의 상당 부분이 치비에 들어가는 셈이다. 샤르마와 비슷하게 ‘더러운 물’로 인해 마비 증세나 암을 겪는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파산 위기에 내몰렸다. “이 마을은 농가라 소득이 낮아요. 그런데 사람들이 아프면서 부담해야 할 최소한의 의료비는 높아진 거죠. 물 오염 때문에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 펼쳐지는 거예요.” 샤르마를 간병하는 아들 비제이 팔 샤르마(42)가 목소리를 높였다.

하천 상류에선 하루에 수십t 잿빛 폐수 버려

그렇다면 상류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취재팀은 심라구지란 하천으로 오염된 폐수가 흘러 들어오는 과정을 확인하기 위해 상류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2㎞ 정도 올라가보니 하천 주변 도로가 검은색 혹은 적갈색으로 오염된 곳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곳은 하천의 ‘2번 배수구’로 불리는 곳인데, 섬유를 재활용하는 표백·염색 공장이 업자한테 폐수를 주면 업자가 트럭으로 폐수를 싣고 와서 이 배수구에 갖다 버린다.

인도 파니파트 표백 공장에서 나온 폐수가 하천에 불법으로 방류되고 있다. 공장들은 폐수처리업자에게 돈을 주고 폐수를 방류해 이 하천은 심라구지란 마을과 야무나강으로 흐른다. 한겨레 조윤상 피디.

인도 파니파트 표백 공장에서 나온 폐수가 하천에 불법으로 방류되고 있다. 공장들은 폐수처리업자에게 돈을 주고 폐수를 방류해 이 하천은 심라구지란 마을과 야무나강으로 흐른다. 한겨레 조윤상 피디.


실제 취재팀이 이 배수구 앞에서 기다린 지 10분 정도 만에 2~3t 크기의 트럭이 나타났다. 이 트럭은 배수구 인근으로 이동해 물탱크 꼭지가 있는 차 뒷부분을 하천 방향으로 댔다. 이후 기사가 트럭에서 내려 물탱크 꼭지를 열자 잿빛 오염수가 두 개의 물탱크 꼭지에서 쏟아져 나왔다. 취재팀이 폭이 10m 정도인 하천을 사이에 둔 반대편 기슭에서 트럭 기사를 지켜보고 있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폐수 방류를 2분이나 지속했다.

끝이 아니었다. 30분 정도 뒤, 취재팀이 현장 확인을 위해 방금 트럭이 폐수를 방류한 반대편으로 이동했을 때다. 또 다른 트럭이 이번에는 취재팀이 원래 있던 쪽 하천변에 나타났다.같은 모양의 트럭이었고 탑승자는 2명이었는데, 역시 취재팀 앞에서 아랑곳하지 않고 물탱크 꼭지를 열었다. 역시 잿빛 폐수였다. 파니파트 지역 프리랜서 기자이자 시민단체 활동가인 바라지 바폴리(49)는 “공장 사람들이 오후 늦게나 밤에 몰래 오염수를 가져다 버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런 일이 ‘2번 배수구’에서만 벌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취재팀이 ‘2번 배수구’보다 1㎞가량 상류에 있는 ‘1번 배수구’를 찾았더니, 여기서도 형언할 수 없는 악취가 났다. 배수구 주변에는 쓰레기와 오물이 쌓여 있었다. 역시 섬유를 재활용하는 표백·염색 공장단지에서 내다버린 폐수의 영향이었다.

이렇게 15년 전부터 심라구지란 마을로 흘러 들어온 폐수는 하천 상류에 있는 200여 개의 헌 옷 표백·염색 공장에서 시작됐다. 파니파트에는 앞서 설명했듯 세계 각국에서 250t의 버려진 옷이 수입된다. 이 헌 옷의 일부는 그냥 버려지지만, 남은 것은 담요나 커튼, 침대 시트의 재료가 된다. 이 공정에서 화학 용수가 발생한다. 헌 옷의 색깔을 빼서 하얀 옷으로 만드는 표백 공정과 다시 다른 색깔로 염색하는 염색 공정이 있는데, 표백 공정을 맡은 공장은 헌 옷들을 잘게 자른 뒤 화학 용수에 담그는 방법으로 색깔을 뺀다. 이 화학 용수에는 형광증백제와 계면활성제, 첨가제와 더불어 구리, 카드뮴과 같은 중금속이 포함돼 있다. 발암물질로 알려진 것들이다. 화학 용수는 표백 공정을 마친 뒤 고스란히 폐수가 된다.


이 폐수 생산에 한국의 헌 옷도 일조하고 있다. 한겨레21 취재팀은 153개의 상·하의, 신발, 가방 등에 추적기를 달아 전국 곳곳에 있는 헌 옷 수거함에 버렸는데, 이 가운데 8개가 인도로 향했고, 8개 중에 5개가 파니파트시 산업단지에서 재활용 혹은 소각되는 공장 인근에서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파니파트 동부의 한 헌 옷 표백 공장에서 만난 공장 관리인인 카빈더(36)는 “재질이 좋은 편인 한국의 헌 옷들도 이 공장으로 넘어와서 표백된다”고 말했다.

“한국 헌 옷도 이 공장으로 넘어와 표백된다”

헌 옷 재활용 공장들이 오염수를 하천에 고스란히 흘려보내는 이유는 그저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다. 지역 활동가 우메이 타야기는 “공장에서 1대의 물탱크에 들어가는 물(3t 추정)을 정수하는 데 5천루피(8만3천원)가 든다. 그런데 (폐수처리업자에게 의뢰해) 여기에 오염수를 한 번 버리게 하는 데 드는 비용은 500루피(8300원)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공장들은 폐수처리업자에게 돈을 주고 폐수를 방류한다. 물론 이 일은 법으로 금지돼 있다. 2022년 주정부의 환경오염 관련 부서 오염통제위원회는 처리되지 않은 폐수가 하수구로 유입되는 것을 중단하도록 지시했다. 하지만 폐수를 버리는 행위에 대한 벌금은 5천루피에 불과하다. 벌금이 많지 않고 단속도 뜸하기에 공장들은 단속을 두려워하지 않고 폐수 방류를 선택한다. “정부는 오염수 방류를 금지하는 법을 제정했어요. 이 지역은 공장들이 자체적으로 정수해야만 깨끗해질 수 있는데, 누군가는 이렇게 불법적으로 행동하고 있어요. 그 사람들을 잡으면 벌금을 부과할 수 있지만, 한 명 잡은 걸로 그치죠. 잡히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이 일을 하는 거죠.” 폐수 방류를 함께 지켜본 타야기가 말했다.


오염수는 작물과 동물의 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 파니파트 인근 하천의 어획량도 크게 줄었다. 타야기는 “심라구지란의 작물이 황폐해지고 있다. 오염된 과일과 채소를 먹은 사람들의 사망률이 높아지고 있다”며 “이 지역 버펄로도 새끼를 예전만큼 낳지 못한다. 역시 오염된 물 때문”이라고 했다.

심라구지란 마을을 지난 오염수는 하천을 따라 야무나강으로 흘러든다. 야무나강은 심라구지란에서 약 9㎞ 떨어진 곳에서 남북을 가로질러 흐르는데, 강 길이가 1376㎞에 달한다.

인도에서 야무나강은 갠지스강과 함께 가장 신성한 강으로 꼽힌다. ‘어머니의 강’으로 불린다. 힌두교 신자들은 야무나를 의인화한 여신을 생명과 풍요의 신으로 숭배한다. “야무나강이 더러워지는 것은 우리의 종교적인 감수성에도 영향을 줘요. 원래는 깨끗하고 순수한 야무나에 성스러운 몸담금(Holly dip)을 했어요. 그만큼 야무나강은 깨끗한 물이었지만, 이제 더러운 물이 됐죠.” 타야기의 설명이다.

인도 갠지스강의 가장 큰 지류인 야무나강 전경. 인도 북부 파니파트시의 헌 옷 공장들에서 버린 폐수는 이 강으로 흘러든다. 한겨레 조윤상 피디.

인도 갠지스강의 가장 큰 지류인 야무나강 전경. 인도 북부 파니파트시의 헌 옷 공장들에서 버린 폐수는 이 강으로 흘러든다. 한겨레 조윤상 피디.


야무나강과 같이 큰 강도 섬유 재활용 공장이 일으키는 오염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고 있다. 지역 언론 ‘어스 저널리즘 네트워크’는 야무나강의 암모니아 수치가 2016년에 수질 허용기준치인 0.5ppm의 5배를 넘는 2.6ppm을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인도 환경부는 2021년 12월부터 2022년 4월까지 야무나강을 오염시키는 오염원을 조사했는데, 파니파트의 산업(45%) 폐수가 가장 많은 오염을 일으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파니파트 섬유 공장에서 나오는 물로 인해 수질오염 성분인 암모니아성 질소, 질산염, 인산염 함량이 높아진다는 결과였다. 하지만 여전히 5700만 명이 야무나강의 물에 의존해 살아가고 있다. 게다가 야무나강은 수도 뉴뉴델리의 물 공급량 70% 이상을 차지한다. 뉴뉴델리의 많은 인구가 야무나강의 오염으로 직접적 피해를 볼 가능성이 큰 것이다.

인도 파니파트시 심라구지란 마을의 라즈 쿠마 샤르마(왼쪽)와 그의 아들이자 마을 의사인 비카스 샤르마. 라즈 쿠마는 헌 옷 공장 폐수가 마을로 흘러들어 마비 증상을 겪고 있다. 한겨레 조윤상 피디.

인도 파니파트시 심라구지란 마을의 라즈 쿠마 샤르마(왼쪽)와 그의 아들이자 마을 의사인 비카스 샤르마. 라즈 쿠마는 헌 옷 공장 폐수가 마을로 흘러들어 마비 증상을 겪고 있다. 한겨레 조윤상 피디.


가려움증 동반 피부질환·신체마비 겪기도

200개나 되는 공장이 공공연하게 폐수를 마을 상류에 버리면서 야무나강까지 오염됐는데, 그보다 작은 하천에 의존해서 사는 심라구지란 사람들이 깨끗한 물을 구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지하에서 물을 길어 올리지만, 심각한 전력 부족으로 전동 수도 펌프도 하루에 몇 시간 쓰기 어렵다. 게다가 지하수 또한 깨끗하지 않다. 바폴리는 “오염수가 지하수로 스며들고 있다. 이곳에서 크는 작물도 오염수의 영향을 받는다. 마을 주민들은 결국 오염된 물을 써야 한다”고 했다. 이 마을 앞에 하수처리장을 만들자는 제안, 하천 주변을 콘크리트로 만들어서 주거지역과 농업지역을 보호하자는 제안도 나왔지만, 실현되지 않았다.

마을의 각종 중증·경증 질환 환자는 나날이 늘고 있다. 심라구지란의 마을 의사 비카스 샤르마(35)의 아버지 라즈 쿠마 샤르마(60)도 몸의 상·하체 왼쪽 부분이 마비된 환자다. 취재팀과 만난 라즈 쿠마는 말을 할 수 없었고, 힘이 빠진 채 누워서 눈을 깜빡거렸다. 가려움증과 피부질환이 심각한 상태로, 아들 비카스가 그를 간병하고 치료하고 있다. 평생을 이곳에서 살아온 그는 건강한 사람이었는데, 4개월 전부터 갑작스럽게 몸이 움직이지 않고 말이 어눌해지는 증상을 겪고 있다. 아들 비카스는 아버지의 질병이 가려움증과 동반된 점 등으로 미뤄 오염된 물과 관련 있다고 추정한다.

비카스는 오염수 탓에 질병을 얻은 환자가 한둘이 아니라고 했다. 그가 마을에서 10년간 환자들을 치료·관찰하며 얻은 결론이다. 그는 “가려움증을 동반한 피부질환과 간·폐·신장 질환, 암, 신체마비 문제를 겪는 환자가 상당히 많다. 이 환자들은 더러운 물 때문에 질병을 겪는 것으로 보인다. 더러운 물로 인한 피부질환, 중증질환 환자 수는 400명으로,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체 인구가 4천 명 남짓인 이 마을에서, 10%가 오염된 물 탓에 질병을 겪고 있는 것이다.

비카스와 마을 사람들은 공장 단지가 일으키는 대기오염 또한 사람들의 폐와 호흡기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본다. 타야기는 “재활용 의류를 소각하고 연료로 사용하면서, 사람들이 호흡기 질환도 겪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마나브 라치나 국제조사연구소가 파니파트의 주요 산업 밀집지에서 5㎞ 이내의 주택을 대상으로 한 조사를 보면 수질과 대기·토양 오염 등으로 인해 약 93%의 가구가 지난 5년 동안 건강 문제를 겪은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카스는 저녁 6시께 취재팀과 인터뷰하다가도 동네 피부질환 환자를 맞이했다. 비카스 주변에 서 있던 친척 조카인 14살 시라그, 16살 아크쉬도 취재진에게 자신이 피부병을 앓고 있다며 등과 다리 등을 내보였다. 주변에 있던 소년·소녀들도 모여들어 기자에게 “저도 피부병이 있어요” “저도 있어요”라고 말했다.

환자를 진료하러 자리를 떠나면서 비카스는 말했다. “차라리 공장이 문을 닫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돈을 벌더라도 가족들을 치료하는 데 그 돈이 다 들어야 하잖아요. 적은 월급을 받더라도 건강한 삶을 사는 게 낫죠.”

헌 옷 공장 폐수가 마을로 흘러드는 심라구지란 마을에는 피부병 환자가 많다. 사진은 이 마을에 사는 14살 시라그 샤르마의 상체에 난 피부 이상 증상. 한겨레 조윤상 피디.

헌 옷 공장 폐수가 마을로 흘러드는 심라구지란 마을에는 피부병 환자가 많다. 사진은 이 마을에 사는 14살 시라그 샤르마의 상체에 난 피부 이상 증상. 한겨레 조윤상 피디.


‘떠날 여력도 없는 사람들’이 고스란히 받는 피해

한국의 헌 옷도 버려지는 세계적 ‘중고 옷의 수도’ 재활용 공정의 현실은 파니파트시의 아픔과 연결돼 있었다. 대량생산된 뒤 폐기된 헌 옷들의 유입, 인도 정부의 미진한 대응, 공장들의 불법적 폐수 방류가 겹쳐 심라구지란 마을은 점점 폐허로 변하고 있었다. 오염수로 살아가기 힘든 땅이 되면서 사람들은 이곳을 떠난다. 하지만 떠날 수 없는 사람이 더 많다. “그나마 떠나는 사람들은 중산층에 속해요. 마을 밖에서 직업을 찾을 수 있고, 그래서 밖으로 이주할 수 있는 사람들인 거죠. 그런데 저소득층은 여길 떠날 수 없어요. 여길 떠나서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고, 살기 어렵기 때문이에요.” 혈액암에 걸린 아버지를 간병하던 비제이 팔이 말했다.

이 마을에 살았던 사람 4천 명 중 100가구, 약 400명이 최근 몇 년 사이에 이미 떠났다. 하지만 떠날 여력도 없는 이들은 그저 아픈 몸을 이끌고 이곳에서 버틸 뿐이다. “떠나지 않은 사람들도 곧 아프겠죠.” 바폴리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파니파트(인도)=글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사진 조윤상 피디 jopd@hani.co.kr

*한겨레21 '당신이 버린 옷의 최후' 보도는 12월27일부터 2025년 1월2일까지 매일 이어집니다. 한겨레21 통권호(1545호)로도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인도 파니파트의 표백 공장 모습. 표백 공장들은 옷 표백 후 독성 물질이 든 폐수를 강으로 흘려보낸다. 한겨레 조윤상 피디.

인도 파니파트의 표백 공장 모습. 표백 공장들은 옷 표백 후 독성 물질이 든 폐수를 강으로 흘려보낸다. 한겨레 조윤상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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