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껍고 검은 연기 띠가 구름처럼 솟아올랐다. 2024년 10월25일 오후 5시30분께, 인도 파니파트시 도심 바르사트로드 인근 하늘은 햇빛이 아직 남아 있는데도 연기로 덮인 하늘이 잔뜩 어두워지고 있었다. 이 검은 연기의 진원지는 트럭들이 곳곳에 주차된 300㎡가량 크기의 공터다. 이 공터 안에 있는 구덩이 주변에서 옷더미가 불타고 있었다. 어림잡아 200㎏은 넘어 보이는 옷의 무덤이었다. 불은 30분 넘게 타오르다가 트럭에서 나온 기사가 진화했다.
파니파트는 인도 수도 뉴델리에서 북쪽으로 90㎞가량 떨어진 인구 60만 명 규모의 산업 도시다. 연간 10만t의 옷이 세계에서 수입돼 재활용되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헌 옷의 수도’라 불린다.
그러나 한겨레21 취재팀이 이 도시의 한 공터에서 마주한 옷들의 더미는 전혀 재활용될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공터에는 마치 쓰레기 매립지처럼 타다 남은 옷들의 재와 바닥에 쓸려 넝마가 된 옷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구덩이에 묻혀서 흙먼지를 뒤집어쓰거나 묻힌 지 오래돼 흙과 함께 바위처럼 단단히 굳은 옷더미도 있었다. 모두 브랜드나 생산처를 식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해진 상태였다. 깊이 4m 정도로 파인 구덩이에서는 8마리의 소가 옷 부스러기를 씹어먹고 있었다. 주인이 없는 개는 옷더미를 쉼터 삼아 몸을 동그랗게 만 채 누워 있었다. 그러니까 ‘헌 옷의 수도’는 옷들의 장례식장이기도 하다. 세계적인 의류 재활용의 도시에서 옷들은 온전히 재활용되지 않는다.
“이런 식의 공터가 이 도시에는 17개 정도 있어요.” 헌 의류를 재활용 공장이나 가게에서 받아와서 이곳 공터에 버리는 일을 하는 트럭 기사 라즈벨(64)이 말했다. 헌 옷을 수입하는 업자, 헌 옷을 재활용하는 공장들이 남은 옷을 가져다 놓고 있다. 파니파트 사람들은 이곳을 ‘덤프야드'(Dumpyard)라고 부른다. ‘쓰레기 버리는 곳’이라는 뜻이어서, 정확한 명칭이다.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쓰레기 매립지나 소각장이 아니다. 지도상에는 주차장이라고 적혀 있다.
“(여기 버려지는 옷들은) 쓰이지 않거나 팔리지 않은 옷들이에요. 누군가 가져가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태워요. 이곳은 쓰레기 매립지가 아니기 때문에 시 당국이 이곳을 더럽게 만드는 것을 감시하거든요. 시 정부가 옷을 버리는 사람을 찾을 수도 있기 때문에 밤에 몰래 버리고 태워버리는 거죠.” 라즈벨이 계속 말했다. “공장에서 옷을 소각하면서 에너지원으로 활용하기도 하고, 이곳 주민들이 겨울에 옷들을 땔감으로 쓰기도 합니다.”
특히 이 덤프야드에는 한국에서 온 헌 옷도 소각되고 있는 것으로 현장에서 확인됐다. 취재팀은 타고 남은 옷들의 흔적에서 한국 중고의류에 달려 있던 태그를 찾았다. 메이드인 코리아(Made in Korea) 표식이 선명했고, 한글로 ‘소비자 상담실 서울 강남구 청담동’이라는 표기와 함께 한국 패션의류 대기업 이름이 적혀 있었다.
‘헌 옷의 수도’에 한국에서 버려진 옷들이 수입돼 온다는 사실은 추적기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한겨레21 취재팀이 2024년 2월부터 8월까지 갤럭시 ‘스마트태그’와 인공위성 기반의 지피에스(GPS·글로벌 포지셔닝 시스템) 추적기를 달아서 버린 153개의 옷과 헌 신발·가방 가운데 12월12일 기준으로 8개 옷이 인도에서 발견됐고, 8개 가운데 5개가 파니파트에서 발견됐다. 나머지 3개 중 1개도 파니파트를 거쳐 인도 북부 다른 도시로 이동했다. 한국무역협회 통계를 보면, 인도는 2023년 수출 중량 기준으로 한국이 가장 많은 헌 옷을 수출하는 나라(8만422t)다. 전체 헌 옷 수출 중량의 27%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렇게 인도로 수출되는 헌 옷 대부분이 파니파트로 향한다는 사실이 추적기를 통해 확인된 것이다.
파니파트로 간 한국의 헌 옷 다섯 벌은 모두 스웨터였다. 아크릴, 모, 레이온, 폴리에스터, 나일론 등이 소재다. 소각된다면 탄소와 유해물질이 배출된다. 이 옷들은 대체로 국내 헌 옷 수출업체로 향했다가 선박으로 인천항을 떠나 인도 서부를 지나 북부에 있는 파니파트로 향했다.
한겨레21 취재팀이 2024년 8월9일 서울 송파구 풍납동의 의류수거함에 버린 베이지색 스웨터의 이동 경로를 보자. 이 스웨터는 중국 저가 플랫폼에서 구매한 브랜드가 없는 옷이다. 의류수거함에 투입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이 스웨터는 경기도 하남시의 한 창고(수출업체로 추정)로 이동했다. 이후 인천항으로 이동했다가 말레이시아 셀랑고르주의 클랑항에서 2024년 10월 한 달가량 머물렀다. 그리고 11월이 되자 인도의 파니파트로 이동했다. 이 베이지색 스웨터는 ‘덤프야드’와 직선거리로 1㎞도 되지 않는 곳에서 2024년 11월26일 현재까지 신호를 보내고 있다. 추적기의 위치 오차가 1㎞ 안팎인 것을 고려하면, 현재 덤프야드에 적재돼 있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만약 덤프야드가 아니라 중고시장이나 공장으로 갔더라도, 판매되거나 재활용되지 않을 경우 가장 가까운 매립·소각지인 덤프야드에 버려질 가능성이 크다.
파니파트로 간 또 다른 2개의 스웨터도 덤프야드와 각각 3㎞ 정도 거리에서 신호를 보내고 있다. 역시 이 장소에서 재활용 과정을 거치거나 실로 뽑히거나 혹은 판매되지 못하고 덤프야드로 향할 운명이다.
아시아 최대 섬유 재활용 허브로 불리는 이 도시는 한국을 포함한 중국, 일본, 미국, 유럽 등지에서 하루 250t 이상의 헌 옷이 수입돼 밀려 들어온다. 원칙적으로는 소각이 아니라 재활용이 목적인 헌 옷들이다. 그러므로 옷들은 한국의 수출업자로부터 파니파트의 수입업자가 ㎏당 몇십원 가격으로 직접 사들이거나, 중간 상인을 거쳐서 이곳에 온다. 이곳에 온 옷들은 일부 판매되고, 대부분 재활용 공장으로 우선 이동한다. 파니파트 도심에서 한국 옷을 수입해 재판매하거나 재활용 공장에 넘기는 일을 하는 디판쉬(24)가 한국에서 온 옷더미를 가리키며 이렇게 설명했다. “한국에서 수출된 옷은 인도 서부 구자라트 항구를 통해서 인도에 들어오고, 화물 열차에 실려서 이곳(파니파트)에 와요. 두 달 내지 석 달이 걸리는데, 계절마다 수입하는 게 달라요. 11월부터 2월까지는 재킷과 니트, 여름이 되면 티셔츠를 많이 수입하죠. 다른 도시 중고상인이 여기서 옷을 사 가기도 하고, 남은 옷은 재활용 공장에 팔기도 해요.”
디판쉬처럼 한국과 교역하는 파니파트의 수입업자가 최소 수백 명은 된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 한국 의류 판매를 홍보하는 이도 있다. 헌 옷은 80㎏ 규모의 큰 묶음으로 거래되는데, 한 벌당 가격을 매기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헐값에 팔린다. 수입되는 옷들은 세 등급(A~C)으로 나뉘는데, 그나마 한국 옷들은 중고상인이나 재활용업자에게 판매할 때 80㎏ 한 묶음에 20달러(2만8천원) 수준을 받을 수 있는 A등급이라고 했다. 디판쉬는 “한국의 수출업체로부터 산 옷을 싸게는 ㎏당 5루피(83원), 비싼 것들이라도 ㎏당 20루피(334원)에 지역 구제 소매상인이나 재활용 공장에 판다”고 말했다.
일부 소매상에 판매되고 남은 옷들은 재활용 공장으로 향한다. 재활용 공장에서는 헌 옷이 ‘원자재’ 형태로 돌아가는 과정이 시작된다. 재활용 공장에서는 헌 옷들을 색깔별로 분류한 뒤, 날카로운 기계에 넣어 잘게 쪼갠다. 이렇게 조각난 옷을 화학약품으로 물을 빼 하얗게 만든다. 하얀색이어야 재생산 제품에 다른 색깔을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잘게 잘리고 표백된 옷들은 실을 뽑아내는 공장으로 이동해 원사(직물의 원료가 되는 실)가 된다.
한겨레21 취재팀이 2024년 10월24일 찾은 라케시 굽타의 재활용 공장에서는 이 잘게 쪼개진 헌 옷들을 받아와 원사 형태로 뽑아내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굽타의 공장에서는 ‘트레드밀’이라고 불리는 전동식 기계와 사람이 돌리는 쳇바퀴와 같은 휠을 함께 쓰면서 헌 옷을 원사로 만들고 있었다. 이 원사가 카펫과 커튼, 침대 시트로 제작된다. 물론 이 제품들은 헌 옷의 재질보다 질이 좋지 않고, 다시 재활용하기도 어렵다. 수명이 다하면 매립되거나 소각된다. 이를 ‘다운사이클링’(Down cycling,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원재료보다 낮은 품질의 물건으로 바꾸는 것)이라고 부른다. 한국에서 보낸 추적기 달린 옷은 소각되지 않을 경우 이 ‘다운사이클링’ 과정을 거친다.
실제 한국에서 보낸 옷이 다운사이클링 과정을 거치는 장면도 한겨레21 취재팀에 포착됐다. 취재팀이 2024년 2월(대부분의 의류는 7~8월에 작업했으나, 옷 2벌과 모자 1개는 2월에 미리 보냈음) 서울 구로구에 있는 의류수거함에 버린 옷은 경기도 광주시의 한 창고로 옮겨졌다가, 4개월 만인 6월께 파니파트 북서부로 이동했다. 애초 구글 지도에서 이 옷에 달린 추적기가 가리킨 위치는 휘발유 관련 공장으로 표기됐다. 하지만 취재팀이 2024년 10월24일 오전 해당 장소에 찾아가보니, 휘발유 관련 공장 대신 330㎡(약 100평)가 넘는 대형 헌 옷 창고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 창고의 주인인 가우라브 가르그(36)는 한국의 옷을 수입해서 재활용 공정에 넘기는 중간 수입업자 역할을 한다고 했다. 가르그가 소개한 창고에는 한국 옷들이 꽤 쌓여 있었는데, 노동자들이 모여 이 옷들을 색깔별로 분류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한국 옷을) 원사로 만드는 공장에 판매하는 거죠. 이 옷들이 다 실을 뽑는 기계로 가는 거예요.” 가르그가 말했다.
파니파트의 헌 옷 재활용은 1990년대부터 이 도시를 이끄는 산업으로 부상했다. 현재는 연간 3억달러(약 3424억원) 상당의 재활용 제품을 생산한다. 이 산업과 관련해 일하는 사람의 수는 많게는 7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굽타는 1982년 이 사업을 시작했는데, 세계 의류 생산이 증가하면서 파니파트의 재활용 산업도 함께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1980년대만 해도 이 도시는 50% 사람들이 농업을 했는데, 헌 옷 재활용 산업이 커지면서 많은 사람이 섬유산업에 종사하게 됐어요. 사업 초기에는 우리 가족이 공장 하나에서 시작했는데, 지금은 5개의 공장을 세울 정도로 산업이 발전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파니파트의 헌 옷 재활용 산업은 침체 상태다. 가장 큰 이유는 국제 선적비용이 비싸졌기 때문이다. 수입업자 가르그는 “국제 선적비용이 증가하면서,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에서 헌 옷을 들여오는 비용이 비싸지고 있다”며 “그렇다고 해서 인도에서 헌 옷을 비싸게 팔면 상인과 소비자들은 살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헌 옷을 가져와서 팔거나 재활용해 팔아봤자 남는 게 별로 없다는 얘기다.
합성섬유로 만들어진 헌 옷을 다시 원사로 만들어 재활용하는 산업의 상업적 가치가 낮아지고 있기도 하다. 글로벌 기업들이 저가에 다량으로 섬유를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3년 상반기에 파니파트에서 헌 옷을 모아 생산하는 원사의 양이 2022년에 견줘 절반으로 줄었다는 지역 언론 보도도 있다. 파니파트에서 이뤄지는 의류 소각 역시 이런 이유로 발생하는 재활용 제품의 수출 침체와 맞물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량을 처리하기 어려워졌거나 폐업을 앞둔 업체들이 수입한 옷을 매립지에 방치하거나 소각하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30여 년간 ‘헌 옷의 수도’로 기능하며 재활용 산업을 해온 파니파트는 수질과 대기 오염이 심각해지면서 주민들의 건강을 크게 위협하고 있다. 우선 공기질은 나빠질 대로 나빠진 상태다. 섬유를 소각로에 넣어 연료로 쓰거나 덤프야드 등에서 태우면서 발생한 오염 탓이다. 파니파트의 현재 초미세먼지(PM 2.5) 농도는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권장하는 24시간 평균 노출 한계인 15µg/m³보다 10배 이상(151~220µg/m³) 높다. 파니파트는 2021년 발간된 세계보건기구의 대기질 생명지수 보고서에서 전세계적으로 대기오염이 심한 690개 지역 중 60위로 꼽히기도 했다.
버려진 옷을 활용하는 산업은 주민 건강에도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다. 하리아나주(파니파트의 소속 주)의 2022년 보고서를 보면, 도시의 섬유산업에서 발생한 대기·수질 오염의 급격한 증가로 마을 주민 사이에 최소 35건의 심장마비가 발생했다. 지역에서 폐질환을 앓는 환자도 급증하고 있다. 파니파트의 주요 산업 단지에서 반경 5㎞ 이내에 있는 주택을 대상으로 한 1차 조사 결과, 가구의 약 93%가 지난 5년 동안 건강 문제를 겪은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질도 크게 나빠졌다. 지역언론 보도를 보면, 파니파트에는 400여 개의 등록된 섬유·표백 공장이 운영되고 있다. 독성 화학 물질이 포함된 폐수가 약 88개 지점에서 도시 인근의 야무나강으로 흘러들어 수질을 악화한다. 이로 인해 일부 지역에서 도시의 지하수가 질산염과 불소, 중금속으로 오염되기도 했고, 식수까지 오염됐다. 파니파트 산업단지 인근의 아산 쿠르드 마을 가구 91.32%, 쿠크라나 마을의 가구 97.8%가 오염으로 인해 식수를 섭취하기 어렵다는 답변을 했다고 한다.
오염도는 날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인도 정부가 측정하는 종합 환경 오염지수(CEPI)에서 파니파트의 오염지수는 2009년 71.91에서 2013년 81.27, 2018년 83.54로 상승했다. 70이 넘으면 가장 높은 수치인 ‘중대한 오염’ 수준인데, 거기에서도 점점 오염도가 심화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헌 옷의 수도’ 파니파트는 헌 옷으로 인해 망가지고 있다. “패션업은 성장하고 있고, 우리가 쓸 담요를 생산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긴 해요. 그런데 그건 우리 건강과 바꾸게 되는 거죠. 사람들이 아파요.” 파니파트 지역 활동가인 우메이 타야기(49)가 말했다.
주정부는 도시가 오염으로 엉망이 되는 과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 주정부가 공장의 불법 소각과 폐수 방류를 금지하지만, 단속은 잘 이뤄지지 않는다. 덤프야드에서 만난 트럭 기사 라즈벨도 “사람들은 소각이 불법이라는 걸 알고 있다”고 말했지만, 취재팀이 덤프야드를 방문한 3일 동안 한 번은 방금 소각이 끝난 흔적을 찾았고, 두 번은 소각이 진행 중인 사실을 확인했다. 불법이 매일 버젓이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파니파트에 머무른 4일 내내 무언가를 태우는 매캐한 냄새가 덤프야드 주변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막대한 헌 옷이 도시로 밀려드는 한 멈추기 어려울 불길이다. 그곳으로 우리가 매일 옷을, 그리고 쓰레기를 버린다.
파니파트(인도)=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조윤상 피디 j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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