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명지(맨 앞줄 왼쪽)씨와 말벌 동지들이 2025년 3월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방배동 남태령역 앞에서 트랙터를 끌고 온 ‘전봉준 투쟁단’과의 연대집회에서 노트북과 태블릿피시를 펼치고 각자의 과제와 일을 하고 있다.
“비상계엄이 해제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막아낼 수 있었던 걸 눈으로 봤잖아요. 머릿수가 중요하다는 걸 그때 좀 실감했어요.”
강명지(28)씨는 정의로운 일이라면 많은 사람이 모여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강씨는 12·3 내란 이후 국회 앞과 해고 노동자 고공농성장, 장애인 시위, 광화문 농성장, 남태령 등 연대가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가서 연대하고 있다. 강씨와 같은 이들을 ‘말벌 동지’라고 한다. 특정 노조, 시민단체 등에 속하지 않으면서도 ‘말벌 동지’가 필요한 ‘꿀벌’들이 있는 곳에 나타난다. 대부분 20~30대 여성과 성소수자인 이들은 어떤 방식으로도 규정되지 않고 각자의 개성과 성향을 존중한다. ‘말벌 아저씨’는 엠비엔(MBN)에서 방영된 ‘나는 자연인이다’ 프로그램에 나온 한 출연자의 별명이다. 한 남성이 말벌이 나타나자 꿀벌을 지키기 위해 쏜살같이 뛰어가는 모습에서 나온 밈(meme, 온라인상의 유행어)에서 유래했다. 말벌 동지들은 말벌 아저씨처럼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쏜살같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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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벌 동지들이 3월25일 저녁 서울 서초구 방배동 남태령에서 ‘전봉준 투쟁단’에게 ‘농민가’를 배우고 있다.
전날 밤 서울 광화문 농성장에서 노숙한 강씨는 2025년 3월25일 아침 8시 경기 고양시 지축역에서 철도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윤석열 파면 요구 총파업 투쟁 전단을 배포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이후에는 해고자인 말벌 동지 요지경(활동명)씨와 함께, 삭감된 상여금 원상복구를 요구하며 폐회로텔레비전(CCTV) 관제탑 위에서 고공농성 중인 김형수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장을 응원하기 위해 서울 을지로3가 한화빌딩 앞으로 이동했다. 노동·시민단체들과 함께 한화에 조속한 해결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에 힘을 실었다.

강명지씨와 동료들이 3월25일 오전 경기 고양시 덕양구 지축역에서 철도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총파업 참여를 독려하는 전단을 나눠주고 있다.
간단하게 점심을 마친 강씨는 다른 말벌 동지와 함께 윤석열 파면을 요구하며 전국에서 트랙터를 몰고 온 ‘전봉준 투쟁단’과 연대하기 위해 남태령으로 이동했다. 남태령역에서 나오자마자 극우 유튜버와 단체들은 지나가는 말벌 동지들을 상대로 욕설을 퍼부었다. 말벌 동지들은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고 100m 넘는 길을 걸어 전봉준 투쟁단에 합류한 뒤, 익숙하게 아스팔트 위에 바닥 깔개를 펼치고 각자의 가방에서 노트북, 책, 음식 등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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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지(왼쪽)씨와 요지경씨가 3월25일 오전 서울 을지로에서 지하철로 이동하고 있다.

강명지(머리에 두건을 두른 이)씨와 말벌 동지들이 3월25일 오전 서울 중구 한화빌딩 앞에서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고공농성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기다리는 도중 대화하고 있다. 김형수 거통고 조선하청지회장은 삭감된 상여금 원상회복 등을 요구하며 3월15일부터 한화빌딩 앞 30m 높이 폐회로텔레비전(CCTV) 탑에서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강씨는 태블릿피시로 일하다가 구호를 외치고 무대에 나와 춤을 췄다. 트랙터의 이동을 막는 경찰과의 대치가 길어지자 전봉준 투쟁단과 함께 ‘농민가’에 맞춰 춤추며 “(경찰) 차 빼라”라는 구호를 외쳤다. 말벌 동지에게 아스팔트 위는 투쟁 현장이고 삶의 연장이었다. 말벌 동지들에게는 투쟁과 일의 구분은 없다. 저녁 시간이 되자 남태령은 나눔의 현장이 됐다. 집회 참가자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이 가져온 음식을 꺼냈고, 작은 것이라도 나눴다. 강씨는 “남태령 현장에서 오병이어가 왜 가능한지 알았다. 어디선가 누군가가 배달을 해주었고 피자 한 조각, 김밥 한 줄도 서로 나눠 먹으며 연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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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벌 동지들이 갑자기 등장한 배경을 두고 강씨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어떤 조직에 속하지는 않았지만, 시위에 참여하고 여성주의 학회 활동을 한다든지 어떤 식으로든 행동해왔어요. 성소수자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케이(K)팝을 틀어놓고 행진하는 퀴어 퍼레이드는 전혀 낯설지 않은 풍경이잖아요. 각자의 삶에서 정치적 행보를 계속해서 밟아왔으니까요. 그간 민주화 운동에서 많이 논의되지 못했던 다른 운동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나온다고 생각해요.”

강명지씨와 말벌 동지들이 3월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방배동 남태령역 앞에서 트랙터를 끌고 온 ‘전봉준 투쟁단’과의 연대집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글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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