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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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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순간도 걷지 않았던 소방관처럼 [만리재에서]

등록 2022-11-22 05:03 수정 2022-12-09 06:36
1439호 표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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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이태원에 가지 못했다. 그날 밤 이후, 때때로 고민했지만 결국 가지 못했다. 부끄럽지만 차마 참사 현장을 직접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10월29일 밤부터 머릿속의 팔 할은 ‘그날’로 차 있으면서도 말이다. 이번호까지 3주 연속 표지이야기를 이태원 참사 관련 기사로 채웠다. 벌써 스무 날이 흘렀다. 그동안 기자들은 이태원 참사 현장을 오가거나 그날 현장에 있던 이들을 인터뷰하고 각종 자료와 사진, 영상 등을 정리했다. 때로 그 과정이 고통스러웠지만, 그날 고통의 한가운데 있던 이들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날을 떠올리면, 한 사람의 모습이 또렷하다. 밤새 텔레비전 생중계를 통해 그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주황색 헬멧을 쓴 그가 ‘숫자’를 말하면서 얼마나 떨고 있는지 화면 밖에서도 느껴질 정도였다. 10월30일 새벽 2시15분 1차 브리핑 59명. 불과 한 시간도 지나지 않은 2시58분 2차 브리핑 120명. 엄청난 희생자 수를 입 밖으로 꺼내놓기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현장 지휘를 책임진 용산소방서장으로서 느꼈을 참담함, 허망함, 무게감이 전해졌다.

그날 이태원 참사 현장에는 모두 906명의 소방관이 투입됐다. 이들은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심폐소생술을 진행하고, 환자 상태를 분류하고, 응급처치를 하고, 이미 숨을 거둔 이들의 옷차림을 다듬어주고, 혹시 카메라에 얼굴이 찍힐까 염려해 모포를 덮어주고, 이들을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이송했다. 대원들은 “단 한순간도 걷지 않고 뛰어다녔다”(11월9일 용산소방서 이은주 구급팀장).

그날 밤, 국가 재난안전관리 총책임자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자정을 넘긴 새벽 12시45분에야 현장에 도착했다. 처음 보고를 받은 뒤 1시간25분 동안 누구에게 무엇을 지시했는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12시25분에 현장에 도착했고, 지방에 있던 윤희근 경찰청장은 12시14분에야 첫 보고를 받았다.

밤 10시30분께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소방관 가운데 최성범 용산소방서장과 ㄱ현장지휘팀장은 경찰청 특별수사본부(특수본)가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가장 먼저 입건한 피의자 6명 가운데 2명이 되었다. 서울에서 출동한 소방관 620명의 활동기록을 제출하게 하고, 서울소방재난본부와 용산소방서를 압수수색했다. 소방관들은 “유일하게 참사 현장과 함께한 지휘관을 구속하려면, 7만 소방관을 다 구속하라”고 주장하며 11월14일 이상민 행안부 장관을 직무유기 혐의 등으로 고발했다. 재난컨트롤타워인 행안부보다 소방에 먼저 책임을 물었던 특수본은, 11월17일에야 행안부 12곳을 압수수색했다.

과연 특수본은 일선 소방관과 경찰관에게 ‘꼬리 자르기’ 식으로 책임을 묻는 대신에, 참사를 사전에 예방하지 못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재난·안전관리 책임자들인 ‘윗선’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까. 이번호에서는 조각난 그날의 기억과 기록을 소방관들의 시선에서 재구성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언론이나 사회의 관심도 식어가고 있다. <한겨레21>은 왜, 어떻게 이러한 참사가 일어났는지, 계속해 끈질기게 기록하겠다. 그날 밤 단 한순간도 걷지 않았던 소방관들의 무한책임처럼, 언론의 책임은 기록이라고 믿는다.

며칠 전 만난 친구는 혼자 이태원에 다녀왔다면서 말했다. 그곳에서 눈물 흘리고 슬퍼하는 이들을 보면서 오히려 위로받았다고,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그날을 고통스러워하는 모두에게 <한겨레21>의 기록이 자그마한 위로가 됐으면 한다.

황예랑 편집장 yrcomm@hani.co.kr

1439호 표지이야기 - 10월29일 이태원 그날

그를 구속하려면, 7만 소방관을 다 구속하라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2897.html

수사당국은 현장을 얼마나 알고 있나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2898.html

와이키키 펍에서는 그날 무슨 일이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2901.html

이태원 참사 유가족, 국가책임 묻는다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290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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