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선포 이틀 전, 패스트푸드점인 롯데리아에 군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활동을 하는 국군정보사령관과 정보사 소속 대령 두 명이 모였다. 이들을 롯데리아로 부른 건 한 민간인이었다. 이 민간인은 군인들에게 ‘중요한 임무’를 하달했고, 이틀 뒤 그 임무는 실제로 계엄군에 의해 수행됐다. 민간인과 정보부대 간부들이 햄버거를 씹어먹으며 내란을 계획한 것이다.
한겨레21의 취재와 정보사 정아무개 대령이 경찰 조사에서 진술한 내용을 종합하면, 이들이 모인 건 대통령 윤석열이 계엄을 선포하기 이틀 전인 2024년 12월1일이었다. 전직 국군정보사령관이었던 노상원이 현직 정보사령관인 문상호와 정보사 소속 정아무개·김아무개 대령을 경기 안산시 한 지하철역 앞으로 불렀다. 노상원은 이들을 불러 “우선 햄버거 먹고 얘기하자”며 역 근처 롯데리아로 오게 했다. 정보사 간부들은 이미 ‘계엄’에 대해 노상원에게 듣고 이 자리에 나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미 노상원에게 사전 지시를 받은 문상호가 2024년 11월22일 정 대령과 김 대령에게 “공작을 잘하는 인원 15명 정도를 선발해 명단을 보고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점심으로 햄버거를 먹은 뒤 노상원은 ‘중요한 임무가 있을 것'이라고 입을 뗐다. 그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전산 서버를 확인하면 부정선거 증거를 확보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고, 정 대령이 ‘부대원 가운데 정보기술(IT) 전문가가 없다’고 하자 노상원은 “너희들이 중앙선관위 전산실로 가면 된다”고 말했다.
노상원이 작전 지시를 마치고 자리를 뜨자, 문상호는 인근 주차장으로 이동해 따로 두 대령에게 ‘비상계엄'이 예정됐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계엄이 만약 선포되면 당연히 장관님으로부터 명령이 내려올 것이다. 따라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고 정 대령이 경찰에 진술했다.
계엄 당일인 12월3일 문상호는 정 대령과 김 대령에게 “임무가 있을 수 있다”며 2개팀에서 모두 30~40명의 부대원을 준비시켰다. 요원들은 3~4일 정도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짐을 챙기고, 수도권에 있는 한 여단본부로 소집됐다. 이후 12월3일 밤 9시께 문상호가 여단본부에 도착했고, 밤 10시께 부대원들에게 계엄 계획에 대한 교육을 했다. 그는 “계엄 선포 뒤, 12월4일 아침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 출동해 대기하라. 임무는 그날 아침에 주겠다”고 명령했다.
하지만 12월4일 새벽 1시1분 국회는 비상계엄 해제요구안을 의결했고, 이날 새벽 5시4분 국무총리실이 국무회의에서 새벽 4시30분을 기해 계엄 해제안이 의결됐다고 발표하면서 계엄이 종료됐다. 문상호는 12월4일 새벽 5시30분께 대기 중이던 요원들에게 “임무를 하지 않아 다행이다. 복귀하라”고 지시했다.
한겨레21 취재 결과, 이들이 안산의 한 롯데리아 영업점에 모인 까닭은 노상원의 주거지가 안산시 상록수역 인근이기 때문이다. 노상원이 점집으로 운영하는 자신의 집 근처로 정보사령관과 두 대령을 불러모았다는 사실은 노상원이 민간인임에도 정보사에 여전히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특별수사단은 이 영업점의 폐회로티브이(CCTV) 영상을 확보해 수사하고 있다.
노상원은 통신 첩보 부대인 777사령관, 국군정보사령관 등을 역임한 정보통이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대통령경호실 군사관리관을 맡기도 했다. 그는 핵심적인 ‘용현파’로 분류되는 전 국방부 장관 김용현의 최측근이기도 하다. 노상원(육사 41기)과 김용현(육사 38기)은 세 기수 차이 나는 육사 동문으로 돈독한 사이다.
노상원은 특히 정보사 간부들에게 계엄을 예고하고 내란을 준비시키는 등 대통령 윤석열과 정보부대 사이의 ‘연결고리’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윤석열 곁에는 군 출신 최측근 김용현이 있었지만, 그도 정보사까지 장악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한 육사 출신 정보병과 예비역은 “군 장성 출신 중에서도 정보사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라며 “정보사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쭉 그쪽에서 일하고, 일선에 있는 장교들과는 거의 교류가 없다. 그래서 정보사 예하 부대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어떤 사람들이 있었는지도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비밀에 싸인 정보사 예하 특수요원들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정보사령관 출신 예비역인 노상원의 역할이 필요했다. 노상원는 12월3일 계엄 당일과 다음날에도 김용현과 수차례 통화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사실 노상원의 군 생활은 범죄로 불명예스럽게 끝났다. 노상원은 육군정보학교장이던 2018년 10월1일 국군의 날 교육생을 술자리로 불러내 강제로 신체를 접촉했다. 결국 노상원은 군사법원으로부터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불명예 전역하게 됐다.
하지만 민간인 노상원은 군 지휘체계와는 별도의 ‘노상원 라인’을 구축해 내란을 준비했다. 더불어민주당 윤석열 내란 진상조사단(이하 ‘민주당 진상조사단’)이 12월17일 발표한 자료를 보면, 노상원은 에이치아이디(HID·북파공작부대)와 암살조 등 북파공작부대를 사실상 조정·통제하며, 계엄사 합동수사단 내 제2수사단을 꾸려서 컨트롤하는 조직을 만들었다. 그리고 정보사 신문단 김아무개 대령, 사업단장 정아무개 대령, 정보부 구아무개 준장 등으로 ‘노상원 라인’을 구축하고, 이 조직을 통해 이른바 오비(OB·예비역)를 이끌었다고 한다. 민주당 진상조사단은 “이는 원래 없었던 임시편제로 계엄을 사전 준비한 정황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노상원이 이렇게 현역 정보사 장교들까지 포섭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상 ‘인사권’을 휘두를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대통령 윤석열의 총애를 받는 김용현과 가깝고, 정보사 오비들과도 수시로 교류해온 덕이다. 민주당 진상조사단은 노상원이 김용현과 함께 장군 인사 등을 논의했고 실제로 인사에 관여해왔을 정황이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12월1일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한 김 대령에게 노상원은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듯 진급 인사 정보를 알려주기도 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노상원이 인사권을 통해 또 다른 현역 군인을 포섭하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민주당 진상조사단이 받은 제보에 따르면, 노상원은 근무연 등 친분이 있는 방아무개 준장을 국방부 정책기획차장이라는 임시직제로 발령 냈다가 2024년 10월 소장급 장성 보직인 통합기획관 자리를 만든 뒤 발령 냈다고 한다. 또 배아무개 준장(진)은 김용현의 국방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태스크포스(TF)에 참가시켰고, 최근 준장으로 진급시켜 연합사로 보직 발령 냈다고 한다.
민주당 진상조사단 소속 추미애 의원은 “12·3 내란의 비선실세이자 기획자로 알려진 노상원의 구체적인 개입 정황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공조수사본부는 즉각 사실관계를 파악해서 내란에 대한 실체적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김도균 전 육군 수도방위사령관은 한겨레21에 “윤석열 정부 들어 윤 대통령이 노상원과 같은 군 예비역들을 자신의 전위부대로 활용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윤 대통령의 측근인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예비역인 노상원에게 힘을 실어주고 자기네 세력을 구축해서 군을 농락한 것”이라며 “특히 에이치아이디와 같은 정보사 비밀요원들까지 계엄에 동원한 것은 분노스럽고 개탄할 일”이라고 말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특별수사단은 12월15일 노상원을 긴급 체포한 뒤 12월18일 서울중앙지법으로부터 구속영장을 발부받았다. 문상호는 12월15일 경찰에 체포됐지만, 검찰이 “군사법원법의 재판권 규정 등에 위반된다”며 불승인해 한 차례 석방됐다. 그러나 경찰이 12월18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로부터 다시 영장을 발부받아 문상호를 체포했다.
채윤태 기자 chai@hani.co.kr·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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