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꾼들 뿌린 대로 거두는 희열과 운 앞의 종종걸음봄 농사의 대미는 감자 캐기다. 장마가 시작되기 전, 감자를 캐낸 밭은 고이 덮어 쉬게 둔다. 입추가 오기 전에 심을 배추와 무로 넘어가기 위함이다. 얼치기(!) 농사를 지으며 칼럼까지 쓰면서 감자를 캐낸 이후 배추, 무를 심기 전까지. 지난해 여름에도 뭘 쓰기가 괴로...2022-08-17 00:18
농사꾼들 호박, 요리의 주연이 되다“이것 좀 먹어봐, 정말 맛있어.” “응 아니야, 아빠나 많이 먹어.”고기를 소금장에 찍던 아이는 냉정했다. 하지만 난 흔들렸다. 밭에서 난 채소들을 듬성듬성 잘라, 버섯과 함께 볶기만 했을 뿐이다. 간은 소금과 후추만 했고 들기름을 훌훌 둘렀다. 그런데 이럴 수가 있...2022-07-14 15:47
농사꾼들 이 오이의 쓴맛은 기후위기입니다“파가 말라, 오이는 쓰고.” 운동하는 아이의 수발(!)을 드느라 지난 주말 포천에 가지 못했다. ‘와잎’은 심히 걱정스럽다는 말투로 ‘기후가 큰일’이라고 읊조렸다. 지난 주말 갓 딴 오이를 무쳐 먹었는데 너무 썼고, 파 끝은 누렇게 타들어갔다고 했다. 그게 기후까지 ...2022-06-23 23:55
농사꾼들 농민의 노동, 임금의 밥상사람은 왜 삼시 세끼를 먹어야 하는가. 어려서부터 늘 궁금했지만 누구에게도 묻진 못했다. 그러다 언젠가 ‘하루 세끼를 먹는 이유’를 인터넷에 검색해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지식 정보를 공유하는 사람들에 따르면, 인류가 하루에 세끼를 먹게 된 이유가 발명왕 에디슨의 음모...2022-05-16 00:32
농사꾼들 한 번에 두 말씀만 하소서2년차 농사를 시작하며 장모님은 올해 농정 3대 방침을 천명했다. 첫째, 이랑을 좁게 판다. 둘째, 고추를 적게 심는다. 셋째, 잡초 매트를 깐다. 엄중한 당부였다. 농사는 대표적 ‘손발 노동’이다. 손발 노동이 저 멀리 아프리카에나 있는 거라고 말하는 이는 분명 밭이...2022-04-28 02:55
농사꾼들 암모니아를 실은 봄의 전령농달(농사의 달인, 이웃집 할머니)이 몇 주째 보이지 않았다. 포천의 봄은 “밭에 계분 할 텨?”라는 농달의 질문에서 시작돼야 한다. 설이 지나고 3월이 왔건만 농달은 아무 말이 없었고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나를, 아니 우리의 밭을 잊으신 걸까. 때 되면 아니할 수 ...2022-04-04 01:14
농사꾼들 이 맛이 시골이지시골의 겨울이 도시의 겨울보다 더 훌륭하고 훨씬 갸륵할 리는 없다. 귀농을 찬양하는 사람들은 시골의 겨울을 더 평화롭고 훨씬 서정적이며 여하튼 아련한 것처럼 묘사하기도 하지만, 글쎄. 시골 겨울의 근원은 길고 그래서 심심하다는 데 있다. 농사를 중심으로 짜인 시공간에서...2022-01-16 16:45
농사꾼들 2021년, 김장 자립 원년미국 드라마 에서 북방 가문 ‘스타크’의 영주는 늘 읊조린다. ‘윈터 이즈 커밍’(Winter is coming). 여러 중의적 의미로 쓰이는 ‘밈’이 됐는데, 밭농사를 시작한 이후 그 얘기가 ‘김장해야 한다’로 들렸다. 텃밭의 생몰은 김장의, 김장에 의한, 김장을 위...2021-12-25 23:12
농사꾼들 고춧대의 탈출구는 어디에멀리서 한 사내가 계속 지켜보는 듯했다. 그것만 빼면 별다를 것 없는 저녁이었다. 말려뒀던 고춧대를 태우고 있었다. 수확을 마친 고춧대는 애물단지다. 다 자란 고춧대는 작은 나무 같다. 뽑아내기엔 뿌리가 깊고, 흔들리고 쓰러지지 말라고 조조의 연환계(배를 묶어놓는 계책...2021-11-30 22:16
농사꾼들 고추 따다 땀 닦아봤소?텃밭 농사는 결국 김장에 가닿는 여정이다. 그 여정의 8할은 고추와의 관계 맺음이다. 고추, 늦봄부터 여름에 걸쳐 재배하는 대표적인 양념 재료. 장모님은 텃밭을 시작하며 ‘우리 김장 고추 자급 원년’을 선언하셨다. 최소 서른다섯 근은 나와야 한다고 했다. 고운 고춧가루...2021-11-02 23:37
실패가 익숙해 좌절할 수 없는 이들을 위하여어려서 힘이 셌다. 어른들은 그걸 ‘소질’이라고 불렀지만, 평범한 재능이었다.사직구장의 함성과 탄식으로 하루가 여닫히던 부산에서 나고 자랐다. 2008년 여름, 5학년이었다. 공터만 있으면 친구들과 공을 던지고 치고 받았다. 낯선 사건은 불쑥 끼어들었다. 점심시간에 ‘...2021-09-17 18:10
농사꾼들 호스의 추억경기도 포천에서 농사짓기 전, 2년 정도 텃밭을 가꿨다. 회사 선배들이 하던 농장에 한 이랑을 얻어 겪은 농사의 맛은 썼다. 제일 쓴맛은 역시 잡초였다. 풀과의 전쟁. 멀칭(Mulching·농작물을 재배할 때 땅 표면을 덮어주는 일) 없이 짓기 시작한 농사는 그야말로 ...2021-09-14 18:52
농사꾼들 농사는 닭똥부터 시작된다시골은 코로 여러 기운을 느끼는 동네다. 바람도 냄새가 있고 잡초도 향기가 있다고 한다. 아파트가 고향인 나는 그 기운을 대체로 알아차리지 못한다. 하지만 ‘계분’은 아니었다. 확실하다. 이른 봄, 계분 냄새는 시골의 거의 모든 것이다. 봄의 시골은 온통 계분으로 덮인...2021-08-21 20: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