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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하와 윤가이의 연애, 설왕설래는 그만!

다양한 여성의 삶을 옥죄는 일방적 자매애와 갈수록 늘어만 가는 ‘전시 금지’ 목록… 불평등 비판이 ‘무례의 전시’
등록 2026-07-02 21:33 수정 2026-07-09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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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0만 조회수를 기록한 강유미 유튜브 콘텐츠 ‘20살 차이 나는 커플' 섬네일 갈무리.

290만 조회수를 기록한 강유미 유튜브 콘텐츠 ‘20살 차이 나는 커플' 섬네일 갈무리.


가수 장기하와 배우 윤가이의 연애 소식이 전해졌다. ‘나이 차 극복’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둘은 18살 차이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설왕설래가 많다.

확실히 중년 남성이 어린 여성과 만나는 것을 자신의 ‘능력’으로 자랑하는 모습은 꼴 보기 싫다. 남성의 성적 매력은, ‘젊고 예뻐야 하는’ 여성에게 요구되는 기준보다 훨씬 느슨하게 적용되며, 특히 나이에서 그런 차이가 두드러진다. ‘ 남자는 와인, 여자는 크리스마스 케이크’ 운운하는 비유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런 불평등한 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와 여성 개인의 선택을 비주체적이라고 취급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나이 많은 남성을 만나는 여성을 두고 나오는 말들을 보자. 강유미의 유튜브 채널에서 290만 조회수를 기록한 영상 ‘20살 차이 나는 커플’의 댓글에서도, 이 만남을 두고 아저씨 페티시인 ‘오지콤’이라거나 아버지와의 갈등이나 결핍이 연애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대디(daddy) 이슈’ 때문이라는 평가, ‘비위가 좋다’는 비아냥, 같은 조건에 젊은 남성이었으면 만나지 못하니 ‘타협’한 만남이라는 분석 등이 넘쳐난다. 그나마 ‘관대한’ 의견에는 여성을 가부장 사회의 불평등한 권력 구조에 세뇌된 피해자로 보거나 그녀가 취약해서 판단력이 흐려진 것이라며 병리화하는 판단이 있다.

이 중 가장 눈에 띄는 반응은 온라인에 “전시 좀 안 했으면”이라는 의견이다. 이런 사례가 당연시돼 특히 일터에서 ‘늙남’(나이 많은 남성을 속되게 부르는 말)들이 주제 파악 못하고 자신이나 어린 여성들에게 추근대도 된다는 희망을 주는 악영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 ‘전시하지 말라’는 말의 연원은 2018년께 ‘탈코르셋 담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화장한 얼굴이나 노출 있는 패션, 외모 보정 필터를 쓴 사진 등을 올리면 다른 여성에게 외모 압력이 되니 지양하자는 흐름이 탈코르셋 담론이다. 대신 화장 등에서 모두 ‘탈’(脫)한 모습은 다른 여성, 특히 청소년에게 본보기가 되고 용기를 주니 반대로 적극적으로 올리자는 제안이 나왔다. 이 제안에 ‘똑같은 모습을 강요하지 말라’는 반론이 나왔지만, 이번에는 ‘주체적 섹시는 환상일 뿐’이라는 반론이 다시 맞섰다. 이 재반론에 그나마 ‘중년 여성은 꾸밈이 허락되지 않아 꾸밈이 저항’이라거나 ‘승무원 등 외모가 생계인 사람은 어쩔 수 없다’는 의견 정도만 수용됐다.

이후 전시 금지 목록은 점점 늘어났다. 이성애 ‘럽스타그램’, 동물권에 저해되는 고기 음식 사진 등. 왜 다들 페미니즘 등 온갖 진보 의제 현대미술관 큐레이터가 됐을까? 페미니즘의 유명한 구호인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니까? 모두 순간순간의 ‘수행’을 통해 이 사회의 규범을 모방하고 반복하는 행위자이고, 그러니 ‘책임’이 있으니까? 혹은 개인은 ‘구조의 산물’이고, 그러니 ‘온전히 주체적인 선택’이나 ‘온전한 자기만족’은 환상이니까?

파키스탄계 미국인 인류학자 사바 마흐무드는 이렇게 ‘주체성=자유, 저항’으로만 의미화하는 것은 ‘서구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전제라고 지적했다. 한 사회의 규범을 따르는 여성들의 순응성 역시 주체성의 한 모습이라는 것이다. 불평등이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특정한 모습만 주체성 모델로 설정하는 것은 다양한 주체성의 양상을 오히려 무시하게 된다는 의미다.

여성의 선택 하나하나를 검열하고 훈계하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정신분석학자를 자처하거나 여성 연대 ‘팀플’이 안 된다며 ‘배신자’ ‘가부장제 부역자’로 취급하는 일이야말로 무례한 전시다. 혹은 멋대로 불행한 인생이라며 ‘교정’하자는 시혜적인 태도도 그렇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동일시하고 기대하다 실망하던 애증의 자매애 시기는 치를 만큼 치렀다. 그러니 이 정신도 필요하다. “알빠임?”

 

도우리 작가·‘불편한 유행’, ‘우리는 중독을 사랑해’ 저자

 

*모두가 단일하게 매력적이기를 기대받고 또 기대하는 시대, 매력의 재발명을 고민하는 칼럼입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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