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3대 개혁(노동·연금·교육)을 추진하면서 연일 ‘청년’을 강조한다. 윤 대통령은 2023년 2월27일 연세대 학위수여식에 참석해 “3대 개혁은 우리 사회를 더 활기차게 하고 여러분(청년)의 꿈과 도전에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2월21일 국무회의에서도 노동개혁 필요성을 강조하며 “노조의 기득권은 젊은 사람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게 만드는 약탈 행위”라고 했다. 대통령실은 이날 발언을 짧은 동영상 ‘쇼츠’로도 만들어 젊은 세대를 겨냥한 홍보에 나섰다. 하지만 청년들이 과연 자신들을 수혜자로 생각할까.
노동개혁 내용 가운데 청년층이 체감할 수 있는 건 크게 두 가지, 노동시간과 임금체계다. 고용노동부는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주에서 월·분기·반기·연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지금까지 ‘주 52시간’(노동시간 한도 40시간+노사 합의시 연장근로 12시간)까지 가능했던 노동시간 상한을 ‘주 69시간’, 혹은 11시간 연속 휴식 없는 ‘주 64시간’으로 연장하겠다는 방안이다. 주 69시간이면 주 6일 동안 오전 9시에 출근해 밤 10시까지 일해야 한다(점심 등 휴게시간 1시간30분 포함).
청년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는 2023년 1월9~11일 전국 성인 1008명에게 한 여론조사에서 “현행 노동시간 상한인 주 52시간을 최대 69시간까지 허용하되, 그만큼 다른 주의 연장근로 시간은 줄이는 방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물었다. 결과는 찬성 45%, 반대 48%였다. 찬반이 비등한 것처럼 보이지만 세대별로 뜯어보면 다르다. 20대는 반대 47%(찬성 39%), 30·40대는 반대 60%(찬성 34%)였다. 청년세대에선 반대가 더 많았다. 찬성이 더 많은 연령대는 60대(67%)와 70살 이상(54%)이었다. 직업별로는 무직·퇴직자의 찬성(70%)이 많았다.
인터넷 커뮤니티, 유튜브 채널 등에서 댓글 반응은 더 직접적이다. “이러니까 애 안 낳지” “안 그래도 노동시간 긴 나라” “중소기업은 대부분 노조가 없는데 노사가 합의하라니” 등. 실제 한국인의 연간 노동시간은 2011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1위였다가 2012년 멕시코에 이어 2위로 내려왔는데, 2017년까지 같은 순위를 유지했다. 주 52시간 노동제와 코로나19 등의 여파로 2021년 5위(1915시간)가 됐지만, 여전히 압도적으로 노동시간이 긴 국가다.
정부·여당은 노동시간 연장이 아닌, ‘유연화’란 입장이다. 한 주의 노동시간이 늘면 그만큼 다른 주 노동시간을 줄인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마저도 노사 합의로 하니 사 쪽만 고려한 게 아니라고 한다. 함께 임금제도 개편을 하면 ‘기업 자유’가 커지면서 구직 청년을 위한 일자리도 늘 것으로 기대한다. 정부는 기존 ‘호봉제’를 ‘직무·성과급제’로 개편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하향평준화’를 우려한다. 정부의 노동개혁 방안대로면 노동시간은 늘고, 기준이 불분명한 성과 평가로 연봉이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게다가 인공지능·자동화 기술의 발달로 ‘30대 희망퇴직’을 받는 기업이 있는 상황에서, 질 높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도 있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은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기업 처지에선 노동시간을 늘리면 사람을 뽑을 필요가 더 없어진다. 85%가 노동조합 없는 직장인데 지난주에 일했다고 이번주 쉬고, 추가노동 수당 챙기는 게 가능할까”라고 반문했다. 실제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2021년 8월)를 보면, 국내 임금노동자 가운데 대기업 정규직이면서 노조에도 가입한 이는 8.7%에 불과하다. 반면 비정규직 노동자의 대부분은 일하는 사업장에 노조가 없거나(84.6%), 가입 대상이 아니다(9.2%).
김 소장은 “대기업 정규직과 중소기업 비정규직 등으로 나뉜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문제라면, 정부는 왜 핵심을 이야기하지 않나. 원·하청 관계, 납품 단가 후려치기, 이익공유제 등 기업 간 격차를 벌어지게 하는 요소보다 노조 비판에만 몰두한다”고 비판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도 “(정부 개혁안은) 기업의 인건비 절감이 고용 창출로 연결된다는 해묵은 논리인데, 사실 인건비 절감 효과가 큰 것도 아니고 그런 개혁이 곧 일자리 창출로 연결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며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를 해결하려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격차, 정규직과 비정규직 격차를 극복해야 바람직한데, 그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시간 노동해야 하고 안정된 고용에서 멀어진 청년은 불안하다. 불안은 저출생 문제를 낳는다. 2022년 합계출산율은 전무후무한 0.78명을 기록했다. 2018년 10월 국회예산정책처가 발간한 보고서 ‘우리나라 저출산 원인과 경제적 영향’을 보면 “연령, 학력 수준, 여성의 임금을 통제한 상태에서 주당 총근로시간의 증가는 임신 확률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나온다. 안 그래도 심각한 저출생 문제가 더 악화할지 모르는 것이다. 정부는 저출생으로 악화하는 연금 문제를 해결한다며 개혁을 추진하지만 이 역시 청년세대에겐 부담이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민간자문위원회는 3월2일 국회에서 전체회의를 열고 연금특위에 제출할 보고안을 논의했다. 2055년 기금 소진이 예견된 상황에서 ‘일단은 더 내야 한다’는 게 논의 기조다. 악화할 것으로 보이는 노인빈곤율을 고려하면 ‘덜 받자’고 하는 것도 어렵다. 국민연금연구원의 ‘NPRI(국민연금연구원) 빈곤 전망 모형 연구’ 보고서를 보면 미래 세대가 노년이 되는 2085년, 노인 10명 중 3명은 빈곤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2020년 노인빈곤율은 39.0%다.
현 정부의 연금개혁은 미래 세대의 부담을 덜자는 의도지만 결국 현 청년세대의 부담을 키우는 건 불가피하다. 청년 처지에선 이래저래 아이를 낳지 않는 선택이 당연하다. 일자리 구하기도 어려운데 그나마 취직해도 노동시간이 길다. 설사 아이를 낳아도 직접 돌보지 못하니 사교육에 맡겨야 한다. 연금 수급액은 노후 대비에 부족한데 보험료만 오른다. 합리적·이성적 개인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명확하다.
악순환이다. 그래서 여당에서조차 ‘인구문제’와 ‘사회안전망’에 집중해야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2월2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윤 대통령이 추진하는 연금개혁·노동개혁·교육개혁 3대 개혁보다 더 근원적이고 중요한 개혁이 저출산 극복을 위한 개혁이다. 인구문제 해결 없는 연금·노동·교육 개혁은 모래성에 불과하다. 임기 1년이 지나가는 윤석열 정부는 인구위기 극복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은 정치적으로 임명됐다가 정치적으로 해임됐다. 윤석열 정부의 저출산 대책은 대체 무엇이냐”고 물었다.
청년세대가 아이를 낳지 않는 문제는 교육비와도 연결돼 있다. ‘그 아이를 무슨 수로 키우느냐’는 것이다. 2021년 교육부가 발표한 사교육비 총액은 23조4천억원이었다. 한 해 전보다 21.0% 늘었고 기존 최대치인 2009년 21조6천억원을 뛰어넘었다. 사교육비 총액이 커지는 건 당연하다. 자녀에게 질 높은 교육을 하고 싶어서, 맞벌이 가정의 보육 공백 때문에, 좋은 학벌을 가져야만 고용안정성이 높은 전문직과 대기업 정규직에 자녀가 진입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이런 인식과 바람은 결국 자녀에 대한 과도한 투자로 이어진다. 역시 청년에겐 부담으로 작용한다. 서이종 서울대 교수(사회학)는 “노인 빈곤 문제를 조사해보면 ‘건강’과 ‘자녀’가 원인”이라며 “노후를 불안하게 할 정도로 자녀에게 지나친 투자를 한다”고 했다.
상황이 이러한데 정부의 교육개혁안은 막연하다. 인공지능과 논술·토론식 수업으로 교육 격차를 해소하고 공정한 경쟁을 가능하게 한다고 했지만, 입시 경쟁 해소와 사교육비 경감은 어떻게 이룰지 구체적인 구상은 없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자신을 “수능 폐지론자”라고 했다가 교육계 파장이 우려돼 “윤석열 정부에서는 입시 안정성에 주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장은 “입시 자체를 바꾸든지 아니면 학벌에 따라 큰 사회적 보상이 정해지는 구조 자체를 바꾸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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