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책 작가에게는 책을 쓰고 만드는 모든 과정이 처음이다. 과정마다 경험하는 감정도 마찬가지. 첫 책을 계약하는 순간의 기쁨과 설렘이 지나간 뒤에는 수많은 부정적 감정(근심, 걱정, 불안 등)을 처리하느라 힘들어하는 작가가 많다. 사람마다 상황마다 양상은 다르지만, 신입 작가를 집어삼키는 어두운 생각은 카테고리화할 수 있을 만큼 비슷했다. 크게 세 가지를 꼽자면 이러하다.
1. “저 같은 사람이 무슨 책을 낸다고…”
초고를 쓰는 중에도 자주 듣는 말이지만, 예비 저자에게 첫 책을 제안했을 때 겸손한 거절의 의미로 듣는 말이기도 하다. 비슷한 표현으로 “이런 이야기에 누가 관심을 갖겠어요”도 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책과 작가를 특별한 존재로 여기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첫 책 원고를 집필하다가 순간순간 이른바 ‘현타’를 맞는다. 세상에 나보다 더 글 잘 쓰고, 유명하고, 잘나가는 사람이 수두룩한데 내가 책을 쓴다고? 그런 생각이 들 때면 한없이 작고 작아져 한 발자국도 움직이기 힘들어했다.
2. “책이 나오기는 할까요?”집필하다보면 이 고통스러운 과정이 끝날지 의문이 들 때가 온다. 글이란 게 어느 수준에 이르러야 완성인지 알 수 없고, 모니터 속 빈약한 내 글이 책이 된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아서다. 힘들게 원고를 완성하고 나서도 예상보다 더 복잡하고 지난한 편집 과정의 한복판에 있을 때는 내 이름이 표지에 적힌 책 한 권이 세상에 존재할 날이 오지 않을 것 같다고들 한다.
3. “제 글이 너무 별로예요”
첫 책 작가는 물론이고 많은 작가가 빠지는 어둠의 생각이다. 기준이 높아서일 수도 있고, 쓰고 싶어 하는 글과 자신이 쓸 수 있는 글이 달라서일 수도 있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나 읽고 있는 책과 자신의 원고를 비교하면 부족해 보일 수밖에 없는데, 그 책은 작가와 편집자가 수차례 수정하고 또 수정해서 세상에 내놓은 그들 나름의 완성형이다.
어둠의 생각이 발목을 잡아도 어떻게든 작가가 걸어갈 수 있도록 이끄는 것 또한 편집자의 일. 다양한 방법으로 작가의 손을 붙드는데 이렇게 요약된다. “응원한다. 믿는다.” 당신이라는 작가의 특별함을, 당신이 쓴 글의 고유한 장점을 구체적으로 응원한다. 당신에게는 모든 걸 해낼 능력과 힘이 있음을 믿는다. 과정과 결과, 작가 존재 자체를 믿는다. 그걸 태도로 보이고 표현한다.
그러나 모든 걸 동원해도 소용없을 때가 있다. 그때 마지막으로 꺼내는 방법은 “자신을 못 믿겠으면 나와 편집부를 믿으라”는 것이다. 출판 전문가인 우리를 믿고 ‘더 잘 알겠지, 어떻게든 하겠지’ 걱정과 의심을 떠넘기라는 것. 그러면 많은 작가가 한결 홀가분해했다. 그렇게 큰소리를 땅땅 친 나는 어떤가 하냐면 불안하긴 매한가지다. 세상에 같은 책은 단 한 권도 없고, 우리가 맞이할 모든 일은 예측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 분명한 건 ‘나의 작가’를 믿는다는 것. 이 책이 누군가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도움이 되리라는 것.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뚜벅뚜벅 걷는 일밖엔 없다.
그러니까 우리가 읽는 책 한권 한권에는 이렇게 수많은 감정과 그걸 살아낸 누군가의 시간도 담겼다. 책꽂이에 꽂힌 책들을 바라볼 때면 책마다 품은 그 시간을 상상하곤 한다. 그럼에도 결국 우리 손에 닿을 수 있도록 해준 누군가의 믿음에 대해서도. 그 덕분에 우리는 책을 읽을 수 있다.
글·사진 김보희 출판편집자*출판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소개합니다. 직업군별로 4회분 원고를 보냅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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