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 비상계엄 내란사태가 불러온 민주주의의 위기에 분연히 떨쳐 일어난 사람들의 기록이 책으로 묶여 나오고 있다. ‘다시 만날 세계에서’(안온북스 펴냄)는 광장에서 분출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기록한 책으로 의미 깊다. ‘남태령 대첩’의 농민들이 트랙터를 몰고 온 ‘상경 투쟁’에서 결정적 구실을 한 여성 청년 농민 김후주, 경북 포항에서 살며 서울과 지역의 광장 시위에 참석한 소설가 정보라, 다큐멘터리 ‘성덕’을 만든 영화감독 오세연 등 9명의 여성 필자가 함께 썼다.
광장은 모두에게 다른 경험을 선사했다. 유기농 과수원을 하면서 글을 쓰는 김후주는 접점이 없을 것 같았던 ‘농민운동 투쟁단’과 ‘비농민 시민’(특히 청년 여성들)의 연결고리가 되었다. 자신의 사소한 트위트가 거대한 물결을 이루는 장면을 보며 책임감과 죄책감으로 ‘미디어 봉사활동’을 시작한 그는 사람들의 관심이 우발적으로 폭발하는 한가운데서 당황해하면서도 기꺼이 무게를 감당하려 한다. 그에게 남태령은 모든 연대자를 환대하고 서로 배우는 학습의 광장이었다.
정보라 작가는 젊고 예쁜 여성들이 예쁜 응원봉을 들고 예쁘게 데모하는 모습을 “‘기특해하고’ 분석하는” “K-아저씨들의 남성우월주의적 시선”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대구 집회 현장에서 2030여성 비율이 서울과 다르지 않았지만, 발언자는 여성이 현격히 적었다. 젊은 여성, 성소수자, 여성 장애인, 여성 이주민들이 광장에서 익명으로 안전할 수 있는 곳은 서울을 비롯한 일부 지역밖에 없다며, 작가는 대한민국 어디에서나 목소리를 낼 여건이 주어지려면 어떤 조건이 갖춰져야 하는지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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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연 감독은 범죄자가 되어버린 스타를 옹호하고 지지하던 팬들의 모습에서 국정농단으로 탄핵된 전 대통령 박근혜의 추종자들을 겹쳐 보았다. 이번 탄핵광장에서 오 감독은 퀴어 페미니스트라고 소개하는 발언자의 목소리가 묻히도록 자기들끼리 구호를 외치는 남성들을 발견한다. “우리가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얼마나 많고 높은지 그 예고편을 보는 것만 같았다”고 그는 말했다.
그래픽 디자이너 63팀의 그래픽 시국선언 기록을 담은 ‘시대 정신’(안그라픽스 펴냄)은 디자이너들의 집단 선언문으로 ‘올해의 가장 아름다운 책’에 꼽혀도 손색없는 물성과 내용을 지녔다. 1960년 4·19부터 2025년까지 발표된 시국선언문에서 한 문장씩을 발췌한 포스터들은 그 자체가 시대정신이다. “겨울은 춥다. 그래도 봄은 온다.” 각각 212쪽 1만6800원, 272쪽 2만원.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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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의 모든 것
백수린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1만7천원
백수린의 단편소설 일곱 편을 모았다. 상실을 품고 사는 사람들의 우정과 사랑, 기억의 편린으로 반짝이는 것들, 상실감과 긴 허무의 밤과 관련한 이야기. “우리의 삶이, 이 세계가, 겨울의 한복판이라도 우리는 봄을 기다리기로 선택할 수 있다.” 봄이 온다고 믿기로 선택하는 마음으로 이 소설들을 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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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생물학
이은희 지음, 사이언스북스 펴냄, 2만2천원
과학 커뮤니케이터 ‘하리하라’ 이은희가 쓴 ‘엄마 되기’를 둘러싼 인간 생물학. ‘나’라는 1인분의 몸을 아이와 나눠쓰는 문제를 다룬다. 임신과 출산의 생물학적, 진화론적, 의학적, 철학적 문제를 들여다보는 에세이. 시험관 시술로 태어난 세 아이의 엄마 경험을 중심으로 삶과 생물학을 연결한다.

우는 나와 우는 우는
하은빈 지음, 동녘 펴냄, 1만7500원
“장애인 애인을 가졌으면서도 다른 것도 가지고 싶었다. 욕심이었을까?” 일라이 클레어의 ‘눈부시게 불완전한’을 번역한 하은빈 작가의 첫 에세이. 작가는 근육병 장애를 가진 연인과 사랑하다 헤어진다. 분투했던 시공간을 돌아보며 번민하면서도 존재했던 것을 되짚는다. 정확하고 아픈 반추가 독자로서는 고맙다.

여사장의 탄생
김미선 지음, 마음산책 펴냄, 1만7천원
일제강점기에 등장하기 시작해 한국전쟁, 코로나19 팬데믹 등 특정 국면에 가시적으로 증가한 여사장의 존재와 의의를 다룬 책. 현모양처 이데올로기가 강력했던 한국에서 ‘여사장’은 부정적 인식에 시달렸다. 여성의 돈벌이는 개인적 소비를 위한 것이고 ‘나대는’ ‘기 센’ 여성의 활동으로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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