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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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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고르기 위해 지옥으로 걸어가다

출판사로부터 ‘받는’ 일 다음으로 찾아오는 책 ‘선택’의 시간
등록 2022-12-21 14:30 수정 2022-12-22 01:27
2022년 12월 둘째 주에 당도한 신간들.  

2022년 12월 둘째 주에 당도한 신간들.  

2022년 12월 둘째 주에 당도한 신간들.  

2022년 12월 둘째 주에 당도한 신간들.  

책을 ‘받는’ 일이 끝나면 드디어 출판평론가의 시간이다. 아니, 선택의 시간이다. “오롯한 취향과 성향, 개성을 가진 존재”이다보니 그런 게 아니라, 기고하는 매체나 출연하는 방송 프로그램의 성격에 따라 하루라도 빨리 읽고 소개해야 할 책과 당분간 관망해도 될 책을 취사선택해야 한다. 눈 밝은 선후배 평론가들이야 일사천리겠지만, 일주일마다 당도하는 적잖은 책 사이에서 옥석을 가리는 일은, 그것도 내 취향과 매체 성향까지 맞춰 책을 찾아내는 일은, 과장을 조금 보태면 가히 지옥을 경험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매주 지옥을 경험하면서도 얄팍한 생각 하나가 늘 똬리를 튼다. 누가 봐도 한 주간 출간된 책 중에서 눈에 띄는 책이 있게 마련이다. 더하여 그간의 경험에 비춰보면 대략 두어 달을 주기로 베스트셀러의 기운이 느껴지는 책도 발견할 수 있다. 사실 이런 책은 내가 굳이 소개하지 않아도 어느 매체의 신간 리뷰로, 어떤 방송 프로그램에서 주목할 만한 신간으로 비중 있게 다뤄지게 마련이다. 잠깐, “굳이 소개하지 않아도”라고 말했을 뿐 소개하지 않는다고 하지는 않았다. 그 일이야말로 각종 책을 보내주는 출판사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기 때문이다.

아니다. 이 대목에서 좀더 솔직해지자. 마음 한구석에 있는 ‘내가 이렇게 발 빠르게, 이런 신간까지 섭렵하는 사람이야’라는, 일종의 출판평론가로서 존재감을 보통 그렇게 표출할 수밖에 없다. 신간을 읽는 것뿐 아니라 이 책은 이런저런 맥락을 가진, 즉 이런 트렌드를 담았다고까지 말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 평론가의 어깨는 한껏 올라가고 젠체하고 싶은 욕망도 그렇게 흠뻑 충족된다. 더 솔직해지면 그렇게 존재감을 표출해야 새로운 리뷰 지면도, 방송 프로그램도 맡을 수 있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말이다.

사실, 그 젠체하고 싶은 욕망에서 조금이라도 자유로워지고 싶은 마음에 2022년 가을 개편 때 거의 모든 방송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 (이 대목을 읽고 출판사에서 책을 보내오지 않으면 어쩌지, 살짝 고민했다.) 출판평론가 직함으로 일하면서 적게는 서너 곳, 많을 때는 열 곳 넘는 방송 프로그램을 맡기도 했다. 당연히 훗날 (전문용어로) ‘돌려막기’도 한 적이 있었지만 같은 책을 같은 주에 소개하지는 않았다. 아무리 짧은 시간, 적은 지면에 책을 소개해도, 돈 받고 하는 일이니 제목부터 국제표준도서번호(ISBN)까지 다 읽은 뒤에야 소개했다.

방송에서 물러나니 오히려 여유가 생겼고, 신간을 더 찬찬히 애정을 담아 읽게 됐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다던 어떤 이의 말을 믿지 않지만 그럴 때도 있음을 알았다. ‘저급한 현실 인식, 과도한 의미 부여.’ 자의 반 타의 반 평론가로 살면서 늘 경계했던 생각이다. 그대로 지키며 살지는 못했지만 늘 경계하려 애쓴다. 하지만 무너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무너진 나를 다시 세우는 건 역시나 책이다. ‘내돈내산’의 책들이 그렇고, 여러 출판사가 보내준 책들이 그렇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많은 출판평론가에게, 책은 빚이자 빛이다.

글·사진 장동석 출판평론가·출판도시문화재단 사무처장

*책의 일: 출판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소개합니다. 직업군별로 4회분 원고를 보냅니다. 3주 간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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