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가정의 양립은 왜 ‘여성 문제’인가? ‘여사’와 ‘영부인’은 꼭 써야 하는 말인가? 일본신문노동조합연합(신문노련)의 ‘젠더 표현 가이드북 편집팀’이 펴낸 ‘실패 없는 젠더 표현 가이드북’(조지혜 옮김, 마티 펴냄)은 압도적인 남성 중심 사회인 미디어 업계에서 먼저 평등하고 안전감을 주는 젠더 표현을 제안하기 위해 쓰였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밝혔다시피 “젠더 표현은 지금 전세계의 리터러시”다. 미디어는 젠더 표현에 대한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이 책이 일본어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한국 사회에 곧바로 적용하긴 어렵겠지만 일치하는 부분도 상당수 있다. 예를 들어 여성에게만 사용되는 ‘영부인’ ‘미망인’ ‘여사’ 등은 “여성을 과도하게 특별 취급하는 표현”이라고 지적한다. ‘미망인’은 ‘남편이 죽을 때 같이 죽었어야 하지만 따라 죽지 못한 사람’이란 뜻을 담고 있어 한국 언론에서도 대체로 사라진 표현이다. 그러나 ‘영부인’ ‘여사’ 등의 표현은 여전히 사용된다. 이렇게 여성에게만 사용되는 호칭은 피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여고생’ ‘여사장’ ‘여의사’ ‘여자 아나운서’라는 말 또한 과도하게 외모에 눈길을 주거나 공공연히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만드는 표현이 될 수 있으므로 성별성을 삭제하도록 안내한다.
신문이라는 매체 자체가 워낙 “아저씨 같은 말투로 설교하는 느낌”이 있고 “특히나 사설은 거만하게 느껴진다”는 지적도 있다. 인터넷 의견은 일일이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며 유독 젠더 문제에만 취약한 “리버럴한 아저씨”가 이 업계에는 존재한다. 그러나 온라인 괴롭힘은 현실에 뿌리박고 있기에 반드시 관심을 가져야 하며 기계적인 중립도 답이 아니라고 본다. 사회를 바꾸려면 ‘아저씨’들을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해서 다양성이나 젠더 평등을 이야기할 때 경제적 합리성을 들어 설명하는 것도 한계가 분명하다. 인권의 문제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단호하게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기자가 신념에 입각해 보도하기 위해서는 회사의 지원도 필요하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피해자의 비참함을 강조하기 위해 전형적인 내용을 재생산하거나 취재원의 존엄을 짓밟는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해서도 경고한다.
이 책을 한국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성소수자의 인권 개선을 지지하고 연대하는 이를 일컫는 ‘앨라이’를 ‘옹호자’로 표현한 점이나, 젠더 표현과 번역어에 대한 고민을 남긴 옮긴이 후기도 꼭 읽어보길 권한다. 302쪽, 1만7천원.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사람을 남기는 사람
정지우 지음, 마름모 펴냄, 1만8천원
작가, 문화평론가, 변호사 정지우가 쓴 관계의 법칙. ‘관계에서 숱한 실패를 겪어온 사람’으로서 정립한 관계에 대한 생각을 보여준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다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한편, 그 수수께끼를 지켜내는 것, 타인을 비밀스러운 존재로 두고 이해하기 위해 평생 경청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유물멍: 가만히 바라볼수록 좋은 것들
국립중앙박물관 뉴스레터 ‘아침 행복이 똑똑’ 필진 지음, 세종서적 펴냄, 2만1천원
12세기 향로 뚜껑은 눈동자도 귀여운 원앙을 본떴다. 연꽃무늬 수막새는 추운 겨울 풀빵을 닮았다. 오래된 것을 바라보면서 ‘멍때리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들이 뽑은 유물 이야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을 소개하는 10만 구독 뉴스레터에서 시작된 이야기를 책으로 묶었다. 책에도 명상 기능이 있다.
철학자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
박승찬 지음, 오르골 펴냄, 2만5천원
중세철학 전문가 박승찬 교수가 쓴 십자군 전쟁 이야기. 이 전쟁이 바꿔놓은 세계 판도, 서구와 이슬람의 입장 차이를 담았다. 특히 이 전쟁에서 얻을 수 있는 평화의 지혜를 제시하는 점이 인상적. 종교의 이름으로 욕심을 정당화하지 말라, 정의를 무력으로 강요하지 말라 등. 이 난세에 큰 울림이 아닐 수 없다.
퀴어 한국사
루인·한채윤 지음, 이매진 펴냄, 2만4천원
트랜스젠더, 양성애자, 무성애자 등 퀴어가 한국 역사에 새긴 365가지 흔적을 담아냈다. 100년 전에도 실행된 성전환 수술, 이광수가 쓴 ‘비엘’(보이스러브) 등 하루 한 쪽 ‘퀴어한 역사’를 읽을 수 있는 구성이다. 트랜스젠더퀴어 연구자 루인과 성소수자 인권활동가 한채윤이 5년 동안 함께 썼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단독] “윤석열, 무력사용 검토 지시에 경호처 간부 집단 반발”
[단독] 윤석열 ‘가짜 출근’, 경찰 교통 무전에서도 드러났다
나훈아, ‘왼쪽 발언’ 비판에 “어른이 얘기하는데 XX들 하고 있어”
원치 않는 결사항전 [그림판]
직무정지 윤석열 두번째 SNS…“LA산불 미국민 위로, 정부 차원 지원”
불교계, ‘윤석열 방어권’ 원명 스님에 “참담하고 부끄럽다”
‘군인연금 월500’ 김용현, 체포 직전 퇴직급여 신청…일반퇴직 표기
젤렌스키, 김정은에 포로 교환 제의…생포 북한군 3분 영상 공개
‘혐중’ 윤석열 지지자들 “트럼프가 구해줄 것” 황당 주장…뭘 노리나
판사 출신 변호사 “경호처 직원 무료변론…불법적 지시 거부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