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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비한 ‘사형선고’로 사라지는 이웃들

[새 책]오래된 나무 이야기 담은 ‘아름답고 위태로운 천년의 거인들’
등록 2025-03-07 18:19 수정 2025-03-12 10:22


나무는 인간의 곁을 떠난 적이 없다. 인간이 낙인찍어 베어냈을 뿐이다. 도심의 허공을 방울 같은 특별한 열매로 수놓는 거대한 고등 생명체인 플라타너스는 가지치기로 매년 팔뚝이 잘려 나간다. 저자 김양진은 기자로 일하며 무자비한 가지치기에 관한 연속 보도를 신문에 내보냈고, 주간지에 ‘나무 전상서’라는 제목으로 ‘나무 기사’를 연재했다. 전국 각지에서 인간의 이웃이 된 오래된 나무들을 만났고 주민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경북 안동 용계리의 700살 은행나무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크고 오래된 은행나무로, 임하댐 건설에 따라 수몰 위기에 처했다가 ‘상식’(올려서 옮겨 심음)을 통해 이동했다. 예산은 총 26억9723만원. 전례 없는 예산 규모였다. ‘나무 하나 살리는 값’치고 너무 많은 금액이라고 하지만 700년 역사와 문화의 그늘을 보존하는 데 아깝지 않은 돈이었다.

오랫동안 여러 문화에서 나무는 인간이 의지하는 ‘할배, 할매’로 자리잡았다. 한반도 고대 벽화의 신단수, 고려와 조선시대 당산나무 전통 등은 나무에 깃든 정령을 경외하는 문화였다. 실용성만 따져봐도 나무는 유용하다. 나무는 온갖 새들의 집이자 토양 침식을 막는 뿌리 시스템을 갖고 있다. 희귀 동물의 은신처가 되고 기온을 낮추어 동식물이 쉴 수 있는 그늘을 만들어주며 탄소를 포집한다. 그러나 재개발 등 별별 도시계획과 인간의 편의에 따른 토건 사업으로 나무의 몸은 너무 쉽게 훼손된다. 부산의 500살 주례동 회화나무는 재개발로 터전을 떠나 이식, 재이식을 거치면서 가지와 뿌리가 대부분 제거됐고 지금은 정상적 생육이 힘들게 됐다. 이 나무는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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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곳곳에서 ‘맨눈 조사’에 의지해 특정 나무를 위험목이라고 지목하며 아무렇게나 ‘사형선고’를 내린다. 수십 년 살아온 아름답고 멀쩡한 나무들이 그루터기부터 잘려 나간다. 위험한 가지를 없애자며 인간은 나무의 꼭대기 부분을 댕강 잘라낸다. 최악의 결정이다. 나무 꼭대기 부분은 치유가 잘 안 되기 때문이다. 이곳을 잘라내면 곰팡이와 세균 침입이 쉬워 나무가 병들고 더 약해진다.

기후위기 탓을 하면서 모두가 책임을 회피하는 가운데 아프고 사라지는 나무를 만난 어느 날, 저자는 울어버릴지도 모르겠다고 고백한다. 이 눈물 어린 편지를 묶은 책의 제목은 ‘아름답고 위태로운 천년의 거인들’(한겨레출판 펴냄)이다. 312쪽, 2만2천원.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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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이 찜한 새 책


공씨아저씨네, 차별 없는 과일가게
공석진 지음, 수오서재 펴냄, 1만7천원

15년차 과일상 ‘공씨아저씨’는 “내가 파는 것이 과일인가, 쓰레기인가?” 고민하기 시작해 과일로 세상을 바라봤다. 예쁜 농산물만 대우받는 시장에 의문을 제기하고 크기와 모양으로 과일 등급을 나누지 않았다. “한국 과일 시장과 농가를 다룬 생생한 르포”(한승태)이자 “기후위기 시대의 농업 안내서”(정은정)라는 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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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힌 텍스트, 갇힌 여성들
김경남 지음, 성균관대학교출판부, 3만6천원

근대 초 여성 담론과 교육 문제를 다룬 학술서. 여성 교육의 중요성이 대두됐지만 상당수 교재가 전통적 가족 윤리와 현모양처를 이상적 여성상으로 설정하고 애국심을 포함하는 수준이었다. 봉건주의와 식민제국주의라는 이중 구속에 여성 교육이 놓여 있었다. ‘여대’ 존폐 논쟁 가운데 다시금 돌아봄 직하다.

 

 


새로 쓴 아틀라스 세계사
강창훈 지음, 사계절 펴냄, 3만6천원

국내 역사학계의 내로라하는 학자들이 연구 성과를 집대성하고 지도, 연표, 사진, 설명을 아우른 ‘아틀라스 역사 시리즈’의 최신 결정판. 사계절출판사의 역량을 총동원한 오리지널 한국어판이다. 109개 세계사 핵심 주제를 시대순으로 구성했고 288장의 지도로 역사의 전개를 표현해 웬만한 유튜브보다 낫다.

 

 


특권계급론
클라이브 해밀턴·마이라 해밀턴 지음, 유강은 옮김, 오월의봄 펴냄, 2만4천원

오스트레일리아의 대표적인 공공윤리학자와 사회정책학자인 저자들이 특권의 작동 방식을 추적했다. 부와 영향력을 가진 특권계급이 어떤 네트워크를 갖고 사립학교가 사회 불평등의 영속화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분석한다. 엘리트 특권이 남성 특권과 어떻게 교차하고 강화하는지를 다룬 부분도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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