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받고, 선택’하는 일을 마쳤으니 이제 ‘읽고, 쓰는’ 일만 남았다. 어딘가 나를 소개할 때 ‘책을 읽고 글을 쓴다’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럼 당연히 ‘읽는’ 일이 쉬워야(혹은 할 만해야) 하건만 읽는 일마저 내겐 녹록지 않다. 게으름 탓이다. 종종 지인들이 집에 오면 묻는다. 묻는 방식은 다 다르지만 대개는 “저 책들은 다 읽은 거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다. 대답이 궁한 나는 이렇게 맞설 수밖에 없다. “안 읽었으니까 쌓아놓는 거다.” 미처 못 읽었다는 말은 곧 죽어도 못한다.
이런 질문도 자주 받는다. “하루에 책을 얼마나 읽느냐?” 이에 대한 답도 궁하긴 마찬가지. 흘러간 유행어를 빌리자면 “그때그때 달라요”인데 ‘한 달에, 일주일에, 하루에 몇 권’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울 때가 대부분이다. 어떤 책은 몇 달씩 읽기도 하고, 어떤 책은 몇 분 만에 후루룩 읽기도 한다. 단시간에 제목부터 국제표준도서번호(ISBN)까지, 그것도 두어 번 독파하는 책은 대개 마감과 맞물린 책이다. 물론 아무 생각 없이 집어 들었다가 ‘홀딱 빠져들어’ 밤을 새우는 일도 제법 여러 번이다.
책을 읽는 방식은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사람은 모두 제각각인데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만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하는 순간, 그 사람은 책과 서서히 멀어진다. 개인적으로는 종이책 지상주의자지만 ‘읽는 방식의 해방’을 종종 말하고 다닌다. 사실 세상 모든 현상은 ‘읽는’ 것이다. 태초의 인류는 별을 읽으면서 삶의 자리를 옮겼고 자기 몸을 읽어내면서 척박한 환경을 이겨냈다. 음악 악보도 읽는다 말하고, 그림도 읽는 일임을 여러 책 제목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영화와 드라마, 연극처럼 텍스트에 기반한 예술 장르를 감상하는 일은 어쩔 수 없이, 아니 지극히 당연하게 ‘읽는’ 일에 속한다. 책을 업으로 삼은 아버지와 영화를 업으로 삼으려는 아들의 대화가 자연스러운 것은, 책과 영화가 모두 읽어내는 일임을 알기 때문이다.
물론 거기서 멈추면 안 된다. 무언가 읽었다면, 그것을 ‘진짜’ 책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나름의 가이드 구실을 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별과 몸이, 음악과 미술이, 영화와 드라마가 어떻게 책과 연결되는지, 때론 신화의 세계와 연결해줄 사람이 필요하고, 세계 문학작품과 이어줄 사람도 필요하다. 그 일을 가장(까지는 아니어도) 잘할 수 있는 사람은 흔히 출판평론가, 서평가, 북칼럼니스트라 부르는 제너럴리스트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여, 그것이 흔한 자기계발서일 때도 나는 읽으면서 ‘이 책과 어떤 콘텐츠 장르를 엮어볼까’를 생각한다.
피카소의 그림 <게르니카>를 감상하면서 스페인 내전을 다룬 작품들, 이를테면 조지 오웰의 <카탈루냐 찬가>나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함께 읽어낼 수 있다면 이보다 좋은 역사 공부는 없을 것이다. 경기침체가 완연한 지금 같은 때 <위대한 개츠비> 같은 작품은 더없이 좋은 반면교사가 아닐까. 민주주의가 무너진 오늘의 세상을 보여주는 뉴스를 읽으면서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생각해낼 수만 있다면 이보다 좋은 독서도 없을 것이다. 읽는다는 것은 결국 세상사에 관심 갖는 일이다. 갈 길 바쁜 출판평론가는 오늘도 책과 함께 세상 모든 것을 읽고자 한다.
글·사진 장동석 출판평론가·출판도시문화재단 사무처장
*책의 일: 출판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소개합니다. 직업군별로 4회분 원고를 보냅니다. 3주 간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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