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김비가 몸 에세이를 썼다는 소식에 기대감은 증폭됐다. 출판사 쪽에서도 여러 의미를 부여했다. ‘‘퀴어 시민권’에 목소리를 내온 트랜스젠더 소설가 김비의 첫 몸 에세이’ ‘트랜스젠더 당사자가 직접 몸에 대해 쓴 첫 번째 책’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 전에 이 책은 정희진의 말대로, 몸을 통과하는 책이라고 해야겠다. 읽을 땐 아프지만 읽고 나면 그 전의 몸으로 돌아갈 수 없다.
‘혼란 기쁨’(곳간 펴냄)은 제목처럼 혼란과 기쁨을 준다. 시작부터 직구를 던진다. 성확정 수술을 시행하고 몇 달이 지난 뒤 비로소 거울로 환부를 바라보았을 때를 기억하며 감각을 헤집는다. 사춘기 시절 ‘남자 몸’은 집요하게 자신을 몰아붙였다. 육체적 디스포리아(성별 불쾌감)에 시달렸다. 학교는 공포스러웠고 공동체는 끔찍했다. 서른 즈음, 성확정 치료를 시작하면서 처음 활기라는 것을 얻고 안심하게 됐다. 오십이 돼서도 여전히 약을 먹고, 오전과 오후 투약을 헷갈리고, 이십 년 넘게 맞아온 호르몬 주사를 끊고, 몸의 애매함과 모호함을 만난다. 몸 안에서 질문하고, 의심하고, 찔러보고, 몸싸움하면서 자신을 알아간다.
몸만큼이나 언어도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약사는 여성호르몬제를 못 준다고 했다. 혐오자들이 떼로 몰려와 글을 남겼다. 성별이분법의 싸움터에서 저자는 언어가 없다는 걸 알았다. 홀가분한 오십 대의 나이에 그는 선명한 것 너머 흐릿한 것들을 언어화하고 사유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성별성의 부조리를 폭로하면서 흐릿한 것의 언어화를 향한 길을 연다. ‘탈성별적 신체’로 사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한다. 성별을 뛰어넘은 섹스를 상상하고, 몸과 몸의 합의를 통해 후세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진심을 가진 몸’이라면 누구든 양육자로 충분하리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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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고 아름다운 책이지만 모호하고 헷갈린다. 독자의 이런 반응을 염두에 둔 듯 저자는 항변한다. “이제 한번쯤 꿈 없이도 인간다운 생을 적고 싶은 마음을 무모하고 황당하다고 폄훼해야 할까?” “혼란은 도움이 된다.” 다정하고 단호하다.
자신의 몸을 쓰고 글을 쓰는 일이 천형 같아도 쓸 수밖에 없었기에 이 책도 나올 수 있었다. 저자는 “모르는 몸인 채로, 스스로를 혐오하는 몸인 채로, 하지만 ‘천수를 누린 트랜스젠더’가 되는 게 최종 목표”라며 “죽기 전까지 쓰는 사람”이고자 한다. 210쪽, 1만7천원.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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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의 기초
브룩 보렐 지음, 신소희 옮김, 유유 펴냄, 1만8천원
미국의 전문 팩트체커에게 배우는 팩트체크 기술. 팩트체크는 되짚어 확인하는 작업을 가리킨다. 기자나 논픽션 작가에게 요구되는 기술이지만 독자들도 어떤 정보가 사실인지 체크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이다. 셀프 팩트체크 비법, 유형별 팩트체크 노하우, 과학 논문 읽는 법과 자료 정리법까지 실용적 조언이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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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코리아
정주식 등 지음, 사계절 펴냄, 2만1천원
정치 시사 토론 채널 ‘토론의 즐거움’에서 펴낸 토론집. ‘도둑맞은 집중력’과 뉴스의 위기, ‘죽은 개가 돌아왔어요’ 복제견 찬반 논란, 양당제를 돕는 중도정치의 역설, 정치인을 향한 테러가 끊이지 않는 이유, 윤석열 대통령의 12·3 내란 계엄 등 다이내믹한 한국의 이슈를 중심으로 토론한 결과를 담았다.

무지개 눈
김숨 지음, 민음사 펴냄, 1만7천원
선천성 전맹인 여성이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전맹이자 지체장애인인 여성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끝없이 노래하듯 말하며, 전맹인 안마사가 기타를 연주하듯 타인의 몸을 읽는다. 화자들은 독립돼 있는 것 같지만 서로 연결돼 있다. 책의 모든 소설은 실존 인물과 인터뷰한 뒤 창작됐다.

짐승과 인간
메리 미즐리 지음, 권루시안 옮김, 위고 펴냄, 3만8천원
철학자 메리 미즐리가 인간이 동물이라는 맥락 속에서 서구 철학의 전통과 동물행동학 연구를 결합한다. 인간과 다른 친척 종의 유사성을 탐구하고 인간 행동의 풍부하고 복잡한 면모를 살핀다. 이성과 감성은 적대 관계가 아니고, 우리가 지구상의 명확한 종에 속하는 동물이라는 점을 기반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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