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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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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붕괴의 A to Z

역사동역학으로 분석한 ‘국가는 어떻게 무너지는가’… 엘리트 내부의 갈등이 정치 불안정 추동해
등록 2025-03-21 22:15 수정 2025-03-29 11:27


인류가 등장한 이래 모든 나라는 결국 멸망을 피하지 못했다. 내전, 혁명, 외부와의 전쟁 등 폭력의 나선 끝에 파국을 맞았다. ‘국가는 어떻게 무너지는가: 엘리트, 반엘리트, 정치적 해체의 경로’(피터 터친 지음, 유강은 옮김, 생각의힘 펴냄)는 이처럼 100~200년 주기로 반복되는 각 나라의 위기를 분석했다. 저자는 다소 생소한 ‘역사동역학’이라는 틀로 한 사회의 붕괴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분석한다. 역사를 과학으로 접근하려는 이 시도는 역사 속 수많은 정치·경제·인구학적 데이터를 수집한 뒤 수학적 모델링을 통해 이 변수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살펴본다.

전세계 대륙에서 일어난 위기 사례 약 300건을 모아 ‘위기 데이터베이스(DB)’를 만들어 분석한 결과, 정치적 불안정성을 추동하는 요인은 네 가지다. 엘리트 과잉생산, 대중의 궁핍화, 국가 재정과 정당성의 약화, 지정학적 요인이다. 언뜻 상관없어 보이는 사회적 지표들은 서로 역동적인 영향을 미쳐 결국 그 사회를 붕괴시킨다. 이 가운데서도 저자는 사회적 격변을 일으키는 주된 요인으로 엘리트가 과잉 생산돼 증가한 ‘좌절한 엘리트 지망자 계급’을 꼽는다. 물론 ‘부의 펌프’가 아래로부터 자원을 빨아들여 최상위 계층의 배만 불리는 궁핍화 역시 중요하다. 하지만 “조직화된 민중만이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사회 변화를 이룰 수 있”기 때문에, 불만을 품은 대중을 조직해낼 수 있는 역량 있는 존재가 필요하다.

위기를 탈출한 사례도 있다. 대부분 대규모 감염병으로 인구가 감소하거나, 엘리트 집단의 절멸, 엘리트 계층의 대규모 하향 이동 등 암울한 일이 벌어져서였다. 드물지만 유혈을 최소화하며 사회적 긴장을 완화한 사례도 있었다. 지배 엘리트들이 대중의 요구를 받아들여 제도 개혁에 나서 노동자 임금을 늘리는 등 평범한 사람들의 복리를 늘렸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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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하게나마 이 틀로 한국 사회를 분석해보면 어떨까. 인구의 70% 이상이 대학에 가지만, 양질의 일자리는 턱없이 모자란다. 외환위기 이후 상위 1%의 소득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점점 증가하고 있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상속세 완화,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등 감세 공약을 쏟아내는 정당들은 대중의 궁핍화를 더 부추기는 것만 같다. 어쩌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살아생전 어떤 파국을 목격할 수도 있겠다. 424쪽, 2만3800원.

*21이 찜한 새 책


장애, 시설을 나서다
김남희 외 지음, 진실의 힘 펴냄, 1만8천원

한국 사회는 ‘장애인을 위한 것’이라는 명분으로 그동안 장애인들을 집단시설로 몰아넣어왔다. 그러나 이는 배려가 아닌 배제다. 저자들은 탈시설 정책이 진행된 다른 나라의 풍부한 사례를 들며 왜 장애인의 사회 통합이 중요한지를 강조하고, 필요한 정책 대안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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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듯이 가겠습니다
김진화 지음, 이매진 펴냄, 1만6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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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교사인 지은이가 서른다섯 살이던 2015년, 뇌출혈로 쓰러진 어머니는 순식간에 어린아이가 됐다. 장애가 생긴 어머니를 돌보는 것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일이 됐다. 돌봄을 사적 영역으로 간주하는 사회에서 개인의 삶과 돌봄이 양립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묻는다.

 

 


마법 같은 언어
고은지 지음, 정혜윤 옮김, 다산책방 펴냄, 1만7500원

15살 딸을 미국에 남겨두고 부모는 한국으로 돌아갔다. 딸에게 남은 건 섭식장애와 자살충동, 외로운 청소년기. 일주일에 한 번씩 엄마가 보내는 한글 편지가 짧은 위로를 줬다. 엄마의 편지를 영어로 옮기고 개인과 여성 가족의 역사를 쓴 에세이로 미국에서 여러 상을 받았다. 상보다 큰 것은 엄마를 ‘용서’하는 언어를 만난 것.

 

 


기술 봉건주의
세드릭 뒤랑 지음, 주명철 옮김, 여문책 펴냄, 2만원

디지털 기술 혁신은 유토피아를 가져올 것인가? 저자는 초국적 기술기업의 알고리즘적 감시 체제 아래 ‘디지털 영지’에 얽매이며 자본주의, 민주주의 모두 기능을 잃는 디스토피아를 예측한다. ‘기술 봉건주의’의 본질을 꿰뚫고 주체적 개인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저자의 제안은 ‘지옥 탈출’의 해법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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