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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장에 잘못 들어온 ‘아줌마’

남초 사업장의 여성 노동자 이야기 ‘작업장의 페미니즘’
등록 2025-03-01 10:50 수정 2025-03-07 14:47


산업엔 성별이 없지만, 자본이 선호하는 노동력에는 성별이 있다. 여성 노동자가 남초 사업장에 진입할지 말지 결정하는 것도 자본의 이해관계에 달렸다. 건설, 철도, 물류, 자동차 공장 같은 남초 사업장에 여성이 대규모로 동원되는 시기는 남성 노동자가 부족했을 때다. 이두박근을 자랑하는 ‘리벳공 로지’ 포스터가 이를 상징한다. 차별 없는 일터를 원하는 여성이 ‘자격증’을 따서 남성들과 동등한 ‘기사’가 되는 경우도 있다.

‘작업장의 페미니즘’(이현경 지음, 산지니 펴냄)은 이처럼 남성 중심인 작업장과 노동조합에서 절대적 소수자로서 분투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저자 이현경씨는 남성이 대다수인 노동 현장에서 30년 가까이 일해온 여성 노동자이자 노동조합의 여성 활동가로서 자신의 경험을 해석하기 위해 공부하고 책을 썼다. 남초 사업장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 10명을 인터뷰한 결과가 이 책의 뼈대를 이룬다.

2022년 여성 행원에게 밥 짓기, 남직원 화장실 수건 빨래를 지시한 어느 새마을금고의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이 폭로됐다. 밥 짓기와 빨래는 여성의 일이라는 고정관념이 업무 지시로 이어졌다. 어느 회사는 아예 사규로 남성은 주요 노동자이고 여성은 보조적 노동자라고 못박기도 한다. 남초 사업장의 다수 남성 노동자는 작업장의 크고 작은 문제를 여성 노동자 탓으로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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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읽히는 부분은 성평등을 추구해야 할 노동조합 안에서 나타나는 공고한 성별 분업구조다. 노조 간부 가운데 정책, 노동안전, 조직, 쟁의 관련 주요 업무는 대개 남성 몫이다. 노조 내부 살림이나 부차적이고 주변적인 업무에는 주로 여성이 임명된다. ‘여성 문제’는 ‘여성국 사업’으로 한정되고 여성들은 조직 내부 결정 단위에서 배제되기 쉽다. ‘남초 사업장의 여성 노조위원장’은 아예 없고, ‘여초 사업장의 여성 노조위원장’도 나오기 힘든 구조다. 대표적 여초 사업장 노조인 전교조조차 조직 운영방식이 남성 중심적이어서 여성을 외부화, 주변화시켜왔으므로 집행부 선거에 여성 독자 후보가 출마한 것은 대단한 사건이었다고 저자는 밝힌다.

‘아줌마’ ‘여사님’ ‘이모’, 심지어 ‘찬모’ 등 부적절한 호명이 이뤄지는 성별화된 작업장, 위기 때마다 반복돼온 여성 노동자 퇴출과 배제, 독박의 경험 속에서 여성 노동자의 자리는 어디일지 묻고 페미니즘 실천을 촉구하는 책이다. 240쪽, 2만원.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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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없는 단어는 없다
장인용 지음, 그래도봄 펴냄, 2만2천원

평생 글을 다루는 출판인으로 일하다 이제는 쓰기에 전념하고 있는 장인용의 국어 교양 사전. 단어의 어원과 역사를 톺아보면서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풍요롭게 풀어낸다. 기존 어원책보다 더 인문학적이고 개성 넘친다. 읽고 나면 말과 글에 자신감이 생기고 한층 박식해진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페미니즘으로 부채 읽기
베로니카 가고·루시 카바예로 지음, 김주희·황유나 옮김, 현실문화 펴냄, 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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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와 폭력을 이해하고 부채를 벽장에서 꺼내 그 경험을 말하고 가시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책. 부채가 차별적으로 작동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사회서비스가 민영화되면 여성이 재생산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며 부채에 종속될 가능성이 커진다. 금융의 논의에 “육체, 목소리, 영토”를 부여하자고 한다.


AI블루
조경숙·한지윤 지음, 코난북스 펴냄, 1만6천원

개발자 겸 테크-페미 활동가인 조경숙과 인공지능(AI) 연구자 한지윤이 우울한 기술 시대의 마음을 조명한다. AI 관련 다양한 분야 종사자 160명에게 설문하고 그중 10명을 만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 공통된 단어는 ‘대체’였다. 노동자들은 언제 자신을 대체할지 모르는 AI 학습까지 맡고 있었다.


프랑크푸르트학파 100년
연합학술대회 추진위원회 엮음, 사월의책 펴냄, 3만6천원

프랑크푸르트학파의 100년을 기념하여 이 비판이론의 전통이 오늘날 위기를 분석하는 데 어떤 의미를 가지며 어떻게 확장될 수 있는지 탐구했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회고와 전망, 비판이론과 현대사회 비판, 비판이론과 예술 등 철학, 사회학, 정신분석학, 문예비평을 넘나드는 학제적 연구의 성과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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