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컴퓨터에 쌓인 폴더의 원고들. 장동석
기억이 정확하다면, 일간지에 첫 ‘신간 리뷰’를 쓴 것은 2011년 11월이었다. 아홉 해 전 세상을 떠난 (그리운) 구본준 기자가 당분간 <한겨레>에 신간 리뷰를 써달라고 했다. 하는 일 없이, 태평하게 세월만 보내는 후배가 눈에 밟혀 그랬을 것이다. 어쨌든 써보라며 처음 맡긴 책은 <프로이트>(교양인 펴냄)였다.
1·2권 각각 720쪽, 모두 합쳐 1440쪽의 책을 화요일 오후부터 목요일 새벽까지, 거짓말 조금 보태면 한숨도 못 자고 읽었다. 읽긴 했으나 쓰는 일은 별개 문제. 더욱이 써야 할 분량은 (고작) 원고지 7장. 새벽부터 궁싯거렸지만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하던 목요일 11시50분께,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퓰리처상 받을 거 아닌데, 이쯤에서 원고 넘기시죠.”
이 글을 쓰며 당시 썼던 원고를 찾아 읽었다. 지금도 어디 내놓기 부끄러운 글이 많지만, 그 원고는 실로 괴발개발이었다. (부탁드리건대, 제발 검색해서 보지 마시라!) 그 일 이후 책을 ‘받고, 선택하고, 읽는’ 일을 마칠 때면 항상 생각한다. ‘여기서 끝’이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현실은 늘 ‘쓰는’ 일을 동반한다. 그것이 출판평론가 혹은 북칼럼니스트라고 불리는 사내가 가진 고민의 시작이자 끝이다.
책, 영화, 드라마, 음악, 미술 등 읽는 방식이 저마다 다른 것처럼 쓰는 방식도 저마다 달라야 한다고 요즘 목소리를 높이는 편이다. 나는 여전히 읽으면 ‘글’을 쓸 수밖에 없지만, 쓰는 일 역시 그 사람의 특성과 취향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야 한다. 어려서부터 학교에서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야 한다고 가르친 탓에, 우리는 무조건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기 생을 ‘글’로 쓸 줄 알아야만 경쟁력이 생긴다는 주장도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글을 자꾸 쓰다보면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생각과 습관을 체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때 글쓰기와 책쓰기 강좌가 유행한 것은 이런 이유도 한몫했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고, 모든 사람이 글을 쓸 수도 없다. ‘읽는 방식의 해방’이 필요하듯, ‘쓰는 방식의 해방’도 필요하다. 글쓰기에 재능이 없는 사람에게 억지로 글을 쓰라고 하는 것처럼 고역도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책을 읽었다고 치자. 사진을 잘 찍는 사람은 한 권의 책을 한 장의 사진으로 남길 수 있다. 잘 그린다면 그림을 그려도 무방하다. 작사·작곡을 한다면 한 권의 책은 노래로 화할 수도 있다. 실제 ‘페인팅 북리뷰’라는 장르를 개척한 화가도 있고, ‘북뮤지션’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작가도 있다. 중요한 점은, 자기가 읽은 것을 왜 이런 방식으로 사진을 찍고, 노래를 만들고, 그림을 그렸는지에 대한 나름의 이유를 적절한 말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냥’ ‘하다보니’와 같은 대답은 ‘글 쓰기 싫어서 그렇게 했어’라는 핑계일 뿐
이다.
종종 ‘쓰는’ 일만 없으면 출판평론가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직업이겠구나, 생각한다.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하던가. 모든 일에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좋은 게 있으면 나쁜 것도 있는 법이다. 당연히 (출판평론가는) 읽었으면 써야만 한다. 책을 ‘받고, 선택하고, 읽고, 쓰는’ 일의 연속이지만 출판평론가 하길 잘했다고 생각할 때가 훨씬 많다. 방바닥을 뒹구는 책먼지쯤은 잊은 지 오래다. 그 기쁨을 날마다 선사해주는, 책을 만드는 일에 어떤 방식으로든 연관된 모든 분에게 심심한 감사의 인사를 올리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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