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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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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름은 세라 페인입니다

작가의 실제 삶을 떠올리게 하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내 이름은 루시 바턴>
등록 2017-11-17 12:12 수정 2020-05-03 04:28

얼마 전 마음이 심란해서 내게 시를 가르쳤던 은사님의 연구실을 찾았다. 선생님은 반으로 쪼갠 석류가 놓인 접시를 들고 내 앞에 앉았다. 소소한 이야기를 이어가며 석류를 한 알씩 떼어 먹었다. 선생님은 그런 내 모습이 답답했는지 석류를 손바닥에 털어 한 움큼 삼켰다. 손을 붉게 적시며 한 움큼씩 먹어야 석류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사는 것도 그렇다 했다. 푹 젖을 때까지, 푹. 네가 가장 중요한 순간에 망설이고 소심하게 굴어서 걱정이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손 버릴 걱정 하지 말고 푹푹 먹어라 하셨다. 석류를 다 먹고 나니 심란했던 마음이 그사이 푹, 고요해졌다. 학교를 오래 다닌 덕분에 살면서 좋은 선생님을 많이 만났다. 선생님은 내게 뭘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그저 삶에 대한 자기만의 비유를 획득할 기회를 안겨줄 뿐.

‘작가’라는 소개가 부끄러운 작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신간이 나왔다. 이다. 1956년생인 작가는 1998년 장편소설 (문학동네)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마흔 살을 훌쩍 넘긴 뒤에야 꿈을 이룬 셈이다. 이전까지 그는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하며 살았다. 계속 글을 쓸 수 있을까, 나를 과연 작가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끊임없이 괴롭혔다. 아마 그 두려움과 불안이 작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를 이뤄냈을 게다.

은 여러모로 작가의 실제 삶을 떠올리게 한다. 신인 작가 시절, 자신을 작가로 소개하는 일을 부끄러워하던 때, 루시의 어린 딸이 아파트 계단에서 마주친 이웃에게 자랑스럽게 말했다. “엄마 소설이 잡지에 실렸어요.” 루시는 별거 아니라고, 그저 작은 문예지에 실렸을 뿐이라고 딸의 말에서 묻어나오는 자부심을 뭉개려고 했다. 이웃은 쉽게 단언했다. 작가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니 당신은 틀림없이 냉혹할 거라고.

냉혹할 거라는 말은 반드시 냉혹해져야만 작가로서 성공할 수 있다는 말처럼 들렸다. 루시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가 소설가 세라 페인의 작문 강의를 신청한 것은 냉혹해지라는 명령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세라는 좋은 평가를 받는 작가가 아니었다. 누군가는 그를 두고 “섬약한 연민에 기우는 스스로를 잡아세우지 못한다”고 평했다. 그러곤 “무대에 능한 작가”라고 폄하했다. 또 다른 누군가는 “뉴욕이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 것일 뿐”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루시는 세라가 ‘열심히 일하고 힘들게 살아가지만 좋은 일이 생기기도 하는 사람들’에 대해 글을 쓰는 작가여서 좋았다. 무엇보다 소설 내용을 두고 진의를 따지는 독자에게 세라는 이렇게 답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독자에게 무엇이 작중 화자의 목소리일 뿐이고 작가의 개인적 견해는 아닌지를 알리는 건 내 일이 아니에요.” 세라에게 작가의 일이란 “인간의 조건에 대해 알려주는 것, 우리는 누구이고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하고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하는지를 말해주는 것”이었다.

강의실에서 만난 세라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자신은 가르치는 일과 맞지 않는 듯하다고 고백하면서도 루시의 소설을 칭찬했다. 세라가 긍정적으로 평가한 루시의 글은 에서 루시 가족 이야기를 가리킨다. 책에 따르면 삼남매의 막내딸인 루시와 달리 오빠와 언니는 모두 대학을 가지 않고 고향에 남았다. 오빠는 미혼으로 여전히 부모님과 한집에 살고, 언니는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남편과 다섯 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다. 루시는 아주 오랫동안 부모님과 형제를 만나지 못했다. 엄마가 들려준 가족의 근황은 여전히 참담했다. 오빠는 도살을 앞둔 돼지들과 잠을 자고 동화책을 읽는다. 언니는 가난이 가져온 멸시와 학대의 기억을 떨치지 못해 늘 화가 나 있다. 그들에겐 루시의 안부를 염려하고 궁금해할 여력이 없다.

루시는 자주 세라의 말을 떠올렸다. 다른 사람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 그것이 무엇인지 절대 알 수 없을 거라는 말. 세라가 그 말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도 루시는 점점 더 깊이 공감했다. 루시의 초등학교 6학년 담임 선생님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너희가 다른 누구보다 더 잘났다는 생각은 절대 하지 마라. 내 교실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오직 하나뿐인 이야기

세라는 루시의 좋은 선생님이었다. 누군가는 그를 두고 무대에 능한 작가라고 평했지만, 루시가 본 세라는 자기 이름조차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작가였다. “자기가 하게 되는 이야기는 오직 하나일 거예요. 하나의 이야기를 여러 방식으로 쓰게 될 거예요.” 세라의 가르침은 루시를 스스로의 힘으로 계속 써나갈 수 있는 작가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그 자신을 움직이게 하는 데는 실패했다. 이후 세라의 신간은 더 이상 출판되지 않았다.

루시는 여전히 세라의 신간을 기다리지만 한편으로 이런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세라의 하나뿐인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 모르겠다고. 그가 무언가를 피해 비켜서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고. 그렇다면 세라, 강의가 끝나면 혼자 남겨져 자기 안의 불안과 두려움을 계속 고쳐 썼을 그야말로 이 책의 작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하나뿐인 이야기였던 건 아닐까.

황현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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