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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통위, 33년 재직자 대신 ‘사랑하는 후배’ 꽂아주기

“이진숙 방통위 불법 임명” EBS 구성원들… 신동호 신임 사장 출근 저지하며 반발
등록 2025-03-28 21:04 수정 2025-03-30 11:35
2025년 3월27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 이비에스(EBS) 사옥 앞에서 EBS 구성원들이 신동호 신임 사장(전 엠비시 아나운서)의 출근을 저지하고 있다. 사진 이기범 언론노보 기자 제공

2025년 3월27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 이비에스(EBS) 사옥 앞에서 EBS 구성원들이 신동호 신임 사장(전 엠비시 아나운서)의 출근을 저지하고 있다. 사진 이기범 언론노보 기자 제공


“불법적 사장 임명 강행한 방송통신위원회를 규탄한다. 이비에스(EBS) 구성원의 호소다. 신동호는 즉각 물러나라.”

전국언론노동조합 EBS 지부가 신동호 신임 사장이 처음 출근하는 2025년 3월27일부터 출근 저지 투쟁에 나섰다. EBS 구성원들은 “방통위가 또다시 법과 절차를 짓밟고 공영방송 EBS의 사장 임명을 강행했다”며 “상임위원 5인 중 3인이 결원된 채 정족수를 충족하지 못한 2인의 결정만으로 신동호를 EBS 사장으로 임명한 건 명백한 불법행위”라고 비판했다.

이진숙 방통위원장은 전날 전체회의를 열어 부위원장과 단둘이서 신 사장 임명 동의에 관한 건을 의결했다. 최근 대법원에서 ‘2인 체제’ 방통위의 방송문화진흥회 신임 이사진 임명처분에 관한 집행정지가 최종 확정되는 등 ‘2인 의결’이 잘못됐다는 결정이 있었는데도 사장 임명을 강행한 것이다.

EBS에서 33년간 근무한 피디(PD) 출신 김유열 전 사장은 이날 오전 10시께 서울행정법원에 소장을 접수했다. 김 전 사장은 “대통령이 임명한 방통위원 2인만으로 진행된 이번 임명 절차로 인해 벌써부터 EBS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이 위협받고 있으며 이미 EBS의 정체성이 훼손되고 이미지가 실추되고 있는 실정”이라며 “이로 인한 혼란과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신임 사장 임명에 대한 집행정지신청과 무효확인 본안 소송을 제기하게 됐다”고 밝혔다.

신 아나운서는 1992년 엠비시(MBC)에 입사해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아나운서 국장을 지냈다. 2020년 제21대 총선 한 달 전 퇴사해 미래통합당 비례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 후보로 출마했다. 이진숙 방통위원장과는 겹치는 시기 같은 정당에서 활동했다. 이 위원장은 과거 직장 동료인 신 사장을 자신의 유튜브 방송에서 ‘사랑하는 후배’로 소개한 적이 있다.

이비에스(EBS) 구성원들이 2025년 3월27일 오전 신동호 신임 EBS 사장 임명에 반발하며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사진 이기범 언론노보 기자 제공

이비에스(EBS) 구성원들이 2025년 3월27일 오전 신동호 신임 EBS 사장 임명에 반발하며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사진 이기범 언론노보 기자 제공


김유열 전 EBS 사장은 EBS에서 다큐멘터리 제작, 콘텐츠 기획 및 개발, 경영 등을 맡아왔다. 그레고리 맨큐, 유발 하라리, 켄 로치 등 석학들을 섭외해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았던 프로그램 ‘위대한 수업 그레이트 마인즈’가 위기를 맞으면서 3월1일엔 어려움을 호소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기도 했다. 그는 페이스북에서 “위대한 수업 그레이트 마인즈가 올해 벌써 5년이 되어간다. 많은 분들이 물심양면으로 도와서 세상에 태어났지만 자주독립이 되지 않으면 늘 위험한 상황에 놓인다는 역사의 원칙은 여기에도 보편적으로 적용되나보다. 지원금액이 지난해 줄고 올해는 끊기고 (…) 생각보다 이런 것들에 무심하다는 걸 느꼈다. 실망, 절망”이라고 썼다.

그는 신 사장 임명에 반발하는 입장문에서 “어린이와 학생들을 위한 교육방송이기에 EBS는 더더욱 도덕적이어야 한다”며 “아무리 양보해도 최소한 합법적이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EBS는 샘물 같은 청정방송이면서도 동시에 유리 그릇처럼 깨지기 쉬운 취약한 구조의 방송”이라며 “독립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공적재원인 티브이(TV) 수신료가 EBS 전체 재원 중 5.8%에 불과하다. 63%의 재원을 자체 사업을 통해 조달해야 하는 기형적 재원 구조를 가진 공영방송이다. 조그마한 외부적 충격으로도 심각한 경영상의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는 취약한 재정구조를 가진 방송이다. 최근 3년간 비상경영을 통해 장기적인 재정 적자의 늪에서 벗어나 2024년 가까스로 흑자로 전환된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다. 사장 선임과정부터 불법성 시비에 휘말린다면 EBS의 위기는 더욱 가중될 것”이라고 호소했다.

한편 최상목 전 대통령 권한대행은 2025년 1월 국회를 통과한 TV 수신료 통합징수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바 있다. EBS와 KBS의 재원이 되는 TV 수신료를 예전처럼 전기요금과 결합해 징수하는 내용이 담겼는데, 이를 거부한 것이다.

시청자들에게 화제가 된 EBS 프로그램 ‘위대한 수업 그레이트 마인즈’ 중 한 장면. EBS 유튜브 갈무리

시청자들에게 화제가 된 EBS 프로그램 ‘위대한 수업 그레이트 마인즈’ 중 한 장면. EBS 유튜브 갈무리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뉴스큐레이터: 이 주의 놓치지 않아야 할 뉴스를 한겨레21 기자가 선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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