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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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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마흔!

정여울 작가의 뜨거운 마흔 살기…

수줍고 예민한 세대의 안티에이징
등록 2017-05-18 15:15 수정 2020-05-03 04:28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밤 열한 시쯤 갑자기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온 대학 동기 H는 그야말로 나무랄 데 없는 친구였다. 회사에서 항상 주변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뛰어난 인재이고, 훌륭한 남편이자 자상한 아빠이기도 하다. 회사를 다니는 틈틈이 주말마다 악기를 배우고, 가끔 친구들을 불러 자신이 직접 만든 저녁 식사를 대접해준다며 멋진 요리 솜씨를 자랑하기도 한다. 그런 H의 목소리에 난데없는 눈물자국이 묻어 있었다. 그 친구와 나는 시시콜콜 근황을 공유하는 성격도 아니고, 그의 고민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함에도, 어느 날 갑자기 ‘왜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다’고 고백하며 울먹이는 친구의 목소리를 듣자, 그냥 다 알 것 같았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 속속들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순간 깨달았다. 이런 게 바로 나이듦의 증거로구나.

나이듦의 증거

오랜만에 전화해 다짜고짜 눈물을 뚝뚝 흘리는 친구의 수화기 너머 얼굴을,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눈앞에서 본 듯 생생한 느낌이 드는 것. 미주알고주알 설명하지 않아도,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의 마음을 내 것처럼 살갑게 어루만질 수 있게 되는 것. 내게 ‘나이 든다는 것’은 그렇게 처연하고도 애잔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무엇이 이 착하고 모범적인 친구 H를 괴롭히는지 자세히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어렴풋이 그가 느끼는 압박감의 뿌리가 주변의 기대감임을 느낄 수 있었다. H는 회사에서나 집에서 거의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이기에, 때로 스스로 만들어놓은 자신의 이미지가 감옥처럼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이 흉흉한 저출산 시대에 훌륭한 부모가 되기 위해, 이 험난한 사회의 어엿한 구성원이 되기 위해 안간힘 쓰며 살아온 사람들. 그들은 그 기대심리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예측 불능 상황을 맞이하면 당황하며 어쩔 줄 모른다. 우리는 이제 그야말로 집에서나 일터에서나 어딜 가나 ‘든든한 버팀목 같은 존재’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낀다. 아이가 없고 프리랜서 작가인 나조차 그런 중압감을 느끼니, 직장에 다니는 아버지들이나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워킹맘들은 훨씬 더 심한 압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문득 또 한 명의 친구 Y가 내 마음을 뒤흔들었다. “여울아, 넌 왜 우리 이야기는 안 쓰는 거야?” 친구는 섭섭함과 항변이 뒤섞인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이들에게 사랑을 듬뿍 받는 국어교사이자, 학교 다닐 때 늘 반장이나 학생회장을 도맡았던 친구였다. “여울아, 이제 우리 이야기, 좀더 생활에 밀착한 이야기를 들려줘. 난 이제 내게 다가올 사십대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거든. 인문학도 좋고 여행도 좋지만 우리 일상에 더 가까이 다가오는 이야기를 써줘.” 그 친구는 내게 엄청난 숙제를 던져주고, ‘그렇게 어려운 글은 아무래도 안 되겠고 밥이라도 사야겠다’고 마음먹은 나보다 먼저 재빨리 밥값을 계산하고 말았다. “이래야 네가 나에게 진 빚을 글로 갚겠지.” 친구는 내게 엄청난 화두가 담긴 숙제를 덥석 안겨주고 광화문 한복판을 쓸쓸하게 걸어갔다.

우리는 다가오는 ‘인구 절벽’ 시대 한가운데 낀 세대다. 윗세대는 ‘너희들은 배고픔도 전쟁도 가난도 모른다’며 우리를 철없는 반항아로 바라보았고, 우리보다 어린 세대는 ‘선배들은 헬조선,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 N포 세대 이런 말에 진심으로 공감할 수 없잖아요’라고 항변하곤 한다. 우리 세대는 그렇게 양쪽으로 치이며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찾기 힘들어하는, 수줍고 예민한 세대였다. 뭐라고 말해도 욕먹을 게 빤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IMF 세대라 가난도 알고 몰락도 알고 전쟁만큼이나 무서운 비정규직의 공포도 안다’고 말하면 어른들에게 ‘철없는 어린애’라며 손가락질받을 것 같고, ‘우리도 헬조선 시대의 N포 세대가 느끼는 비애를 안다’고 말하면 ‘세상 물정 모르는 또는 디테일이 약한 꼰대’라는 비난을 받을 것 같았다.

수줍고 예민한 세대

하지만 이제는 괜찮다. ‘그래도 우리는 아직 젊은데’라고 생각했던 30대와 달리 ‘이제는 마흔, 그러니까 우리 사회의 딱 중간 세대’라는 모종의 편안함이 있다. 오히려 ‘우릴 아직도 철없다고 생각하는 기성세대’와 ‘우릴 꼰대라고 생각하는 젊은 세대’ 사이에서 뭔가 문화적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가 서로 외면하지 않고, 서로 충분히 소통할 수 있다고 믿을 때까지. 기성세대의 나라 걱정과 젊은 세대의 사회 불신 사이에서 너무 커다란 희망에도 너무 깊은 절망에도 사로잡히지 않고, ‘그때 그 시절’에 대한 기억과 ‘다가오는 미래’를 향한 두려움과 설렘으로 ‘대한민국에서 나이 들어간다는 것’에 대해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조심스런 기대감이 막중한 책임감을 담은 어려운 연재를 시작할 수 있도록 부추겼다. 천만다행인 것은, 어찌될지 모르는 앞날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으로 가득했던 ‘서른 즈음’과 달리 ‘마흔 즈음’은 기대 이상으로 설레고 반갑다는 점이다. 흰머리와 잔주름이 늘어가긴 하지만 육체의 나이테만큼이나 성실하게 쌓여가는 ‘인연의 나이테들’이 우리를 지켜주는 것 같아서. ‘더 이상 마냥 젊지만은 않다’는 것이 쓸쓸하기도 하지만 적어도 ‘내가 잘할 수 없는 것’을 포기할 배짱이 생겼기에. ‘내가 정말 하기 싫은 것’은 거절할 용기도 생겼기에. 마흔은 스물처럼 찬란하지는 않지만, 곰삭은 된장국처럼 구수하게 봄날의 냉이나물무침처럼 아릿하게 우리 안에 아직 남은 순수를 끌어올리고 우리 안에 가득 차오른 행복에 대한 갈망을 부추긴다.

배우 윤여정이 (tvN)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보여준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는 바로 ‘아름답게 나이 들어가는 법’이 아닐까. 그녀는 아무리 상황이 좋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조용히 받아들이며 다음 행보를 느릿느릿 준비한다. 나쁜 상황에서도 여유로움과 열린 마음을 잃지 않는다. 저런 분과 함께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지혜롭게 헤쳐나갈 것 같은 믿음. 바로 그 믿음이 우리가 ‘배우 윤여정’을 넘어 ‘인간 윤여정’을 통해 느끼는 나이듦의 아름다움이다. 스타나 연예인의 느낌이 아니라 왠지 다짜고짜 ‘선생님’이라 부르고 싶은 그녀의 든든한 모습 뒤에는 지배하지 않고 통제하지 않는 부드러운 리더십, ‘희생’이나 ‘모성’ 같은 전형적인 사랑이 아닌 친구 같고 옆집 언니 같은 부담 없는 따스함이 느껴진다.

식물이 동물보다 오래 사는 이유
<윤식당>(tvN)의 윤여정(왼쪽 두 번째)은 아무리 상황이 좋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조용히 받아들이며 다음 행보를 느릿느릿 준비한다. 연합뉴스

<윤식당>(tvN)의 윤여정(왼쪽 두 번째)은 아무리 상황이 좋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조용히 받아들이며 다음 행보를 느릿느릿 준비한다. 연합뉴스

에서 윤여정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독보적인 아우라로 바쁜 삶에 지친 시청자의 마음에 군불을 지폈다. 누구에게도 군림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그룹을 이끌어가는 모습, 텅 빈 식당에서 하염없이 손님을 기다리는 처연한 모습까지 속속들이 아름다웠다. 나이 들수록 점점 경직되어가는 기성세대, 젊은이에게 멘토가 되어주기보다 호통치느라 바쁜 노인들 때문에 상처받은 우리는 윤여정의 모습이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느껴졌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주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꼭 하는 말이 있다. “나도 저렇게 나이 들고 싶어.” “우리 엄마도 윤여정처럼 멋지게 나이 들어가셨으면 좋겠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아름답게 나이 들어갈 수 있을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식물이 동물보다 훨씬 오래 사는 이유를 ‘늘 자신을 새롭게 함으로써 오랫동안 살아남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늘 자신을 새롭게 한다는 것. 이 대목에서 나는 눈이 번쩍 뜨였다. 우리가 식물처럼 늘 자신을 새롭게 재생시킬 수 있다면, 삶은 ‘고통스러운 노화’가 아니라 이 세계와 총체적인 교감의 과정이 되지 않을까. 식물이 햇빛과 물, 공기와의 대화를 통해 스스로 재생함으로써 생명을 유지하듯, 우리도 ‘나를 벗어난 것들, 내가 아닌 것들’과의 대화적 소통을 통해 행복한 나이듦을 체험할 수 있지 않을까. 깊은 바다에서 느릿느릿 성장하여 천 년을 살아내는 산호처럼 늘 자신을 새롭게 한다는 것. 그것은 ‘빠르게 한꺼번에, 눈에 띄게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느리게 조금씩, 눈에 띄지 않게 자신을 바꾸어가는 내적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생명의 신비다. 나는 나이듦을 ‘피하고 싶은 장애물’이 아니라 ‘더욱 적극적으로 탐구하고 실천해야 할 삶의 가치’로 바꿀 수 있는 길을 찾고 싶다.

나는 이 글을 통해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나이듦’에 대한 무거운 고민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 싶어졌다. 우리 모두 육체적 나이에 주눅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너무 나이 들었다는 이유로 자신을 ‘나이라는 테두리’에 가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서른이 되었는데 왜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을까’라는 생각 때문에 아프고, ‘마흔이 되었는데 왜 아직도 안정을 찾지 못하고 방황할까’라는 생각 때문에 상처받는 우리 자신을 위해 좀더 너그러워졌으면.

안티에이징을 넘어서

이 글은 ‘나이듦’이라는 과제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 더 아름답게 나이 들기 위해 힘껏 도전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탐색과 실험으로 구성될 것이다. 무조건적이고 무차별적인 ‘안티에이징’ 담론을 넘어 오히려 담담하게 ‘웰컴, 에이징!’이라 외칠 수 있을 때까지. 육체적인 안티에이징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잠재된 가능성과 더욱 뜨겁게 만날 수 있는 ‘아름다운 나이듦’을 꿈꾸는 이들과 함께하고 싶다.

정여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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