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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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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을 버리고 ‘나’를 찾았다

조직생활과 멀어질수록 나다워지는 순간…

때로는 함께, 때로는 홀로 있을 수 있는 자유
등록 2018-08-21 18:40 수정 2020-05-03 04:29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너는 조직생활 못하겠다!” “너는 사회성이 부족하구나.” “모나게 굴지 마, 정 맞는 건 너야.” 이런 이야기를 평생 듣고 살아온 나는 조직생활을 잘해낼 거라는 기대 자체를 접고 살아왔다. 작가라는 직업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도 조직생활을 버텨낼 수 없을 것이라는 자기인식 때문이었다. 심지어 대학이나 대학원 생활, 연구실 생활도 나에게는 너무 어려운 조직생활이었다. 나는 사람들의 미묘한 표정 변화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고, 자꾸만 부정적인 쪽으로 흐르는 과대망상에 빠져 ‘저 사람은 날 싫어할 거야’ ‘저 사람은 날 절대 이해해주지 않아’라는 생각으로 골머리를 앓곤 했다.

너무 좋아해서 더 큰 상처

그러나 조직생활을 어려워한다고 해서 사람들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나는 사람들과의 행복한 어울림을 너무도 절실하게 꿈꾼다. 사람을 지나치게 좋아하기 때문에 사람에게 상처받을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공과 사를 구분하느라’ ‘사적인 감정에 거리를 두기 위해’ 차갑게 행동할 때마다 엄청난 상처를 받는다. 그의 좋은 의도를 알면서도, 그의 차가움에는 변함없이 상처를 입는다. 일로 새로운 인연을 만날 때마다 내 마음속에 시끄러운 알람이 울려댄다.

‘정 너무 많이 주지 말자. 너무 많이 좋아하지도 말자. 그냥 일만 열심히 하자. 서로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말자.’

그러면서도 첫날부터 그 사람의 ‘좋은 점’을 발견하곤 이미 몽실몽실 피어오르는 정(情)을 주체할 수가 없다. 정을 의식적으로 준다기보다는 정이 마음속에서 분수처럼 제멋대로 뿜어져나온다. 이성과 논리로 무장한 내면의 시멘트로 아무리 ‘정이 뿜어져나오는 분수’를 틀어막아보려 해도, 이미 그 사람이 너무 애틋하고 걸핏하면 눈에 밟힌다.

‘절대 상처를 만들 만한 행동 자체를 하지 마라’는 알람이 매번 울려대면 뭘 하는가. 변함없이 정을 듬뿍 퍼주고, 어김없이 상처를 받는데. 하지만 마흔 문턱을 넘어가며 분명 좋아진 점이 있다. 내면에 파인 상처를 스스로 꿰매는 속도도 빨라지고, 마음의 새살이 돋아나는 속도도 빨라진다는 점이다.

나는 서른 이후 집중적으로 읽기 시작한 심리학 서적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예컨대 마음챙김(mindfulness)의 반대편에 ‘마음놓침’이 있다는 것, 그 마음놓침이라는 상태가 생각보다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감정의 여파를 제대로 생각하지 않은 채 기분대로 행동하는 것, 저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지 배려하지 않고 내 감정에만 신경 쓰는 것, 모든 것을 남 탓으로 돌리며 ‘나는 잘하는데 남들이 도와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도 마음놓침의 일종임을 깨닫게 되었다.

마음챙김은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감정의 변화를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인식’하는 것이다. 나쁜 마음, 슬픈 마음, 움츠러드는 마음까지 용감하게 ‘대면’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마음챙김이다. 그러니 이 마음챙김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하지만 효과는 엄청나다. 마음챙김이 어렵고 힘든 만큼, 그 희열과 효험은 더욱 폭발적이다.

기대와 좌절의 메커니즘
점심시간에 쏟아져나온 직장인들이 회사 근처에서 식당을 찾아가고 있다. 조직생활에 적응하지 못한다고 사람들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류우종 기자

점심시간에 쏟아져나온 직장인들이 회사 근처에서 식당을 찾아가고 있다. 조직생활에 적응하지 못한다고 사람들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류우종 기자

예컨대 ‘내가 왜 그 사람에게 실망했을까, 내가 왜 그의 사소한 몸짓과 말투에도 상처를 받는 걸까’를 돌아보는 마음챙김을 해보면, 그것은 그 사람에 대해 내가 ‘이미’ 지니고 있는 감정 때문임을 알 수 있다. 나는 그 사람을 완전히 객관적으로 볼 수 없고, 내 마음에 비친 그 사람의 모습만 볼 수 있다. ‘그래도 저 사람은 나를 이해해줄 거야’라는 기대감이 ‘아, 이럴 수가’라는 실망감을 만들어내고, ‘네가 나에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라는 분노는 ‘내가 너를 이만큼 좋아하니까, 너도 나를 이 정도는 좋아해줘야 해’라는 기대감에서 시작된다.

명백한 잘못이 저쪽에 있다 하더라도, 내 마음속에서 이렇게까지 화가 치밀어오르는 것은 내 마음의 투사(남 탓으로 돌려 자신을 정당화하는 심리) 작용 때문이다. 기대와 좌절의 메커니즘 속에서는 상처를 받는 주요 원인이 ‘기대’ 자체일 때가 많다. 상대방에 대한 기대를 줄이고 관찰을 늘리자, 마음의 평온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이제 어떤 사람이 내게 실망감을 불러일으키면, 나는 나 자신에게 묻는다. ‘저 사람이 내 기대를 저버렸다고 해서, 그 사람을 싫어해야 할까?’ 그럼 이제는 예전보다 훨씬 차분해진 내 마음은 이렇게 대답한다. 한번 더 기다려보자. 그 사람에게 한번 더 기회를 주자.

얼마 전 ‘이곳이 내 마지막 조직생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한 직장에 1년간 취직한 적이 있다. 나로서는 마흔이 넘어 새로운 직장에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나는 작가이기도 하지만, 교사로서의 열망을 실현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책읽기와 글쓰기에 관련된 수업을 전담하는 것이었기에 내 전공과도 가장 잘 맞는 일이었다.

파커 파머의 를 여러 번 읽으며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그래, 내게 더욱 필요한 것은 한 줌의 지식이 아니라 학생들 앞에서 떨지 않고, 배우려 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주눅 들지 않고, 내가 평생 공부한 것을 거리낌 없이 전할 수 있는 용기야. 마흔 문턱을 넘어가며 한 번만이라도 진짜 좋은 선생이 되어보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래, 한 번만이라도 좋은 선생님이 되어보자. 나 자신에게 강한 자기암시를 반복했다.

수업 시간은 학생들과 어느 때보다 깊이 소통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지만, 문제는 ‘수업 이외의 다른 업무’와 ‘조직생활’이었다. 나는 수업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원했지만, 학교는 나에게 ‘학교 홍보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주기’를 바랐고 수업 이외의 다양한 업무를 요구했다. 나는 학교를 ‘더 나은 교육의 장’으로 생각하고 싶었지만, 학교 쪽에서는 나를 ‘조직생활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으로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이 바보야, 너 정말 절망한 것 맞니?’

아침잠을 포기하고 다니려니 늘 원고와 씨름하다 새벽 4시는 넘어야 잠이 드는 내 생활습관이 완전히 깨져버렸다. 하루 두세 시간씩 간신히 잠을 자고 새벽 5시에 일어나 학교 갈 준비를 하고 하루 종일 수업을 하는 강행군이 이어졌지만, 그 노력이 전혀 아깝지 않을 정도로 아이들의 눈빛이 어여뻤다. 하지만 그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학교는 나를 조직생활과 학교 홍보에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로 보는 것 같았고, 1년 후 재계약이 되지 않자 내 마음의 상처는 컸다. ‘나는 여전히 조직생활에 걸맞지 않은 사람이구나’ 하는 절망감,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 바뀌지 않는 것이 있구나’ 하는 생각 때문에 괴로웠다.

그러나 두 달 정도 끙끙 앓고 나자 거짓말처럼 괜찮아졌다. “교수님, 다음 학기에도 수업하실 거죠?” “다음 학기에도 다른 글쓰기 수업하시면 또 들어도 되죠?” 이렇게 물어보며 두 눈을 반짝거리는 아이들이 눈에 밟혔지만, 아이들이 정말 글쓰기에 관심 있다면 학교 밖에서 이뤄지는 내 수업에 언젠가는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그 어느 조직에도 제대로 속해본 적 없는 사람’이라는 절망감이 마음을 할퀴었지만, 두 달간 잔뜩 웅크리며 ‘도대체 나는 어떤 사람인가, 과연 조직생활은 절대로 잘해낼 수 없는 외톨이형 인간일까’라고 자문해보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예전과는 다른 대답이 들려왔다. ‘이 바보야, 너 정말 절망한 것 맞니? 넌 조직생활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진정한 네 자신을 찾은 거야. 정말 아직도 너 자신을 모르겠니?’ 예전과 달리 엄청나게 박력 있고 확신에 찬 내면의 목소리가 내 안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조직생활에 실패한 것이 아니었다. 재계약이 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곳에서 1년 동안 잠을 못 이루며 배운 것은 내가 지금까지 여러 학교를 전전하며 시간강사로 배운 것보다 훨씬 많았다. 나는 처음으로 아이들에게 전념할 수 있었고, 학교에는 ‘말 안 듣는 교수’로 찍혔지만 아이들에게만은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 전력투구했다. 그곳에서 만난 다른 교수님들도 좋았다. 처음으로 ‘나는 왕따가 아니구나, 이분들은 나를 진심으로 아껴주는구나’라는 따스한 느낌, 조직의 누군가는 나를 지켜주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는 고마움을 느꼈다. 우리는 다만 서로의 갈 길이 너무 달라 더 많은 일상을 함께할 수 없었을 뿐이다.

나는 조직생활에 적응하지 못했지만, ‘함께 어울리는 삶’은 무엇보다도 사랑했다. 나는 교육에서 수업 자체보다 중요한 다른 무엇이 있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홍보는 나의 재능도 열망도 아니었기에 도저히 해낼 수가 없었다. 1년 동안의 엄청난 질풍노도 끝에 나는 그곳에서 버틸 수는 없었지만, 직장보다 더 소중한 것을 얻었다. 바로 그 어느 곳에서도 가르칠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어느 곳에서도 작가임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열정이었다. 나는 스쿨버스 안에서도 글을 썼고, 지하철 안에서 오늘 할 수업을 마음으로 그려보며 수업 준비를 하는 것도 좋았다. 아이들의 글쓰기를 하나하나 훑어보며 일대일 멘토링을 하는 시간이 가장 좋았다.

조직생활보다 공동체적 삶

나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했지만 함께 어울리는 것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깨달음도 얻었다. 조직생활을 ‘효율적으로’ ‘눈치껏’ 해내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에 내가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 함께 어우러져 조금씩 삶을 바꾸어가는 노력을 사랑한다는 사실이 바뀌지는 않았다. 나는 조직생활과 공동체적 삶을 혼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공동체적 삶을 소중히 여기지만 상명하달식 조직생활, 존재의 가치보다는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조직문화에 동의할 수 없었다. 공동체적 삶은 천차만별의 차이를 지닌 개인들이 조금씩 좌충우돌하며, 때로는 얼굴을 제대로 붉혀가면서도 끝내 함께 어우러져 살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그 자체를 의미한다.

나는 조직생활에 무력하지만 공동체적 삶에는 끊임없는 열정을 느낀다. 더 좋은 것은 ‘나 혼자 좋아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엷어졌다는 점이다. 나는 내 안에 내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크고 깊은 사랑이 불타오르고 있음을 깨닫는다. 이 사랑은 영원히 마르지 않는 오아시스처럼, 사막 같은 관계의 거침과 팍팍함 속에서도 살아남는다. 나는 힘겨운 조직생활을 통해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을 얻었다. 어떤 감정노동도 버텨내며 함께 어우러져가는 삶 자체를 사랑하는 나, 그 어떤 상황에서도 끝내 내가 사랑하는 삶의 가치를 가르칠 수 있는 용기를.

정여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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