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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터기는 알고 있다, 택시기사의 ‘순삭’ 당한 그 노동을

10시간 운행에도 4시간 임금 주는 비상식적 구조… ‘간주근로시간제’ 대신 “일한 만큼 월급 달라”
등록 2026-07-30 21:04 수정 2026-08-04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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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국장이 7월3일 인천 남동구 고공농성장에서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고 국장이 7월3일 인천 남동구 고공농성장에서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2025년 한 해 택시기사 20명이 장시간 운전으로 질병을 얻어 급사하거나 교통사고로 숨졌다. 질병으로 산업재해를 인정받은 이는 610명이다.(근로복지공단 제공) 산재 전문가들은 택시기사에게 발생하는 질병과 사고의 원인을 과로에서 찾는다. 질병 산재 신청자의 60% 이상이 장시간 노동을 해온 노동자들에게서 보이는 심근경색·뇌출혈 등 뇌심혈관계 질환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과로에 시달린 택시기사는 도로 위 흉기가 되어 승객과 시민의 안전을 위협한다. 과로를 막을 대안은 없을까. 이 대안을 정치권에 요구하고자 택시기사들은 스스로 몸에 불을 붙였고, 고공농성에 들어갔다. 정부와 국회가 대책을 내놓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갑자기 제도 시행을 유예했다. 결국 2026년 3월29일 새벽 4시30분께 한 택시기사가 또다시 20m 높이의 통신탑에 올랐다. 기한 없는 또 다른 고공농성의 시작이었다. 이 택시기사는 폭염 속에서 7월26일로 120일째 농성을 하고 있다.

 

고영기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총무국장이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통신탑.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고영기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총무국장이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통신탑.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택시기사 ‘도로 위 흉기’로 내모는 낮은 기본급

 

“일한 시간만큼 임금을 줘야 하는 게 정상 아닌가요? 이렇게 부당한 일을 당하는데도 그냥 조용히 살 수는 없어요. 택시를 그만두는 한이 있더라도 바로잡아야 합니다.”

7월28일 오후 인천 남동구에 있는 통신탑 아래에서 전화로 만난 20년차 택시기사 고영기(57)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총무국장의 언성이 갑자기 커졌다. ‘폭염인데 꼭 이 방법을 택해야 했나’라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 그는 택시업계의 부조리함을 쉴 틈 없이 쏟아냈다. 그는 “바람이 불어 살 만했다”고 했지만, 이날 오후 4시께 외부 온도는 32.9도였다.

고 국장의 설명을 종합하면, 지금 택시업계는 “일한 만큼 임금을 주는” 상식 구조에서 비켜나 있다. 법인택시 사업자는 근로기준법 제58조가 규정하는 간주근로시간제(사업장 밖에서 일해 사용자가 실제 노동시간을 산정하기 어려울 때 노사 합의로 정한 시간을 일한 것으로 보는 제도)를 근거로 기사들의 실제 노동시간을 인정하지 않는다. 즉, 노사가 합의하면 하루 10시간이든 20시간이든 운전해도 4시간 일한 것으로 ‘간주’해 그만큼의 임금만 지급할 수 있다는 얘기다. 고 국장은 “지금처럼 10시간 이상 운전하는데 서너 시간 운전한 만큼만 임금을 주는, 이 전근대적인 구조를 바꿔야 한다. 심지어 울산의 한 택시회사는 2시간만 인정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런 실태는 결국 택시기사들을 ‘도로 위의 흉기’로 내몬다. 기본급이 워낙 적다보니, 기준금(사업자가 정한 운송수입금의 목표액)을 넘겨서 초과분만큼의 성과급을 받아야만 하는 환경에 놓인 것이다. 심지어 일부 택시회사는 기준금을 채우지 못한 택시기사에게 징계를 내리거나 해당 금액만큼 급여에서 공제한다. 오래 운전하며 최대한 많은 승객을 태워야만 하는 구조는 법인택시의 고질적 병폐인 난폭 운전과 불친절, 그리고 교통사고를 야기했다.

“하루 12시간 이상, 한 달 25일 동안 일하며 1년, 10년, 20년 택시를 운전하는 기사가 많아요. 이 사람들 결국 다 직업병으로 쓰러집니다. 모든 영업용 자동차의 교통사고 가운데 절반이 택시입니다. 그렇게 죽어나가고 있어요.” 고 국장의 목소리에 다시 힘이 들어갔다. “기사들의 운행 기록은 각 지방자치단체에 자동으로 전송돼 확인이 가능해요. 실제로 사업주가 이걸 가지고 기사를 징계하거나 해고도 합니다. 사업주는 노동조합에 간주근로제를 들이밀고 뒷돈 먹여가면서 임금으로 인정되는 노동시간을 줄이는 작업을 해왔습니다.”

 

고영기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총무국장이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통신탑 아래에 설치된 천막.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고영기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총무국장이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통신탑 아래에 설치된 천막.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시행 미루고 예외조항… 택시월급제 ‘사망 선고’

 

고 국장의 고공농성 투쟁에는 앞서 같은 길을 걸었던 김재주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전북지회장의 영향이 컸다. 김 지회장은 2017년 9월4일 택시월급제 도입을 요구하며 전주시청 앞 조명탑에서 고공농성을 하며 510일 동안이나 버텼다. 그 희생 덕에 국회는 2019년 9월 택시발전법 내에 택시월급제를 규정하는 조항을 신설했다. 간주근로시간제로 노동시간을 측정할 경우 노동시간을 ‘주 40시간 이상’으로 강제 지정하도록 조처한 것이다. 택시월급제는 2021년 1월 서울부터 시범 도입한 뒤 2024년 8월부터 전국에 전면 도입하기로 했다.

그런데 전면 도입 시기가 다가오자 국회가 돌연 말을 바꿨다. 전면 도입을 앞둔 2024년 8월 서울 외 지역의 시행 시기를 2년 뒤인 2026년 8월로 한 번 늦추도록 법을 개정하더니, 2026년 4월에는 ‘2028년 8월까지 서울시 성과를 고려해 추가로 적용할 사업구역을 정한다’로 법을 또다시 바꿨다. 게다가 사업장 내 택시 가운데 40% 범위 안에서는 ‘주 40시간 미만’ 노동 계약을 맺을 수 있는 예외 조항까지 붙였다. 사업장 내 택시의 절반이 운휴 차량인 점을 고려하면, 운행 대수의 80%에 ‘주 40시간 미만’ 노동 계약이 가능해진 셈이다. 택시업계에서 “코로나19 이후 승객 감소와 기사 이탈로 영업이익이 크게 줄어든 상황에서 고정 월급을 지급하면 적자를 감당하기 어려워 연쇄 폐업이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하자 국회가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노동계에선 “택시월급제의 사망 선고”라는 평가가 나왔다.

고 국장은 통신탑에 오르기 전 ‘택시월급제 시행 유예’ 개정안을 낸 손명수 더불어민주당 의원,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소위 위원장인 복기왕 민주당 의원, 당시 국토교통위원장인 맹성규 민주당 의원을 차례로 만났지만 개정안 통과를 막지 못했다. 그는 “무작정 통신탑에 올라간 게 아니다. 여러 의원을 면담으로 설득했고, 맹성규 위원장도 ‘본인이 생각해도 대단히 잘못된 법안’이라고 했다. 그런데 결국 ‘어쩔 수가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돌아봤다. 고 국장은 이어 “개정안에는 전국 전면 시행 일자가 없다”며 “이건 택시월급제를 영원히 하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탄식했다.

 

고영기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총무국장이 2026년 7월6일 고공농성장에 앉아 있다. 360도 카메라로 찍었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고영기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총무국장이 2026년 7월6일 고공농성장에 앉아 있다. 360도 카메라로 찍었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택시 고공농성’ 여섯 글자 한 번만 검색해달라”

 

고 국장이 고공농성 중인 통신탑의 공간은 0.4평이다. 게다가 기둥이 정중앙을 관통하고 기타 시설물로 인해 실제 공간은 0.25평에 불과하다. 통신탑 인근에는 맹성규 의원의 지역구사무소가 있다.

고 국장에게는 아들의 건강에 노심초사하는 78살 어머니가 있다. 뒤늦게 고공농성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처음엔 전화로 많이 화내다가 다음날 곧바로 건강하게 내려와달라”고 사정했다고 한다. 다리조차 제대로 쭉 뻗을 수 없는 통신탑 위에서 그는 새우잠을 자고 혈압약을 먹으며 버틴다.

택시노조는 택시월급제가 사실상 형해화된 상황에서 시행령을 개정해 ‘간주근로제 적용 대상에 택시기사처럼 노동시간 측정이 가능한 직무를 제외해달라’고 요구했다. 고 국장은 “정말 목숨 걸고 투쟁해야만 그나마 언론에서 관심을 가져준다”며 “200일, 300일이 넘어가면 지상파에서도 취재를 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고 국장은 김재주 전북지회장이 세운 ‘510일의 기록’을 넘어설 각오로 통신탑에 올라갔다고 했다. “‘택시 고공농성’ 이 여섯 글자만 치면 저희에게 얼마나 억울한 사연이 있는지, 국회가 얼마나 기가 막힌 짓을 했는지 나와 있습니다. 한 번만 검색해서 기사 하나만 읽어주세요. 저희 요구, 너무나 간단하고 상식적이고 당연한 요구입니다.” 그가 잔뜩 쉰 목소리로 외쳤다.

 

인천=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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