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어느 날, 김광석의 의 원곡이기도 한 밥 딜런의 노래 <don think twice it all right>(두 번 생각하지 마요, 다 괜찮으니까)를 듣다 가슴이 먹먹해진 적이 있다. 처음에는 두 노래의 가사가 전혀 달라서 놀랐고, 두 번째는 밥 딜런의 가사가 지독하게 차가운 슬픔을 품고 있어서 흠칫 놀랐다.
“이제 아침이 밝아오고 닭이 울기 시작하면 창밖을 바라봐, 아마 난 가고 없을 테지. 너는 내가 계속 길을 떠나는 이유야.”(When your rooster crows at the break of dawn, look out your window and I’ll be gone. You are the reason I’m travelling on.)
그 노래를 처음 들은 뒤 나는 마치 주문처럼 “You are the reason I’m travelling on”을 하루에 수십 번씩 되뇌곤 했다. 원곡에선 ‘바로 너 때문에 내가 이렇게 길을 떠나는 거야’ 같은 증오와 원망의 느낌이 묻어 있지만, 내 경우에는 그 문장 하나를 톡 떼어 나 자신의 맥락으로 바꾸어 생각하고 있었다.
당신 때문에 저는 이렇게 끊임없이 길을 떠나고 있어요. 기필코 당신을 잊기 위해, 사실은 당신을 계속 생각하기 위해, 어쩌면 당신을 찾기 위해. 나는 나도 모르게 그 노래 가사를 내 상황에 맞춰 전혀 다른 맥락으로 확장하는 나를 발견했다. 너 때문에, 그렇게 나를 아프게 했던 너 때문에, 나는 네가 그곳에 없는 것을 빤히 알면서도 이렇게 끊임없이 떠나고 또 떠나는 거로구나.
그것은 일종의 아픈 깨달음이었다. 일상 속에선 생각하는 것조차 금기인 그 사람을, 여행 속에서는 그래도 떠올릴 수 있었다. 함께할 수 없지만, 내 마음속에서만은 함께하는 것 같은 아픈 환상의 시간을 좀더 늘리기 위해 나는 혼자 길을 떠나곤 했다. 사랑이란 이렇다.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조차 완전히 내 이야기로 탈바꿈해버리고, 그 사람과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을 이성적으로는 알지만 마음속으로는 영원히 함께할 것처럼 자신을 완벽히 속일 수도 있다.
‘얼굴’ 아닌 ‘가슴’에 간직하는 사랑
사랑의 아픔은 때로 사랑 자체보다 강력하다. 사랑은 끝나도 사랑의 아픔은 영원히 지속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쩌면 사랑의 아픔조차 사랑의 일부이기 때문에, 사랑의 아픔이 끝나지 않는 한 우리는 그 사랑에서 한 발짝도 자유로울 수 없다.
마흔 문턱을 넘으며 ‘그래도 조금은 다행’이라고 여기는 점은 사랑의 아픔을 숨기는 연기력이 늘었다는 것이다. 20대엔 아무리 숨긴다고 숨겨봐도 얼굴에 다 쓰여 있었다. ‘그 사람과 다시는 안 볼 것처럼 싸웠습니다’ ‘그 사람이 저를 영원히 떠났어요’ ‘이제 그를 다시는 볼 수 없겠지요’, 이런 치명적인 문장이 마치 갓 끝낸 페이스페인팅처럼 얼굴에 그대로 쓰여 있는 것이 20대의 특징이다.
마흔 문턱을 넘고 나면, 사랑의 설렘과 사랑의 슬픔을 얼굴이 아니라 ‘가슴’에 간직하는 법을 알게 된다. 때로 사랑보다 더 질기고 독한 것이 ‘삶’ 자체임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삶과 사랑이 완벽한 하모니(조화)를 이루기 바라지만, 사랑과 삶이 공존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그 사랑을 선택하면 내 삶이 무너질 듯한 두려움을 느낄 때도 있다. 삶을 통째로 집어삼키는 사랑이 찾아와도, 우리는 삶을 지켜내야 한다.
이별의 아픔이 우리 삶을 집어삼키지 못하게 우리는 단단히 마음의 무장을 하곤 한다. 요새는 ‘이혼’이라는 직접적인 단어보다 ‘해혼’(解婚)이나 ‘휴혼’(休婚) 같은 좀더 부드럽고 간접적인 단어를 택하는 사람이 많아질 정도로 이별에 예전보다는 훨씬 담담한 거리감을 갖게 되었다. 하루는 “A라는 사람, 누구랑 이혼하고 이제 재혼하지 않았냐”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 틈에서 조금 난처한 느낌이 든 적 있다. 나는 A가 누구와 이혼하고 언제쯤 새로운 인연을 만나 재혼했는지 알고 있었지만,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A의 소중한 프라이버시가 도마 위에 오르는 것 자체가 싫어 불쾌함을 참고 잠자코 있었다. 그러자 내가 참 좋아하는 멋진 시인 S가 상황을 이렇게 명쾌하게 정리해주었다.
“거, 왜들 남의 사생활에 왈가왈부하고 그래요? 내가 아는 A는 다섯 번 이혼하고 다섯 번 재혼해도 아무렇지 않을 정도로, 그만큼 멋진 사람이에요. 설령 A가 다섯 번 이혼해도, 누구든 A를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길 거예요.”
와우, 멋지다. 이런 걸 ‘걸크러시’라고 하는구나. 여성이 여성을 이토록 진심으로 아낄 수 있다니. 누구와 결혼하든 이혼하든 상관없이 행복하게 살고 있는 A도 멋지고, 그녀의 삶은 물론 변치 않는 매력을 예찬하는 S도 멋지다. 그리고 누가 몇 번 이혼하든 재혼하든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진정한 쿨함이 내 가슴을 울렸다.
언젠가는 이런 세상이 와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아직도 너무 많은 타인의 시선 속에서 진정한 나 자신의 결정을 미루고 있지 않은가. 내 사랑의 목소리, 내 마음의 불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공격적인 시선으로 우리 삶을 재단하고 있지 않은가. 먼 훗날 좋은 세상이 올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이제부터 바로 멋진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누가 뭐라든 내 길을 가고, 사랑과 이별을 선택할 때 남 눈치 안 보고, 이별하든 다시 만나든 누가 누구를 만나든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나는 사랑의 아픔에 중독돼버린 사람이지만, 사실 내 사랑의 심장은 두 개로 기쁘게 분열됐다. 아픔을 위한 심장과 희망을 위한 심장으로. 나는 내가 사랑의 아픔 따윈 멀리 던져버리고, 때로 그 아픔이 가슴을 찢을지라도, 찢어진 마음보다 더 크고 불타는 또 하나의 심장으로 계속 사랑하고, 희망을 가지고, ‘어떻게 해야 버려지지 않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오늘 그 사람을 더 많이 사랑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살아갔으면 좋겠다.
사랑을 위한 ‘하얀 거짓말’
마흔 문턱을 넘어서며 깨달은 또 하나의 사랑법은 ‘내 곁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더 자주 표현하는 일의 중요성이다.
어느 날 친구 커플의 대화를 듣다가 박장대소했다. 아내 K가 남편 J에게 갑자기 물었다. “여보, 기억해? 내 얼굴에서 몇 살 때 ‘빛’이 사라진 것 같아?” 와우, 제발 내 친구가 이 무시무시한 사랑의 시험을 통과하기를, 마음속에서 ‘둥, 둥, 둥’ 커다란 북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K와 J, 두 사람 모두 친한 친구였기에 누구 편을 들 순 없지만, 그래도 내심 남편 J가 무사히 이 사랑의 불심검문을 통과하길 바랐다. 그래야 아무 갈등 없이 우리 모두 평화로운 저녁의 한때를 보낼 수 있으니까. 그런데 총명하고 다정다감한 J의 유일한 단점은 어떤 상황에서도 지나치게 정직하다는 것이었다.
“아, 네 얼굴의 빛! 서른두 살 때부터 좀 사라지기 시작했지.” 어휴, 이 친구가 사고를 치고야 말았구나. 서른두 살이라니, 이미 오랜전 이야기가 아닌가. 이런 질문의 정답은 누가 봐도 빤한 것 아닌가.
“빛이 사라지다니, 지금도 이렇게 반짝반짝 빛나고 있잖아.” 손발은 오그라들지라도 우리는 그런 대답을 기대했다. 아무리 친해도, 아무리 사랑해도, 아무리 절대로 헤어지지 않을 사이라 하더라도, 가끔은 서로를 깜빡 속여주고 속아 넘어가는 그런 ‘사랑을 위한 하얀 거짓말’이 통했으면 좋으련만. J의 못 말리는 정직함은 가끔 이렇게 ‘여전히 로맨스를 꿈꾸는 사람들’을 실망시키지만, 그래도 나는 그런 J의 정직함을 은근히 응원한다. 나는 평생 가질 수 없는 담백함, 사랑 앞에서조차 ‘진실’만은 포기할 수 없는 그 투명함이 좋다.
K는 남편을 날카롭게 흘겨보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지만, 그런 K의 모습도 언제나처럼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두 사람은 어떤 질문도 시험도 위기도 견뎌낼 것이다. 그것을 알기에 이런 살얼음판 같은 사랑의 돌발 시험도 가능하다. 내가 아는 한 K는 J와 사랑을 시작한 찬란한 20대의 봄날 이후 단 한 번도 사랑받기를 멈춰본 적이 없는 행복한 사람이니까. K와 J는 내 주변 사람들 중에서 가장 일찍 결혼했으면서도 가장 오래 ‘로맨스’를 간직한 사이좋은 부부다.
그렇다. 그 사람 얼굴에서 빛이 사라지기 시작하는 것처럼, 사랑에도 제 나름의 빛이 있어 언젠가는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빛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우리는 어제보다 더 깊이, 어제보다 더 정성을 듬뿍 기울여 누군가를 사랑해야 하지 않을까.
누구나 가끔은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 한다. 마흔 문턱을 함께 넘는 우리 제부는 애정 표현에 서툰 내 동생에게 가끔 이런 질문을 해서 우리 모두를 바싹 긴장시킨다. 소주가 한 석 잔 반쯤 들어가 약간 혀가 꼬인 목소리, 그리고 앙증맞은 콧소리까지 섞어서. “너는 나를 사랑하기는 하는 거냐?”
우리 가족은 그 문장을 들을 때마다 손뼉 치며 그 귀여운 말투를 따라해본다. 그 문장의 독특한 운율과 울림이 왠지 재미있어 한 번씩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 문장을 앵무새처럼 재잘재잘 따라해보는 것이다.
너는, 나를, 사랑하기는, 하는 거냐
너는, 나를, 사랑하기는, 하는 거냐고. 그건 너무 원초적이고도 유치한 질문이지만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늘 궁금한 내면의 안부이기도 하다. 우리 얼굴의 빛은 점점 사라지더라도, 우리가 매일매일 만들어가는 사랑의 빛은 시들지 않았으면. 지금 혼자일지라도, 오래전 사랑의 열정이 이미 식어버린 것처럼 느껴질지라도, 우리 가슴속에 깃든 사랑의 추억과 새로운 사랑을 향한 희망을 놓지 말았으면. 동지애든, 전우애든, 사랑보다 우정에 더 가까운 감정이든, 우리가 겪어왔던 그 모든 사랑의 빛들은 그 자체로 눈부시니까.
마흔의 거울에 비춰본 사랑은 예전보다 더욱 서글프고도 애틋한 웃음을 머금고 우리에게 속삭인다. 사랑은 어쩌면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에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사랑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우리 자신의 의지 속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사랑은, 그 모든 어려움과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웃는 것, 그래도 빛나는 것, 그래도 오늘을 가장 따스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니까.
정여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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