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관통하는 재난안전법은 시민들의 눈물로 만들어졌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사건
→ 1995년 ‘시설물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 제정: 시설물 안전 과 유지관리 주체의 지정, 국가·지방자치단체의 의무 지정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
→ 1995년 ‘재난관리법’ 제정: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등의 재난관리에 대한 책무 규정, 정부의 재난관리총괄기구로서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두는 중앙안전대책위원회 설치, 재난이 발생한 경우 그 효율적인 수습을 위해 당해 지방자치단체에 지역사고대책본부 설치·운영
2003년 대구지하철 방화 사건
→ 2004년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이하 재난안전법) 제정: 현행 재난안전법의 근간이 되는 법.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새로운 재난대응관리체계 확립. 재난관리 전담기구인 소방방재청도 출범함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건
→ 2014년 ‘재난안전법’ 개정: 분산된 재난안전 기능을 통합하고 재난대응체계를 정비하는 대대적인 개편. 대규모 재난 발생시 특별재난지역 선포에 관한 사항은 국무총리가 책임지도록 하고, 재난 대응과 복구 총괄·조정 기능은 행정안전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맡도록 함
열거한 사건 중 어느 하나 무겁지 않은 것이 없다. 참사 보도를 처음 접했을 때의 충격과 함께 그때 내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낱낱이 기억할 만큼 각각의 참사가 각자의 인생에 들어와서 박혔다. 재난이 그렇다. 붕괴되고 쓰러진 건 건물이나 운송수단뿐만 아니라 안전하다 믿었던 국가와 사회에 대한 우리의 믿음체계도 포함된다. 재난을 직접 겪은 사람들에게는 물론이고 그것을 지켜보는 시민들도 각자의 삶이 재난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다.
재난이 발생한 뒤 법을 만든다고 해도 소급 적용되는 사안은 극히 적겠지만 국회가 기필코 법을 만들어내는 이유는 단 하나다. 너무나 급작스러워 작별 인사도 남기지 못한 죽음에 대한 회한, 살릴 수 있었는데 살리지 못한 죄책감, 이 고통스러운 사건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절박함, 그래서 남은 자들이 살게 될 사회는 더욱 안전할 수 있게끔 만들자는 다짐. 그 모든 것이 우리가 사는 이 공동체가 제 기능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다. 우리 사회가 다시는 똑같은 위기를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법문에 이렇게 담겼다.
재난안전법 제2조(기본이념) “이 법은 재난을 예방하고 재난이 발생한 경우 그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기본적 의무임을 확인하고, 모든 국민과 국가·지방자치단체가 국민의 생명 및 신체의 안전과 재산보호에 관련된 행위를 할 때에는 안전을 우선적으로 고려함으로써 국민이 재난으로부터 안전한 사회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함을 기본이념으로 한다.”
모두 82조의 세세한 조문으로 구성된 재난안전법의 골자는 오히려 단순하다. 재난에 대한 국가의 책무를 규정하고 대규모 재난의 대응과 복구를 총괄·조정하는 절차와 재난 예방 의무를 담은 것이다. 세월호 참사를 두고 “청와대 국가안보실은 재난의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고 했던 청와대 대변인의 말이 오히려 법 개정의 도화선이 됐다.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에 남긴 유산은 재난관리체계의 핵심은 컨트롤타워를 정확하게 세우는 것이며, 국가는 공동체 존속을 위해 무한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기본원칙의 확인이었다.
대통령의 ‘주최 없는 축제’라는 신조어 창조와 행정안전부 장관의 “경찰과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는 부인은 재난안전법에 눅진하게 묻어 있는 회한과 죄책감과 절박함과 다짐의 마음을 일거에 배반한다. 대통령이 참사 현장에 가서 했다는 “여기서 그렇게 많이 죽었단 말이야?”라는 발언은 공감보다는 수사의 칼날을 들이댈 검사의 말이지 국가 통치자의 말이 아니다.
거친 말들의 성찬은 이어진다. 참사 발생 뒤 진행된 정부 브리핑에서 “예년과 비교했을 때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다”라는 발언은 형사사건 피의자 변호인이 할 법한 말이다. 재난총괄 책임이 있는 국무위원이 상처 입은 국민에게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 우리 사회가 참사의 트라우마를 딛고 합의해온 재난의 컨트롤타워에 물었는데 검사와 피의자 변호인이 답한 형국이다.
대통령은 공동체적 책임이 무엇인지 모르지 않았다. “위기 상황에서 정부가 국민을 어떻게 보호하느냐에 그 정부의 존재 이유가 있는 것인데 이 정부는 정부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현 대통령의 전직 검찰총장 시절의 말이다. 책임을 아는 자가 부인하는 이유는 자칫하다가는 정말 책임지게 생겨서이거나, 책임을 상대를 공격하는 수단으로만 인지했기 때문이다. 어느 쪽이든 공직자로서의 판단이 아니다. 정부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상실시켰다.
백번 양보해서 검사와 판사 출신들의 말은 일반 공무원의 말과 다른가 싶어(아니 도무지 정부 고위 관료들의 말이 이해가 안 돼서) 최근 대법원 판례도 찾아봤다. 판례에는 오히려 공무원이 마땅히 지켜야 할 준칙이나 규범은 법에 국한되지 않았으며, 법령에 근거가 없더라도 국민의 생명을 지킬 의무가 “초법규적으로” 있었다. 국가는 법이 있든 없든 매뉴얼이 있든 없든 재난 컨트롤타워로서의 책임을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공무원의) ‘법령 위반’이란 엄격하게 형식적 의미의 법령에 명시적으로 공무원의 작위의무가 규정되어 있는데도 이를 위반하는 경우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인권존중·권력남용금지·신의성실과 같이 공무원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준칙이나 규범을 지키지 않고 위반한 경우를 포함하여 널리 객관적인 정당성이 없는 행위를 한 경우를 포함한다. 따라서 국민의 생명·신체·재산 등에 관하여 절박하고 중대한 위험상태가 발생하였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어서 국민의 생명·신체·재산 등을 보호하는 것을 본래적 사명으로 하는 국가가 초법규적, 일차적으로 그 위험 배제에 나서지 않으면 형식적 의미의 법령에 근거가 없더라도 국가나 관련 공무원에 대하여 그러한 위험을 배제할 작위의무를 인정할 수 있다.
-대법원 2022년 7월14일 선고 2017다290538 판결
현장 구조를 도운 이태원 참사 피해자는 이렇게 말했다.
“(의료진이) 이분 손이라도 모아드리라고. 시신이 대자로 있으니까 다리랑 손 좀 모아달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대로 굳으면 나중에 힘든가봐요. 관에 들어갈 때나 이럴 때. 그래서 그때부터는 (시신의) 손을 모으고 다녔어요.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돌아가셨지만 고생이라도 덜 하시게 손을 계속 모으고 다녔어요.”(MBC 11월1일 방송 중)
이뿐만 아니라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심폐소생술(CPR)을 시도한 시민이 너무 많아 셀 수 없을 정도였다고 증언했고, 인근 가게에서도 문을 열고 다친 사람들이 누울 공간을 제공하고 물을 주며 구조에 동참했다고 한다. 국가 없는 대한민국에서 시민들은 이렇게 연대했다. 시민들은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점점 의식이 옅어지는 사람들을 부여잡았다. 그러고도 책임질 사람이 방기한 책임까지 떠맡아서 져야만 했다.
정부는 애초 사고엔 ‘정부’ 책임이 없다고 하더니 이제는 ‘우리’ 책임이 아니라고 떠넘기고 있다. 이미 경찰 특별수사본부에서 서울경찰청 등을 압수수색했고 과실치사상 혐의를 적용할 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상급자에게 책임을 묻는 대신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을 이미 받고 있다. 공무원의 가슴에 붙인 리본에 ‘근조’라는 말도, ‘희생자’라는 말도 쓰지 말라고 공식적으로 공문을 하달했다. 정부는 아직도 ‘컨트롤타워’라는 책임의 무게가 무엇인지 모른단 얘기다. 이쯤 되면 이태원 참사에 이어 ‘수습 참사’라 불러야 할 정도다.
다시 회한과 죄책감으로 우리 공동체가 눈물로 만들어낸 법의 정신을 본다. 책임을 회피하고, 애도를 조각냈으며, 저항하는 시민들을 ‘선동’이라 불렀던 정부에 대해 시민들은 너무 많은 질문을 갖고 있다. 우리 사회는 왜, 어쩌다 사람이 걷다가 죽을 수도 있는 곳이 됐는지, 무엇 때문에 터져나오는 울분을 막고 있는지에 대해 아직도 제대로 된 답변을 들은 적이 없다.
이제 국회의 시간이다. 시민들의 응어리진 목소리를 대리하라고 국회가 있다. 앞으로 물어야 할 책임이란 그리 간단치 않다. 형사적 책임은 전체 책임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아니, 오히려 공동체를 복원해야 할 질문이 한두 사람 형사처벌 받게 하는 것으로 끝내는 게 더 문제다. 그러니 수사와 함께 조사가 있어야 한다. 이 막대한 재난 상황에서 불법이 명확해서 기소될 사항만 도려내는 것이 아니라, 어느 외신 기자의 질문처럼 “한국 정부 책임의 시작과 끝은 어디였는지”의 전 과정을 묻고 그 답변 결과를 시민들이 낱낱이 알게 해야 한다. 남은 자들이 살아갈 공동체를 더 안전하게 만들겠다는 각오와 결심으로, 마지막 인사도 남기지 못한 채 이별하게 된 영혼들의 목소리까지 대리해서 묻고 또 물어야 할 시간이다.
이보라 국회 보좌관
*법 만드는 법: 국회 10년차 보좌관이 국민 생활에 밀착한 법을 만들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을 담습니다. 이보라씨는 국회여성정책연구모임 대표와 경찰청 사이버성폭력 수사자문단 위원을 맡고 있습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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