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 처음 직원이 들어오면 책상 위에 놓아주는 두 권의 책이 있다. <헌법>과 <국회법> 법전이다. “달달 외워야 국회 생활 잘할 수 있다”는 ‘라떼의 당부’는 덤이다.
국회법은 지당한 말씀들 천지여서, 외운다고 해도 하루짜리다. 그래서 이 당부는 선후 관계가 틀렸다. 달달 외워야 국회 생활을 잘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국회 생활을 잘하면 외우지 말라고 해도 통으로 외워진다. 국회법 각 조문은 국회와 행정부 사이, 여야 사이 권한 다툼의 결과이자 사전 또는 사후 조정장치다. 그 행간에 녹아 있는 다툼의 에너지와 역사를 읽어낼 수 있다면 ‘하산’해도 된다. 그렇게 국회법 법전은 귀퉁이가 닳은 채 진짜 내 것이 된다.
윤석열 정부와 더불어민주당 사이에 시행령을 둘러싼 전장이 다시 벌어졌다. 먼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법무부 내부에 인사정보관리단을 만들어 공직자 인사검증을 하려는데, 부처 간 기능 조정 사항을 정부조직법 개정이 아닌 시행령 개정으로 밀어붙였다. 이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찰 지휘 문제를 시행령 개정을 통한 ‘경찰국 신설’로 실행하겠다고 발표했다. 행안부의 전신인 내무부의 업무에서 ‘치안’이 삭제된 건 1990년 말 정부조직법 개정으로 이뤄졌는데 그때 법으로 없앤 업무를 시행령으로 되살리는 셈이다.
그러자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시행령이 법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될 경우 국회 상임위원회가 해당 행정기관에 시행령 수정·변경을 요청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긴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정부의 행정입법을 견제하려는 의도다. 이에 윤석열 대통령이 “위헌 소지가 많다”고 맞받으면서 시행령을 둘러싼 전장의 판이 커졌다.
“국회의 시행령 통제” “위헌적”이라는 구도는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기시감이 든다. 2015년 당시 박근혜 대통령과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 사이에서 벌어진 논쟁 구도였다. 유승민 원내대표가 정부의 시행령에 대해 국회가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안(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의 요구)에 합의해주었으나, 국회 본회의 의결까지 된 개정안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물거품이 됐다. 이 사건을 두고 한국 정치사에서 두고두고 회자할 “배신의 정치”라는 말이 나왔다. 국회와 행정부의 권한이 맞붙는 이 뜨거운 전장은 모두 국회법 제98조의2를 둘러싼 것이다. 이 법조항은 다음과 같다.
③ 상임위원회는 위원회 또는 상설소위원회를 정기적으로 개회하여 그 소관 중앙행정기관이 제출한 대통령령·총리령 및 부령(이하 이 조에서 “대통령령 등”이라 한다)의 법률 위반 여부 등을 검토하여야 한다.
⑦ 상임위원회는 제3항에 따른 검토 결과 부령이 법률의 취지 또는 내용에 합치되지 아니한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소관 중앙행정기관의 장에게 그 내용을 통보할 수 있다.
⑧ 제7항에 따라 검토 내용을 통보받은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통보받은 내용에 대한 처리 계획과 그 결과를 지체 없이 소관 상임위원회에 보고하여야 한다.
이 국회법에 따라 시행령 등의 행정입법이 실제 어떻게 이뤄지는지 살펴봤더니 다음과 같았다. 국회 법제실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2년 5월까지 총 274건의 행정입법이 이뤄졌다. 이 가운데 ‘위임 근거 없는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하는 경우’(15.3%·42건), ‘상위 법률의 취지·내용과 합치되지 않는 경우’(30.7%·84건)가 전체의 46%를 차지했다. ‘법령 용어나 체계 등 형식이 미비한 경우’(33.5%·92건)를 제외하면 사실상 대부분을 차지한다(54쪽 그래프 참조). 이는 행정부가 만드는 시행령이 국회가 행정기관에 위임한 권한을 넘어섰음을 의미한다. 국회가 법을 만드는 것 이상으로 이미 만들어진 법에 대한 하위 법령까지 감시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현행법 체계하에서는 시행령에 문제가 있어도 행정부가 스스로 수정하거나 변경해오지 않는다면 국회 차원에서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그래서 “법률의 취지 또는 내용에 합치되지 않다고 판단되는 경우 국회 상임위원회는 소관 행정기관의 장에게 수정·변경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고,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요청받은 사항을 처리하고 그 결과를 소관 상임위원회에 보고하여야 한다”는 조항을 담은 국회법 개정안이 나온 것이다. 이는 2015년 유승민 원내대표가 냈던 안과 거의 비슷하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여당일 때는 가만있더니 야당 되더니 국회법 절차를 까다롭게 만든다’는 언론 보도가 꽤 많이 나왔다. 이는 반만 맞는 이야기다. 원론적으로는 시행령이 입법권자의 입법 의도 아래 만들어진 것인지를 확인하고 견제하는 일은 여야 모두가 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야당의 몫이다. 여당은 굳이 국회법까지 개정해가면서 시행령이 만들어지는 절차를 확인하지 않더라도 행정부의 입법 의도를 확인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이 무수히 많기 때문이다. ‘당정협의’가 대표적이다.
언론에는 당정협의라고 하면 참석 인사들의 머리발언과 회의의 결론만 보도되기 때문에 이 회의에서 무슨 논의를 하는지 국민은 알기 어렵다. 실제 그 회의에 들어가보면 해당 국회 회기에서의 우선순위 처리 법안, 법률 제·개정에 따른 시행령 준비 현황, 국회 지적사항에 따른 조치 현황 등을 논의한다. 입법 취지와 다른 시행령이 만들어지려 한다면, 여당 입장에서는 이 회의에서 바로 의견을 개진하고 수정을 요구하면 된다.
당정협의가 아니어도 정부 부처 공무원은 해당 법률을 만든 의원실에 수시로 와서 관련 내용을 설명하고 만들어진 시행령이 의원실의 입법 취지에 부합하는지 확인한다. 그러니 여당은 굳이 시행령을 법 개정하면서까지 따로 감시하지 않아도 ‘정부가 알아서 한다’.
대통령에겐 5개의 절대반지가그럼 야당은? 국회에서 법안 심사하며 여러 반대를 뚫고 어렵게 통과시켜도 방망이 세 번 두들기자마자(방망이의 공식 명칭은 ‘의사봉’인데 국회의원과 보좌직원들은 법안 의결을 ‘방망이를 세 번 두드린다’고 표현한다) 다시 긴장이 시작된다. 법안 심사 과정에서 정부가 이견을 제출한 법은 시행령을 통해 어떻게든 이견을 반영하려 하기 때문이다.
2015년 ‘시행령 파동’을 일으킨 발단도 세월호 사건 특별조사위원회의에서 진상 규명을 맡은 핵심 보직에 검찰 서기관을 파견하도록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을 만든 것에서 비롯됐다. 독립적인 조사를 보장한다는 세월호 특별법 취지에 어긋난 처사이니 모법의 취지를 완전히 거스르는 시행령이었다. 야당이 반발하며 시행령 수정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했다. 국정 철학과 비전이 다른 정당은 이렇게 법과 시행령, 각자의 권한으로 다툰다. 시행령이 법에 우선할 수 없을 뿐이다.
“한국과 미국 모두 대통령제지만 완전히 다르다. 미국은 행정권력 하나이지만, 한국은 행정권, 인사권, 예산권, 감사권, 입법권까지 (대통령이) 5개의 절대반지를 가지고 있다.” 야당의 말이 아니다.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을 맡았던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의 말이다.
국회가 국민의 사랑을 받지 못하니 국회의원 수를 늘리는 것도, 보좌진을 충원하는 것도 국민적 동의를 받지 못해 십수 년째 그대로지만, 정부가 하는 행정행위는 나날이 복잡해지고 전문화되니 늘 ‘코끼리 뒷다리 만지는 듯한’ 느낌을 달고 산다. 전체 600조원 국가 예산에서 국회가 심사하는 예산은 10%가 될까 말까 한다. 정부가 감추고 둘러대면 날선 말이 오가는 공방만 벌이지 더 나아가지 못하는 게 국회 권능의 한계다.
그러니 입법권만이라도 올곧게 행사돼야 그나마 정부가 국회를 신경 쓰고 ‘입법 패싱’ 하지 않을 수 있다. 미국은 의회심사법(Congressional Review Act)이 있어서 행정 입법에 대한 의회의 통제 수단으로 기능한다. 상원과 하원의 동의를 전제로 하는 공동결의안(Joint Resolution)을 통해야 하는데, 1996년 시행된 이후 2015년까지 20년간 총 8건의 사례에 대하여 연방의회가 불승인 공동의결을 했다(정하명, ‘미국 트럼프 행정부에서의 연방의회에 의한 행정입법통제’, 2018). 영국은 우리나라 상임위원회와 같이 행정입법심사위원회(Joint Committee on Statutory Instruments)가 있어 이곳에서 행정입법의 승인·폐지 의결을 하며, 대륙법계인 독일에서도 행정입법 제정 전 의회가 입장을 표명하는 권한을 가지고(통지유보), 행정입법 제정 전 동의와 폐지의 권한을 두고 있으며(동의유보·폐지유보), 시행 전 내용을 변경할 수 있는 권한도 있다(변경유보)(김선택, ‘국회의 행정입법 위법성 등 검토기준 개선방안 연구’, 2019).
국회에서 시행령을 통제하는 법안을 만드는 것에 대통령이 위헌 가능성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국회의 권능을 인정하지 않고 삼권분립 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대통령을 제외하면 선출되지 않은 권력(행정부)이 국민의 투표권으로 선출된 권력(국회)을 압도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반하는 일이다. 시행령을 수정·변경하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안은 제출됐고 심사를 앞두고 있다. 이제 다시 국회의 시간이다.
이보라 국회 보좌관
*‘법 만드는 법’은 국회 10년차 보좌관인 이보라씨가 국민 생활에 밀착한 법을 만들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을 담습니다. 이보라씨는 국회여성정책연구모임 대표와 경찰청 사이버성폭력 수사자문단 위원을 맡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고통보다 항상 늦게 도착하는 법이 조금의 쓸모라도 더 가질 수 있도록 고민하는 게 업입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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