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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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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가족부가 셀프로 예산 줄인 이유는?

‘여성 인권과 평화 확산’ 사업비 전년 5억원에서 ‘0원’으로
국회에 ‘예산 증액’ 빗발치던 예전과 달라진 이유는?
등록 2022-11-28 01:26 수정 2022-12-09 11:03
2022년 11월17일 국회에서 열린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출석한 가운데 2023년도 여성가족부 예산안이 통과되고 있다. 연합뉴스

2022년 11월17일 국회에서 열린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출석한 가운데 2023년도 여성가족부 예산안이 통과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의 모든 예산에는 얼굴과 표정이 있다. 국회 보좌진은 내년도 정부 예산안이 국회로 넘어오면 일단 예산안에 담긴 얼굴과 표정부터 살핀다. 무표정하고 건조한 숫자가 가치와 방향과 철학이 담긴 얼굴로 달리 보이게 된다. 편성된 예산 중 증액 예산, 감액 예산, 신규 편성 예산을 살펴보며 그것으로 정부의 철학과 방향성을 읽는다.

예산철마다 ‘5분만’ 대기하던 공무원들

“내년에 이 사업 꼭 해야 하는데 반영이 안 됐어요. 이 예산 좀 부탁드립니다.”

“기획재정부 단계에서 이 예산이 잘렸어요. 엄청 노력했는데 안 됐네요.”

매해 10~11월 예산 정국이 되면 국회 보좌진이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으로부터 요청받는 내용이다. 적게는 여남은 건에서 많게는 수십 건까지 예산 증액 요청 전화를 받는다. 의원실이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 소속이 아니어도 그런 정도인데, 예결위 계수조정소위원회 소속이 되면 밀려오는 예산 증액 요청에 진짜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야 할 정도다.

의원회관 로비에는 자료를 잔뜩 들고 출입증 교환을 위해 기다리는 공무원으로 가득하고, 의원실 문 앞에는 서너 명씩 짝지어 오는 정부 부처 공무원이 밤낮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내내 대기해 있다. 지방자치단체 예산 담당 공무원은 아예 국회 근처에 숙소를 잡고 이른바 ‘예산 요청 의원실’ 목록을 짜서 의원실 보좌진에게 5분이든 10분이든 시간을 내달라는 경우도 많다. 해마다 예산철에 겪는 국회의 풍경이다.

이게 다 예산 때문이다. 매해 5월 말부터 각 부처는 기획재정부에 예산요구서를 제출해 그것으로 6~8월까지 기재부가 예산안을 편성한다. 이때 각 부처 공무원들은 기재부 문턱이 닳도록 드나든다. 기재부 단계에서 제대로 반영돼야 부처 예산안이 전체 정부안으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탈락되거나 감액된 예산은 국회의 몫이 된다. 8월 말 국무회의 심의와 대통령 승인을 거쳐 예산안이 확정되면, 9월 초 국회에 예산안이 제출되고 그 예산안은 드디어 ‘2023년 예산안’이라는 이름의 의안으로 국회에 제출된다.

국회의 예산 심사 단계는 또 어떨까. 국회는 국민 삶의 편의를 위해 꼭 필요한 사업임에도 기재부의 반대로 정부안에 누락됐거나 감액된 예산을 심의해서 ‘2023년 예산안’의 수정안을 만든다.(물론 그것도 전체 예산의 1% 남짓에 불과해서 국회 예산 심의권에 한계가 많다는 지적도 받는다.) 그것도 순탄치 않다. 법적으로 각 상임위원회에서 예산안의 예비심사를 하고, 그 결과를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올려 다시 한번 심사한다. 예결위 계수조정소위는 각 위원회에서 올라온 감액 예산부터 심사하고 그 감액만큼 증액을 의결하는데 그 가운데서 들어가고 빠지는 예산 하나에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이 수정안에 국회의원이 찬반 표결을 한다. 예산안도 법안과 마찬가지로 의안 형태로 본회의 표결에 부쳐진다.

예산은 국정운영의 가늠자

국회의 예산 처리 과정을 이렇게 자세히 언급하는 이유는, 정부 사업 예산 한 건에 얼마나 많은 공력이 들어가는지를 말하기 위함이다. 이 공력까지 포함해서 정부 예산의 얼굴과 표정이 된다. 특히 2023년 예산안은 윤석열 정부의 철학을 예산에 반영하는 첫해이기에, 이 예산의 향방이 향후 국정운영의 가늠자가 된다. 모든 부처의 기본 태도는 사업 예산 확대다. 예산이 곧 권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폐지하려는 부처의 예산안은 어떻게 짜이는가? 2023년 여성가족부의 예산안이 중요한 건 이 때문이다.

돈 쓰는 곳에 마음이 있다. 여성가족부는 ‘2023년 예산 및 기금운용 계획’ 정부안을 2022년 본예산(1조4650억원) 대비 5.8% 증가한 1조5505억원으로 편성했다고 밝혔다. △한부모가족, 다문화가족, 아이돌봄서비스 등 맞춤형 가족서비스 확대 △디지털성범죄, 가정폭력, 권력형 성범죄, 교제폭력, 스토킹 등 5대 폭력 피해자 지원 강화 △위기청소년, 여성청소년 등 사회적 약자 지원 강화 등 국정과제 뒷받침에 중점을 두고 편성했다고 한다.(2022년 8월30일 여성가족부 보도자료)

일단 여성가족부 2023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 계획안에는 신규 사업이 편성되지 않았다. 신규 사업은 기본적으로 재정당국이 더욱 꼼꼼히 심사하기 때문에 부처의 사업담당자가 사업 설명과 예산 편성 근거를 들고 수시로 기재부를 드나들어야 정부안에 반영된다. 여성가족부는 2022년에 그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2021년엔 1인가구 사회관계망 형성 지원 신규 도입, 다문화가족 자녀 취학 준비 지원 같은 예산을 신규로 편성했던 것과 비교하면 달라진 정부의 분위기를 이것 하나로도 읽을 수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예산의 세부 내용이다. 2022년 대비 2023년 예산은 물가상승률, 사업 규모 확대 같은 요인으로 큰 노력 없이 숨만 쉬어도 늘어야 하는 게 맞는다. 그런데 여성가족부의 이번 예산에서 주요 사업들이 전년 대비 줄어든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런 예산서는 본 적이 없었다.

“양성평등정책 조정·협의 사업 예산은 (의원들이) 전년도 수준으로 증액을 하려고 하는데 예산 편성할 당시에 저희가 재정사업 자율평가를 실시해서 약간 미흡한 사업의 구조조정을 한 부분의 일환입니다. 그래서 이 부분은 원안 유지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미흡 평가를 받았다고 해서 단순히 그냥 기재부 의견을 바로 받아들이는 것보다는, 사실 여러 가지 보완하거나 또 상황 변화가 있지 않습니까? (중략) 그런 측면에서는 부처가 애초에 이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부분만큼 (증액하고) 예결위에 넘겨서 한번 논의를 추가로 해보는 것이 저는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2022년 11월16일 여성가족위원회 예산결산심사소위원회 회의록 중에서

누가 국회의원이고, 누가 부처 공무원인지?

이름을 가리고 보면 앞의 것이 의원의 발언 같고 뒤의 것이 정부 의견 같은데, 실은 반대다. 여가위 예산결산소위에서 이렇게 정부와 국회의원이 뒤바뀐 것 같은 상황을 내내 놀라운 심정으로 지켜봤다. 여야 할 것 없이 국회의원이 증액한다고 했는데, 여가부는 한사코 거절(?)했다. 정말 이런 상황은 처음 봤다. 의원들의 증액 요구 질의에 대한 여가부 공무원들의 답변을 들으며 같이 배석한 보좌진은 서로 놀란 눈으로 신호를 보냈다. ‘이거 무슨 일? 내가 맞게 들은 거야?’

정부의 사유를 들어보니 자체적으로 감액한 것은 ‘재정사업 자율평가’ 결과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재정사업 자율평가란 사업 수행 부처가 소관 재정사업을 자율적으로 평가하고 평가 결과를 재정 운용에 활용하는 제도인데, 자체 평가 뒤 사업별로 ‘우수’ ‘보통’ ‘미흡’의 등급을 매긴다. ‘미흡’ 등급을 받은 사업은 향후 재정운영 계획에 반영해 조처하는데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사업 성과가 좋지 않은 원인을 파악해 개선하도록 ‘성과관리계획’을 짜거나, 예산을 줄여 사업을 축소하는 ‘지출구조조정계획’을 짜는 것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이미 짠 예산을 감액하는 것을 가장 경계한다. 그래서 대체로 성과관리계획을 짜는 방식으로 자율평가 결과에 대한 후속 조치를 만든다. 나라살림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부처들이 ‘미흡’ 등급을 받은 사업 10개 가운데 8~9개 사업의 예산은 성과관리계획을 짜는 방식으로 그대로 두고 예산 감액은 1~2개 사업만 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할 정도다.

그만큼 어떻게든 예산을 늘려보려는 것이 부처의 속성인데 여가부는 선제적으로(!) 정부 예산 절감에 앞장섰다. 그렇게 기계적으로 잘려나간 예산에는 △성평등정책 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의제 개발 예산 △정책 및 예산 과정에 성인지적 관점을 통합하는 성인지예산 운영 △온라인상 악플, 혐오표현을 넘어서기 위한 양성평등 인식 개선 예산이 있다. 무엇보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의 예산은 ‘여성 인권과 평화 국내외 확산’이라는 제목만 보면 사업비를 절감하는 예산인 듯 보이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국제사회에 알리려는 국제회의 예산이고, 여가부는 이것을 셀프로 전액 줄였다.(표 참조)

예산 지켜달라는 요청이 오길

무엇을 하려는 상대와는 협상이 용이하다. 상대가 원하는 것과 내가 원하는 것이 명확하니, 이를 바꿈으로써 타협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무엇을 안 하려는 상대와는 어떻게 협상해야 하는가. 가장 어려운 국면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위험수위를 넘어서는 이 시대에 해야 할 일이 넘쳐남에 따라, 우리는 원하는 것이 많다. 원하는 것이 많을수록 아무것도 안 하려는 상대와 어렵고 기울어진 협상을 한다.

일단, 상임위 단계에서는 제발 일 좀 하라고 전년 대비 감액했던 것 이상으로 증액해서 의결했다(여가위 653억940만원 증액). 이제 남은 산은 예결위. 5분, 10분 아닌 5시간, 10시간도 낼 수 있으니 부처에서 부디 이 예산들 지켜달라는 요청이 오면 좋겠다. 그러면 기꺼운 마음으로 도울 생각이다. 아무것도 안 하려는 무표정의 예산서에 동력을 좀 불어넣었으니 부디 이것이 2023년도 부처 방향에 기준점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일을 하려는 마음이다.

이보라 국회 보좌관

*법 만드는 법: 국회 10년차 보좌관이 국민 생활에 밀착한 법을 만들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을 담습니다. 이보라씨는 국회여성정책연구모임 대표와 경찰청 사이버성폭력 수사자문단 위원을 맡고 있습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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