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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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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해양 파업의 대가가 470억원

파업 뒤 ‘경영권’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자에게 천문학적 액수 청구하는 기업
국회에 계류된 노란봉투법 빨리 입법돼야
등록 2022-08-27 06:04 수정 2022-08-28 00:16
한진중공업 최강서 열사의 추모제가 2012년 12월26일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서 열렸다. 한겨레 이종근 기자

한진중공업 최강서 열사의 추모제가 2012년 12월26일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서 열렸다. 한겨레 이종근 기자

“시신을 볼모로 싸운다고요? 이틀마다 신랑의 관 뚜껑을 열고 드라이아이스를 채워 넣을 때마다 제 가슴이 찢어집니다. 하루하루가 지날 때마다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의 속이 타겠습니까, 아니면 유족의 속이 타겠습니까.”(<매일노동뉴스> 2013년 2월19일치, ‘시신을 볼모로? 이틀마다 드라이아이스 바꾸는 심정 아나’)

시간이 아무리 많이 흘러도 울음을 참을 수 없는 장면이 있다. 죽어서 국회에 도착한 사건이 내게 그렇다. 정확히 10년 전, “태어나 듣지도 보지도 못한 돈 158억. 손해배상소송 철회하라”라는 말을 남기고 간 한진중공업지회 1978년생 최강서님. 그의 주검은 장례식장으로 가지 못하고 영도조선소 노상에 놓였다. 한겨울이었지만 부산은 영상 6℃였다. 주검이 상할 것에 대비해 수시로 유족과 동료 조합원들이 관 뚜껑을 열고 드라이아이스를 채워 넣었다.

가상의 권리 ‘경영권’ 앞에서 무너지는 헌법적 권한

나는 아직도 가끔 관 뚜껑을 열어 최강서님의 얼굴을 직접 대면하는 꿈을 꾼다. 마치 정말 봤던 것처럼 생생한 그 얼굴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 깬다. 그때 우리 의원실에서 한 일은 경찰에는 노동자 신변 안전 요구를, 국가인권위원회에는 주검이 훼손되지 않도록 농성장에 드라이아이스를 반입할 수 있도록 긴급구제 요청을 하는 것이었다. 그것밖에 할 수 없음에 절망스러웠고 그때만큼 따뜻한 겨울이 원망스러웠던 적이 없다.

다시 10년 뒤인 2022년, 이번은 아스팔트가 절절 끓는 한여름. 0.3평에 몸을 가둔 그의 날 선 눈빛에 마음이 베였다. 유최안 금속노조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이 신문 1면에 일제히 실렸던 그날은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의 51일에 걸친 파업은 가까스로 종결됐지만 이제부터 진짜 문제가 남았다. 바로 10년 전 고 최강서님이 외치고 지금은 유최안 부지회장이 끝까지 해결을 요구했던 손해배상·가압류 문제다. 내가 경험한 건 최근 10년뿐이지만 쟁의행위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이 법원에서 인정된 것은 1990년이다. 이후 노동자의 쟁의행위에 대한 탄압이 무려 30년간 이어졌지만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 어느 곳에서도 해법을 못 낸 사이에 노동자들은 이렇게 저마다의 파업을 위해 광장을 쓴 대가로 터무니없는 값(광장값)을 치르다 죽어가고 있다.

설명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권한이 강해지는 언어가 있다. 대통령에게는 ‘통치행위’, 국회에서는 ‘정무적 판단’, 검경에는 ‘수사 중 사안’, 기업에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라는 말이 그것이다. 주장하는 자가 설명의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절대반지, 권력기관이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는 오래된 레토릭이다.

지난 30년간 노동자들의 헌법적 권한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라는 말에 번번이 무너졌다. 심지어 ‘경영권’이라는 말은 국내 법률체계 어디에도 없는 가상의 권리다.(시민단체 ‘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이하 ‘손잡고’)·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 2022년 6월30일 국회 토론회 ‘헌법, 노조법과 손해배상가압류’ 자료집) 그럼에도 기업이 주장하면 법원이 대부분 그대로 받아 노동자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 역사를 반복해왔다. 2020년 현재 노동자에 대한 손해배상소송은 총 24개 사업장에서 59건이 진행 중이거나 완료됐고, 손해배상 청구금액(누적치)은 총 658억5028만7618원이다(앞 문서). 민주공화국의 시민이 헌법에 주어진 노동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행사한 대가는 이렇게 참혹하다.

2022년 7월19일 가로, 세로, 높이 1m 구조물 안에 자신을 가두고 농성 중인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 하청노동자들의 임금 인상을 요구하던 그는 대우조선해양으로부터 47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서를 받았다. 공동취재사진

2022년 7월19일 가로, 세로, 높이 1m 구조물 안에 자신을 가두고 농성 중인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 하청노동자들의 임금 인상을 요구하던 그는 대우조선해양으로부터 47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서를 받았다. 공동취재사진

‘해볼 테면 해보라지’, 전략적 봉쇄소송의 메시지

권위주의 정권하에선 공권력을 통해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를 체포·구속하는 방식으로 진압했지만, 이제는 민사상 손해배상을 조합원 개인에게 청구하는 방식으로 압박한다. 월급, 자동차, 부동산 등을 가압류하고 그것도 모자라 신원보증인에게 연대책임을 물린다. 노사 간 비대칭적인 권력관계에서 협상력을 갖추려면 노동자들이 모여야만 하고 그런 단결권 보장이 그나마 노사 양쪽이 테이블에 마주 보고 앉을 수 있는 교섭력이 된다.

그런데 이렇게 손배소를 통해 조합원 각각의 개인들에게 경제적 책임을 지우는 방식은 단결권을 갈라치기 하는 전형적인 분할통치기술(Divide and Rule)이다. 승소만이 목적이 아니다. 사용자는 전략적으로 노동자를 위축시키는 도구로 손배소를 활용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를 전략적 봉쇄소송(SLAPP·Strategic Lawsuit Against Public Participation)이라 부른다. 이번에 대우조선해양도 연봉 3400만원인 노동자들에게 파업에 따른 손실액으로 470억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제기한다고 했다. 노동자의 지급능력을 넘어서는 천문학적인 액수를 일단 ‘경영상의 손실’로 청구하고 나면, 사 쪽은 사용자에게 유리한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거나 알아서 노조가 와해되기를 기다리거나 둘 중 하나만 하면 된다.

실제로 대법원에서는 쟁의행위가 정당성을 가지려면 ①쟁의행위 ‘주체’가 단체교섭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자이어야 하고 ②‘목적’이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한 노사 간의 자치적 교섭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어야 하며 ③‘시기’는 사용자가 근로자의 근로조건 개선에 관한 구체적인 요구에 대하여 단체교섭을 거부하거나 단체교섭의 자리에서 그러한 요구를 거부하는 회답을 했을 때 시작하되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조합원의 찬성 결정 등 법령으로 정하는 절차를 밟아야 하고 ④‘수단과 방법’이 사용자의 재산권과 조화를 이루어야 함은 물론 폭력의 행사에 해당되지 않아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대법원 2001년 10월25일 선고, 사건번호 2001구24388).

‘(파업) 해볼 테면 해보라지’ 말고는 다른 설명이 불가능하다. 상황이 이러하니 손해배상·가압류 기간 중 조합원은 급감했고(조합원 50% 감소한 노조 74.1%, 50% 미만 감소한 노조 12.4%, 박주영 등 ‘갚을 수 없는 돈, 떠나는 동료, 아픈 몸: 2018 손해배상·가압류 노동자 실태조사’, <보건사회연구> 40(3), 2020년), 희망퇴직이나 노조 탈퇴를 조건으로 사 쪽이 조건부 소 취하를 하기도 했다(시민단체 ‘손잡고’와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손배가압류 소송기록 아카이브’ 사업을 통해 2021년 4월~2022년 5월 각종 소송기록을 수집한 결과).

노동권 제한, 유신독재의 잔재가 현재까지

‘기업’의 구성은 경영자의 경영행위만이 아니라 노동자의 노동이 포함되는 개념인데, 왜 헌법상 아무런 권한 없는 경영권은 중시하면서 국민의 일할 권리와 노동조건을 향상하기 위한 노동3권의 구현은 종속적인 개념으로 취급하고 마치 노동자의 노무 제공 거부가 ‘사업’을 방해하는 것으로 여기는 것일까. 노동조합이 파업에 돌입하는 과정에서 사 쪽이 교섭에 성실하게 임하지 않았다면, 경영진은 회사에 재산상의 손해를 가한 업무방해나 배임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닐까. 그 이유는 노동자의 노동조합 할 권리의 근거가 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이 기본원칙부터 ‘금지’로 점철되어 있기 때문이다.

노조법 제37조(쟁의행위의 기본원칙)

① 쟁의행위는 그 목적·방법 및 절차에 있어서 법령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되어서는 아니 된다.

② 조합원은 노동조합에 의하여 주도되지 아니한 쟁의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③ 노동조합은 사용자의 점유를 배제하여 조업을 방해하는 형태로 쟁의행위를 해서는 아니 된다.

노조법은 100여 개 조항 가운데 40여 개 항목의 형벌 조항과 과태료 부과 조항을 두고 있으며 쟁의행위와 관련해서는 최고 5년 또는 3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한다. 1953년 제정된 최초의 노조법과 노동쟁의조정법조차 벌칙 조항은 10개가 조금 넘고 벌칙 내용도 최고 6개월 이하 징역이나 구류, 과료, 벌금형이 전부였다. 현행 노조법의 골간은 1961년 5·16 쿠데타 이후 만들어진 것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지금의 노동법이 노동자를 위한 법이기보다는 치안경찰법적인 성격(조경배, 2012년)을 가진 이유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노동조합 활동=빨갱이’라는 인식에서 한 뼘도 나아가지 못했다.

독일·영국·프랑스·일본은 불법파업에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데, 독일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사용자가 노동조합이나 근로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일이 거의 없으며, 영국은 노동조합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할 때 노동조합 규모에 따른 상한액을 별도로 두고 있다. 손해배상 청구가 없는 이유는 소송에서의 논란과 불확실성, 분쟁의 결과를 뒤돌아보는 것보다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낫다는 당사자의 필요 때문이라 한다.(조경배, ‘2022년 조선업의 위기 토론회 자료집’에서 재인용) 앞으로 나아간다. 여러 번 곱씹게 되는 말이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손해배상 청구 없는 영국

손해배상·가압류를 제한하고 신원보증인의 책임을 면제하는 등의 내용이 담긴 ‘노란봉투법’은 19대·20대·21대 국회에서 계속 발의됐지만, 19대 국회 때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위원회에서 법안 심사를 한 차례 한 것이 전부다.

국회발 검경수사권 조정 국면과 정부발 법무부(인사정보관리단)와 행정안전부(경찰국) 시행령 제정 국면에서 국민이 확인한 단 한 가지는, 급한 법과 제도는 국회와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빨리 만들어서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국민은 입법부의 ‘영끌’과 행정부의 ‘영끌’을 봤다. 21대 국회엔 ‘노란봉투법’ 4건(강병원·강은미·임종성·이수진 의원 안)이 계류돼 있다. 이제 다시 국회의 시간이다. 노동자가 ‘광장값’을 목숨으로 치르는 현실을 막아낼 유일한 시간이다.

이보라 국회 보좌관

*이보라의 법 만드는 법: 국회 10년차 보좌관인 이보라씨가 국민 생활에 밀착한 법을 만들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을 담습니다. 이보라씨는 국회여성정책연구모임 대표와 경찰청 사이버성폭력 수사자문단 위원을 맡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고통보다 항상 늦게 도착하는 법이 조금의 쓸모라도 더 가질 수 있도록 고민하는 게 업입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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