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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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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의 그 ‘공정성’은 상위 20%의 상위 1% 비판

가난한 청년과 지방대 청년에게 청년의 자리는 있었을까,
‘청년기본법’ 제정 2년 이제 K-불평등 대안을 경쟁할 때
등록 2022-07-28 09:39 수정 2022-07-29 12:07
청년기본법을 만들기 위해 구석구석 청년들을 찾아다니면서 장시간 얘기를 들었다. 경쟁 않는 지방대생, 경쟁 못하는 빈곤청년 등은 찾아가지 않으면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이들이다. 김진수 선임기자

청년기본법을 만들기 위해 구석구석 청년들을 찾아다니면서 장시간 얘기를 들었다. 경쟁 않는 지방대생, 경쟁 못하는 빈곤청년 등은 찾아가지 않으면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이들이다. 김진수 선임기자

도배사들이 우리 집 도배하는 것을 내내 지켜본 적이 있다. 전문가들의 반나절 정도 수고에 완전히 새집 같아졌다. 도배 하나로 일상에 활력이 생겼다. 눈으로 확인되는 구체적 기쁨이었다. 행위 이전과 이후가 확연히 달라진 세계, 이를 통해 상대에게 ‘구체적인’ 행복감을 주는 일, 도배사들을 보며 내 직업으로도 그런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만든 법이 도배처럼 상대에게 구체적 기쁨을 주는 일이 아예 없지는 않지만 드문 건 사실이다. 내게도 그런 법이 꽤 있는데 요즘의 청년정책, 청년정치를 보면 청년들에게 구체적 기쁨은 고사하고 희망고문만 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는 사회적 약자가 ‘기본법’의 이름으로 당사자의 권리와 국가의 책무를 새로 쓰며 성장했다. 노동자(‘근로기준법’ 1953년 제정), 청소년(‘청소년기본법’ 1991년 제정), 여성(‘여성발전기본법’ 1995년 제정), 난민(‘난민법’ 2012년 제정)에 이어 2020년 ‘청년기본법’이 제정됐다.

법, 고통과 희생이 벌어진 뒤에야 고민하는

일정한 연령대의 청년은 우리 사회에 산다는 것만으로도 사회적 약자성이 생긴다는 의미다. 이는 2000년대 후반 장기간의 경기침체와 산업구조 변화로 인한 ‘고용 없는 성장’이 ‘뉴노멀’이 되면서 청년들의 노동시장 진입이 지연되고, 취업했더라도 비정규직·시간제 노동으로 노동환경 자체가 불안정해진 탓이다.

이러한 글로벌 경제의 여파와 국내 정치경제적 변동 속에 제19대 국회에서 헌정사상 최초의 청년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탄생했다(공천 방식은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에서 따온 일회적 이벤트로 진행됐고, 이는 향후 4년 ‘청년 대리정치’의 예정된 험로 징후였다). 나는 청년 비례대표 국회의원실에서 일하며, 말은 무성하나 실체는 없는 것 같은 존재인 청년을 두고 ‘청년은 누구인가’라는 물음에서 시작해야 했다. 그 물음에 대한 답변이 우리 의원실의 존립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제19대 국회 임기 내내 발이 땅에 닿지 않는 기분이었다. 열심히 하는 의정활동 덕에 의원의 이름은 뉴스에 자주 오르내렸지만 구체적 청년들로부터 온기나 원망 섞인 구체적 평가를 듣고 싶었다. 청년 비례대표는 세대 대표성이라기엔 나이는 변하는 것이니 임의적이고 한시적일 수밖에 없었고, 세대 동일성으로 묶기엔 청년 내부의 젠더, 계층 간 차이를 외면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청년은 노동조합이나 장애인단체처럼 강한 조직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어떤 상대와 대화를 나눠야 하는지도 불분명했다. 정책을 세울 때의 기본 통로인 직능대표, 노조대표 등의 대표자들과 면담하고 법안을 만드는 이른바 국회의 기본 문법이 안 통한다는 뜻이다. ‘대표 없는 자들을 대리하는’ 모순과 역설에 직면하는 것부터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었다.

다양한 처지의 청년을 직접 찾아가

그때 한 일이 구석구석 청년들을 찾아다니면서 장시간 얘기를 듣기였다. 얘기를 들을 때의 원칙은 이랬다. ①성별, 지역, 학력, 나이, 종사상 지위 등을 다르게 해서 최대한 다양한 상황의 청년을 만난다. ②국회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직접 찾아간다. ③만남은 최소 두세 시간, 한 번 이상 만나서 생애사적 얘기를 듣는다. 보통 대표 있는 자들을 만나는 것은 30분~1시간 면담이 주를 이루고 장소도 당연히 국회다. 그렇게 하면 보통 올 사람들만 온다. 그런데 국회가 뭐에 쓰는 물건인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찾아가서, 다양한 처지의 상황을, 장시간에 걸쳐 듣는 것만이 능사라 생각했다.

이러한 청년들과의 만남을 기초로 ‘워킹푸어 청년들의 노동경험과 정책대안’ 보고서를 썼고, 이를 토대로 ‘청년기본법’을 만들었다(이 기록은 <한겨레21> 제1075호 2015년 8월24일치에 자세히 실렸다. 청년, 빈곤의 미로에 갇히다 -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40139.html). 법을 만든 방향은 단 두 가지였다. 첫째, 최소한 자기 탓을 하지 않고 권리의 언어로 사회에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둘째, 취업 시기만이 아니라 청년들의 생애주기마다 기댈 언덕을 만드는 것. 보고서 제목처럼 나는 청년 중에서도 워킹푸어 청년에게 주목하고 싶었으나, 당시 청년 관련 법은 ‘청년고용촉진특별법’밖에 없었다. 청년에 대한 국가의 의무를 직업능력개발훈련을 통한 고용촉진으로만 본 것이다. 청년은 취업할 때만 사회적 존재로서의 의미를 가진다니, ‘니트(NEET·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청년’(학업도 일도 훈련도 받지 않는 청년으로, 그 수는 2020년 기준 약 172만 명으로 실로 어마어마하다)은 청년 축에도 못 끼는 것이었다.

니트 청년의 존재를 지우고 노동시장의 구조적 모순이 치유될 리 없다는 생각에 일단 법과 정책의 목표를 니트 청년을 포함한 전체 청년을 대상으로 하고, 청년정책을 <슈퍼스타K>와 같은 임의성·단발성 접근을 넘어설 수 있도록 ‘국가 시책’으로 만드는 데 집중했다.

여전히 취약한 청년에게 가닿지 못하는

‘청년기본법’ 초안이 만들어진 이후 10여 년이 지났다. 그간 청년 관련 법과 정책에 대한 평가는 어떠했을까? 청년정책이 여전히 일자리와 취업 지원 정책에 집중돼 있고, 그나마 취업프로그램도 사회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내용이며, 취약계층 청년에 대한 정책적 고려가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국가인권위원회·2019, 전경숙·2021). 만들어진 법이 어떤 청년들에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지원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다는 얘기다. 법 초안을 만들고 국회가 제19대에서 제20대로 넘어가면서 나 역시 법 이후의 상황을 돌보지 못한 탓도 크다. 기본법은 그야말로 기본이 되는 법률이기 때문에 구체적 내용을 담지 못한다. 그 구체성의 빈 공간은 정치가 메워야 한다. 니트 청년을 포함한 모든 청년을 포괄하는 기본법을 만들었지만 결국 이 법이 가장 필요했을 취약한 청년들에게 가닿지는 못했다.

일을 안 하거나 못하는 청년뿐만이 아니라, 일해도 빈곤한 청년들이 있다. 워킹푸어 청년이다. 청년층의 경제적 곤란은 일시적이고 잠정적인 것으로 간주해, 빈곤 취약계층으로 대표되는 노인과 장애인보다 빈곤 연구와 정책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러한 기저에는 ‘젊다는 게 자산인데 건강한 몸으로 벌면 되지!’가 깔려 있었다. 그런데 청년 단독가구의 빈곤율은 2006년 15.2%에서 2016년 19.9%로 증가했고, 19~25살의 상대적 빈곤율은 2006년 8.5%에서 2014년 9.0%, 2016년 10.2%로 점점 높아지고 있다(김문길 외·2017). 청년빈곤의 엄연한 현실이다. 이들이 우리 사회에서 보이지 않았던 것은 정치와 언론 등 봐야 할 사람들이 보지 않았던 탓이다.

지방대 청년은 어떨까? 2010년 이후 청년에 대한 보도가 쏟아졌지만 지방대생 이야기는 단순하게 소비되곤 했다. 인구감소와 서울 소재 대학 집중으로 정원 미달, 폐교 위기에 처한 지방대, 취업할 곳이 없는 지방대생들 같은 헤드라인이 간간이 눈에 띄었을 뿐이다. 그런데 10년 이상 지방대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며 지방대 학생을 관찰·분석한 내용을 담은 책 <복학왕의 사회학: 지방 청년들의 우짖는 소리>를 쓴 최종렬 교수는 지방대생은 경쟁에 뛰어들어봐야 실패할 것이 뻔하다고 생각해 시도조차 하지 않고, 설사 경쟁에 뛰어든다 해도 느슨하게 하며, 경쟁 과정과 결과에 대해 서로 거의 말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자신을 겸연쩍어하는 모습을 ‘성찰적 겸연쩍음’이라는 말로 지방대 청년들의 심상을 분석하고 있다(최종렬·2018). 그건 승자독식의 신자유주의 경쟁체제 아래에서 ‘단군 이래 최대 스펙’을 갖추며 자기계발에 몰두하는 경제인간으로서 청년상이 철저하게 서울·수도권 중심의 논의였음을 의미한다.

세대론 대신 경제민주주의 시스템을 경쟁하자

경쟁 않는 지방대생과 경쟁 못하는 빈곤청년은(두 집단은 겹쳐지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정치 영역에서 한 번도 호명되지 않았다. ‘인국공 사태’(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문제), 조국 사태 등 청년들이 강하게 제기한 ‘공정성’의 내용은 기실 상위 20% 청년이 상위 1%의 특혜를 비판하는 전선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게 마치 전부이며 여야 할 것 없이 시대정신인 양 ‘공정사회’를 외친 건, ①다양한 정체성·위치에 놓인 청년이 아니고, ②찾지 않고 국회로 불러들였으며, ③단편적인 얘기만 들어서였을 것이다. 그 결과는 청년정치를 참칭하며 과두정 시스템을 존속시킨 것, 그사이 청년 다수의 삶이 더 나빠진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80% 청년을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채로 한 표 달라고 한 정치가 면구할 따름이다.

더불어민주당에선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 전후로 ‘586세대(50대로 1980년대 대학을 다닌 1960년대생) 용퇴론’을 제기하는 흐름이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2022년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586세대 용퇴론은 ‘97세대’(1990년대 대학을 다닌 1970년대생) 등장에 강력한 명분으로 기능한다는 사실이다. ‘586세대 vs 청년’ 구도를 형성하니 비판의 과실이 엉뚱한 대상에게로 간 셈이다. 세대론으로 비판하는 순간 청년을 뭉뚱그려 단일한 집단처럼 인식하는 바람에 청년 내부의 이 무수한 불평등이 또 가려지게 생겼다.

토마 피케티 교수 등이 참여한 ‘세계 불평등 보고서 2022’에서 한국의 상위 1%는 소득의 14.7%를, 상위 10%는 46.5%를 차지하며, 상위 10%의 소득이 하위 50% 소득의 14배에 달한다고 한다. 이는 프랑스(7배), 이탈리아(8배), 영국(9배), 독일(10배)보다 큰 격차다. 가히 ‘케이(K)-불평등’의 시대다. 이런 시대에 586세대 논쟁, 97세대 논쟁은 무용할 뿐만 아니라 불평등을 치유할 전망을 가로막는다는 점에서 유해하다. 세대론 대신 경제민주주의 시스템을 경쟁하자. 구체적인 청년에게 구체적인 기쁨까지는 주지 못할망정 구체적인 안전망을 만드는 경쟁을 하자.

이보라 국회 보좌관

*법 만드는 법: 국회 10년차 보좌관인 이보라씨가 국민 생활에 밀착한 법을 만들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을 담습니다. 이보라씨는 국회여성정책연구모임 대표와 경찰청 사이버성폭력 수사자문단 위원을 맡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고통보다 항상 늦게 도착하는 법이 조금의 쓸모라도 더 가질 수 있도록 고민하는 게 업입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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