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청법’ 제4조(검사의 직무) 2항 검사는 그 직무를 수행할 때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적법절차를 준수하며,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고 주어진 권한을 남용하여서는 아니 된다.
‘경찰관직무집행법’ 제1조(목적) 2항 이 법에 규정된 경찰관의 직권은 그 직무 수행에 필요한 최소한도에서 행사되어야 하며 남용되어서는 아니 된다.
검찰과 경찰 각각의 직무 범위를 규정한 이 두 핵심적인 법률에서 각 기관 모두 ‘권한을 남용해서는 아니 됨’을 규정한다. 검찰과 경찰 외 어떤 기관이 자기 권한 제한을 제1원칙으로 하고 있을까. 검찰과 경찰은 요즘 공직사회에서 장려하는 ‘적극 행정’을 하면 안 되는 유일한 기관이다. 그만큼 공권력은 특수한 권력이고 정도를 넘어 행사되거나 남용되면 국민에게 미치는 피해가 매우 치명적이고 심각하기 때문에 “공권력의 행사는 어떤 경우에도 냉정하고 침착하게 행사되도록 통제되어야 하고, 공권력의 책임은 일반 국민의 책임과는 달리 특별히 무겁게 다루어져야 한다”(2005년 12월27일 시위 농민 사망 관련 노무현 대통령 대국민 사과문).
우리 사회는 수십 년에 걸친 민주화운동의 결과로 일정 수준 이상의 민주주의가 정착됐다지만 공권력을 독점한 권력기관의 경우 여전히 권위주의 시대의 관행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더욱 강한 견제와 감시를 해야 한다. 더구나 우리는 떼쓰고 우는 아이에게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계속 울면 순사더러 잡아가라고 한다”고 했던 집단기억을 가진 사회 아닌가. 국가폭력으로 인한 비극적인 근현대사를 일일이 짚지 않아도 공권력의 폭력은 식민지 유산과 결합돼 시민을 보호하는 게 아니라 통치자를 보호하는, 내전(Civil War)과 같은 상황을 만들었다는 건 우리 모두가 아프게 아는 사실이다. 그러니 우리가 추격국가에서 선도국가로 가고 있다지만, 우리 사회가 식민지 유산을 진짜 벗어버리려면 국가폭력의 내부 통제장치를 얼마큼 시민 중심으로 만드는가에 달려 있다.
2012년 겨울, 의원과 함께 우리 보좌진은 주말마다 덕수궁 대한문 앞으로 출근했다. 그곳에는 쌍용자동차의 불법적 정리해고에 따른 희생자 24명의 분향소가 설치돼 있었고 많은 시민이 추모하기 위해 자리를 메웠다. 대한문 앞은 어느새 잘리고, 다치고, 밀려나간 사람들의 터가 됐다. 우리 의원실은 환경노동위원회 소속이어서 해고자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제일 중요했는데, 그들을 만나려면 대한문 앞으로 가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문 앞이 곧 상임위원회장이었다.
대한문 앞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자 관할 구청장은 집회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대한문 옆 인도에 화단을 조성했다. 그것에 더해 남대문경찰서는 수많은 경찰을 배치하며 하루도 빠짐없이 24시간 내내 화단을 둘러싼 채 서 있으면서 ‘화단을 경비했다’. 당시 서울경찰청은 대한문 앞 화단의 경찰 배치에 대해 “(쌍용차 관련 시위자 등이) 화단을 침범해 화단에 심겨진 나무와 질서유지선을 훼손하는 것을 막고, 화단 경비뿐만 아니라 수시로 발생하는 시위 등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한겨레> 2013년 10월22일)라고 답했다. 법치의 내용을 스스로 희화화하는, 지금 생각하면 헛웃음 나오는 블랙코미디 같은 풍경이다.
‘비즈니스 프렌들리’(친기업)를 표방한 이명박 대통령은 노동쟁의의 책임을 노조에 돌리는 발언을 끊임없이 해왔고, 이를 의식한 경찰과 고용노동부 등은 용역이 노조에 폭력을 휘둘러도 엄단하길 꺼렸다. 이후 박근혜 정권은 이전 정권에서 벌어진 국가폭력-국가범죄를 풀기보다는 분향소와 농성장을 치워버리는 일에만 몰두했다. 그런 정권의 분위기 때문에 경찰은 가진 권한을 ‘최소한도’가 아니라 ‘최대한도’로 집행하는 것이 정의라 믿었을 것이다. ‘이래도 돼?’라는 두려움 섞인 경계가 ‘이래도 돼!’라는 확신에 찬 정의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경찰력 남용의 증거는 널렸지만 ‘남용’에 대한 판단은 주관성이 개입될 소지가 있으니 국회에서는 경찰의 직권 남용을 수치로 입증할 데이터가 필요했다. 집회·시위를 막기 위해 화단을 놓고 그 화단을 경비한다는 발상을 뒤집기 위해 코미디를 다큐로 받아야 한다는 현실자각타임을 견디며 경비인력이 실제 얼마나 배치되는지를 확인하는 게 필요했다. 경찰청에 ‘국가 주요 기관별 시설보호 배치 인원’ 자료를 요구해서 받아봤더니, 대한문 앞을 경비하는 하루 평균 경찰관 수가 300여 명이었다. 이는 국회의사당 80여 명, 주한 미국대사관 160여 명, 중국대사관·일본대사관 각 30여 명에 견줘도 각각 3.8배, 2배, 10배에 이른다. 전국에서 대한문보다 경찰 경비 병력이 많은 곳은 700여 명이 배치된 청와대가 유일했다. 대한문 화단은 청와대보단 덜 중요하지만 국회나 각국 대사관보단 훨씬 중요하고, 화단 경비는 경찰에 정말 진지한 다큐였던 것이다. “경찰권의 발동과 정도는 공공의 질서에 대한 용인할 수 없는 장해의 정도에 비례해야 한다”는 경찰 행정법상 비례의 원칙을 명백히 어긴, 권한 남용의 현장이었다.
비슷한 시기, 노조 무력화를 위해 사 쪽이 노무법인과 용역경비업체를 고용해 노조탄압을 하는 사건이 일종의 매뉴얼처럼 횡행했다. 그중 하나인 반도체부품 제조사 케이이씨(KEC)는 사 쪽의 직장폐쇄에 항의한 조합원들이 철회를 요구하며 공장 점거 농성을 했다. 이때 검찰이 항의하는 조합원들의 디엔에이(DNA)를 확보하려고 영장을 청구한 사건이 벌어졌다.
‘디엔에이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DNA법)은 2008년 조두순, 2009년 강호순 사건 등 흉악범죄가 연달아 터지면서 범인을 조기 검거하고 재범을 막아야 한다는 각계의 요구에 만들어진 법으로, 2010년 7월부터 시행됐다. DNA법은 살인, 강도, 강간, 폭력 등 총 11개 혐의 구속 피의자에게 적용된다. 문제는 수사기관이 △주거침입 △퇴거불응 △재물손괴 등을 ‘폭력행위’ 범주에 넣으면서 일반 집회·시위 참가자들에게 과도한 DNA 채취가 이뤄졌다는 점이다.
DNA 채취는 대상자의 동의와 비동의의 형식이 있고 동의하지 않으면 검찰이 채취영장을 발부받아 실행해야 한다. 그러나 DNA 채취영장에 따른 채취가 전체의 1%가 안 된다. 유죄가 확정된 사람(수형인)이나 구속된 피의자를 대상으로 하는 동의가 제대로 된 동의일 리 없다. 매우 이례적으로 노조원을 흉악범으로 간주해서 DNA를 채취한 것이다. 공권력은 ‘간주’할 수 있도록 하면 ‘남용’된다.
KEC 노동자 H씨는 ①절차적 권리 보장되지 않음 ②불복절차 규정 없음을 근거로 들어 헌법소원을 청구했고, 헌법재판소도 이를 받아들여 헌법불합치 판결을 냈다(2016헌마344·2017헌마630). 한동안 KEC 노동자들을 잊고 있었는데 사건 발생 뒤 6~7년이 걸려 헌재 판결이 난 걸 보자 아차 싶었다. 그길로 영장 청구받은 판사가 채취 대상자에게 의견진술 기회를 부여하도록 하고, DNA감식시료채취영장 발부에 대한 불복절차를 담은 개정 DNA법을 만들었고, 법안 발의 최소요건인 공동발의 의원 10명의 도장만 모아서 빠르게 제출했다. 이 법은 본회의에 회부돼, 2020년 1월에 통과됐다.
그러나 검찰은 집요했다. H씨는 헌법재판소 결정을 근거로 2019년 검찰총장에게 DNA신원확인정보 삭제 청구를 했으나 검찰총장이 이를 거부했다. 불복절차에서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의 DNA감식시료의 채취에 관한 처분 취소 결정이 확정된 경우 데이터베이스에 수록된 DNA신원확인정보를 삭제하도록 하고 있으나, 검찰은 2020년에도 용산 철거민에게 DNA감식시료 채취를 요구했다. 용산 참사가 발생한 지 무려 11년이 지난 시점이다. 위법 수집된 DNA를 삭제할 유일한 방법은 ‘죽음’밖에 없는 셈이다.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를 흉악범죄자화해 애초 DNA법이 제정된 취지와는 완전히 다른 길로 가는 검찰의 집행. 수사기관이 흉악범죄에 대한 현상수배를 내릴 때 ‘노동자풍’이라고 묘사했던 과거가 2010년대를 거쳐 2020년대에도 다시, 반복되고 있다.
시민통제의 효과적인 방식은 무엇인가지금 국회는 이른바 ‘검수완박’ 정국이다. 수사권·기소권 분리의 핵심은 수사기관의 권한 남용을 막는 것이고, 기관 간 견제의 핵심은 권한 분산이다. 국회에서 현재 심의 중인 법은 수사기관 간 견제를 위해 검찰의 직접수사 범위를 대폭 축소하고 검찰의 수사·기소 독점을 막기 위해 검사가 자신이 수사를 개시한 범죄에 대해서는 기소할 수 없도록 제한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폭력 기구에 대한 시민통제 장치다. 수사권·기소권 분리가 마치 기관 간 권한 배분만의 문제인 듯 논의되지만, 지금부터는 교육감 선거처럼 당적 없는 검사장 직선제나 시민배심원제와 같이 검찰권·경찰권에 대한 시민통제의 효과적 방식이 무엇일지를 논의해야 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국회는 의원실에 배정되는 정책개발비로 연구용역을 발주할 수 있는데, 그간의 관행으로는 용역을 발주할 때 연구의 목적·내용·질에 크게 개의치 않고 의원실 재량 사항으로 간주됐다. 그런데 언론들이 의원실에서 발주한 연구용역 보고서를 집중적으로 감시하고 금액과 내용의 적절성을 보도하자, 지금은 그 어떤 의원실도 용역 발주를 마구잡이로 하지 못한다. 감시와 통제의 힘이다.
수사기관도 마찬가지. 수사기관이 모든 업무 처리에서 조직 내 논리만이 아니라 ‘제3의 눈’을 장착한다는 감각이 시민통제의 핵심이다. 지금 이 시기 권한 남용 견제를 조직의 기본 원리로 삼는 검찰청법과 경찰관직무집행법을 되짚는 이유다.
이보라 국회 보좌관
*‘법 만드는 법’은 국회 10년차 보좌관인 이보라씨가 국민 생활에 밀착한 법을 만들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을 담습니다. 이보라씨는 국회여성정책연구모임 대표와 경찰청 사이버성폭력 수사자문단 위원을 맡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고통보다 항상 늦게 도착하는 법이 조금의 쓸모라도 더 가질 수 있도록 고민하는 게 업입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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