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없는 자들에게 자기 목소리를 되찾게 하고 보이지 않는 자들에게 자기 몫을 확인케 하는 국회로…”
국회에서 연설문을 쓸 때 내가 가장 많이 쓰는 문구다. 쓸 때마다 예전 일을 복기하고 현재를 점검하고 앞으로를 결심하게 된다. 국회에 있으면서 세월호 사건과 가습기살균제 사건 같은 사회적 참사와 산업재해 사망자들을 바로 옆에서 보았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죽음,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죽음이 너무 많다. 그 죽음들이 제각각 다 제 말이 있을 텐데, 기자와 카메라들이 한바탕 휩쓸고 난 뒤 여전히 이유 모를 죽음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일을 너무 많이 목격했다. 이때부터 매해 통계청의 ‘사망원인통계 결과’를 보는 습관이 생겼다.
통계청 ‘사망원인통계 결과’의 ‘사망원인별 사망자 수 및 사망원인 구성비’에 따르면 2020년 30만4948명이 숨졌는데, 그중 ‘달리 분류되지 않은 증상·징후에 의한 사망’은 3만1801명으로 전체 사망자의 10.4%이다. 10명 중 1명은 왜 죽었는지 모르는 죽음이라는 얘기다. 심지어 원인불명 사망은 계속 늘어 2010년에 견줘 23%나 증가했다. 같은 통계에서 악성신생물(암)로 인한 사망이 8만2204명, 심장질환으로 인한 사망이 3만2347명으로 각각 사망원인 1·2위인데, 원인불명 사망은 바로 그 뒤를 잇는다. 이렇게 과학수사가 발전한 사회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원인불명이라는 원인’으로 죽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국제표준질병·사인분류 기준에 의해 ‘달리 분류되지 않은 증상, 징후와 임상 및 검사의 이상소견’에 의한 죽음, 쉽게 말해 왜 죽었는지 이유를 모르는 사망은 ‘R코드’가 부여된다. 미국은 2018년 전체 사망자가 281만여 명인데 사인불명은 3만2750명(1.2%)에 불과하다. 주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도 대체로 사인불명은 1~2% 수준이다. 이런 데이터 차이는 사인을 법률적·의학적으로 규명하는 검시관제도 차이에서 나온다. 주검에는 목소리가 있다. 주검은 말을 하는데 이를 보고 들을 검시제도가 충분치 않은 탓이다.
검시(檢屍)는 변사체의 사망원인을 밝히기 위해 검안·부검 등의 의학적 방법으로 변사체를 검사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형사소송법 제222조에 따라 변사자 주검의 소재지를 관할하는 지방검찰청 검사가 검시하게 돼 있다. 이 두 문장 사이의 간극이 전체 사망자의 10%에 이르는 원인불명 사망자를 만든다. 즉, 한국의 검시제도는 검사의 영장에 의해 부검이 집행되므로 변사자의 사망원인은 의학적 소견이 없는 검사의 판단에 달린 것이다. 게다가 형사소송법은 범죄 의심이 있는 변사(變死)에 대한 사법적 부검을 규정해, 범죄 의심은 없지만 사인 규명이 필요한 행정적 부검은 사실상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2002년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검사는 주검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고 검시를 담당할 수 있는 의사의 경험이나 전문성을 달리 고려하지 않을뿐더러, 자격을 갖춘 의사라 할지라도 형사소송절차의 전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채 수사 과정에서 검찰이나 경찰에 종속되므로 실체적인 진실의 발견이나 인권 보장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모두 놓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제대로 사인을 규명하려 한다면, 변사체가 발견되었을 때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사인을 판단할 수 있는 의사(법의학자)가 주검의 겉모습을 검사해(검안) 겉모습만으로 알 수 있는 정보를 알려주고 그 정보에 따라 부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검안으로 사인을 결정할 경우 그 사인에 대해서는 법의학자가 책임져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법의학자의 절대적 부족으로 이 중요한 문제를 아래의 ‘대행자’들에게 맡기다보니 서로 책임을 전가하기 쉬운 구조를 지녔다.
△응급의사는 환자가 숨지면 일단 경찰에 신고하지만 사인을 조사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경찰 지구대에서는 변사사건에 대한 인적 사항과 발견 시간 등을 확인하고 당직 형사에게 인계하면 △담당 형사는 외부 침입 흔적이 없는 경우라면 병사(病死) 같긴 하나 사인 판단은 의사 소관이라고 본다. 또한 △검시조사관은 의사는 아니므로 한계가 있고 △검안의사는 경찰 의견대로 병사 진단서를 써주긴 하지만 부검은 유족이나 형사 모두에게 권하기 어렵기 때문에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다 판단하며 △최종 담당 검사는 검사 역할을 대행한 경찰의 수사가 만일 잘못된다면 경찰 책임, 이렇게 되는 구조다(양경무, 2020).
실제 제대로 된 검시제도가 없다보니 의사가 병사 이외의 진단을 하면 의사가 많은 행정적 부담을 지게 되어 병사를 선호하는 관행이 자리잡았다고 한다. 게다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실시한 부검을 분석한 결과, 사망진단서·검안서에 적힌 사망원인과 부검 뒤 사인이 다르거나 ‘심(폐)정지’ 등 사인이 잘못 기재된 사례가 76.2%에 달했다. 이는 의학적 증거문서로서의 가치를 상실한 것이다(나종인 외, 2012).
검시제도의 독립성도 문제다. 얼마 전 여성가족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도 보았듯이 백남기 농민이 숨지기 전에 부상을 입은 이후 병원 이송 - 수술 집도 - 사망진단서 발급 - 부검 시도 이 모든 과정에서 의료적 동기 외에 경찰과 청와대의 개입이 있었던 것이 인정됐다. 정치적 유불리에 휘둘려 사망원인을 ‘병사’라 한 것도 모자라(서울대병원은 2017년 6월15일 공식적으로 피해자의 사망원인을 당초 병사에서 외인사로 수정·변경했다), 백남기 농민이 숨지기 훨씬 이전부터 피해자 사망을 대비해 대검찰청과 부검 절차 등을 논의했다고 한다(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 2018). 국가가 개입한 사건은 정치적 의도로 취약해지고 국가가 개입하지 않은 사건은 아예 관심 밖이라 취약하다.
우리 사회는 혹독한 군부독재를 경험하면서 국가가 가해자인 의문사를 너무 많이 겪었고 이러한 국가폭력에 민주적 통제를 해오면서 우리의 민주주의도 그만큼 진보했다. 그러나 국가가 국민을 덜 때리는 데서 국가의 효능감을 찾을 수는 없지 않나. 사인이 불명확한 경우 그 원인을 밝혀 억울한 죽음을 막는 것이 국가의 의무다.
미국에서는 <시에스아이>(CSI)나 <엔시아이에스>(NCIS> 같은 수사물로 ‘CSI 효과’라는 말까지 생겼다. 모든 범죄는 ‘황금기준’인 과학적 증거를 남기며 이런 증거가 범죄를 해결할 수 있다는 대중의 믿음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도 텔레비전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부터 시작해 <알쓸범잡>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블랙: 악마를 보았다> <용감한 형사들>까지 쏟아지는 수사물로 국민의 과학수사에 대한 기대는 날로 높아지는데 원인 모를 죽음으로 변사자가 될 가능성도 OECD 국가 중 1위라니, 죽음의 사건에 들어가면 도처에 아이러니가 넘친다.
국회에서는 무려 17년 전인 2005년 유시민 의원의 ‘검시를 행할 자의 자격 및 직무범위에 관한 법률안’을 비롯한 몇 건의 법안이 발의됐으나 제대로 논의되지 않은 채 폐기됐다. 지역구 사안이 아니고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결사돼 있지 않은 법안이 가장 후순위로 밀린다. 제21대 국회에선 법의관의 자격과 직무 수행의 독립성, 법의관의 양성과 검시 업무에 관한 전반적인 사항을 규정하는 ‘검시를 위한 법의관 자격 및 직무에 관한 법률안’(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 대표 발의)이 제출돼 있다.
목소리 없는 이들의 최종국회 앞에는 여전히 상복 입고 커다란 팻말을 든 분들이 각자 다른 이유로 1인시위를 하고 있다. 내 책상에도 원인 모를 사망사건을 규명해달라는 의견서와 청원서류가 쌓인다. 목소리 없고 보이지 않는 자들이 최종적으로 기댈 언덕이 여기 국회가 아닐까 싶다. 지금도 쓰면서 복기하고 점검하고 결심했으니 한 걸음 더 디뎌봐야겠다.
이보라 국회 보좌관
*‘법 만드는 법’은 국회 10년차 보좌관인 이보라씨가 국민 생활에 밀착한 법을 만들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을 담습니다. 이보라씨는 국회여성정책연구모임 대표와 경찰청 사이버성폭력 수사자문단 위원을 맡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고통보다 항상 늦게 도착하는 법이 조금의 쓸모라도 더 가질 수 있도록 고민하는 게 업입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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