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29일 참사가 일어난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톤호텔 서쪽 골목은 길의 이름이 없다. 네이버나 다음 지도에서 이 골목의 주소를 찾아보면 도로명주소는 없고, 번지주소만 2건이 확인된다. 골목의 남쪽 절반은 이태원동 119-3번지, 북쪽 절반은 이태원동 119-6번지로 나온다. 이 골목은 도시계획도로다.
도시계획도로상 넓이는 북쪽 83㎡, 남쪽 77.7㎡로 전체는 160.7㎡(약 48.7평)이며, 남북이 모두 4m가 조금 안 되는 일정한 너비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인터넷 지도상 길이는 42m 정도이며, 너비는 이태원역 쪽인 맨 남쪽이 4.4m, 세계음식거리로 통하는 맨 북쪽이 3.7m 정도로 위아래가 다르다. 사고가 일어난 골목 중심 부분의 너비는 3.2m가량으로 추정된다. 해밀톤호텔 등의 불법 시설물들로 인해 좁아졌다.
10월29일 저녁, 이 50평도 안 되는 공간에 갇혀 있던 사람의 수는 1천 명이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과 전문가들은 이 골목에 많게는 ㎡당 10명이 몰려 있었을 것으로 본다. 사람이 몰린 이유는, 북쪽 세계음식거리에서 남쪽 지하철역으로 가려는 사람들과 지하철역에서 세계음식거리로 가려는 사람들이 여기서 뒤엉켰기 때문이다. 이 상태가 해소되지 않고 몇 시간 동안 반복됐다. 결국 이날 밤 10시15분께 참사가 일어났다.
전세계에서 일어난 ‘군중 압사 사고’를 연구한 전문가들은 이태원 참사의 원인으로 ‘군중 난기류’(크라우드 터뷸런스) 현상을 꼽는다. 어떤 공간에 ㎡당 6명 이상이 밀집하면 ‘군중 난기류’가 발생해 압사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상태에서는 몇 사람의 작은 움직임이 엄청난 물결과 압력을 일으켜 사람들을 넘어지게 하거나 덮칠 수 있다.
이를 막으려면 미리, 또는 밀집이 시작된 뒤에라도 즉시 여러 조처를 해야 한다. 예를 들면 보행 경로의 다양화, 보행자 공간 확대, 보행 흐름 정리 등이다. 공간, 보행, 교통 전문가들은 이태원 참사에서 가장 안타까운 대목으로 이태원역 지하철 무정차가 시행되지 않은 점을 꼽았다. 지하철 무정차는 시민들에게 긴 거리를 걸어야 하는 불편을 주지만, 동시에 공간적·시간적으로 사람의 밀집을 강하게 막는다.
참사가 일어난 골목은 남쪽 이태원역에서 북쪽 세계음식거리로 가는 최단 거리다. 특히 이태원의 먹자골목은 이태원역 북서쪽에 몰려 있다. 이런 지름길 골목은 평소엔 병목현상을 일으키지 않지만 이번처럼 사람이 몰리면 곧잘 병목현상이 일어난다.
보행자 교통 전문가인 김영욱 세종대 교수(건축공학부)는 “이번에 가장 효과적인 군중 밀집 대책은 지하철 무정차였다. 시뮬레이션해보면 금세 효과가 나타난다. 아주 쉬운 대책이었다. 그게 검토되지 않은 것이 정말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 교수의 말대로 이태원역 지하철 무정차를 시행했다면 이태원에 오는 시민들이 녹사평역과 한강진역에서 내려 걸어와야 한다. 시민들은 다양한 경로를 사용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흩어진다. 예를 들어 이태원 서쪽 녹사평역에서 내린 시민들은 참사가 난 골목에 이르기 전 10개 정도의 진입 골목을 만난다. 한강진역에서 내린 시민들도 해당 골목에 닿기 전에 2개의 진입 골목을 만난다.
이런 점 때문에 2016~2017년 촛불집회 때 서울시는 시민들의 밀집 위험을 완화하기 위해 광화문역과 경복궁역의 무정차를 자주 시행했다. 실제 이번 사고 전후로 서울경찰청과 서울교통공사는 이태원역 무정차를 논의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시행하지 않았다. 무정차를 시행했다면 이번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지하철 무정차 다음으로 강력한 수단은 이태원로 차량 통행 제한이었다. 이것은 참사 2주 전인 10월15~16일 이태원지구촌축제 때 이미 시행됐다. 차도인 이태원로가 보행자 공간으로 개방됐다면 시민들이 좁은 인도와 골목으로 몰릴 이유가 없었다. 이경훈 국민대 교수(건축학)는 “외국 도시의 축제처럼 대로에서 주요 행사를 열었다면 시민들이 왜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겠는가. 이렇게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행사 때는 차량 통행을 막는 것이 안전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특히 이태원의 T자형 골목 중심에는 인기 펍이 있어서 목적지 보행자와 통과 보행자가 모두 몰리는 곳이었다. 이런 보행자 거점을 미리 파악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은희 도시연대 정책연구센터장은 “이번처럼 중앙 행사장이 없는 경우는 보행자 거점을 중심으로 동선을 파악해 대책을 세웠어야 한다. 이 동네 상인들은 어디에 사람들이 몰리는지 잘 안다”고 말했다.
지하철 무정차나 이태원로 차량 통제와 같은 강력한 조처보다 쉬운 방법도 있었다. 참사가 난 골목의 보행 흐름을 통제하는 일이었다. 이번 참사는 이태원역과 세계음식거리 사이를 오가는 시민들이 좁은 골목에서 충돌했기 때문에 일어났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이 골목에서 일방통행을 시행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철 공공교통네트워크 정책위원은 “이번 참사는 골목이 좁아서 생긴 문제가 아니다. 좁은 골목에 양방향 통행을 허용해서 생긴 일이었다. 누가 봐도 이태원역 1번 출구에서 나오는 사람들이 이 골목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았어야 했다. 이 골목은 먹자골목에서 이태원역 방향으로만 통행을 허용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통상 이런 경우 경찰관 10여 명이 골목 입구에서 진입을 막으면 된다.
한국의 도시에 광장이나 공원 등 빈 공간의 부재가 압사 사고 위험을 높였다는 의견도 나왔다. 정기황 시시한연구소 대표(건축가)는 “지하철역에서 지상으로 나왔을 때 앞에 빈 공간이 펼쳐져 있다면 사람들은 거기서 자연스럽게 흩어진다. 보행자 공간이 좁은 인도와 골목뿐이니 그곳에 사람이 몰리고 이런 참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도시에 빈 공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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