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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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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철 “대선 전에 개헌해야… 끝나고는 못한다”

개헌 활동 앞장서온 대한민국헌정회 정대철 회장 인터뷰
“대통령이 앞뒤 안 맞는 비겁한 행동… 제왕적 대통령제 이제 그만”
등록 2025-02-14 10:40 수정 2025-02-19 07:00
2025년 2월10일 서울 영등구포 여의도 국회 헌정회관에서 만난 정대철 헌정회장은

2025년 2월10일 서울 영등구포 여의도 국회 헌정회관에서 만난 정대철 헌정회장은 "이재명 대표가 찬성하면 대선 전에 권력 구조 관련 개헌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2024년 12월3일 대통령 윤석열의 내란 이후 헌법 개정(개헌) 논의가 각계에서 나오고 있다. 특히 윤석열이 기소된 2025년 1월26일 이후 개헌 논의는 더욱 활발해졌다. 그 가운데서도 대한민국헌정회의 목소리는 단연 두드러진다. 2023년부터 개헌안을 준비해온데다 토론회와 원로 간담회, 개헌 단체 간담회 등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지속적인 개헌 활동 뒤엔 정대철 헌정회장이 있다. 80살이 넘은 정 회장은 현재도 여야를 넘나들며 개헌을 역설하고 있다. 그를 2월10일 낮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헌정회관에서 만났다.

정 회장은 전날 내내 인터뷰를 준비했다며, 손으로 적은 10쪽이 넘는 사전 질문 답안지를 내놨다. 점심에도 인터뷰를 대비해 평양냉면을 먹으면서 소주를 2 잔밖에 마시지 않았다고 말했다. 부모인 정일형, 이태영 선생이 모두 평안도 출신이어서 그런지 그의 말에선 활달한 평안도 사투리가 흘러나왔다.

 

당선되면 잊어버리는 개헌 필요성 

—지금 개헌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이유는 12·3 계엄 선포에서 봤듯 국민의 뜻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정치하는 제왕적 대통령의 출현 가능성을 배제하는 헌법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한국의 대통령은 지나치게 권한이 많다. 또 국민의 60~80%가 개헌을 요구하고 있다. 1987년 이후 38년이 됐는데, 그동안 모든 대통령이 대선 전에 개헌을 공약했다가 당선되면 꿩 구워먹은 자리가 됐다. 이번에는 반드시 대통령을 뽑기 전에 개헌해야 한다.”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재판을 받는 대통령 윤석열이 내란 행위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개헌 논의도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검찰총장 출신으로 정의를 세우겠다고 대통령까지 된 사람이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비겁한 행동을 하고 있다. 심지어 자신이 일을 벌여놓고 부하들과 내가 옳으니 네가 옳으니 하고 있다. 대통령이라면 ‘내가 다 시킨 일이니 내가 책임지겠다. 저 사람들은 놔줘라’ 하고 말하는 것이 맞는다. 이쯤 되면 윤 대통령은 자기 잘못을 국민에게 깊이 사과하고 깨끗이 물러나는 게 좋다. 만에 하나 탄핵소추가 기각된다고 해도 권위를 다 잃어버려서 대통령을 할 수 없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은 어떻게 될 것 같나.
“헌법 제77조에 의하면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요건이 있는데, 이걸 무시하고 마구잡이로 했다. 또 군대를 동원해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가서 사람들을 잡아들이려 했다. 반론을 펴기가 어려울 정도로 내란 또는 준내란 행위를 해서 탄핵을 면할 수 없다. 검사 출신 법률가로서 그것을 몰랐다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정 회장은 대통령 윤석열과 친분이 있다. 서울대 법대 후배인 윤석열 검사가 먼저 연락해 30년 가까이 만나왔다. 그러나 이날 윤석열 이야기를 꺼내자 그는 “그 녀석은 요새 상식 이하의 사람이 돼서 말야. 안다는 것이 창피스러울 정도야. 무슨 일을 벌여도 멋있게 벌여야지 유치해”라며 답답해했다.

—현재 개헌의 핵심은 권력 구조의 변경이다. 미국식 대통령제, 분권형 대통령제(이원 정부제), 의원내각제(의회제) 가운데 어떤 제도가 가장 나은가?
“개인적으로는 내각책임제를 선호하지만, 국민은 직선 대통령제를 선호한다. 그래서 헌정회는 분권형 대통령제+4년 중임제 방안을 만들었다. 중요한 것은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이 축소되고 그 권한이 국회로 이양되는 것이다. 4년 중임제는 부수적인 것이다. 또 대통령과 국회의원·지방 선거의 주기가 달라 매년 선거를 하다시피 한다. 대통령 임기를 4년으로 해서 대선과 총선을 묶고, 2년 뒤에 지방선거를 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분권형 대통령제를 하면, 행정권이 대통령(외치)과 총리(내치)로 이원화한다. 현재 상황이면 대통령은 윤석열, 총리는 이재명일 텐데, 행정부 운영이 잘될까.
“지금과 다른 게 대통령의 권한이 제한되고 총리와 권한을 나눈다. 대통령과 총리 사이에 충돌이 일어날 수 있지만, 서로 권한이 있으므로 해결하는 방법을 찾게 된다. 이번 계엄령 선포처럼 대통령이 자의적으로 정치하는 상황만 피해도 괜찮다.”

—대통령 권한이 너무 강해서 개헌하는데, 4년 중임제를 도입해 임기를 최대 8년까지 늘려주는 것은 더 위험하지 않나.
“정부의 안정과 정책의 계속성을 위해서 채택한 것이다. 국민이 잘했다고 평가하는 대통령은 4년 더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중간에 한 번 평가하니 8년까지 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지금 우리 국민이 똑똑해서 재선에 성공하는 대통령이 절반이 되지 않을 것이다.”

 

 

2025년 2월10일 서울 영등구포 여의도 국회 헌정회관에서 만난 정대철 헌정회장은

2025년 2월10일 서울 영등구포 여의도 국회 헌정회관에서 만난 정대철 헌정회장은 "이재명 대표가 찬성하면 대선 전에 권력 구조 관련 개헌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상하원 양원제가 획일성 제어 가능

—잘하는 대통령은 재선할 수 있지만, 윤석열처럼 잘못하는 대통령의 임기도 4년을 다 보장해줘야 할까. 대통령 임기 중간에 총선거를 두는 게 낫지 않을까.
“대선과 총선을 함께 치르면 대통령과 총리가 같은 당에서 나올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대통령 임기는 중간에 어떻게 할 수 없지만, 총리는 임기 중간에 불신임해서 물러나게 할 수 있다. 같은 당의 총리가 물러나면 대통령도 심판받은 격이므로 기운이 떨어지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 헌정회의 개헌안을 보면, 양원제를 시행한다. 여소야대(분점 정부)로 인한 정치적 교착이 많은 한국에선 오히려 교착을 더 심각하게 만들지 않을까.
“양원의 같은 정당끼리 똘똘 뭉치면 교착이 더욱 심화할 수 있다. 그러나 양원 중의 한 의회가 행정부와 충돌하면 다른 의회가 중재 역할을 할 가능성도 있다. 또 양원제는 단원제의 획일성을 제어하고, 숙고를 가능하게 한다. 하원의 진보성과 상원의 보수성이 서로 조화를 이룰 수도 있다. 프랑스 정치인 프랑수아 앙투안 드 부아시 당글라는 양원제에 대해 ‘상원이 공화국의 이성이라면 하원은 공화국의 상상력’이라 표현했다.”

정 회장은 드물게도 ‘금도’(襟度)라는 말을 정확히 사용했다. 통상 ‘금도’를 ‘금지선’ ‘넘지 말아야 할 선’이라는 뜻으로 쓰지만 맞지 않는다. 금도는 ‘아량’ ‘도량’ ‘포용력’이라는 뜻이다. 그는 “정치인은 먼저 금도를 보여야 한다” “금도 있는 정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개헌에 부정적이었던 국민의힘이 12·3 내란 이후 민주당에 개헌을 제안하고, 당내에 개헌특위를 만들었다. 프레임 전환용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다.
“국민의힘이 개헌을 제안하고 개헌특위를 만드는 일은 시의적절하고 올바른 방향이라고 믿는다. 혹시 국민의힘이 프레임 전환용으로 개헌을 추진한다고 해도 그런 숨은 뜻을 우리가 알고 막아내면 큰 문제는 없다. 국민의힘의 개헌 추진을 악의적인 것으로만 보고 개헌을 방해하거나 지연시킨다면 그것이 더 문제다.”

 

“이재명 대표 찬성하고 35일이면 개헌 가능”

 —현재 여야 정치권 가운데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만 개헌에 유보적이다. 내란이 완전 진압되지 않은 상태에서 개헌 논의는 섣부르다고 본다.
“윤 대통령이 구속·기소돼 탄핵 심판이 진행 중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내란이 완전히 진압되지 않았다는 해석은 과도하다. 이재명 대표와 1월12일 20분 정도 통화했다. ‘지금 이 대표가 앞장서서 헌법을 바꾸는 일이 이 나라를 좀더 민주화하고 정치를 개혁하는 길이다. 대통령 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도 ‘생각해보겠다’고 했는데 아직 생각 중인 것 같다. 우원식 국회의장이나 이 대표와 가까운 정동영 의원에게도 이야기했다. 계속 이야기하는 수밖에 없다.”

—개헌 시기와 관련해 의견이 갈린다. 탄핵 결정 시기가 불확실하고 대선 기간이 60일로 짧기 때문이다. 대선 전에 먼저 개헌을 하자는 것인가?
“시간이 없다고 하는데, 지금이라도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가 찬성하고 우원식 의장이 중재하면 35일 정도면 권력 구조 관련 개헌을 할 수 있다. 개정된 헌법으로 대선을 치를 수 있다. 정 그게 안 된다면 대선 때 개헌안에 대한 국민투표를 동시에 할 수 있다. 그러면 새 대통령이 새로운 헌법에 따라 일할 수 있다. 이렇게까지 하자는 것은 경험상 대선 뒤엔 개헌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를 바꾸려면 개헌과 함께 선거법과 정당법을 바꿔서 대립의 양당제를 연합정치의 다당제로 가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선거법을 바꿔 지역주의와 소선구제에 기댄 양당의 승자독식 구조를 타파해야 한다. 비례성을 높여서 소수 정당의 원내 진입을 뒷받침하고 다당제로 가야 한다. 정당법도 바꿔 지역 정당을 허용해야 한다. 공천도 선거구별로 예비선거를 통해 각 정당의 후보를 선출하게 해야 한다. 중앙당의 일방적인 공천을 막아야 한다.”

정 회장은 민주당 계열에서 활동해온 원로 정치인으로 5선 국회의원과 새천년민주당 대표최고위원을 지냈다. 그는 민주당의 성골이다. 아버지 정일형 전 의원은 독립운동가이자 민주당의 뿌리인 한국민주당(1945년), 민주당(1955년)을 만든 주역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적 후견인이기도 했다. 어머니 이태영 선생은 한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였고, 대표적 여성·민주화 운동가였다. 이태영 선생은 김대중에게 자신의 후배이자 비서였던 이희호를 소개했다. 정 회장의 아들 정호준씨도 제19대 국회 때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이어 서울 중구에서 국회의원을 지냈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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