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5년 2월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중도보수론이 일정한 정치적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듯하다. 담론의 영역에서 한동안 다들 ‘이재명의 중도보수론’을 이야기했다는 사실 자체만 봐도 그렇다.
이전까지 이 대표를 둘러싼 이야기의 주요 소재는 사법리스크나 당내 분열과 같은 것들이었다. 그러나 중도보수론이 등장하면서 사법리스크 관련 쟁점은 주변화됐다. 국민의힘이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항소심 선고 기일이 잡힌 걸 기회로 다시 불을 붙여보려 하지만 분위기가 예전 같지는 않다. 이 대표가 자신과 대립하던 비이재명계 주자들과 회동하는 것 역시 더는 뜨거운 뉴스가 아니다. ‘비명횡사’로 불렸던 세력 갈등 요인도 정체성 논쟁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어버렸기 때문이다. 유권자가 보기엔 사법리스크와 밥그릇 싸움보다는 정체성을 둘러싼 입씨름이 그나마 나아 보일 것이다. 적어도 나라를 다스리기 위한 방법론에 대한 논쟁으로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의 중도보수론에 진정성이 없다는 취지의 비판을 제기하고 있으나, 사실 민주당이 정말 중도보수가 맞는지를 따지는 건 실속 없는 논쟁이다. 양당은 서로를 반대하기 위한 수단으로 시기에 따라 자유롭게 좌표를 옮겨왔기 때문이다. 지금의 범민주당 진영만 해도 참여정부 때까지는 ‘진보’라는 말보다는 ‘민주평화개혁’ ‘중도개혁’ 등의 용어를 즐겨 사용했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 집권 직후 치러진 총선에서 불과 81석을 획득하고 중도화 전략인 ‘뉴 민주당 플랜’에 시동을 걸었다가 2010년 무상급식과 보편적 복지 돌풍 이후에야 ‘진보’를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이후에도 이들은 상황에 맞춰 필요에 따라 중도와 진보를 오갔다. 2012년 통합진보당과의 선거 연대와 2016년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를 떠올려보라.
지금은 어떤 상황인가? 보수가 불법적 비상계엄을 선포해 스스로 통치를 포기했다. 중도의 영역이 비어 있을 수밖에 없게 됐다. 민주당이 진보를 자처하던 시기처럼 보편적 복지와 같은 어젠다가 활성화돼 있는 것도 아니다. 문재인 정권으로부터 3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는 것도 생각해볼 대목이다. 보수 유권자층 심리의 기저에는 아직 심판론이 살아 있을 수 있다. 과거에는 정권교체에 10년이 필요하다는 ‘10년 주기설’이 있었을 정도였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은 모종의 진보적이면서 실험적인 정책을 펼친 정권으로 낙인찍혀 있다. 그러니 이번 대선은 민주당으로선 중도화 프레임으로 치르기에 더없이 좋은, 아니 그래야만 하는 선거가 되는 것이다. 이 대표의 중도보수론은 선거공학이라는 차원에서 이 점을 드러내고 있다.
우려되는 것은, 중도보수를 내걸고 선거를 치를 경우 당선돼서도 중도보수적 정책을 펼치지 않을 수 없으리라는 점이다. 민주당이 예고편으로 내놓은 것은 상속세 공제 한도 상향이다. 만일 공제 한도 상향으로 누군가 내야 할 상속세를 내지 않게 된다면, 그 액수 자체는 크지 않은 수준일 것이다. 상속세는 내는 사람 자체가 적고, 내는 사람 중에서도 소수인 초고소득층이 전체 세수의 상당 부분을 부담한다. 그래서 공제 한도 상향으로 줄어드는 세수 자체는 크지 않으리라 예상된다.
한겨레의 2025년 2월24일치 보도를 보면, 민주당의 개편안으로 상속세 부담을 덜 수 있는 아파트는 서울 수도권에 몰려 있는데, 이 지역들은 지난 대선 때 이재명 후보 지지율이 열세를 보인 지역과 겹친다고 한다. 문재인 정권의 부동산 정책에 실망해서 이탈한 유권자층을 돌려놓겠다는 목적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이렇게 보면 상속세 공제 한도 상향은 실제 세수에 미치는 타격은 최소화하면서 이미지란 측면에서 얻어낼 것은 많은 꽤 효율적인 카드라는 결론이 나온다.
하지만 한번 손보기 시작한 대상을 ‘중도보수 정권’에서 더는 손대지 않고 그냥 두고 보리라는 보장은 있는 것일까? 이게 명백히 ‘부동산 정치’를 겨냥했다는 점에서 우려되는 대목은 또 있다. ‘비명계’로 분류되며 이 대표와 가끔 갈등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는 고민정 의원은 2024년 종합부동산세 폐지와 부동산 관련 세금 재설계론을 주장했다. ‘부동산 정치’의 시선으로 보면 상속세 공제 한도 상향만큼이나 어떤 선거를 앞둔 시점이든 고려해봄 직한 카드다. 물론 종부세는 성역이 아니므로 이미 누더기가 된 종부세를 포함해 부동산 관련 세금 전반을 재설계하는 것도 해볼 만한 일일 수 있다. 중요한 건 방향이다. ‘중도보수 정권’에서 이런 일을 고려한다면 부동산 세금을 깎아주고 끝나는 결과가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런 우려를 하는 건 ‘중도보수 정권’은 주로 세금을 깎아주는 방식을 고민하지 더 걷을 필요에 대해 생각하진 않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이 대표 직속 기구로 월급 생활자들에게 불리한 조세 제도를 재설계하겠다며 ‘월급방위대’라는 명칭의 위원회를 꾸린 상태다. 일단 거론되는 안은 식대 한도 상향 등이다. ‘월급방위대’라는 명칭에서 볼 수 있듯 생활밀착형으로 가겠다는 것이겠지만, 부양가족 기본공제 상향이나 물가연동제 도입 등 좀더 큰 틀에서 근로소득세 체계를 손보는 게 필요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주목할 것은 여기서도 방점은 세 부담 줄이기에 찍힌다는 점이다. 물론 월급쟁이 입장에서는 그러잖아도 물가가 올라 어려운데 만만한 게 유리지갑이냐는 항변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소득세 부담은 주요 선진국에 견줘 낮은 편이다. 2014년 이후 면세자 비율이 과다하게 높아진 걸 정상화해야 할 필요도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근로소득세 관련 문제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함정에 빠질 수 있다.

2007년 4월4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장애인 차별금지법 서명식 및 2007 국민과 함께하는 업무보고’에 앞서 노무현 대통령이 노트북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무엇보다도, 세금은 매우 중요하다. 정부가 무언가를 하고자 할 때 재원이 되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유작이라고 할 수 있는 ‘진보의 미래’에서 “예산을 가져오면 색연필 들고 ‘사회정책 지출 끌어올려’ 하고 위로 쫙 그어버리고, ‘여기에 숫자 맞춰서 갖고 와’ 이 정도로 나갔어야 하는데, 바보같이 해서…”라며 복지 지출을 더 늘리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앞에도 썼지만, 참여정부는 ‘진보 정부’를 자처하지 않았다. 따라서 노 전 대통령의 회한은 ‘중도보수 정권’ 비슷한 것을 해본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으로 봐야 한다. 그걸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더라는 거다. 만일 조기 대선의 결과로 ‘중도보수 정권’이 들어선다면, 이번에도 똑같은 후회를 남길 것인가? 그럴 수는 없는 것 아니겠나. ‘중도보수론’으로 선거에서 승부를 보는 전략은 가능하겠지만 그 이후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그러니까 과거와 똑같은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면, 이전의 경험으로부터 누적된 정권 운영의 로드맵을 분명히 해야 한다. 지금 그런 준비와 각오가 함께 되어 있는지 궁금하다.
김민하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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