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일인 2024년 4월10일 오후 울산시 남구 문수체육관에 마련된 개표소에서 개표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연합뉴스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미국인이 5% 정도 된다고 하는데, 부정선거 주장하시는 분들이 그런 것 같아요.”
2025년 2월13일 한겨레21과 만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 관계자가 “아무리 사실관계를 설명해도 듣지 않는다”며 무기력한 목소리로 말했다. 2017년 ‘케이(K)값’ 부정선거 음모론을 제기한 김어준씨 제작 영화 ‘더 플랜’이 나왔고, 2020년에는 미래통합당(국민의힘의 전신) 소속 제21대 총선 낙선자들이 선거무효소송을 제기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소수’의 음모론이었다.
그런데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이 ‘부정선거를 확인해야 한다’며 군을 선관위에 투입한 순간, 더는 소수의 음모론으로 치부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극우 유튜브와 집회는 물론, 헌법재판소에서까지 부정선거 음모론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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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음모론은 반박하면 부활하고 누더기처럼 덧붙여지면서 부풀었다. 한겨레21은 부정선거 음모론의 근거로 떠돌고 있는 대표적 주장을 모아 하나씩 검증해봤다.
내란죄 피고인 윤석열과 극우 세력이 주장하는 부정선거 음모론은 대부분 2020년 4월15일 제21대 총선 뒤 민경욱 전 미래통합당 의원 등 낙선자들이 제기한 음모론에 근거한다. 민 전 의원이 제기한 의혹은 2년 넘는 재판을 거쳐 2022년 7월 대법원에 의해 모두 기각됐다. 그러나 논파된 이 음모론은 2년 뒤 윤석열의 ‘계엄 이유에 대한 변명’으로 소비되며 다시 생명력을 얻었다.
대표적인 게 ‘빳빳한 투표지’ ‘배춧잎’ ‘일장기’ 등 조작된 투표지가 발견됐다는 주장이다. 민 전 의원 등이 2020년 5월 선거무효확인소송을 제기하면서 대법원은 2021년 6월 인천 연수을 선거구에 대해 재검표를 했다. 이 과정에서 비정상적인 투표지들이 발견됐다. 대법원은 2년 넘는 재판 기간 동안 민 전 의원 쪽이 추천한 전문가를 통해 유형에 따라 122장의 투표지를 감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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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빳빳한 투표지’ 설의 요지는 “투표가 끝난 투표용지를 확인했는데, 왜 접힌 흔적이 없고 ‘신권’처럼 빳빳하냐”는 의혹이다. 하지만 선거인에 따라 투표용지를 접지 않거나 가볍게 접고 투표하는 경우는 많다. 특히 관내 사전투표나 선거일 투표에서는 투표지를 바로 투표함에 넣는 것과 달리, 관외 사전투표에서는 투표지를 회송용 봉투(개표를 위해 해당 지역 선관위에 우편으로 보내기 위한 봉투)에 넣어 투표함에 넣게 된다. 이때는 굳이 접지 않아도 봉투로 투표 결과가 가려지기 때문에 선거인들이 투표지를 접지 않는 경향이 많다는 게 선관위 관계자의 설명이다. 게다가 민 전 의원이 제시한 ‘빳빳한 종이’를 실제로 전문가가 감정한 결과, 상당수에 접힌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다.

민경욱 전 미래통합당 의원이 지난 2020년 5월 11일 기표되지 않은 비례투표용지가 발견됐다며 ‘부정 개표’ 증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역구 의원의 투표지에 비례대표 투표 부분이 겹쳐서 인쇄된 투표용지를 일컫는 배춧잎 투표지, 투표관리인의 도장을 찍은 형적이 뭉개진 투표지를 일컫는 일장기 투표지 등에 대해서도 대법원은 재판 과정에서 가능성을 두루 살펴보고 검증한 뒤 모두 기각했다. 프린터 인쇄 과정에서 일부 겹치거나 색이 다르게 출력될 수 있고, 정규 투표지에 도장을 찍으면서 형적이 뭉개질 수 있는 상황이 모두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러한 비정상 투표지들에 대해 “‘성명 불상의 특정인’이 사전투표지를 위조하였다면 굳이 이와 같은 형태로 사전투표지를 작출해 문제의 소지를 남길 이유가 없다”는 판단도 했다. 선거를 조작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면, 굳이 오류가 있는 비정상 투표지로 했겠냐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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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위조된 투표지를 투표함에 넣을 수 있을까? 투표 현장에서는 각 정당의 투표 참관인이 항상 지켜보고, 개표 때도 지켜보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게다가 사전투표함은 정당추천위원들의 참여 아래 투표함을 봉함·봉인하며, 출입이 통제된 이 장소는 폐회로티브이(CCTV)로 24시간 실시간 공개된다.
2024년 4월 제22대 총선 당시 서울 은평구 선관위에서 보관하던 사전투표함에 조작된 투표지를 넣는 장면을 찍었다는 영상이 인터넷에 돌기도 했지만, 이는 선관위 직원들이 관외 투표지가 담긴 회송용 봉투를 투표함에 넣은 정상 절차로 밝혀졌다.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은 심지어 사전투표와 당일 투표의 결과가 다르다는 점도 부정선거의 이유로 지목했다. 미래통합당의 사전투표 득표율이 선거날 당일 투표 득표율보다 낮기 때문에 사전투표가 조작됐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사전투표가 조작됐다면, 미래통합당 후보가 대부분의 지역구에서 패배해야 부정선거 음모론의 논리가 성립된다. 그런데 2020년 제21대 총선에서 사전투표 득표율이 당일 투표 득표율보다 약 10%포인트 높게 나타난 지역구는 모두 34개로, 이 가운데 12개 지역구에서 미래통합당 후보와 1명의 무소속 후보가 당선됐다. 사전투표 득표비율이 일정한 것이 수상하다는 주장도 있었다. 제21대 총선 서울·인천·경기지역에서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 후보자 사이의 사전투표 득표비율이 ‘63% vs 36%’로 일치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임의로 소수점 아래 숫자를 버리는 방식으로 조작한 숫자다. 소수점을 포함한 실제 득표율은 ‘서울 63.95% vs 36.05%, 인천 63.43% vs 36.57%, 경기 63.58% vs 36.42%’로 수치가 각각 다르게 나타난다. 게다가 이 비교는 민주당과 미래통합당 후보만을 비교한 것으로 다른 후보들까지 포함하면, ‘서울 61.31% vs 34.55% vs 4.14, 인천 58.82% vs 33.91% vs 7.27%, 경기 60.68% vs 34.76% vs 4.56%’ 등으로 전혀 다른 수치를 보인다.
대법원은 이러한 문제 제기에 대해 “특정 정당의 후보자에 대한 사전투표 득표율이 높거나 낮은 현상이 나타날 수 있고, 그것이 이례적이라거나 비정상적이라고 볼 수도 없다”며 “이후에 실시된 선거에서도 동일하게 관찰되는 현상”이라고 판단했다.
미래통합당의 음모론은 선거에서 나타난 통계적인 특징만을 갖고 음모론을 제기했다는 점에서 2012년 제18대 대선 때 나온 김어준씨의 ‘K값’ 부정선거 음모론과 궤를 같이한다. 김씨는 2017년 개봉한 영화 ‘더 플랜’을 통해 박근혜 당시 후보의 미분류표 비율이 문재인 당시 후보보다 일관되게 1.5배 높게 나타났다며 이를 부정선거의 증거라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김씨는 이후 민주당 후보가 이긴 선거에서는 이런 음모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부정선거 음모론의 ‘근거’가 다시 한번 재생산되기 시작된 건 2023년 10월10일 국가정보원이 중앙선관위에 대한 보안 점검 결과를 발표하면서다. 여기서 나온 음모론 중 하나는 해커가 선관위 선거시스템에 침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해커가 선거시스템에 침투한 흔적이 발견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다만 선관위 직원 1명의 외부 인터넷용 피시(PC)가 악성코드에 감염된 사실이 있으나, 이 악성코드가 내부 업무망이나 선거시스템을 통해 침투한 것은 아니었다.
또한 선관위 서버로 접속할 수 있는 비밀번호가 ‘12345’로 아주 단순해, 중국 해커들이 이를 통해 선거 결과를 조작했다는 음모론도 등장했다. 국정원이 “선관위가 주요 시스템 접속시 단순한 패스워드를 사용하고 있다”며 예시로 ‘12345’와 ‘qwert’ 등을 제시하면서 퍼진 주장이다. 그러나 “해당 프로그램은 선거 사무와 무관한 장비 관리 프로그램이었다”는 게 선관위 실무자의 설명이다.
선관위는 무엇보다 ‘수개표’가 이뤄지는 우리나라 선거에서 부정선거가 가능하다는 건 아니라는 입장이다. 한 선관위 실무자는 “해킹으로 전산정보 조작이 가능하다고 가정해도, 여야 정당 추천 참관인과 경찰, CCTV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개표를 하고 있고, 각 후보에게도 실시간으로 개표 정보가 전달되기 때문에 투표 결과를 조작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대법원의 선고무효소송은 2년 넘게 진행됐다. 재검표를 통해 민 전 의원이 제기한 주장을 모두 검증했고, 심지어 민 전 의원이 추천한 전문가의 감정을 받고 현미경을 사용해 투표지들을 살펴보기도 했다. 그럼에도 민 전 의원 쪽은 소송 기간 내내 부정선거를 누가 했는지조차 밝히지 못하고 ‘성명 불상의 특정인’이라고만 주장했다. 대법원은 “수많은 사람들의 감시하에서 부정한 행위를 몰래 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전산 기술과 해킹 능력뿐만 아니라 대규모의 인력과 조직,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다”며 “그러나 원고는 2년 이상 재판이 진행됐음에도 부정선거를 실행한 주체가 존재했다는 점에 관해 증명을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음모론이 허술하다보니 모순을 드러내기도 했다. 위조됐다고 제시된 투표지에 ‘그들의 편’이 기표돼 있던 것이다. 민 전 의원이 위조 투표지라고 주장한 ‘일장기 투표지’가 294장 발견됐는데, 정작 민 전 의원을 찍은 표(137표)가 다른 후보들(각각 111표, 46표)보다 더 많았다.
이 허술한 음모론을 헌법재판소로 끌고 간 윤석열 쪽도 같은 모순을 반복하고 있다. 2025년 2월18일 헌재에서 열린 윤석열 탄핵심판 9차 변론기일에서 윤석열 쪽 대리인단인 도태우 변호사가 “가짜투표지로 의심받는 투표지들의 사진”이라고 5년 전 제21대 총선 투표지를 찍은 영상을 재생했는데, 이 투표지 역시 제21대 총선에서 민 전 의원을 찍은 투표지였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일인 2024년 4월10일 오후 울산시 남구 문수체육관에 마련된 개표소에서 개표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연합뉴스
선관위 선거정보시스템 자문위원장인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부정선거 의혹 대부분이 제21대 총선 뒤 대법원에서 기각돼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진 내용이다. 이것도 못 믿겠다고 하면, 우리나라 법체계를 부정하는 것”이라며 “또 만에 하나 해킹이 일어났다고 해도, 우리는 수개표하고 실물 용지를 보관하고 있어서 발각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양극화가 심해질수록 사람들이 자기 진영에서 생각하던 거랑 다른 결과가 나오니까 그 이유를 부정선거론에서 찾게 된 것 같다. 자기 진영에 유리한 영상이나 자료만 계속 보고 해명은 듣지 않으니 갈수록 심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채윤태 기자 chai@hani.co.kr·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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