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2월28일 항공촬영한 우크라이나 중서부 지토미르 지역의 티타늄 노천광산 모습. AFP 연합뉴스
우크라이나는 천혜의 곡창지대다. 러시아의 침공 직전 해인 2021년을 기준으로 우크라이나는 지구촌에서 생산된 보리의 18%, 옥수수의 16%, 밀의 12%를 책임졌다. 러시아와 유럽의 완충지대인 우크라이나는 원유와 천연가스 등 러시아산 화석연료가 유럽시장으로 가는 길목이다. 우크라이나 전역에 걸쳐 약 4만5천㎞의 파이프라인이 건설돼 있다. 우크라이나는 광물자원 대국이기도 하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우크라이나 지질조사국과 생태천연자원부가 2024년 펴낸 자료를 보면, 지구 육지 면적의 0.4%를 차지하는 우크라이나는 희토류를 비롯해 전세계 핵심광물자원 매장량의 5%를 보유하고 있다. 티타늄 세계 매장량의 7%를 보유했지만, 현재 채굴이 이뤄지는 광산은 6곳에 그친다. 전기차 배터리 등 이차전지의 핵심 소재인 리튬은 세계 매장량의 3%에 해당하는 약 50만t이 매장됐지만, 개발된 광산이 없이 아직 미채굴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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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5대 매장량(약 1900만t)을 자랑하는 흑연은 오스트레일리아, 튀르키예 기업 등이 진출해 현재 6개 광산이 운영 중이다. 태양광 발전용 패널의 핵심 소재인 코발트 매장량은 9천t 규모로 알려졌다. 니켈 광산도 12개 개발·운영 중이다. 여기에 스칸듐·나이오븀 등 희토류와 핵발전에 필수적인 베릴륨 매장이 확인됐고, 반도체와 태양전지 등에 쓰이는 갈륨도 세계 5위 매장량을 자랑한다. 우라늄 역시 세계 매장량의 2%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2021년 7월 유럽연합과 ‘핵심광물자원 공동 개발을 위한 전략동반자 관계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희토류 등 핵심광물자원에 대한 중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유럽연합 차원의 노력이었다. 폴란드경제연구소(PEI)는 2023년 6월 펴낸 자료에서 “유럽연합은 희토류 수입량의 98%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고 밝혔다. 2022년 2월24일 러시아가 침공하지 않았다면, 우크라이나에선 광물자원 개발이 한창이었을 터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2022년 2월 미래 경제에 사활적인 핵심광물자원 50개를 지정했다. 이 가운데 22개가 우크라이나에 매장돼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 직후부터 우크라이나를 전방위적으로 압박하며 양국 간 ‘광물협정’ 체결을 서두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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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스 시미할 우크라이나 총리는 2월26일 “미국과 핵심광물자원 공동 개발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로이터 통신 등 외신보도를 종합하면, 합의안의 얼개는 대체로 이렇다. 첫째,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광물자원 개발을 위해 공동투자기금을 조성한다. 미국은 초기에 자금을 대고, 우크라이나는 향후 국가가 소유한 원유·천연가스를 비롯한 광물자원 개발을 통해 올린 수입의 50%를 기금에 출연한다. 기금은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공동 운영하며, 향후 우크라이나 내 광물자원 개발을 위한 투자에 활용한다. 양쪽은 우크라이나 재건투자기금도 조성하기로 했다. 기존에 우크라이나 정부가 개발·운영하고 있는 광산은 협정에 포함되지 않는다.
합의안에는 미국이 “항구적 평화를 위해 필요한 안전보장을 얻으려는 우크라이나의 노력을 지지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또 양쪽은 “공동투자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조처”도 취하기로 했다. 다만 미국은 우크라이나 쪽에 구체적인 안전보장 조처를 제시하지 않았다. 합의안은 우크라이나 법무·재무·외교부 등의 승인을 받은 뒤, 우크라이나 의회의 승인을 거치게 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월28일 미국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합의안에 서명할 예정이었지만, ‘백악관 말싸움’ 사건(제1554호 참조)으로 무위에 그쳤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2월22일 파이낸셜타임스에 보낸 기고문에서 “(광물협정 합의안은) 우크라이나의 주권을 방어하기 위해 기여하지 않은 나라는 재건·복구 과정에 참여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고 밝혔다. 광물협정 체결이 우크라이나의 전후 재건·복구 과정까지 염두엔 둔 장기적 포석이란 주장일 터다. 문제는 우크라이나에 매장된 핵심광물자원이 어느 정도나 상업적 가치가 있는지 확실치 않다는 점이다. 미국 전기전자기술자협회(IEEE)는 2025년 3월7일 펴낸 자료에서 “우크라이나의 광물자원 개발은 경제적 효용성이 떨어진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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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진 매장량 추정치 대부분은 멀게는 옛 소련 시절인 1960년대 진행한 지질조사에 바탕한 수치다. 그나마 매장량이 집중된 것으로 알려진 것은 도네츠크·자포리자·키로보흐라드 등 러시아 점령지역과 최전선 지역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와 광물협정 체결을 밀어붙이는 것을 두고 IEEE는 “대통령이 핵심광물자원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저 좋은 거래 조건만 찾는 사업가적 기질을 발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핵심광물자원이 중요하다는 말만 듣고, 순전히 사업적 차원에서 협정 체결을 서두르고 있다”고 꼬집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캐나다와 그린랜드를 합병하겠다고 큰소리치는 이유와 맥을 같이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투자은행 ‘스탠더드앤드푸어스’는 2024년 4월10일 낸 자료에서 “2020~2023년 세계적으로 광물자원 탐지부터 개발 과정을 거쳐 실제 광산 운영을 개시할 때까지 걸린 기간은 평균 17.9년”이라며 “러시아의 한 구리광산은 1986년 탐지를 한 뒤 시추와 수익성 평가, 채광용 시설 건설과 장비 설치 등을 거쳐 2018년 가동에 들어갈 때까지 32년이 걸렸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전기 생산능력의 3분의 2가량은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파괴되거나 심각하게 훼손된 상태란 것도 광물협정 이행의 걸림돌로 꼽힌다. 광물자원 채굴·가공에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한 탓이다. 이 때문에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광물협정을 체결하더라도, 일종의 ‘양해각서’ 수준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지지층을 향해 “우크라이나 전쟁 비용을 되돌려받을 수 있게 됐다”는 주장은 할 수 있을 터다. 당장의 ‘정치적 효과’는 거둘 수 있는 셈이다. 남의 나라 자원을 멋대로 탐하는 건 제국주의의 표상이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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