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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퀸, 추억을 깨우다

고등학교 시절 “온몸의 세포를 깨워준” 영국 록밴드 퀸의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등록 2018-11-03 17:47 수정 2020-05-03 04:29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혈기 넘치는 고등학생 시절, 나는 퀸을 좋아하지 않았다. ‘헤비메탈 키드’였던 나는 거칠고 강렬한 음악만을 좇았고, 말랑하고 팝다운 음악은 괜히 무시하곤 했다. 같은 영국 밴드 중에서 헤비메탈 장르의 탄생에 막대한 기여를 한 레드 제플린과 딥 퍼플은 우상처럼 떠받든 반면, 귀에 꽂히는 멜로디 위주의 음악을 들려준 퀸은 은근히 얕봤다.

퀸에 대한 생각을 조금이나마 바꾸게 된 계기는 우연히 찾아왔다. 학교에서 체육대회를 하는데, 응원가로 퀸의 (Don’t Stop Me Now)를 쓴 것이다. 이 곡에 맞춰 칼 같은 군무를 추는 응원단을 보면서 ‘이 노래가 이렇게 좋았나?’ 생각했다. 온몸의 세포가 깨어나는 느낌이었고, 당장 운동장을 끝없이 질주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과연 영국 《BBC》자동차 전문 프로그램 (Top Gear)가 운전하면서 듣기 가장 좋은 곡으로 꼽을 만했다.

보헤미안에서 천국으로

퀸의 다른 노래들도 조금씩 찾아 듣기 시작할 무렵,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퀸의 보컬리스트 프레디 머큐리가 1991년 11월24일 세상을 떠난 것이다. 사인은 후천면역결핍증(에이즈) 합병증. 그의 나이 45살이었다. 온 세상이 그의 죽음에 애도를 표했지만, 학력고사를 한 달도 채 안 남겨둔 고3 학생은 슬퍼할 겨를조차 없었다.

퀸은 내게 개별 히트곡들로만 존재했다. 그 히트곡들은 끝내주게 좋았다. 다만 노래들의 색깔이 천차만별이었다. (Love Of My Life)로 대표되는 잔잔한 발라드부터 (Bohemian Rhapsody) 같은 웅장한 록오페라, (Another One Bites The Dust)처럼 펑키한 디스코까지, 한 밴드가 발표한 노래들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퀸의 음악적 성취를 헐뜯는 일부 시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 우물을 깊게 파고드는 맛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 생각을 완전히 뒤집은 건 최근이다. 몇 달 전 (정유석 지음, 북피엔스 펴냄)를 읽으면서다. 책에는 ‘퀸 디스코그래피로 보는 퀸의 역사’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1973년 발표한 데뷔 음반 ≪퀸≫(Queen)부터 1995년 발표한 15집 ≪메이드 인 헤븐≫(Made In Heaven)까지 퀸이 내놓은 정규 음반 15장을 중심으로 풀어낸 이야기다. 물론 퀸의 결성 과정부터 프레디 머큐리의 죽음 이후 이야기도 담았다. 이를 통해 퀸이라는 밴드를 몇몇 히트곡이 아닌, 통시적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많은 밴드가 그렇듯 이들도 시작은 변변찮았다. 1970년 팀 스타펠(보컬·베이스), 브라이언 메이(기타), 로저 테일러(드럼)가 ‘스마일’이라는 3인조 밴드를 하고 있었는데, 별 반응이 없자 팀 스타펠이 밴드를 떠났다. 그 자리에 들어온 이가 파록 불사라다. 영국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탄자니아 잔지바르섬에서 인도계 부모에게서 태어난 그는 10대 시절 영국으로 이주했다. 스마일에 들어가면서 그는 이름을 프레디 머큐리로 바꾸고, 밴드 이름도 퀸으로 바꿀 것을 제안한다. 이듬해 존 디콘(베이스)까지 합류하면서 우리가 아는 4인조 퀸이 완성된다.

퀸 1집과 2집은 다소 설익은 느낌을 준다. 만듦새는 헐겁고, 어깨에 힘이 과하게 들어간 지점도 있다. 퀸이 자신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리기 시작한 건 3집 수록곡 (Killer Queen)이 히트하면서다. 록보다는 팝에 가까운, 부드럽고 경쾌한 멜로디의 노래다. 퀸과 계약한 음반사에선 다음에도 이런 스타일의 곡을 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퀸은 정반대의 길로 간다.

4명의 개성이 빚어낸 음악
영국 록밴드 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영국 록밴드 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프레디 머큐리는 2집을 낼 때부터 록오페라를 시도했다. 하지만 그땐 가능성만 보여주는 데 그쳤다. 이후 절치부심해 내놓은 곡이 4집 대표곡 다. 오페라 형식을 빌려 만든 6분짜리 대곡은 녹음에만 3주가 걸렸다. 밴드 멤버가 무려 180차례나 노래를 부르고 또 부르는 식으로 보컬 녹음을 덧입혀 웅장한 합창 파트를 완성했다. 음반 제작자는 곡이 너무 길고 난해하다며 싱글 발표를 반대했지만 퀸 멤버들은 고집을 굽히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엄청난 히트를 기록한다. 퀸을 대표하는 단 하나의 곡을 꼽으라면 단연 다.

이후 퀸은 내는 음반마다 승승장구한다. 5집 (Somebody To Love), 6집 (We Will Rock You), (We Are The Champions), 7집 , 8집 (Crazy Little Thing Called Love), 10집 (Under Pressure), 11집 (Radio Ga Ga) 등 극히 일부 히트곡만 언급해도 지면이 꽉 찰 판이다.

히트곡들의 색깔도 제각각인데, 거기엔 나름의 이유가 있다. 퀸은 멤버 4명 전원이 작곡가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모두 저마다 작곡을 했고, 작곡자에 따라 노래 색깔이 달랐다. 프레디 머큐리는 멜로디 중심 발라드에 강했고, 브라이언 메이는 기타 리프 중심 하드록에 강했다. 로저 테일러는 팝 성향의 로큰롤을 잘 만들었고, 존 디콘은 리듬 중심 디스코와 솔 등 흑인음악으로까지 확장했다. 이처럼 다른 4명의 개성이 부딪히고 때론 조화를 이루며 퀸의 음악을 빚어낸 것이다.

10월31일 개봉한 퀸 전기영화 를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온다. 멤버들 사이가 틀어진 이후 프레디 머큐리는 밴드를 떠나 솔로 작업에 매진한다. 그러다 뭔가를 깨닫고 다시 밴드로 돌아와 이런 말을 한다. “솔로 작업을 할 때 모두 내 말대로만 했어. 너희처럼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어. 난 너희가 필요해. 너희도 내가 필요하고.” 퀸이 위대한 이유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쇼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영화는 1985년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자선공연 ‘라이브 에이드’ 장면으로 마무리한다. 퀸은 단 20분간의 무대로 7만여 관객과 생중계로 지켜보던 전세계 시청자를 홀렸다. 무대를 마친 프레디 머큐리가 밴드 멤버들을 돌아보는 장면에서 영화는 멈춘다. 순간 엔딩곡으로 흐르는 (날 지금 막지 말아줘)는 그의 심경을 대변하는 듯하다. 이어 마지막 엔딩곡 (The Show Must Go On·쇼는 계속돼야 한다)이 흐른다. 1991년 프레디 머큐리가 죽기 직전에 낸 14집 수록곡이다. 걷기조차 힘들 정도로 건강이 악화된 그는 보드카 한잔을 들이켜고 이 노래를 단 한 번 만에 녹음했다고 한다. 그는 이제 여기 없지만, 쇼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서정민 문화부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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