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에 가면 밤마다 크고 작은 파티가 열린다. ‘씨제이(CJ)의 밤’ ‘롯데의 밤’ ‘한국 영화 감독의 밤’ 하는 식이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대체로 이런 파티에 가면 복잡하고 정신이 없다. 감독, 배우, 제작자 등 영화 관계자가 한꺼번에 몰렸다가 다른 파티에 가기 위해 우르르 빠져나가기 일쑤다. 여기저기 인사하고 명함을 돌리다보면 나중엔 누굴 만났는지 가물가물할 지경이 되고 만다. 서울로 돌아와 명함을 정리할 때 이름과 얼굴이 잘 연결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김의성이 명함처럼 전해준 티켓 하나나는 작은 모임이 좋다. 친한 사람들과 회포를 푸는 것이 좋고, 덜 가까웠던 사람들과 좀더 깊은 얘기를 하며 가까워지는 것이 좋고, 처음 만난 사람들과 서로 알아가는 것이 좋다. 해운대 술집을 여기저기 옮겨다니다보면, 옆 테이블에서 누군가를 또 만나게 된다. 자연스럽게 합석해 어울리면 아무리 많은 사람을 만나도 다음에 기억 못하는 일은 없다.
10월3~6일 부산국제영화제에 다녀왔다. 첫째 날부터 새벽 늦게까지 술자리가 이어졌다. 다음날 오전부터 영화를 보고 기사를 쓰려면 일찍 자는 게 좋지만, 몸은 힘들어도 마음이 즐거우니 기꺼이 강행군을 자처한다. 둘째 날은 저녁 늦게까지 일정을 소화하고 부산국제영화제 공식 파티에 갔다. ‘F1963’이라는 거대한 복합문화 공간이었는데, 디제이가 일렉트로닉댄스뮤직(EDM)을 틀고 바텐더들이 칵테일을 만들어주는 트렌디한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늦게 가니 사람들이 거의 다 빠져나가고 한산했다.
약간은 뻘쭘하게 사람들과 인사하며 칵테일을 홀짝이는데, 배우 김의성이 들어왔다. 그는 사람들에게 인사하며 허리춤에 찬 작은 배낭에서 뭔가를 꺼내주었다. 나도 하나 받아서 명함인가 하고 자세히 봤더니 아니었다. ‘부산항 퐈이어, 김의성과 친구들의 파티 올 나잇’이라고 적힌 초대장이었다. 다음날 밤 10시부터 열려 언제 끝날지 모른다고 쓰여 있었다. 출연진이 끌렸다. 김의성은 물론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백현진, 디제이 모임별, 디제이 타이거디스코 등의 이름이 보였다. 무조건 가야지 했다가 장소를 보니 해운대 근처가 아니었다. 초창기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렸던 남포동 인근에 있는 카페 노티스로, 꽤 먼 거리였다.
다음날 영화의전당에서 일정을 마치니 밤 10시가 넘었다. 곧바로 택시를 타고 카페 노티스로 넘어가도 1시간 가까이 걸릴 판이었다. 피곤했고 다음날 오전 일찍 예정된 일정도 걱정됐다. 결국 안 가기로 하고 숙소와 가까운 해운대시장에서 지인과 둘이 조촐한 술자리를 갖기로 했다. 곰장어와 곱창을 안주로 ‘대선 소주’ 몇 병을 비우고 일어나는데, 문득 ‘부산항 퐈이어’가 내게 불길을 뿜어내며 손짓하는 환영이 보였다. 머리로는 ‘들어가 자야 하는데…’ 하면서 몸은 택시를 잡아타고 있었다.
열심히 떠들 때 젓가락은 천천히 낙하하고혼자 도착한 그곳은 후끈했다. 배우보다 음악가가 더 많이 눈에 띄었다. 아쉽게도 타이거디스코의 복고 음악 디제잉은 끝난 뒤였다.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도 공연을 마친 뒤였다. 그래도 다들 캔맥주를 손에 들고 여흥을 즐기고 있었다.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의 조웅과 싱어송라이터 백현진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알고 지내던 음악회사 직원과 독립영화 프로듀서도 보였고, 서울 홍익대 앞 음악바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알게 된 지인도 만났다. 카페 뒷마당에서 그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자니 여기가 홍대 앞인지 부산인지 가늠되지 않았다.
잠시 뒤 백현진의 무대가 시작됐다. 김오키(색소폰), 이태훈(기타), 진수영(키보드)과 함께 선보인 무대는 전형적인 파티 음악은 아니었다. 어둡고 느리고 축 처지는 노래가 대부분이었는데, 묘하게 파티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 심해에서 헤엄치는 기분을 느끼며 음악에 더 깊이 젖어들었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듯한 표정이었다. 파티가 늘 밝고 흥겨워야 한다는 법은 없다. 얼룩무늬 군복을 입고 맨발에 슬리퍼를 신은 채 의자에 무심하게 앉아 있다가 때가 되면 스윽 치고 들어오는 김오키의 색소폰 연주는 나른했고, 조곤조곤 속삭이는 듯한 이태훈의 기타 연주는 아름다우면서도 몽롱했다. 김의성은 무대 맨 앞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백현진의 노래 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돼지기름이 흰 소매에 튀고/ 젓가락 한 벌이 낙하를 할 때/ 네가 부끄럽게 고백한 말들/ 내가 사려 깊게 대답한 말들/ 사실 내가 술을 너무 많이 먹어 기억이 안 납니다.” 그가 이 노래를 부르는 순간, 나는 노랫말 속 그 느낌을 너무나 잘 알 것 같았다. 막창이 지글대는 철판에서 돼지기름이 튀고 술에 취해 잘못 건드린 젓가락이 낙하하는 게 슬로비디오처럼 보일 때, 우리는 뭔가 중요한 말들을 열심히 하고 있었지만 다음날이 되면 무슨 얘기를 했는지 도통 기억이 안 날 것 같은 그 기분. 나는 바로 그런 기분에 취해 있었다. 물론 정말 기억이 안 나는 건 아니다. 그랬다면 이 글을 쓰지도 못했을 것이다.
한쪽에는 다이나믹듀오 멤버 최자와 개코도 있었다. 사람들에 둘러싸여 파티를 즐기던 그들은 예정에 없던 즉흥공연을 펼치기 시작했다. 흥겨운 힙합 리듬에 이번에는 사람들이 손을 치켜들고 위아래로 까딱까딱하며 비트 위에 올라탔다. 순식간에 힙합 클럽으로 변신한 그곳에 아쉬움을 묻어두고 택시를 탔다. 왕복 택시비로 4만원 넘게 나왔지만, 그곳에서의 경험은 돈으로 따질 수 없었다. 다음날 일찍 일어나 웨인 왕 감독의 영화를 보고,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는 좌석이 없어 내내 서서 와야 했지만 전날 받은 에너지로 버틸 수 있었다. 그날 해운대시장에서 헤어져 다른 술자리에 갔던 지인은 뒤늦게 그곳 분위기를 전해 듣고 가슴을 치며 후회했다. “거길 따라가야 했는데….”
개성 있는 파티들이 생겨나듯이어느 해인가 대기업 계열 영화투자배급사가 호텔 클럽에서 아이돌 가수를 불러 호화로운 파티를 열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2014년 영화 상영을 둘러싸고 벌어진 외압 사태로 고초를 겪은 이후 호화 파티는 사라졌다. 대신 소박하면서도 개성 있는 파티가 여럿 생겨났다. 크고 작은 파티들이 각기 색깔을 뽐내며 공존하듯이, 큰 상업영화와 작은 독립영화가 상생하는 한국 영화계가 됐으면, 되살아난 부산국제영화제가 다리 구실을 했으면 하는 생각을 서울행 기차에서 했다.
부산=글·사진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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