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혈사제2’가 돌아왔다. ‘분조장’(분노조절장애) 신부 김해일(김남길)과 검사 박경선(이하늬), 형사 구대영(김성균), 수녀 김인경(백지원), 신부 한성규(전성우), 그리고 쏭삭(안창환)과 오요한(고규필)도 함께 돌아왔다. 시즌2는 교황으로부터 ‘벨라또’의 사명을 부여받은 해일이 ‘꼬메스’들과 함께 악을 소탕하는 이야기다.(벨라또는 “살인을 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완력으로 정의를 구현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제를 의미하며 꼬메스는 벨라또를 돕는 조력자) B급 코미디 속에 사회문제를 뾰족하게 숨겨둔 전작과 비슷하게 코미디 드라마로서의 길을 잃지 않으면서 이번에는 마약 카르텔 문제를 다룬다.
자신이 아끼던 어린 복사(미사 때 사제를 돕는 사람) 이상연(문우진)이 쓰러져 의식불명 상태가 되자 해일은 원인을 찾다가 거대 마약 조직이 연루됐음을 알게 되고, 그들의 거점인 부산으로 향한다. 부산에는 이미 검찰과 경찰이 마약과의 ‘전쟁’이 아니라, 마약 조직과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게 다가 아니다. 동남아시아 마약 지대(골든트라이앵글)에서 가장 악명 높은 마약 카르텔의 전투조 수장인 김홍식(성준)이 자신만의 마약 카르텔 왕국을 만들겠다는 야망을 품고 고향인 부산으로 돌아온다. 마약 조직은 폐선박을 활용한 공장에서 마약을 제조해 유통하고, 이 과정에서 독거노인이나 청소년 등 경제적으로 취약한 이들이 저렴하게 노동 착취를 당하다 마약에 중독되는 일이 빈번해졌다. 상연뿐 아니라, 독거노인 송금심(변중희)도 마약을 제조하는 공장에 다니다 사망한다. 마약이 대량 생산 체계를 갖추고 유통망을 확보하게 되면서 평범한 시민들의 일상과 생명을 위협한다는 설정은 마약이 대중 속으로 파고들고 있는 현실 세계의 문제를 반영한 것이다.
악이 더 강력해진 만큼 코미디도 강화됐다. 시즌1에서 결성된 ‘구벤저스’의 활약도 여전하고, 부산경찰청 마약수사대 형사 구자영(김형서)과 시즌1에서는 빌런이었지만 개과천선하여 러시아인에서 한국인으로 귀화한 고독성(김원해) 등이 새롭게 합류해 만들어가는 ‘케미’ 또한 좋다. 그러나 해일을 비롯해 비겁하고 속물적인 인물들이 각성하여 정의를 구현하는 과정이 촘촘하게 연결된 시즌1에 비해 서사 구성은 헐거워졌다. 서사적 완결성보다는 ‘코믹차력쇼’ 같은 면이 강해졌다. 웃긴 게 나쁜 것은 아니지만, 진지함과 웃김의 밸런스가 붕괴됐다고나 할까. 어떤 장면에서는 코미디가 강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미친 세상 내가 먼저 미쳐야 이기거든요”라던 ‘김과장’의 말처럼, 감당하기 힘든 악 앞에서 먼저 미쳐버리기라도 한 걸까? 이런 시즌2의 강박적 코미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박재범 작가의 전작들, 그중 이른바 ‘정의 시리즈’로 분류되는 ‘김과장’(KBS2), ‘열혈사제’(SBS), ‘빈센조’(tvN)의 변화 양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내가 지친 상태이다보니 기분이 좋아지는 코미디를 하고 싶었어요.” 범죄 수사극 시리즈와 휴먼 메디컬물을 쓰던 박재범 작가는 코미디 드라마를 쓰게 된 이유를 이렇게 회고한다. ‘정의 시리즈’의 첫 작품 ‘김과장’은 이렇게 “지친 상태”에서 시작된다. 그래서인지 ‘김과장’은 발랄하고 가벼운 포장에 비해 내면은 꽤 복잡하다. 김성룡(남궁민)은 의롭기만 했던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한 후 ‘삥땅’으로 크게 한몫 챙겨 덴마크로 이민 갈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런 성룡이 마지막으로 크게 한탕 할 곳으로 정하고 입사한 티큐(TQ)그룹은 알고 보니 온갖 부정부패의 집합체였다. 성룡은 계획과는 다르게 동료들과 함께 불의와 싸워 승리한다.
2년 뒤 선보인 ‘열혈사제’에서도 각성한 개인이 ‘진정성 있는 또라이’가 되어 불의한 시스템에 대항해 변화시킨다는 서사의 기조가 유지된다. 해일은 원래 국정원 대테러 특수팀 요원이었다. 위르키스탄 반군 테러단에 붙잡힌 한국봉사단원들을 구출하던 중 성전 안에 있던 죄 없는 아이들이 모두 죽는 폭발 사고를 겪은 뒤 죄책감에 폐인처럼 살다가 신부가 된 것이다. “성자에게도 과거가 있고, 죄인에게도 미래는 있다”는 해일의 말처럼, ‘성자의 과거’를 표상한 인물인 셈이다. 아버지처럼 여기던 신부가 억울하게 사망한 뒤 각성한 해일은 동료의 죽음 이후 비리에 눈감는 형사가 된 대영, 성공하기 위해 비리 카르텔에 가담한 검사 경선, 상습적으로 뇌물을 받던 비리 형사 등 불의한 세상 한가운데서 “다 알면서 눈감고 있는 자들”을 일깨운다. 그들과 함께 정의를 실현한다. 드라마는 처음부터 정의로운 사명을 가진 이들보다는, 눈감고 있는 자들을 깨워 함께 가고자 노력하는 누군가와, 그런 노력으로 마침내 자신의 의지로 눈을 뜨게 된 이들이 불의로부터 사회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을 희망적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종교인이어야 했을 것이다. 종교는 인간의 변화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는 영역이니까. 해일은 그런 죄인들의 양심을 끊임없이 자극하며 동료로 만들고, 사회적 소통이 어려운 편의점 알바 청년, 외국인 노동자 등 소외된 이들과 함께 불의에 대항한다.
‘열혈사제’까지만 해도 작가는 인간과 사회에 관해 낙관적이었던 것 같다.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도 알지 못한 ‘선함’이 있고, 결국 그 선함의 힘으로 악함을 이길 수 있으며, 악한 인간에게도 여전히 갱생의 기회와 가능성이 있다는 걸 믿는 낙관 말이다.
다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하고 떠난 ‘열혈사제’보다 먼저 우리에게 도착한 것은 ‘빈센조’였다. ‘빈센조’에서도 코미디 드라마로서의 장르적 특징은 유지됐지만, 낙관보다는 비관이 더 짙어졌다. “이탈리아는 마피아들만 마피아 짓 하죠? 근데 어쩌죠? 한국은 전부 다 마피아예요. 국회, 검찰, 경찰, 관공서, 기업 전부 다요!”라는 변호사 홍차영(전여빈)의 말처럼 작가는 사회를 마피아, 즉 범죄 조직으로 규정한다. 누가 그 마피아에 대항해 싸울 수 있을까? 작가의 대답은 마피아였다. “끈질기게 싸우면 사람도 괴물을 이길 수 있다”는 낙관 대신 괴물을 이길 괴물, 악을 청소할 악을 선택한 것이다. 정의로운 개인이 사라지고 사제가 자리를 비운 자리에.
이런 변화는 사회의 변화에 대한 작가의 응답이기도 했다. 한 인터뷰에서 작가는 말했다. “‘김과장’ 때는 그래도 일말의 낙관이 있었다면 ‘빈센조’를 쓸 즈음엔 회의적이랄까, 비관론에서 벗어나기 힘든 상황이 됐어요. (…) 마피아라는 일종의 장르적 판타지를 택한 건 도저히 해결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반작용인 셈이죠. ‘과정의 올바름을 믿다가 놓쳐버린 것이 너무 많아. 이제 너희를 응원하지 않을 거야’라는 나름의 선언이기도 합니다. 이제 햄릿형의 성장형 주인공은 더 이상 그리고 싶지 않아요. 답답하니까요. 어쩌면 ‘빈센조’의 과격한 판타지는 작가로서 내가 느낀 낙담의 끝이기도 합니다. 나쁜 놈들은 너무 강하고 이제는 웬만큼 성장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거든요. 그 절망의 끝자락에 빈센조라는 마지막 답변이 나왔습니다. ‘빈센조’를 마치고 난 뒤엔 더 강한 저항이 가능할지, 의미가 있을지 고민 중입니다.”
작가의 고민은 해일과 빈센조의 말에서도 드러난다. “내가 꿈꾸는 하느님 나라는 그리 멀리 있지 않았다. 상처를 가진 이들이 서로의 것을 보듬고 선과 벽을 넘어 함께 살아가며 다른 세상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 세상.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 하느님 나라 안에서도 나는 계속 분노할 것이다. 죄인들에게 올바른 목적을 갖고 올바른 방식으로. 내가 어디에서 무엇으로 존재하든 이것은 나의 운명이자 사명일 것.” 해일은 “올바른 목적”과 “올바른 방식”을 통한 정의 실현을 강조한다. 그 이후에 등장한 빈센조는 이렇게 말한다. “난 여전히 악당이며 정의에는 관심도 없다. 정의는 공허하며 나약하다. 무자비한 정의가 세상에 존재한다면 기꺼이 져줄 용의가 있다. 악당도 평화로운 세상에 살고 싶으니까. 하지만 그런 세상은 없기 때문에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쓰레기를 치우는 것. 쓰레기를 치우지 않으면 깔려 죽으니까.” 변화와 갱생의 가능성이 사라진 사회에서 그저 “쓰레기를 치우는 것”이 정의가 된 것이다.
‘열혈사제2’는 시즌1의 연장일까? ‘빈센조’에 대한 대답일까? 겉면은 전자지만, 내면은 (아직까지는) 후자에 가까운 것 같다. 악은 더욱 무자비해졌고, 무고한 약자들의 생명까지 위험해졌다. 인간의 탈을 쓴 악은 생명을 아무렇지 않게 여길 뿐 아니라, 성모상을 불태우고 신학교를 폭력으로 진압함으로써 신의 영역마저 침탈한다. 설상가상으로 해일은 ‘다발성 경화증’이라는 병까지 가지게된다. “악마들이 만든 천국”에서 손상된 정의가 안간힘을 쓰며 버티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 제정신으로 산다는 게 가능할까? 그렇기에 ‘열혈사제2’의 강박적 코미디가 이해도 된다. 그 웃음은 도리어 깊은 무력감과 우울감의 신호일지도 모른다.
희망은 완전히 사라진 걸까? 작가는 벨라또와 꼬메스 외에 그들이 위험에 처했을 때 돕는 수호자 ‘파우토’라는 존재가 있다는 걸 알려준다. 파우토는 공기처럼 존재하기에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경선의 눈에만 보이는 (귀)신일 수도 있고, 견고한 악의 카르텔에 짓눌려 무기력하게 지내는 누군가일 수도 있다. 아니면 신의 다급한 개입일 수도. 파우토가 드러날 순간을 기다리며 부담스러운 B급 코미디의 세례와 개연성도 없이 수준 낮은 드라마와 같은 파국적 현실이 주는 고통을 견뎌보기로 한다.
오수경 자유기고가·‘드라마의 말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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