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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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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과 저승의 합동무대

퀸 첫 단독 내한공연, 부활한 프레디 머큐리와 함께한 ‘떼창’
등록 2020-02-01 15:58 수정 2020-05-03 04:29
1월18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그룹 퀸의 첫 단독 내한공연에서 브라이언 메이가 기타를 연주하고 있다. 현대카드 제공

1월18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그룹 퀸의 첫 단독 내한공연에서 브라이언 메이가 기타를 연주하고 있다. 현대카드 제공

지난 1월18일 저녁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그룹 퀸의 첫 단독 내한공연. 다른 멤버들이 갑자기 사라지고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만이 홀로 무대에 남았다. 그의 품에는 어쿠스틱기타가 안겨 있었다. 그가 기타를 치며 를 부르자 2만3천여 관객도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떼창’을 시작했다. 관객이 흔드는 휴대전화 불빛이 은하수처럼 반짝였다.

‘머큐리가 이 장면을 본다면 얼마나 좋아했을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퀸의 보컬리스트 프레디 머큐리는 생전에 관객과 함께 호흡하는 걸 즐겼다. 2018년 개봉한 영화 를 보면, 퀸의 공연에서 관객 수만 명이 를 따라 부르는 영상을 텔레비전으로 본 머큐리가 아이처럼 행복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가 만약 이 자리에 있었다면 행복의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괜히 내 눈시울이 붉어졌다.

거짓말처럼, 머큐리가 나타나다

순간 거짓말 같은 일이 벌어졌다. 프레디 머큐리가 나타난 것이다. 무대 위 대형 스크린에 그가 있었다. 그는 브라이언 메이의 기타 연주에 맞춰 를 불렀다. 직전까지 떼창을 하던 관객은 잠시 숨을 죽이고 그의 노래에 집중했다. 실제 무대에는 메이 홀로 있었지만, 스크린에선 둘이 나란히 서서 함께 공연하는 것처럼 보였다. 기타를 치는 메이는 백발의 70대 노인이 되었건만, 노래하는 머큐리는 1991년 세상을 뜨기 전 모습 그대로였다. 30년 세월을 건너뛴 두 사람의 합동무대에 관객이 다시 떼창으로 화답했다.

관객의 떼창에 힘이 났는지 머큐리가 손으로 자기 허벅지를 세 차례 두드렸다. 옆에 선 메이도 이를 이어받아 손으로 자기 허벅지를 세 차례 두드렸다. 미리 짠 것처럼 호흡이 척척 맞았다. 노래를 마친 머큐리는 뒤돌아 걸었다. 그의 뒷모습이 점점 작아지며 시야에서 멀어졌다. 자리에 남은 메이는 그를 향해 손을 치켜들어 작별 인사를 했다. 관객도 커다란 환호와 박수로 그를 보내주었다. 머큐리의 빈자리는 미국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 가수 애덤 램버트가 다시 채우며 공연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잠깐 나왔다 사라진 머큐리의 잔향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산 자와 죽은 자의 합동무대, 이승과 저승의 컬래버레이션(협업)은 각별한 감동을 준다. 그게 가족 간의 무대라면 더욱 그렇다. 재즈 보컬리스트 내털리 콜은 1991년 《언포게터블: 위드 러브》 앨범을 발표했다. 앨범 맨 마지막 곡은 인데, 특이한 건 그의 아버지 냇 킹 콜과의 듀엣 버전이었다는 점이다. 전설적인 재즈 보컬리스트 냇 킹 콜은 1951년 이 노래를 처음 발표했다. 중저음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부른 달콤한 사랑 노래는 피부색을 가리지 않고 두루 사랑받았다. 냇 킹 콜은 40대 중반인 1965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당시 그의 딸 내털리 콜은 15살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둘이 실제로 노래를 함께 부르지 않았다는 건 자명해진다.

홀로그램으로 되살린 뮤지션들

부녀의 듀엣 버전은 녹음 기술 덕분에 가능했다. 아버지가 부른 노래에다 딸의 노래를 입혀 듀엣처럼 들리게 만들었다. 내털리 콜의 이 앨범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고, 이듬해 그래미 시상식에서 ‘올해의 앨범’ ‘올해의 레코드’ 등 6개 부문을 휩쓸었다. 그래미 시상식 축하무대에서 그는 특별한 공연을 선사했다. 아버지와의 듀엣을 무대에서 구현한 것이다. 냇 킹 콜은 무대 뒤 스크린 속에서, 내털리 콜은 무대 위에서 노래하며 부녀의 완벽한 호흡을 선보였다. 내털리 콜의 시도 이후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잇따랐다. 프레디 머큐리가 등장한 퀸의 무대도 연장선상이라 할 수 있다. 머큐리가 세상을 떠난 해인 1991년 내털리 콜의 이 앨범이 발표됐다는 사실이 공교롭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무대가 연출된 적이 있다. 2018년 8월22일 서울 상암동 K라이브 공연장에서다. 전주가 흐르는가 싶더니 갑자기 눈앞에 유재하가 등장했다. 1987년 8월 데뷔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를 낸 지 석 달도 채 안 된 11월1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강변북로 인근에서 일어난 교통사고로 세상을 뜬 그다. 유재하 곁에는 보컬그룹 스윗소로우 멤버 셋이 나란히 서 있었다. 그들은 유재하가 부르는 노래에 코러스를 넣으며 뒤를 받쳤다. 스윗소로우는 유재하 사후 생겨난 유재하음악경연대회 출신이다. 현실적으로는 이뤄질 수 없는 합동무대가 가능했던 건 홀로그램 기술 덕분이었다. 빅뱅, 싸이 등 홀로그램 공연을 선보인 바 있는 케이티(KT)는 자회사 지니뮤직과 함께 유재하를 홀로그램으로 되살리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무대 양옆으로 펼쳐진 스크린에서 특별한 영상이 나왔다. 거기선 김종진(기타)·송홍섭(베이스)·정원영(건반)이 을 연주했다. 유재하가 솔로앨범을 내기 직전까지 함께 밴드 활동을 했던 이들이다. 유재하의 목소리와 이들의 연주는 애초에 하나였던 것처럼 잘 어우러졌다. 다만 무대 위 유재하는 젊었고, 스크린 속 세 남자는 중후했다. 유재하는 생전에 자신의 솔로 곡을 라이브로 공연한 적이 없었다. 텔레비전 가요 프로그램 출연도 딱 한 차례 했을 뿐이다. 그는 사후 30여 년 만에 홀로그램으로 부활해 동료·후배 음악가들과 함께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넘어선 합동무대를 선보였다. 불가능한 걸 가능하게 만든 기술 자체보다, 이런 무대를 상상하고 끝내 이뤄냈다는 점이 더욱 감격스러웠다.

실제가 아니라도 괜찮아

퀸 내한공연 앙코르 무대 때였다. 스크린에 프레디 머큐리가 다시 등장했다. 그가 “에~오” 하고 노래하자 관객이 기다렸다는 듯이 “에∼오” 하고 화답했다. 머큐리와 관객은 영화 속 라이브에이드 공연 장면처럼 한참 동안 애드리브 노래를 주고받았다. 나도 고래고래 목청을 높이며 동참했다. 홀로그램 같은 거창한 기술이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적어도 그 순간만은 머큐리와 함께 숨 쉬고 노래하는 것 같았다. 실제가 아닌 걸 알면서도 실제라 믿고 싶어 하는 염원이 빚어낸 감동이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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