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뭐 볼까, 뭐 읽을까, 고민 타파!

한겨레21 기자 추천 설 연휴 즐길 콘텐츠…애니메이션·단막극·몰아보기용 시리즈까지
등록 2025-01-18 09:03 수정 2025-01-23 13:12

달력에 붉은 숫자가 연이어 있으면, 설렘도 함께 온다. 그동안 못했던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다. 명절 연휴, 뭐 보고, 뭐 읽고, 뭐 들을지 생각하는 것도 소소한 재미다. 한겨레21 기자들이 각자 명절 연휴에 즐겨온 콘텐츠, 즐기고 싶은 콘텐츠를 추천한다. ‘아, 그때 그거 봤지’ 2025년 첫 명절의 기억을 색다른 콘텐츠로도 채워볼 수 있겠다. _편집자

몽실몽실, 방울방울… 다카하타 이사오의 궤적을 따라
인간의 환경파괴에 맞선 너구리들의 투쟁을 풍자와 익살의 문법으로 그린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의 한 장면. 한겨레 자료

인간의 환경파괴에 맞선 너구리들의 투쟁을 풍자와 익살의 문법으로 그린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의 한 장면. 한겨레 자료


명절 연휴 때면 ‘스튜디오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을 보고는 한다. 사색과 서정의 뫼비우스적인 시간을 즐긴다. 물론 모든 작품을 다 볼 수는 없다. 그때그때 콘셉트와 범주가 필요하다.

지브리 역사에서 정사의 주인공은 미야자키 하야오다. 야사의 주인공은 다카하타 이사오(1935~2018)다. 다카하타도 일본의 대표적인 애니메이션 감독이지만, 그의 필모그래피는 풍운아 같은 궤적을 그린다. 흥행에서는 성공보다 실패가 많았고, 이 때문에 공백기도 잦았다. 하지만 태작은 없다. 하나같이 수작이다. 두 거장의 작풍은 닮은 듯 사뭇 다르다. 차이는 주인공 여성 청소년의 캐릭터에 응축된다. 미야자키는 단정하게, 다카하타는 말괄량이로 주로 그렸다. 다카하타 작품을 볼 때면 마음이 한결 몽실몽실해진다. 지브리 의장 스즈키 도시오는 “미야자키는 (여성을) 동경했고, 다카하타는 존중했다”고 평가한 바 있다.

다카하타의 대표작으로 ‘반딧불이의 묘’(1988), ‘추억은 방울방울’(1991),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1994)을 꼽을 만하다. 모두 오티티(OTT)에 올라와 있다. 설 연휴에는 그의 1970년대 티브이(TV) 시리즈물을 보려 한다. 
안영춘 선임기자 jona@hani.co.kr

콩조림, 오세치 요리… 오늘 뭐 먹지? 
‘어제 뭐 먹었어?’ 극장판 주인공 커플과 친구 커 플이 식사하는 장면. 티빙 갈무리

‘어제 뭐 먹었어?’ 극장판 주인공 커플과 친구 커 플이 식사하는 장면. 티빙 갈무리


‘서양골동양과자점’ ‘오오쿠’ 등으로 한국에서도 팬층이 두꺼운 만화가 요시나가 후미의 대표작 ‘어제 뭐 먹었어?’. 만화 시리즈물과 오티티(OTT)가 있다. 약한 ‘비엘’(BL·보이스러브) 장르에 속하지만 ‘해먹는 일상’의 소중함과 관계를 다룬 휴먼드라마라고 보는 편이 나을 듯.

작은 법률사무소에 다니는 변호사 시로의 하루는 오직 칼퇴근이 목표. 소소하게 장을 봐서 미용사인 연인 켄지와 저녁을 해먹는 것이 낙이고, 돈이나 명예에도 관심이 전혀 없다. 원작 만화엔 수많은 음식이 등장하는데 그대로 따라 조리하는 것이 독자 사이에서 유행일 정도로 레시피가 자세하다. 새해에 먹는 콩조림(한국 콩자반과 비슷하지만 통통해질 때까지 오래 졸이는 것이 특징), 오세치 요리 등도 볼거리다. 퓨전 한국 요리, 서양 요리, 베이킹 등 다양한 요리가 나오는데 양국의 식문화를 비교하는 재미는 보너스.

게이오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작가의 전공을 살려 국민참여재판이나 동성결혼의 법적 쟁점도 에피소드로 다룬다. 40대이던 주인공들이 50대가 되고 주인공의 부모들이 요양원에 들어가는 등 돌봄과 죽음을 고민하는 모습도 보인다. 만화와 OTT물의 인물들은 상당히 닮았는데 배우 니시지마 히데토시가 연기한 시로씨가 만화보다 연인에게 더 자상하다. 니시지마는 칸 영화제 각본상을 받은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보여준 진지한 연기와는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야알못’도 ‘야덕’도 다 좋아


“아! 야구 언제 해! 야구 보고 싶다고!” 2025년 프로야구 개막을 손꼽아 기다리는 팬(애호가)들이 주변 사람들을 붙잡고 울분을 토하고 있다. 내가 응원하는 팀이 2024년 ‘가을 야구’에 진출하지 못한 팬일수록 애탄다. 개막일인 3월22일까지 무려! 약 두 달이나 남았다.(설 연휴 기준) 프로야구 개막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또 있다. ‘2024년 프로야구가 사상 첫 1천만 관중 시대를 열었다는데, 나도 프로야구에 관심을 가져볼까?’ 그러면서 기본 경기 규칙과 용어를 익히고, 내가 사는 지역을 연고지로 하는 구단이 있는지를 탐색하며 생애 첫 ‘직관’(직접 관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이 속 타면서도 설레는 시간을 달랠 방법이 뭐가 있을까? 책 ‘무진시 야구장 사람들’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만년 2군 선수, 불펜(투수들이 경기 전에 몸을 푸는 구역) 포수와 한때 잘나가던 외국인 투수, ‘꼬깔콘 아줌마’로 불리며 구단 단장도 쩔쩔맬 만큼 열성적인 관중, 구단 치어리더와 운영팀 직원 등 야구와 연을 맺은 각양각색 사람들 사연이 실려 있다. 나 같은 ‘야알못’은 물론, 프로야구를 보는 눈을 조금 더 키우고 싶은 분에게도 도움이 될 책이다. 앞으로 경기 분석 기사를 매의 눈으로 볼 분들이라면 특히 소설 속 ‘용 단장’ 이야기에 주목해보자.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당신이 주목할 ‘단막극’은?
티브이엔(tvN)의 단막극 ‘스톡오브하이스쿨’과 한국방송(KBS) 단막극 ‘양들의 침묵’ 포스터.

티브이엔(tvN)의 단막극 ‘스톡오브하이스쿨’과 한국방송(KBS) 단막극 ‘양들의 침묵’ 포스터.


가장 트렌디하고 발랄, 발칙한 아이디어는 바로 단막극에서 펼쳐진다. 단막극은 그동안 신인 드라마 작가의 등용문이자, 연출가의 실험 무대로 명맥은 이어오고 있지만, 숏폼, 오티티(OTT) 열풍 속에서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다시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짧지만 탄탄한 작품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연휴에 추천하는 작품 두 편을 꼽아봤다. 티브이엔(tvN)에서 2022년 7월에 방영한 단막극 ‘스톡오브하이스쿨’은 ‘흙수저’ 여고생이 교내에서 주식 열풍을 일으키고, ‘금수저’ 동급생에 맞서 주식 시장에서의 성공을 노리는 성장기다. 고등학생들의 발랄함과 주식 시장의 엄혹함이 동시에 녹아 있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한국방송(KBS)에서 2022년 12월에 방영한 ‘양들의 침묵’은 현실에서도 계속해서 벌어지는 군 성폭력을 직시하고 있다. 여성 군인들이 상관의 압력을 이겨내고 목소리를 내는 내용이다. 주인공 여성 대위의 심리 묘사가 탁월하다. 각 지상파 방송사들이 비정기적으로 공모전에서 당선된 단막극을 상영하고 있다. 두 작품 외에도 웨이브, 티빙 등 OTT에서 나만의 단막극을 찾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번 연휴에 단막극 몰아보기는 어떨지.
채윤태 기자 chai@hani.co.kr

 

이런 ‘팀워크’ 또 없다
드라마 시리즈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넷플릭스 제공

드라마 시리즈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넷플릭스 제공


미국 로스앤젤레스(LA)타임스의 범죄담당기자 출신 베스트셀러 작가인 마이클 코넬리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넷플릭스 드라마 시리즈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형사 사건 전문 변호사인 미키 할러가 주인공으로, 할러는 엘에이 전역을 링컨 차를 타고 돌아다니며 업무를 보고, 실체적 진실과 상관없이 오직 법정에서의 승리를 위해서만 행동하는 속물적 모습을 보인다. 다만 할러는 미국 사법 시스템의 공백을 기가 막히게 찾아내고, 배심원들을 설득하거나 증인들로부터 유리한 진술을 끌어내는 데 탁월한 솜씨를 보여주며 의뢰인에게 거듭 승리를 안긴다. 이 과정에서 생명을 위협당하는 사건에도 종종 휘말린다.

드라마 시리즈는 원작이나 원작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와 달리 할러 주변 캐릭터들에게 입체성을 부여해 흥미를 더한다. 할러의 전 부인이자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으로 할러의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하는 로나, 사건 현장에서 궂은일을 도맡아 하며 결정적 팩트를 찾아 오는 조사원 시스코, 댄서 출신으로 미키의 운전사이자 사무보조 일을 하는 이지 등으로 구성된 ‘미키 할러팀’이 신뢰를 바탕으로 환상적인 팀워크를 보여주며 할러의 인간적 결함을 보충한다. 시즌3까지 나왔다.
이재훈 편집장 nang@hani.co.kr

 

박훈정의 세계관에 한 번…
박훈정의 ‘마녀2’의 한 장면. 디즈니플러스 제공

박훈정의 ‘마녀2’의 한 장면. 디즈니플러스 제공


‘망상 유니버스’에 사로잡힌 권력이 평범한 세상을 얼마나 혹독하게 망가뜨리고 추잡하게 할 수 있는지를 실시간 중계로 지켜봤다. 그러나 유니버스, 즉 ‘세계관’은 원래 ‘망상’과 ‘현실’이 맞부딪히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세계관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과 관점을 말한다. 디즈니플러스 시리즈 ‘마녀’‘폭군’ 같은 작품에게 그 세계관을 볼 수 있다. ‘신세계’로 두꺼운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있고 2010년 이후 성실하게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는 박훈정 감독이 집요하게 밀어붙이는 이 시리즈는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 상상해봤던 인간보다 더 강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누군가 ‘강화 인간’을 만든다. 어떤 이들은 그걸 폐기하려 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동시에 소유하고 싶어 한다. 그 과정에서 강화 인간들은 인간적 고민을 한다. 잔혹하고 어둡고 빠르고 강렬하고 동시에 처연하다. 눈동자에 자막을 쫓아다니라 하기도 미안하고, 고막에 심오하게 오가는 대사를 들으라 하기에도 버거운 때, 시원하게 때려 부수고 어쭙잖은 설명보다 납득되는 폭력으로 정리한다.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입꼬리 절로 상승… 명절 ‘노동요’
키즈일레트릭오케스트라가 2024년 9월 인천에서 열린 ‘랩비트 페스티벌’에서 연주하고 있다. 쿠스요 유튜브 계정 갈무리

키즈일레트릭오케스트라가 2024년 9월 인천에서 열린 ‘랩비트 페스티벌’에서 연주하고 있다. 쿠스요 유튜브 계정 갈무리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희는 키즈일렉트릭오케스트라(키일오)입니다.” 인사 뒤로 천진난만한 눈망울들이 전자키보드를 영롱하게 울린다. 무구한 미소는 덤. 이들의 연주 위로 카녜이 웨스트의 ‘런어웨이’ 노랫말이 ‘맑은’ 목소리와 함께 울려퍼진다. 2024년 9월21일 인천에서 열린 랩비트 페스티벌에는 듣도 보도 못한 초등학생들의 일렉트로닉 연주 무대가 펼쳐졌다. 선곡이 반전이다. 카녜이 웨스트를 뒤로하고, 트래비스 스콧의 ‘페인’(FE!N)이 이어진다. 2010년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누자베스의 ‘아루아리안 댄스’(Aruarian Dance)가 한껏 힙하게 울려퍼지고 나면 “생각보다 많은 분이 누자베스를 좋아하시는지 몰랐는데, 다음에는 신나는 곡으로 가보겠습니다”라는 발랄한 멘트에 웃음이 터진다.

키일오의 연주 영상으로 재생목록이 채워진 유튜브 ‘쿠스요’(kusyo) 계정의 주인은 대구 대곡초등학교 밴드부 담당 교사다. 선생님은 페스티벌 무대에서도, 교실에서도 묵묵히 아이들 뒤편에서 중심을 잡고 있다. 초등학교 때 이런 음악을 듣고 연주하는 기분은 어떨까. 아이들을 부러워하며 무한반복 재생하면 입꼬리가 절로 올라간다. 명절 ‘노동요’로도 손색없지만 브래디 미카코의 ‘빌어먹을 어른들의 세계’를 읽으며 연주 영상을 재생할 것을 추천한다. 밑바닥 어린이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영국 빈곤지역 탁아 노동자 미카코가 ‘전율의 고딕 유아’ 레오가 시니컬한 말을 뱉을 때 아랑곳하지 않고 뽀뽀를 퍼붓는 장면과 함께 들으면, 찰떡이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