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나를 혐오하는 자들과 이야기를 나눠봤다

30년 동안 KKK 단원 200명 무너뜨린 흑인 남자
KKK 간부와 우정 나누게 된 흑인 여성 실화
등록 2025-02-28 21:30 수정 2025-03-05 18:32
‘KKK와 친구 되기’의 주인공인 미국의 음악가이자 흑인인 대릴 데이비스. ‘KKK와 친구 되기’ 화면 갈무리

‘KKK와 친구 되기’의 주인공인 미국의 음악가이자 흑인인 대릴 데이비스. ‘KKK와 친구 되기’ 화면 갈무리


극우는 이제 상수다. 애초에 존재하지 않을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어쨌거나 극우는 존재하게 됐다. 그것도 적지 않게, 어쩌면 상당히 광범위하게. 광장에서라면 우리는 극우를 피할 수 있다. 태극기와 성조기가 휘날리는 극우의 광장을 서둘러 벗어나 응원봉이 빛나는 탄핵 광장에 도달하면 우리는 안전해질 수 있다.

하지만 광장 밖에서는 극우를 구분해낼 방법이 없다. 삶의 현장에서 극우는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있지 않다. 성난 군중의 얼굴이 아닌 평범한 이웃의 얼굴로, 납득할 수 없는 억지 주장이 아니라 일상적인 목소리로 우리와 마주하면서 살아간다. 그렇다면 이 극우라는 존재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윤석열 파면이 코앞에 다가왔다. 2025년 2월25일 있었던 최종 변론기일에서도 윤석열은 전혀 반성하지 않았다. 여전히 부정선거 음모론을 설파했다. 사회적 대분열을 막을 마지막 기회가 그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이제 파면 이후의 세계를 대비해야 한다. 통제되지 않을 극우들과 우리는 어떻게 더불어 살아갈 것인가. 우리와 그들은 영원히 화해할 수 없게 될까. 그들을 극우화 이전으로 ‘회복’시킬 수 있을까.

광고

1939년 1월30일 미국 플로리다주 탬파에서 흰색 후드와 로브를 입은 큐클럭스클랜(KKK)단 회원들이 십자가를 불태운 뒤 팔짱을 끼고 지켜보고 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1939년 1월30일 미국 플로리다주 탬파에서 흰색 후드와 로브를 입은 큐클럭스클랜(KKK)단 회원들이 십자가를 불태운 뒤 팔짱을 끼고 지켜보고 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백인우월주의자와 친구가 된 흑인

참고가 될 만한 이야기가 있다. ‘큐클럭스클랜’(KKK)을 무너뜨린 사람들의 이야기다. 유럽에서 극우의 상징이 ‘나치’라면, 미국에서는 KKK다. 자기들만의 상징과 의식과 복식을 갖추고 백인우월주의를 설파하는 이 테러조직은 흑인을 노골적으로 차별하고 공격해왔다. 그들을 무너뜨린 이야기의 장르는 액션이 아니다. 휴머니즘 드라마다.

‘KKK와 친구 되기’는 다큐멘터리다. 미국의 음악가이자 흑인인 대릴 데이비스라는 사람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는 어느 날 ‘KKK는 내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왜 나를 증오할까’라는 의문을 품는다. 그리고 그길로 KKK 단원들을 만나러 간다. 그것도 한 지역의 간부를 맡을 만큼 ‘신실한’ 단원들을. 영화 제목처럼, 그는 KKK와 친구가 된다. 백인우월주의자와 흑인이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었을까. 아주 간단하다. 진심으로 대화를 요청하는 것이다.

KKK 단원은 어쩌면 흑인이 증오할 만한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할 기회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기꺼이 대화에 응했을 것이다. 그 결과가 놀랍다. 데이비스는 30년 동안 무려 200명의 KKK 단원을 무너뜨렸다. 논리로? 아니, 마음으로. 마음을 열고 대화를 청했고, 대화하다 서로를 이해하게 됐고, 그러자 더는 서로를(정확히는 백인이 흑인을) 증오할 수 없게 됐다. 서로를 고립시켜 절멸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봤다면 영원히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광고

그와 만난 KKK 단원들은 스스로 옷을 벗었다. 단원증을 찢고 그와 진정한 친구가 됐다. 그중 한 명은 데이비스에게 자기 딸의 대부가 되어달라는 요청까지 했단다. 어떤 단원은 KKK 집회에서 이렇게 연설하기도 했다. “나는 저 흑인을 존중합니다. 저를 존중하면서 대화를 걸어온 사람은 저 사람밖에 없어요. 나는 저기 저 무례한 하얀 사람들보다 저 까만 사람을 더 좋아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KKK 집회에서. ‘존중’이라는 말이 가슴팍에 꽂힌다. 극우의 기원이 어디쯤에 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KKK와 친구 되기’ 한 장면. 화면 갈무리

‘KKK와 친구 되기’ 한 장면. 화면 갈무리


흑인들을 사랑하게 된 인종차별주의자

위 영화가 너무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면(물론 엄연한 다큐멘터리지만) 조금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참고해볼 수 있다. 마틴 루서 킹이 암살된 지 이제 막 3년밖에 되지 않은 1971년, 미국 남부 노스캐롤라이나주의 한 도시에서 있었던 실화를 다룬 영화 ‘더 베스트 오브 에너미즈’다.

KKK 간부인 남성 시피(C.P.) 엘리스와 흑인 인권운동가인 여성 앤 애트워터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두 사람은 인종이나 활동 영역, 성별 모두 상극이다. 엘리스는 주유소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흑인에겐 아예 기름도 팔지 않을 정도로 극단적인 인종차별주의자다. 흑인과 어울리는 백인의 자택에 총을 쏴 위협하는 것이 그 당시 KKK의 행태였다.

광고

당시 이 주는 백인 학교와 흑인 학교가 구분돼 있었다. 정확히는 백인 학교에 흑인이 입학하지 못하게 제한한 것이라고 해야 맞겠다. 어느 날 흑인 학교에 큰불이 나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흑인 커뮤니티는 임시로 백인 학교에 다니게 해달라고 요구하지만, 백인 커뮤니티는 일거에 거부한다. 그러자 애트워터와 흑인 단체는 소송을 제기한다. 부담스러운 결정을 내리고 싶지 않았던 백인 판사는 판결 대신 ‘커뮤니티 회담’이라는 걸 제안한다. 이해관계자들이 2주간 한 공간에 모여 교육과 토론을 진행한 뒤 투표를 통해 결정을 내리는 방식이다.

엘리스와 애트워터가 이 회담의 공동 의장으로 추천된다. 각각 백인 커뮤니티와 흑인 커뮤니티의 대표 격인데, 앞서 얘기했듯 둘은 상극이다. 양쪽은 그저 대립만을 거듭한다. 함께 가스펠을 부르자는 흑인 커뮤니티의 제안에 백인 커뮤니티는 회담장에 KKK 깃발과 의복을 전시하는 것으로 대답한다. 이곳에 존중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영화 ‘더 베스트 오브 에너미즈’의 인권운동가 앤 애트워터. 화면 갈무리

영화 ‘더 베스트 오브 에너미즈’의 인권운동가 앤 애트워터. 화면 갈무리


백인 패널이 여섯, 흑인 패널이 여섯. 통합 결정을 위해서는 백인 패널 두 사람 이상이 움직여야 했다. 평등주의자와 온정주의자 두 사람이 유이한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나머지 차별주의자들은 권력과 협박으로 이들을 돌려세우기로 한다. 마지막 투표에서 평등주의자 패널만이 협박에도 불구하고 학교 통합에 찬성표를 던졌다. 한 표가 모자란 상황. 놀랍게도 나머지 찬성표 하나를 던진 것은 KKK 간부인 엘리스다. 그는 찬성표를 던지며 단원증을 공개적으로 찢어버린다. “흑인들을 사랑할 수 있게 됐다”고 선언한다.

어쩌다 이런 결정을 내렸을까. 예상 가능하듯 애트워터와의 감정적 교류가 그 이유다. 엘리스에겐 자폐스펙트럼장애 아들이 있다. 어느 날 아들의 병실에 공격적인 성향의 환자가 입원한다. 아들을 1인실로 옮기기에 엘리스의 형편은 넉넉지 않다. 그 사연을 알게 된 애트워터가 자신을 존경하는 흑인 간호사에게 따로 부탁해 병실을 옮길 수 있게 도움을 준다. 2주밖에 안 되는 짧은 기간이지만, 서로 만나 대화하며 엘리스를 ‘사람’으로 대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엘리스는 불쾌해하면서도 조금씩 애트워터에게 마음을 연다. 한번 살짝 열린 마음은 곧 더욱 빠른 속도로 열리기 시작한다.

커뮤니티 회담 이후, 흑인 손님을 받지 않던 엘리스의 주유소에 백인들도 발길을 끊었다. 엘리스의 자택에 협박조의 전화가 걸려오기도 했다. 그를 도운 건 이번에도 흑인 커뮤니티였다. 흑인들이 모는 자동차가 주유소 바깥까지 줄을 서는 풍경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엘리스와 애트워터는 평생 친구로 지냈다. 둘의 경험을 미국 곳곳에 함께 알리고 다녔다고 한다. 엘리스가 먼저 세상을 떠나고, 애트워터는 그의 추도식에서 추도사를 바쳤다.

영화 ‘더 베스트 오브 에너미즈’의 인권운동가 앤 애트워터. 화면 갈무리

영화 ‘더 베스트 오브 에너미즈’의 인권운동가 앤 애트워터. 화면 갈무리


접촉하고 경청하여 만든 새로운 관계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닌가. 하지만 좀더 냉정하게 다시 보자. 이 이야기에서 달라진 것은 오직 엘리스와 애트워터 두 사람뿐이다. 변화의 범위를 커뮤니티 회담으로 좁히면, 입장이 바뀐 것은 엘리스 한 사람밖에 없다. 협박 때문에 ‘소신투표’ 하지 못한 온정주의자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엘리스조차 회담의 결과로 입장을 바꿨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의 마음을 바꾼 것은 회담장 바깥에서의 감정적 교류였다.

그렇다면 교육과 토론으로 공론을 만들고자 했던 커뮤니티 회담은 실패한 것일까. 그렇게 평가절하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 커뮤니티 회담은 적어도 엘리스를 바꿔내지 않았던가. 교육과 토론이라는 회담의 ‘내용’이 바꿔낸 것은 아니지만, 한자리에 모아 서로 대화하게 만든 회담의 ‘형식’이 엘리스의 변화를 이끌어낸 입구가 된 셈이다. 회담에서 엘리스는 애트워터와 접촉했고, 대화했고,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게 됐고, 그럼으로써 하나의 관계망 속에 서로를 위치시키게 됐다. 애트워터의 연민도 그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니, 결국 회담이 애트워터를 바꿔냈다고 해도 문제없을 듯하다.

커뮤니티 회담과 닮은 기획들이 오늘날 여럿 시도되고 있다. 독일에서 2017년부터 진행돼온 ‘독일이 말한다’(Germany Talks)라는 기획이 대표적이다. 서로 생각이 다른 두 시민이 일대일로 두 시간가량 대화할 수 있게 지원하는 기획이다. 일단 만나 존중 속에서 대화하면 서로를 이해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가 깔려 있다. 2021년 데이터를 살펴보면 대부분의 참가자가 “상대방의 견해를 편견 없이 이해할 수 있었다”고 대화 경험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는데, 정작 실제로 ‘한 가지 이상의 문항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고 응답한 비율은 27.6%에 그쳤다고 한다.

멋진 대화를 나눴지만 그뿐이라는 것이다. 이 간극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 혹시 그 대화가 무언가를 결정하고 책임져야 할 ‘리스크’가 없는 대화였기 때문은 아닐까. 두 시간 대화하고 헤어지면 그만일 관계이므로, 서로의 관계망을 침범하여 서로를 감정적으로 이해하는 데는 미치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참가자들이 더 오래, 더 자주, 더 ‘일상적으로’ 만났다면 이 비율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생각과 의견의 교환이 아니라, 생각과 의견을 교환하기 위해 공유한 시간과 관계가 변화를 향한 진짜 입구다.

‘더 베스트 오브 에너미즈’ 포스터. 영화사 제공

‘더 베스트 오브 에너미즈’ 포스터. 영화사 제공


파면 이후의 세계를 위하여

다시 우리 사회를 본다. 파면 이후의 세계를 상상한다. 극우를 어찌해야 하는가. 누군가는 극우를 ‘고립시켜 낙후시키는’ 방안을 제시한다. 박구용 전 더불어민주당 교육연수원장이 “2030 남성이 스스로 말라비틀어지게 해야 한다”고 발언한 맥락이 이것이다. 그러나 고립된 극우들이 서로를 유일한 관계망으로 삼아 더욱 폭력적인 방향으로 공진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극우를 변화시킬 방법이 있다면 그것이 최선이다. 어쩔 수 없이 함께 살아가야 할 존재들 아닌가. 우리는 어디서 어떻게 변화의 입구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강남규 ‘토론의 즐거움’ 멤버·‘지금은 없는 시민’ 저자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광고

4월3일부터 한겨레 로그인만 지원됩니다 기존에 작성하신 소셜 댓글 삭제 및 계정 관련 궁금한 점이 있다면, 라이브리로 연락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