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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록페는 끝나지 않았다

‘록페는 끝났다’는 때에 열린 록페, 강원도 인제잔디구장 강원락페스티벌
등록 2019-08-30 10:35 수정 2020-05-03 04:29
8월17일 강원도 인제군 인제잔디구장에서 열린 ‘강원락페스티벌’에서 미국 데스코어 밴드 ‘본 오브 오시리스’가 연주하고 있다. 한겨레 서정민 기자

8월17일 강원도 인제군 인제잔디구장에서 열린 ‘강원락페스티벌’에서 미국 데스코어 밴드 ‘본 오브 오시리스’가 연주하고 있다. 한겨레 서정민 기자

지난 두 차례 글에서 놀이공원으로 간 일렉트로닉댄스뮤직(EDM) 페스티벌과 뮤지션들이 직접 기획한 작은 음악축제 얘기를 했다. 이번에도 페스티벌 얘기를 해야겠다. 물론 페스티벌 3부작 같은 거창한 의미 따윈 없다. 사실 올여름만큼 대형 음악축제에 심드렁한 적이 없었는데, 그런 나를 확 일깨운 순간을 만났기 때문이다.

올여름은 록페스티벌 수난시대였다. 지산락페스티벌은 공연을 사흘 앞두고 전격 취소를 알렸고, 부산국제록페스티벌은 외국 밴드 섭외 사기를 당했다. 홀리데이랜드페스티벌은 앤 마리 등 주요 출연진 공연을 당일 취소하면서 대참사를 빚었다. 가장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인천펜타포트락페스티벌마저 주관사가 공연기획사 예스컴에서 경기일보로 바뀌면서 운영상 여러 아쉬움을 남겼다.

심드렁한 음악축제 속 한 줄기 빛

이런 가운데 록 마니아 사이에서 ‘진짜 록페’로 추앙받은 축제가 있었으니 올해 처음 생긴 강원락페스티벌이었다. 이는 10년째 음악축제 일을 해온 김승한 콘텐츠아이디 대표가 만들었다. 그동안 파산 등 온갖 산전수전 다 겪은 끝에 그린플러그드페스티벌을 안정적으로 흑자 운영하게 된 그는 올해 또 다른 일을 벌였다. 8월16~18일 강원도 인제군 인제잔디구장 일대에서 열리는 신생 축제의 출연진은 핀란드 헤비메탈 밴드 스트라토바리우스, 이탈리아 심포닉 메탈 밴드 투릴리/리오네 랩소디, 미국 데스코어 밴드 ‘본 오브 오시리스’ 등 강렬하고 묵직한 음악을 하는 33팀으로 채워졌다.

“마음 한켠에 강렬한 헤비니스 음악에 대한 열망과 아쉬움이 늘 있었어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인기도 예전만 못하지만 이런 음악이 음악축제의 씨앗이 된다고 생각해서죠. 마침 다른 록페스티벌들이 지지부진한 상황이라 이젠 내가 한번 제대로 해봐도 되지 않을까 한 거죠.” 김승한 대표의 말이다.

사실 업계에선 반신반의했다. “제대로 된 록페”라고들 하지만 과연 얼마나 모이겠냐는 것이었다. 대중적인 밴드가 거의 없고 거리까지 멀어서 골수 록팬이 아니면 좀처럼 가기 힘들지 않겠나 하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김승한 대표 스스로도 한계를 인정했다. “솔직히 많은 관객을 기대하진 않는다. 골수 록팬들이 도대체 얼마나 모일지 궁금하다. 잘되면 좋겠지만 안되면 다음에 다른 돌파구를 고민해야 할 것 같다.”

나도 궁금했다. 8월17일 홀로 먼 길을 나선 건 그래서다. 정오께 서울 영등포구 집에서 인제까지 내비게이션을 찍어보니 무려 4시간 뒤 도착으로 나왔다. 토요일이니 놀러 가는 차가 얼마나 많았겠는가. 엄두가 안 나 출발 시간을 늦췄다. 오후 3시가 좀 넘으니 2시간40분으로 줄었다. 출발하면서 메탈리카 3~5집 음반을 챙겼다. 고등학생 때 푹 빠져 지금도 ‘최애’로 꼽는 헤비메탈 밴드다. 하지만 이들의 음악을 언제 마지막으로 들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나 또한 나이 들면서 어느새 록과 멀어진 록키드 중 하나였던 것이다.

“라인업 좋고 음향 좋고 사람이 없네”

같은 곡을 평소보다 볼륨을 1.5배로 올리고 듣다보니 잠들어 있던 ‘록부심’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메탈리카 덕분인지 가는 길이 전혀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6시께 도착하니 먼저 와 있던 왕년의 록키드 제이(J)가 반겨주었다. 한때 음악 관련 일을 하다 지금은 전혀 관계없는 일을 하는 그는 아예 가족을 데리고 강원도로 여행을 왔다. 물론 주목적은 강원락페스티벌이었다. “라인업 좋고 음향도 좋고 쾌적하고 다 좋은데, 사람이 없네.” 그의 말대로 드넓은 잔디밭은 한산했다.

‘본 오브 오시리스’가 공연을 시작하니 그나마 사람들이 좀 모여들었다. 그래도 수백 명 수준이었다. 관객 수는 적었지만 다들 일당백처럼 놀았다. 웃통을 벗고 몸끼리 부딪치는 ‘슬램’을 하고 주먹질과 발길질을 하듯 팔다리를 크게 휘두르며 리듬을 타는 ‘모싱’을 하는 이들이 한구석을 차지했다. 보기만 해도 덩달아 흥분됐다. 언젠가부터 록페스티벌에 가도 멀찍이서 조용히 감상하던 나였다. 왕년에 진흙탕에서 뛰던 게 언제인지 기억도 흐릿했다. 하지만 이날은 왠지 무대를 향해 전진하고 싶어졌다. 사람이 많지 않아 무대 앞 펜스까지 파고드는 게 어렵지 않았다. 이렇게 무대 가까이 가본 건 처음이었다.

거기까지 들어가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슬램이나 모싱까지 할 용기는 나지 않았지만, 헤드뱅잉과 점프 정도는 할 수 있었다. 오랫동안 해본 적이 없었던지라 영 어색했다.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어봤지만 목은 뻣뻣하기만 했다. 옆에서 보던 제이는 “헤드뱅잉 점수가 시마이너스(C-)야” 하고 놀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열심히 흔들고 뛰다보니 어느 순간 정신줄이 느슨해지며 몸이 부드러워졌다. 몸을 어떻게 움직일지 머리로 생각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아서 움직이는 무아지경에 이르렀다. 제이의 눈에는 여전히 시마이너스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어떤가. 내 마음은 에이플러스(A+)였는걸.

하늘에선 때때로 물이 쏟아졌다. 흥을 돋우기 위한 무대장치였다. 옷이 푹 젖고 옆 사람에게 발을 밟혀 하얀 캔버스화가 시커멓게 됐지만 상관없었다. 그제야 떠올랐다. 10여 년 전 인천 펜타포트락페스티벌에서 비 내리는 날 진흙탕 속에 박혀 나오지 않는 샌들을 벗어던지고는 맨발로 펄쩍펄쩍 뛰던 기억이. 그 시절의 젊음, 열정, 일탈의 짜릿함, 해방감이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그래! 록페스티벌은 이 맛이지. 사람들이 원을 그리며 돌기 시작했다. 그들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이번에는 밴드 보컬리스트가 관객 사이로 뛰어드는 ‘스테이지 다이빙’을 했다. 재빨리 그쪽으로 가서 그의 등을 손으로 받쳤다.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생애 첫 경험이었다.

되살아나는 젊은 시절 록페의 추억

이날 마지막으로 무대에 오른 헤드라이너는 외국 밴드가 아니라 전인권이었다. “그대여 아무 걱정 하지 말아요/ 우리 함께 노래합시다/ 그대 아픈 기억들 모두 그대여/ 그대 가슴에 깊이 묻어버리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떠난 이에게 노래하세요/ 후회 없이 사랑했노라 말해요.” 사람들과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며 걱정과 아픈 기억일랑 날려버리고 지나간 감흥을 되찾았다. 새벽에 차를 운전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좀 피곤해도 가길 참 잘했다고. 록페의 시대는 저물었다지만, 나의 록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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