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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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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페 수난시대, 즐거운 축제는 따로 있다

틀에서 벗어난 색다른 음악축제 연남에뮤직페스타, 종로콜링
등록 2019-08-05 02:04 수정 2020-05-02 19:29
7월14일 서울 종로구 복합문화공간 에무에서 열린 축제 ‘종로콜링’에서 한경록이 노래하고 있다. 캡틴락컴퍼니 제공

7월14일 서울 종로구 복합문화공간 에무에서 열린 축제 ‘종로콜링’에서 한경록이 노래하고 있다. 캡틴락컴퍼니 제공

록페스티벌 수난시대다. 7월 마지막 주말, 대형 페스티벌 3개가 한꺼번에 열렸는데, 공교롭게도 모두 잡음이 일었다.

7월26~28일 경기도 이천 지산포레스트리조트에서 열릴 예정이던 ‘2019 지산락페스티벌’은 공연을 사흘 앞두고 전격 취소를 알렸다. 이는 씨제이이엔엠(CJ ENM)이 2009년부터 지산포레스트리조트와 안산 대부도를 오가며 펼쳐온 밸리록페스티벌과는 다른 행사다. 오랜 적자 운영을 버티지 못한 씨제이가 2017년을 마지막으로 행사를 중단하자 디투글로벌컴퍼니가 지산에서 새로운 록페스티벌을 열겠다고 한 것이다. 하지만 굵직한 외국 출연진을 제때 섭외하지 못하는 등 어려움을 겪어오다 끝내 취소를 결정했다.

페스티벌 취소, 아티스트 출연 취소, 사기…

7월27~28일 부산 삼락생태공원에서 열린 부산국제록페스티벌은 올해 20회를 맞아 기존 무료에서 유료로 전환했다. 영국 전자음악 듀오 케미컬브라더스와 미국 헤비메탈 밴드 시스템오브어다운을 헤드라이너(간판 출연진)로 섭외했다는 소식에 록팬들은 환호했지만, 얼마 뒤 시스템오브어다운 출연이 취소됐다. 밴드 에이전시를 사칭한 이들에게 주최 쪽이 사기를 당했기 때문이다. 고육책으로 국내 그룹 지오디(god)를 첫쨋날 헤드라이너로 섭외했지만, 록페스티벌에 안 어울린다는 비판이 일었다.

7월27~28일 인천 영종도 파라다이스시티에서 열린 홀리데이랜드페스티벌은 전자음악, 리듬앤드블루스(R&B), 힙합 등 요즘 젊은층에 인기 있는 음악을 내세워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27일 출연하기로 했던 R&B 가수 허(H.E.R.)의 불참 소식을 공연 하루 전날 알리더니, 28일 공연 때는 앤 마리, 대니얼 시저, 빈지노 등의 공연 취소를 갑자기 알렸다. 주최사 페이크버진이 이를 아티스트 탓으로 돌리는 공지문을 발표하자 앤 마리는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난 무대에 오르고 싶었는데, 주최 쪽에서 공연 취소를 강요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무료 게릴라 공연을 펼쳐 팬들을 위로했다. 페이크버진은 관객에게도 무성의한 대응으로 일관해 공분을 샀다. 한 관객은 페이스북 댓글로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을 희화화한 문구에 대한) 무신사 사과문처럼 읽으면 끄덕이면서 앞으로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은 느낌이 들어야 되는데, 이거는 자기들도 피해자라며 징징 짜는 느낌이다. 주관을 했으면 좀 책임감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꼬집었다.

해마다 여름 록페스티벌을 찾는 나는 올해 이 셋 중 한 군데도 가지 않았다. 대신 찾은 곳은 27일 서울 연남동 일대에서 열린 연남에뮤직페스타였다. 밴드 에고펑션에러의 보컬리스트 김민정이 기획·주최한 작은 음악축제다. 연남동 라이브클럽 채널1969에서 한국과 일본 음악가 11팀이 공연했고, 인근 술집 칠펍에선 디제이 5명이 쇼를 펼쳤다. 출연진 중 크라잉넛 정도를 빼면 대부분 대중에게 낯선 이름이다.

“케이팝 말고도 있어요”

“인디신에서 주목받고 있지만, 정작 페스티벌에선 안 불러주는 뮤지션이 많거든요. 제가 속한 에고펑션에러도 지난해 부산록페스티벌에 나갔는데, 2년 연속은 안 불러준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올해는 스스로 작게나마 페스티벌을 만들어보자 했어요. 제가 좋아하는 아티스트, 더 주목받아야 마땅한 아티스트들에게 제안했더니 적은 출연료에도 기꺼이 동참해줬어요.”

김민정은 축제를 위해 재작년 MTV 아시아 주최 경연대회에서 받은 우승 상금 중 음반 제작에 쓰고 남은 돈을 털어넣었다. 또 서울문화재단의 인디음악 생태계 활성화 지원사업 ‘서울라이브’ 지원금도 따냈다. 홍보물을 만들어 홍익대 인근 문화공간 40여 곳, 게스트하우스 180여 곳 등 260여 곳에 돌렸다. 김민정은 “외국인 관광객에게 한국에 케이팝만 있는 게 아니라 다채로운 인디 문화도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실제 이날 채널1969에는 홍보물을 보고 온 듯한 외국인 관객들도 눈에 띄었다. 출연 가수가 누군지 모르고 온 관객도 많은 듯했다. 요즘 인디신에서 떠오르는 싱어송라이터 천용성이 “얼마 전 첫 음반 《김일성이 죽던 해》를 발매했다”고 하니 처음 듣는 특이한 음반 제목에 관객의 웃음보가 터졌다. 공연을 보고 좋았는지 음반을 사서 사인 받는 관객도 있었다. 나도 이날 드레인이라는 가수의 공연을 처음 보고 반했다. 집에 오는 길, 드레인의 노래를 찾아 들으며 좋아하는 가수 목록에 추가했다.

김민정은 “다들 ‘내년에 또 하면 좋겠어’ 하는데, 사실 너무 힘들고 고생스러웠다. 다음에 또 하면 함께하는 친구들이 더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가장 선배이면서도 헤드라이너가 아니라 오후 2시 오프닝 무대를 자처한 크라잉넛의 한경록은 “축제를 기획하고 여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안다. 그래서 응원하는 마음으로 동참했다”고 말했다. 자신도 종로콜링이라는 축제를 기획·주최해본 터라 누구보다 그 마음을 잘 알았을 것이다.

한경록은 지난해부터 서울 종로구 복합문화공간 에무에서 종로콜링을 열어오고 있다. 동료, 지인들과 놀던 생일잔치에서 이제는 ‘홍대 3대 명절’로 격상된 ‘경록절’ 파티를 관객과 함께하는 축제로 확장한 것이다. 종로콜링은 공연뿐 아니라 음악가들의 플리마켓(벼룩시장) 등 다양한 부대행사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록이 죽었네, 인디가 죽었네 하는 말들이 나오고 비슷비슷한 록페스티벌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기존 틀에서 벗어나 색다르고 재밌는 축제를 해보고 싶었다”고 한경록은 말했다.

7월14일 열린 두 번째 종로콜링은 지난해보다 더 북적였다. 록·포크·팝·힙합 등 다양한 장르 음악인들이 어울려 공연했고, 관객은 수제맥주와 고량주 칵테일을 공짜로 즐겼다. 플리마켓도 인기였다. 호란은 직접 만든 장신구를 팔았고,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의 까르푸황은 인생상담 부스를 열었다. 로맨틱펀치의 콘치는 삼겹살을 구워 팔았고, 갤럭시익스프레스의 이주현은 즉석에서 그림엽서를 그렸다. 음악가 이이언과 음악 전문 기자 임희윤은 ‘나를 망친 음악들’이라는 주제로 토크쇼를 했다.

장신구 판매, 인생상담 부스, 삼겹살 판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나무가 우거진 뒤뜰에서 펼쳐진 이치현의 무대였다. 1980년대 히트곡 등에 20~30대 관객이 뜨겁게 환호했다.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다. 종로콜링에는 세대의 벽을 허무는 무대도 빠지지 않는다. 지난해에는 최백호가 출연했다. 공연을 마친 이치현과 무대 뒤에서 인사를 나눴다. 그러고는 페이스북 친구를 맺었다. 종로콜링 덕에 소중한 인연 하나를 또 얻었다. 진짜 즐거운 음악축제는 따로 있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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