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영화감독 장뤼크 고다르는 영화 탄생과 영화사 고몽(Gaumont)의 설립 100주년을 기념해 1995년 만든 영화 ‘JLG/JLG: 12월의 자화상’에서 영화 매체의 탄생을 축제의 시간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멜랑콜리한 태도로 죽음과 애도에 몰두한다. 도입부에서 고다르는 “다른 사람이라면 죽음이 찾아오고 애도에 잠기지만, 나는 먼저 애도에 잠기는 것으로부터 삶을 시작했다”고 말한다. 이 영화는 애도를 영화의 근본적인 속성과 연결 짓는다. 영화의 역사는 불가피하게 수많은 필름의 유실과 부식, 사라지고 누락된 빈칸의 기록을 포함한다. 고다르는 영화의 100년이 무수한 소멸과 망각의 시간이었음을 환기한다.
그런가 하면 영화 탄생 100주년 1년 뒤인 1996년에 수전 손태그는 ‘영화의 쇠퇴’(The Decay of Cinema)라는 음울한 제목의 에세이를 뉴욕타임스에 기고한다. 손태그는 시네필리아(영화 애호가)의 믿음이 무너지고 영화와 관련한 모든 절차를 시장 논리가 결정하는 산업 구도를 근심하며 20세기의 놀라운 발명품이던 영화의 지위가 한 세기 만에 위태로워졌다고 비관적으로 진단한다. 동시대에 만들어지는 영화가 질적으로 하락했다는 것만이 아니다. 손태그는 시네필리아가 사라진다면 영화문화도 사라진다고 지적하며 “영화가 부활할 수 있다면 그것은 새로운 종류의 시네필리아가 탄생해야만 가능할 것”이라고 말한다. 1995년은 영화의 찬란한 100년을 회고하고 기념하는 시기가 아니라 20세기 영화문화를 지탱한 요인들이 실은 대단히 위태롭고 취약한 상태에서 작동하고 있었으며 이제는 더 이상 실행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근심과 위기의식에 사로잡힌 시기다.
1995년, 영화를 발명하고 산업과 문화를 폭발시킨 서구의 영화문화가 죽음과 쇠락을 근심하는 담론으로 채워지던 해에 역설적으로 한국 영화는 문화적·제도적·담론적 원년이라고 할 만한 기념비적인 해를 맞이한다. 한국 영화에 1995년은 단순한 한 해의 시간이 아니라 오늘날의 ‘한국 영화’라는 이름을 둘러싼 문화의 기반이 된 시기를 가리킨다. 바꿔 말하면, 지금 시점에서 1995년은 실체로 인식되기보다는 하나의 상징적인 기억으로 다가온다. 바로 이해에 영화잡지 ‘씨네21’과 ‘키노’가 출간됐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이라는 영화학교가 탄생했으며, 부산국제영화제의 인적 조직이 형성돼 이듬해 첫 영화제를 개최한다. 그뿐만 아니라 국내 최초의 예술영화 전용관을 표방한 동숭시네마텍이 개관했으며 코아아트홀에서는 안드레이 타르콥스키의 ‘희생’이 개봉해 서울 관객 3만 명가량을 동원한다. 초기 시네마테크인 문화학교 서울에서 영화 탄생 100주년 기념 서적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를 출간한 것도 이때의 일이다.
1990년대 한국의 영화문화를 실천하던 이들 가운데 누군가는 사라지고 누군가는 모습을 바꾸고 누군가는 선구자를 자임해 남은 유산의 지분을 요구한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우리가 인식하는 영화문화의 필수적 요소, 즉 영화제, 시네마테크, 예술영화관, 영화학교, 영화잡지와 비평이라는 제도는 1995년의 구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1995년은 한국 영화의 제도와 정책과 비평의 담론 체계가 구체적으로 정립된 시기이자 그 담론이 발화되는 장소가 결정된 시기이다. 1983년의 장선우는 한국 영화의 재정립과 새로운 영화 형식의 추구를 공식화하기 위해 ‘열려진 영화를 위하여’라는 자주적 영화론을 발표해야 했지만, 1990년대의 대표적 작가 홍상수나 이창동이라면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들의 영화는 국내외 영화제에서 상영돼 호평을 얻고, 영화잡지가 적극적인 비평과 인터뷰의 대상으로 다루며, 영화학교에서 강력한 옹호자들을 낳는다. 1995년의 체제는 영화의 실행자들에게 자족적인 각각의 서식지를 제공했다.
1990년대의 한국 영화는 세계영화사의 흐름과 어긋난 시차를 빌미로 쇠락의 담론에서 이탈한 새로운 문화를 형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한국 영화를 둘러싸고 있는 문화는 1995년에 형성된 체제를 의심 없이 수용하고 견고하게 유지하고 있다. 2024년의 우리는 타르콥스키의 ‘희생’이 극장에서 재개봉하고, ‘키노’의 필진이 모여 ‘키노 씨네필’이라는 단행본을 출간하며, 제1회 부산영화제 부위원장을 역임한 박광수 감독이 같은 영화제 이사장으로 돌아오는 것을 목격하는 중이다. 즉, 지난 30년 동안 한국 영화의 문화는 아직 변화의 가능성에 노출된 미결정적 변수를 차단하고 1995년에 세워진 단 하나의 규범적 상수를 견고하게 받아들여왔다. 망각으로부터 출발한 선구자들은 망각의 의무를 망각하고 말았다.
영화문화를 구성하는 것은 영화 안팎의 다양한 요인과 역사적 맥락에서 생성되는 것이고 영화라는 개념은 단순히 한 편의 상징적인 영화나 한두 사람의 연출자에게서 내재적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둘러싸는 발화, 그 발화가 실행되는 장소와 공모하는 것이다. 이는 영화를 평가하는 기준과 수용하는 근거가 되는 관점마저 1995년의 시각에 기반한다는 측면을 함의한다. 영화비평은 여전히 주목해야 할 연출자를 ‘작가주의’의 언어로 논의한다. 영화관은 여전히 대안적 체계를 확립하려는 시도의 영화를 ‘예술영화’로 간주한다. 영화제는 끝없이 새로운 재능을 ‘발굴’하려 든다. 특정한 시기에 영화에 관한 담론의 장소를 마련하고자 했던 잠정적 용어들은 이제 절대적인 숭배의 언어로 모습을 뒤바꾼다.
망각을 실행하기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오히려 영화의 현행과 상태에 대한 지각이다. 적극적인 제스처로서의 망각은, 망각의 대상을 누구보다 명확하게 파악하는 자들만이 실행할 수 있다. 지금 우리 눈앞에 놓인 영화가 누가 어떻게 만들고 있으며, 그것은 어디에서 상영되고, 그것을 어떤 사람들이 보고 있으며,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지, 이 경험의 총합은 어떤 효과를 만들어내는지 파악하지 못한다면 고착된 영화문화에서 무엇을 ‘망각’해야 유효할지도 파악할 수 없다. 다양한 매체와 역량과 원인이 협력하고 상호 침투하는 영화문화의 탄력성은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을 골똘히 응시한 뒤 순식간에 그것을 잊어버리는 기묘한 진자운동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서 실행되는 영화에 관한 담론은 ‘한국 영화’를 하나의 고정적이고 심미적인 ‘예술’로 간주하고 있다. 한국 영화는 어느덧 세계영화사의 담론적 흐름을 망각해 대안적 영화 제도를 제시하던 시도가 아니라 완결된 형식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거칠게 바꿔 말하면, 한국 영화는 도달하거나 실행해야 할 과제가 존재하지 않는 문화가 돼버렸다. 여기에 남은 것은 크고 작은 숫자의 향유자들이 해독할 수 있는 누적된 기호들이다. 이 증상은 단지 문화를 작동하는 데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제작되는 영화의 속성으로 침투한다. 한국 영화의 실천은 이제 규칙을 형성하고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각각의 영화학교나 영화제, 소수의 비평가나 산업의 결정자들이 옹호할 만한 자족적으로 단조로운 기예를 생산할 뿐이다. 규칙은 창작자의 바깥으로 분출되고 특정한 공동체를 형성한다. 기예는 그 기술을 수행한 몇몇 개인에게 수축적으로 귀속된다. 기예의 영화는 비평을 요구하지도, 담론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심지어는 관객(성)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소수의 숭배집단을 생산할 뿐이다.
앞서 말했듯 한국 영화문화를 둘러싼 크고 작은 실천은 세계영화사의 동시대적 담론을 망각한 결과물이다. 가령, 한국의 영화 저널리즘이 적극적으로 수입한 작가주의는 ‘작가’라는 언어의 위상만을 가져왔을 뿐, 그것이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이라는 특정한 조건에서 영화를 만들던 감독들을 옹호하기 위한 정책으로 마련된 용어라는 맥락을 지운다. 오용된 기입 자체를 문제 삼으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1990년대 영화문화에서 공동체를 응집하는 공통적 기반을 마련한 효과적 언어가 망각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을 언급하고 싶다. 영화가 위태로워지는 순간에, 변모하는 영화를 제시하고 대안적 가능성을 주창한다는 것은 영화의 변화만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비평과 담론과 상영의 제도가 동반자로 좌표를 이행한다는 것을 뜻한다. 제도가 그 변형을 가로막는다면 그것은 더 이상 유효하게 작동하지 않는 제도일 것이다. 그때 제도는 명백한 망각의 대상이다.
영화문화를 쾌락적으로 누리기 위해서라면 망각은 불가피하다. 우리가 극영화를 불편함 없이 즐기기 위해선 극영화의 언어를 발명한 데이비드 그리피스의 ‘국가의 탄생’이 백인우월주의 단체인 큐클럭스클랜(KKK)을 미화하는 영화라는 사실을 망각해야 한다. 다큐멘터리의 언어를 순수하게 고찰하기 위해 다큐멘터리 촬영과 편집 기법을 완벽하게 정립한 작업이 나치 전당대회를 촬영한 레니 리펜슈탈의 ‘의지의 승리’라는 것을 망각해야 한다. 영화제를 즐기기 위해선 최초의 영화제(1932년 베네치아영화제)가 무솔리니의 파시즘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였다는 것을 망각해야 한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를 즐겁게 보기 위해선 그의 콧수염이 아돌프 히틀러의 콧수염을 연상한다는 것을 망각해야 한다. 영화 속의 트래블링 숏(카메라가 피사체의 움직임과 같은 속도, 같은 방향으로 따라가면서 촬영하는 기법)을 매혹적으로 지켜보기 위해선 그 기계장치의 움직임이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로 수용자들을 실어나른 움직임과 흡사하다는 것을 망각해야 한다. 영화는 참혹하고 끔찍한 역사다. 영화를 매혹적인 눈으로 본다는 것은 그 참혹함과 끔찍함을 어느 정도 망각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망각의 (무)능력으로 이 역겨운 문화로서의 영화를 지켜왔다.
특정한 시기의 영화가 고정된 규범, 제도, 스타일로 정착되려 할 때마다 소수의 영화적 실천은 바로 이 망각의 (무)능력을 실행한다. 스크린에 아직 실현되지 않은 다른 영화적 표현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이다. 이런 망각의 (무)능력은 제도가 영화를 호평하는 양상을 망각하지 않는다면 결코 출현할 수 없고, 그것이 출현했다 하더라도 문화와 제도의 구성원들이 영화를 판단하는 기존의 규범을 망각하지 않는다면 결코 유효한 시도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영화와 더불어 그 영화가 우리 앞에 존재할 수 있게 만든 원인과 기반을 고려해야 한다. 그 기반은 영화문화를 지금의 형태로 구성할 수 있었고, 다른 무언가로 변형할 수도 있었다. 고다르의 영화가 말해주듯이, 영화는 언제나 역사에 남겨진 기록과 사라지고 소실된 기록이 함께 존재한다. 망각을 실행하는 작업은, 감춰지고 지워진 영화의 낯선 가능성과 만나는 일이다.
지금 1995년이라는 시간을 돌아본다는 것은 그 연도를 한국영화사의 주요한 분기점으로 수용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이는 그것을 철저하게 비판하고 평가해 거기 불필요하게 달라붙은 오인된 신화를 걷어내는 작업이면서 한국 영화가 건설한 ‘1995년 체제’를 망각하고 비로소 그것으로부터 결별하는 것을 뜻한다. 새로운 시네필리아가 탄생하지 않는다면 영화의 부활은 없다는 손태그의 용법을 빌려 소란스럽게 과장해보자. 철저한 망각과 결별을 실행하지 않는다면, 한국 영화를 둘러싼 제도는 앞으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한 채 특정한 시기를 유령처럼 떠올리기만 할 것이다. ‘1995년 체제’의 30년을 앞둔 시점에, 한국 영화라는 불투명한 이름에 던지는 제언은 ‘어떻게 망각을 수행할 것인가?’라는 문제다. 망각 불가능한 수많은 기억과 기호에 사로잡힌 2024년의 한국 영화는 망각을 실행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은 미래에 실행될 망각을 기다리는 작은 구조 신호다.
김병규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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