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데코의 일본 요리’ 저자 나카가와 히데코(왼쪽)씨와 ‘위스키, 스틸 영’ 저자 박병진씨. 벽에는 히데코씨의 지중해식 요리 상징인 파에야팬이 걸려 있다. 두 사람 앞의 위스키는 박병진씨의 컬렉션. 김명진 기자
매번 파티다. 따뜻하고 맛있는 음식을 함께 만들어 푸짐하게 차려놓고 와인을 따서 잔을 부딪친다. 왁자지껄 웃고 떠들면서 회사에서, 집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날려버린 수강생들은 팔을 걷어붙이고 바지런히 설거지한다. 겨울엔 따뜻한 햇볕이 스며드는 창가에서, 봄엔 꽃 피는 마당 그늘에서 상을 차리고, 먹고, 치운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말끔한 테이블로 돌아가면 비로소 ‘히데코의 요리 교실’이 완성된다.
나카가와 히데코(한국명 중천수자)는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유명한 ‘요리 선생’이다. 1994년 한국에 와서 1997년 남편을 만나 이듬해 결혼하고 귀화했다. 2008년 연희동에 이사 온 뒤 처음 요리 교실을 열었고 2011년 에세이 ‘셰프의 딸’(마음산책 펴냄)을 통해 한국에서 작가로 데뷔했다. 2025년 1월 발간된 ‘히데코의 일본 요리’(북스레브쿠헨 펴냄)는 그의 18번째 책이자 두 번째 일본 요리책이다. 일본 요리책을 표방하지만 신안 소금, 경기 쌀, 안동 간고등어 등 한국의 식재료를 끈질기게 탐구하고 한식을 배워온 저자의 열정이 반영된 덕분에 한·일 양국의 식재료 전통과 가정식 레시피를 융합한 아름다운 식문화 책으로 거듭났다.

벽에 걸린 액자는 일본에서 프랑스 요리사로 일한 히데코씨 아버지의 스승, 일본의 전설적인 프렌치 셰프 무라카미 노부오가 결혼 선물로 써준 붓글씨다. ‘오미조화 시극의’, 다섯 가지 맛이 조화를 이루면 극한의 뜻에 이른다는 내용이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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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책이 특별한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북스레브쿠헨’이라는 출판사를 설립한 뒤 출간한 첫 책이기 때문이다. 이 출판사는 미국의 1세대 라이프스타일 인플루언서인 마사 스튜어트처럼 요리, 생활, 여행 등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목표로 한다. 히데코씨(원래 이름을 줄일 땐 성씨를 일컫지만 ‘히데코’라는 이름이 이미 브랜드가 됐으므로 ‘히데코씨’라고 통칭함)의 남편 박병진씨가 출판사 대표를 맡았다. 박 대표는 아이비엠(IBM) 등 국내외 기업 임원과 최고경영자를 거친 전문경영인으로, 2023년 은퇴 뒤 위스키 칼럼니스트이자 출판사 대표, 어린이 창의력 플랫폼 ‘테일트리’의 대표가 됐다. 15년 이상 은퇴 이후 인생을 꿈꿔온 ‘꼼꼼한 전략가’ 박 대표는 2025년 1월 자신의 첫 책 ‘위스키, 스틸 영’(사계절 펴냄)을 발간해 부부는 겹경사를 맞았다. 2025년 2월17일 오후 요리 교실이자 자택인 연희동을 찾아 두 사람을 만났다.
“5년 전 일본 요리책을 냈지만 초판이 다 팔린 뒤에 아쉬워하는 독자들이 있었어요. ‘아버지의 레시피’(이봄 펴냄)가 잘 알려졌지만, 이번 책엔 어머니가 해주신 일본 가정 요리를 많이 담았어요.”(히데코)
“5년 전에 견줘 지금은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히데코의 요리에 대한 열정만큼은 변하지 않았어요. 독자가 내야 할 돈이 아깝지 않게 책을 좀더 두껍고 근사하게 만들고 싶어서 종이 등 제작비에 투자했죠. 우리에겐 첫 책이기도 하고요.”(박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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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데코의 일본 요리’ 저자 나카가와 히데코씨가 요리교실이 열리는 주방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히데코씨는 꽤 엄격한 요리 선생이지만 이번 책에선 초보자도 어렵지 않게 빠져들 수 있도록 다정한 영혼을 불어넣었다. “‘살짝 더 구우면 되겠어’라는 생각이 들 때 바로 불을 끄세요.” “볶음요리를 할 때 팬에 재료를 넣고 ‘잠시 시간 두기’를 잊지 마세요.” 책을 위해 더운 여름날 하루에 30개씩 요리를 만들고 사진을 위해 세팅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강철 체력’이지만 이번엔 몹시 아팠다. 사물이 두 개로 보이는 복시가 나타났다. 스테로이드를 복용하고 한의원에서 침을 맞으면서 겨우 치료했다.
“7월 말 덥기 시작할 때 여기(요리 교실)서 다 작업했어요. 제자들인 요리 어시스턴트, 스타일리스트, 편집자까지 여러 분이 함께해서 책이 나왔지만,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죠. 작년 여름 너무 더웠잖아요. ‘가을쯤 아프겠구나’ 생각했는데 결국 복시가 왔어요. 좋아하는 술도 줄일 수밖에 없었죠. 의사가 와인에 물을 타 먹으라고 하더라고요.”(히데코)
한국에서 살게 된 지 어느덧 30년이 넘었다. 그동안 일본 요리도 더 넓게 알게 됐고 식성도 달라졌다. 어릴 땐 생선조림을 싫어했지만 한국 간고등어 맛을 알게 된 뒤 고등어조림도 만들어 먹을 수 있게 됐다. 지중해식, 일본 가정식, 일본 양식, 한식을 모두 가르치지만 정식으로 배운 요리는 한식이 유일하다. 중요 무형문화재 황혜성(1920~2006)의 궁중음식연구원에서 궁중요리를 배웠고 ‘예바라기’라는 별칭으로 이름난 전혜선 선생에게 지금까지 10년도 넘게 정갈하고 담백한 경상도식 내림 음식에 기반한 한식을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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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진 대표는 아이비엠(IBM) 등 국내외 기업 임원과 최고경영자를 거친 전문경영인으로, 2023년 은퇴 뒤 위스키 칼럼니스트이자 출판사 대표, 어린이 창의력 플랫폼 ‘테일트리’의 대표가 됐다. 사진 속 위스키들은 15년 전부터 은퇴 이후를 위해 투자해온 컬렉션.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부부는 반주를 즐긴다. 수강생들도 비슷해서 여러 요리 수업 가운데 ‘술안주반’이 가장 먼저 마감된다. 요리 교실이 끝나면 가끔 박 대표가 슬그머니 합류하고, 다들 흥이 나면 점점 더 맛있는 술병이 열린다.
부부에게 음식과 술은 “좋아하는 것을 공유하는 일이자 커뮤니케이션”(히데코)이다. ‘오늘은 어떤 술을 딸까’가 그날 두 사람 사이의 중요한 이슈이자 애정 검증 리트머스지가 됐다. 귀한 것일수록 함께해야 하니까. “이젠 어쩔 수 없이 음주량은 줄었고, 한 번 마실 때 신중하게 골라 맛있게 마시게 됐다”고 두 사람은 입을 모았다.
박 대표는 젊었을 때부터 와인에 관심이 컸지만 40대 시절 남다른 선택을 했다. 20년 전 이미 많은 사람이 전문가의 길에 들어선 와인 업계보다 위스키가 ‘블루오션’이라고 판단해 ‘전향’했다. 전략적 선택이었을 뿐 아니라 운명적 만남이 있었다. 2010년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처음 맛본 아란 위스키가 인생을 바꿨다. 나폴레옹 코냑을 담았던 캐스크에서 숙성한 아란 위스키 시리즈는 이제 더는 만나볼 수 없고, 박 대표는 아쉬움과 추억을 담아 지금까지 빈 병을 보관하고 있다. “이 술이 남긴 진한 초콜릿 향기는 지금도 기억 속에 뚜렷하게 남아 있다”고 한다.
또 다른 애정을 가진 위스키는 아드벡이다. 박 대표의 저서 ‘위스키, 스틸 영’은 세계 각국의 위스키 증류소 여행과 문화, 그리고 사람 이야기를 담았는데 출발은 영국의 외딴섬 아일러의 아드벡 증류소다. 장례식에서 고인을 추모하며 위스키를 마시는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마지막으로 잔과 병까지 던져 와장창 깨버린다. 잔뜩 마시고 취해서 유감없이 애도를 마치는 셈인데, 이보다 후련한 장례식 풍경이 있을까 싶을 정도.
“15년 전부터 매년 휴가를 내서 세계의 증류소를 찾아다녔죠. 멀쩡한 회사의 임원으로 일하면서 휴가 때마다 위스키 증류소를 찾는다는 건 누가 보면 정신 나간 일로 여겨질지 몰라도 제게는 10년, 20년 장기 계획이 있었으니까요. 제가 가진 인문학적 지식을 활용하면 승부를 볼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박병진)
역사학도를 꿈꿨던 박 대표는 위스키 문화에 역사를, 역사를 자신의 인생에 접목한다. 이를테면 아드벡 증류소는 1998년, 10년짜리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1998년 증류한 술을 2004년 병입해 6살짜리 ‘베리 영’을 만들고 2006년엔 8살짜리 ‘스틸 영’, 2007년엔 9살짜리 ‘올모스트 데어’, 2008년 마침내 10살짜리 ‘아드벡 르네상스’를 선보였다.
“인생의 여러 단계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자리가 ‘스틸 영’의 자리가 아닐까요. 80%만 채워진 상태 말이죠. 인생이 그렇게 순환된다는 의미로 책 제목도 지었고 저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박병진)

오니기리(오무스비)를 만들고 있는 나카가와 히데코씨. 북스레브쿠헨 제공
위스키에 푹 빠진 박 대표와 비슷하게 히데코씨도 “날마다 머릿속에는 온통 요리와 음식 생각뿐”이다. 젊었을 때 그는 국제관계를 다루는 기자를 꿈꿨다. 대학에선 독일어를 전공했고 1988년 당시 공산주의권이었던 동독 해안 지역인 로스토크에 머물렀다. 20대 초 무작정 일본을 떠난 건 타고난 반항 기질 때문이기도 했다. 프랑스 요리사로 일한 아버지(나카가와 다모쓰·中川保)에 힘입어 탄탄대로를 걷기 원했던 어머니는 영양학과 진학을 권했지만 히데코씨는 반항 삼아 언어학과 국제관계학을 전공했다. 치매에 걸려 오래 고생하던 어머니가 2023년 세상을 떠났지만 히데코씨에겐 여전히 모녀 관계가 풀리지 않는 숙제처럼 남아 있다. 이번 책에 어머니의 요리법을 다뤘던 것도 짐짓 두 사람 사이의 미해결 과제를 다루려고 해서인지도 모른다.
“엄마가 돌아가셔도 나의 반항이 해결되지 않고, 이게 그냥 끝까지 갈 것 같은 느낌도 있어요. 엄마와 대화는 많이 했지만 엄마 손을 붙잡고, 안아주고 그렇게 친하게는 못했던 것 같아요.”(히데코)
1890년 일본 도쿄에 설립한 임페리얼호텔(제국호텔)의 프랑스 요리사 출신 아버지와는 통하는 게 많았다. 일본 서양 요리계의 전설 무라카미 노부오(村上信夫)에게 요리를 배운 아버지는 1970년대 서독 주재 일본대사관 전속 조리장으로 파견됐고 덕분에 히데코씨도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문화적 세례를 받았다. 히데코씨의 남동생은 일본에서 진 증류소를 열었다. 요리와 술에 몰두하는 가족들과 성향이 달랐던 플로리스트 출신 어머니는 새롭게 식구가 된 사위, 박 대표를 무척 아꼈다고 한다.
히데코-박병진 부부는 1997년 한국에서 처음 만났다. 히데코씨가 연세대 국문과 대학원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로 대기업 일본어 강사를 하던 때였다. 박 대표는 첫 만남에서 일식을 먹으며 “단무지를 만든 일본의 유명 승려 다쿠안 선사를 아느냐”고 물었다. 히데코씨가 모른다고 하자 실망이라며 아버지에게 물어보고 자기 말이 맞는다면 사귀자고 제안했다. 실제로 다쿠안(1573~1645) 선사는 일본 선종의 이름 높은 고승이자, 단무지를 만든 인물로도 유명하다. 결혼 프러포즈는 마침 미국 샌프란시스코 아이비엠(IBM) 본사에서 상을 받게 된 박 대표가 미국 호텔 방에서 팩스로 보냈는데, 일본으로 돌아갔던 히데코씨는 ‘오케이’라고 적어 답신했다. 밀고 당기는 연애의 끝이자, 브랜드 레브쿠헨의 탄생 스토리다.
미국, 유럽, 일본, 한국 문화가 짬뽕처럼 두루 섞인 ‘히데코의 요리 교실’의 원래 이름은 ‘구르메 레브쿠헨’(Gourmet Lebkuchen). 프랑스어로 ‘구르메’는 미식가를, 독일어인 ‘레브쿠헨’은 생강 쿠키를 가리킨다. 요리 교실과 출판사의 상징은 문어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둘째 아들이 5학년 때 스페인식 문어요리인 폴포를 재해석해 그린 그림을 여러 버전으로 쓰고 있다. 부부가 일궈온 공간에서 여러 나라의 문화가 나란히 사이좋게 섞여 들어간 ‘만국박람회’ 같은 유쾌한 기운이 풍긴다.
“진저브레드, 생강 과자는 제가 어릴 적 독일에서 먹어서 되게 좋아했던 과자예요.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밸런타인데이 때, 부활절 등 중요한 시즌마다 독일에서 팔았죠. 제가 경험한 첫 유럽 음식이었기 때문일 거예요. 아직 저는 미국보다 유럽이 좋아요. 저는 결국 음식이 기억이고,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최종 목적은 88살까지 요리 교실을 하는 거예요.”(히데코)

따뜻한 밥, 미소시루, 연어 소금구이와 쓰케모노(일본식 장아찌). 기본적인 일본 가정식 상차림이다. 북스레브쿠헨 제공
‘내 인생 최후의 음식’을 묻자 히데코씨는 “에그 그라탱이 먹고 싶어질 것 같다”고 했다. “어머니가 치매 걸리고 나서 우리가 뭘 해드리지 못했지만, 아버지는 확실히 크림 그라탱을 먹을 거 같아요. 나도 아프면 꼭 생각나는 음식이고요.”(히데코)
박병진 대표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졌다. 최초의 위스키가 아란이라면, 최후의 음식과 위스키는 뭘까.
“콩나물밥에 맑은 콩나물국. 양념장 한 숟가락 딱 끼얹어주면 참 맛있잖아요. 콩나물밥은 히데코가 자주 만들어줬죠. 마지막 위스키라면 역시 아란 위스키. 세상에는 한 병에 수억원짜리 위스키도 있고, 한 병에 수천만원짜리 위스키도 맛보았지만, 그 무엇보다 제겐 강렬했거든요.”(박병진)
음식과 술로 맺어진 이 천생연분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더 풍성하게 이어질 듯했다. 인터뷰가 끝나자 요리와 예술에 재능이 많은 미대 출신 아들이 지나가며 쑥스럽고도 상냥한 작별 인사를 건넸다. 레브쿠헨의 상징 문어를 그렸던 그의 미래도 문득 궁금해졌다.

‘히데코의 일본 요리’ 저자 나카가와 히데코씨와 ‘위스키, 스틸 영’ 저자 박병진씨. 벽에는 히데코씨의 지중해식 요리 상징인 파에야팬이 걸려 있다. 두 사람 앞의 위스키는 박병진씨의 컬렉션.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두부 톳 파 미소시루. 일본식 된장국이다. 가정에 따라 사용하는 미소(일본 된장)의 종류가 다양하다. 히데코씨는 “일본 된장은 누룩을 사용하기 때문에 한국 된장보다 단맛이 난다”고 말했다. 북스레브쿠헨 제공

바닷장어(아나고) 덮밥. 히데코씨가 가나자와에 사는 요리 선생인 친구에게 배운 것이다. 북스레브쿠헨 제공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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