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사랑으로 사랑을 담는 것

프레임을 통해 내면의 감정을 마주하고 보듬는 ‘사진의 세계’
등록 2017-04-28 17:31 수정 2020-05-03 04:28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으로 참여했다가 모진 고문과 수형생활을 감내해야 했던 이성전씨가 사진치유 프로그램에서 자신을 투사해 찍은 나무. 이성전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으로 참여했다가 모진 고문과 수형생활을 감내해야 했던 이성전씨가 사진치유 프로그램에서 자신을 투사해 찍은 나무. 이성전

거리를 오갈 때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자주 살핀다. 대체로 표정이 어둡거나 무겁다. ‘사는 게 팍팍하다’는 말이 공기처럼 떠다니는 요즘이니 아무래도 더 그래 보인다. 보통은 괜한 오지랖이 발동해 ‘어인 일로 저리 굳은 표정일까’ ‘어떤 사연이 있을까’ 하는 궁금함으로 이어진다. 낯선 이에게 함부로 말을 건네지 않지만 마음속으로 슬며시 ‘좋은 날들 되시라’며 인사를 건넨다. 굳이 이런저런 이유를 끌어오지 않더라도 현대인의 어깨를 짓누르는 삶의 무게가 가볍지 않음을 알게 된다. 삶의 여유를 잃은 채 불안하게 보이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올 때면 괜스레 손이라도 잡아주고 싶은 감정이 요동친다.

그러다 내 얼굴 표정은 어떠한지 돌아볼 때도 있다. 불편한 일에 놓였거나 어떤 상실감에 힘겨워할 때면 나 역시 표정이 잔뜩 굳는다. 특별히 그럴 만한 상황이 아닌데도 습관처럼 잔뜩 굳은 얼굴로 일상을 보내는 것을 느낄 때면 공연히 서글퍼진다. 슬퍼서가 아니라 내면에 드리운 감정을 들킨 듯싶어 쑥스러운 것이다. 덧붙여 핑계를 대면 여전히 더 나은 삶에 대한 기대를 품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다. 늘 입을 헤벌리고 다닐 만큼 기분 좋은 날이 이어지면 좋으련만 세상 살아가며 흥겨운 순간만 접할 수는 없다. 이럴 때 누가 손을 내밀면 망설이지 않고 덥석 붙잡을 것 같다.

지금 이 순간 어떠한가요?

인연이 닿는 이들에게 ‘오늘 하루 어떠하냐’고 자주 묻는다. 지금 이 순간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은 지인들뿐만 아니라 내가 진행하는 사진치유 프로그램을 통해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건네는 인사다. 약간의 완곡함을 실어 물으면 그들 대부분 현재 마주하는 현실 속에서 자신의 감정 상태를 돌아보는 경우가 많다. 기쁘거나 좋아서 그대로 간직하고 싶은 순간들, 슬프거나 힘겨워서 외면하고 싶은 순간 모두 꺼내놓으며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오늘 하루 기분이 어떤지를 술술 풀어 들려준다. 이 질문은 나 자신에게도 던지는 것이기에 내 느낌을 전하는 것에도 어느새 익숙해졌다. 그런 시간들이 쌓여 스스로 자신을 살피는 행위가 편해질 때쯤 나는 그들에게 사진을 찍어보라고 권한다.

멋진 풍경사진을 찍거나 기념이 될 만한 추억거리를 기록하기 위해 찍는 것도 좋지만 자신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존재적 가치를 인지해가는 역할을 사진에 부여해보라는 권유다. 사진의 특성인 대면의 순간을 통해 여러 형태로 얽힌 감정과 마주하면서 자기 긍정의 시간을 가져보라는 부탁이기도 하다. 자신을 살피는 도구로서 사진을 이해하려면 우선 사진의 특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사진 찍기를 즐긴다고 한다. 왜 그럴까. 하다못해 남녀노소 누구나 스마트폰 카메라로 뭔가를 찍고 남기는 모습은 어디에서든 흔하게 눈에 들어온다. 왜 그렇게 찍을까.

오래전 한 외딴섬 바닷가 선착장에서 새벽을 보낸 적이 있다. 모두 잠든 밤 먼바다에는 조각배 몇 척이 떠 있고 밤하늘에는 별과 달이 주거니 받거니 나누는 빛의 향연이 아름답게 펼쳐졌다. 목줄기를 타고 날리는 바람의 시원함도 더없이 훈훈했던 밤이었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좋았고 이대로 잠을 이루기에는 너무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지금도 그 새벽의 기운을 잊을 수 없다. 그때 든 생각은 “아! 내가 살아 있구나”였다. 온몸의 감각이 살아 움직이면서 자기를 봐달라고 아우성치는 듯 보였다. 그때 찍은 사진 한 컷을 보면 지금도 그날 밤의 여운이 되살아난다.

대상과 일체감을 이루는 환희

내게 바다와 만난 이 순간은 한없는 평온으로 기억된다. 누구든 자신의 감성을 흔드는 순간과 대면하기 마련이다. 임종진

내게 바다와 만난 이 순간은 한없는 평온으로 기억된다. 누구든 자신의 감성을 흔드는 순간과 대면하기 마련이다. 임종진

사진은 자신의 관점과 카메라가 이루어내는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이를 기반으로 우리의 ‘몸’이 이뤄내는 것이라 할 수도 있다. 단순한 육체가 아닌 온몸의 오감을 통해 대상과 일체감을 이루는 환희를 경험한 분들은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사진은 대면이라는 숙명을 지녔고, 이것의 순도가 어떤지에 따라 이미지는 전혀 다른 맥락으로 귀결될 수 있다. 이미지로서의 결과물도 중요하지만 ‘과정’에 더욱 몸과 마음을 들이다보면 오히려 보편적이지 않은 창조성 또는 자기 정체성으로 마음이 채워지는 독특한 쾌감을 얻을 수 있다. 아무나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대중성의 장점은 단순히 카메라를 들고 무언가를 찍을 수 있다는 의미를 넘어 누구나 자신의 감정과 존재성에서 비롯된 색감과 결을 세상에 꺼내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진은 자신의 몸을 들여 무언가를 바라보는 창문과 같다. 세상을 바라보고 그 느낌을 담아내는 수많은 ‘창’ 가운데 사진은 몸을 들여야만 가능한 것이다. 하나의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또 자신만의 눈으로 읽어 전하기 위해서는 그 대상 앞에 서 있는 자신의 몸이 있어야 하니 말이다. 그것이 아름답기 그지없는 자연풍경이든 어느 타인의 삶이든, 하다못해 군침 돋우는 음식 앞에서든 마찬가지다. 사진에 담아내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을 바로 그 앞에 들여 서는 행위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직접 대면을 통해 자신이 표현하려는 바로 ‘그것’ 앞에 서지 않는 한 결코 담아낼 수 없는 것이 사진이다. 사실 이것은 자신의 ‘실재’를 확인하는 구체적 ‘행위’나 다름없다.

이 행위는 단순히 물리적 공간에서의 대면만 뜻하지 않는다. 사진에 관심 없거나, 혹은 사진을 즐기는 사람들 중에서도 사진이 그저 실체적 외적 현상만 남기는 단순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적지 않다. 그저 눈앞에 보이는 대로 찍는 행동에 불과한데 무슨 별다른 특별함이 있겠냐는 것이다. 하지만 이 의견의 해답은 ‘무엇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자연스럽게 풀어나갈 수 있다. 마주 선 대상과 상황을 스스로 어떻게 인식하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사진의 의미는 달라진다. 이는 물리적 대면 너머 대상에 대한 앎을 통한 이해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뜻한다. 여기에서의 대상이 바로 자신이다. 자신의 내면에 드리운 감정이 그 대상인 것이다.

‘자신과 자신의 대면’이라는 소통성

자신의 눈 바깥에 있는 사물뿐만 아니라 바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창으로서 사진의 역할을 달리 생각해보자. 기록과 보존의 도구라는 단순한 의미를 넘어 자신의 내면에 있는 사랑, 상처, 기쁨, 좌절, 욕구, 기대, 우울, 고독 등 다양한 심리 상황과 직면함으로써 사진은 그 ‘쓰임’의 여지를 확장할 수 있다. 예술사진이 작가의 창작 욕구와 철학이 묻어나는 개인적 의지의 표상이라면 치유적 도구로서 사진은 일대일 대면을 통해 완성되는 사진의 쌍방향성을 통해 ‘자신과 자신의 대면’을 이루는 것이다. 특히 외면하거나 회피하고 싶은 마음의 상처 앞에서 우리는 직면의 용기를 가질 필요가 있다.

존재하기에 사진으로 담아낼 수 있다. 작은 돌멩이든 이름 모를 잡초든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하물며 나와 타인의 삶은 말할 필요 없이 존재 가치를 지녔다고 말할 수 있다. 설령 그 삶이 상처와 아픔, 그리고 부당한 사회적 기제 때문에 낮은 시선이 드리워졌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특히 내면의 상처와 고통 등의 감정은 회피가 아니라 적극적 대면을 통해 해소될 수 있다. 대면의 시간을 통해 아픔을 살피고 어루만지면서 자신의 성장을 돕는 도구가 사진이다.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자괴감도 자신을 사랑하는 심정에서 나온다. 자신을 살피고 보듬는 시간을 통해 자기연민이나 자책감에서 벗어나 행복한 날을 기대할 수 있다.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으로 활동하다가 붙잡혀 모진 고문을 받은 이성전씨는 오랫동안 자신의 인생이 망가졌다고 생각했다. 고문후유증으로 한쪽 몸이 마비되어 걸음이 불편한 이씨는 카메라를 들고 내재된 상처와 대면하는 시간을 2년여 가졌다. 어느 날 그의 카메라에 죽은 가로수에 핀 버섯이 담겼다. 자신을 죽은 나무와 다름없다고 여겨왔는데 그 안에서 생명을 틔운 버섯을 보며 삶의 욕구를 강하게 느꼈다고 한다. 비록 늙고 병들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지만 생의 의미를 새롭게 다지면서 “광주가 가진 오월 정신을 더 잘 지키겠다”고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사진 찍기, 자신을 살피는 시선

사진은 사랑이다. 자신을 향한 시선이 그러하다면 사진에 담기는 것도 사랑일 수밖에 없다. 자신을 살피는 시선이나 다름없는 사진, 즉 사진 행위는 자기 존재성을 확인하면서 더 나은 행복한 삶을 도모할 수 있는 제법 괜찮은 도구이다. 치유자로서 사진이 지닌 힘은 내면을 보게 하고 내면의 감정과 마주하는 용기를 갖게 하는 것이다. 그 종착점은 결국 자신을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다. 사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소중한 존재임을 알게 하는 과정, 이것이 사진이 사랑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임종진 사진치유자·공감아이 대표
*임종진의 ‘마음 비추기’ 연재를 마칩니다. 필자와 글을 아껴주신 독자에게 감사드립니다.



독자  퍼스트  언론,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