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항공사인데, 괜찮을지 모르겠다.”
큰맘 먹고 외국 여행 떠나는 부모님이 털어놓으시는 걱정이다. 그렇지 않아도 만만찮은 연세에 열두 시간 넘는 비행시간을 버티는 일이 걱정인데 설상가상 항공사 서비스가 나쁠까봐 노심초사다. 하지만 어쩌랴, 빠듯한 호주머니 탓에 조금이라도 싼 항공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미국 항공사를 선택하셨단다.
비용 절감 추구하다 세계인의 공분 사문득 지난 4월9일 벌어진 데이비드 다오 사건이 떠오르며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이날 미국 시카고에서 루이빌로 향하는 유나이티드항공기 안에서 때아닌 육박전이 벌어졌다.
승객 모두 자리에 앉은 상태에서, 항공사 쪽은 숙박과 약간의 보상금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승객 4명에게 “비행기에서 내리라”고 요청했다. 4명 중 1명인 데이비드 다오는 그 요청에 응할 수 없다며 항의했다. 69살의 베트남계 미국인 다오는 다음 비행기를 타면 환자 진료 약속을 지킬 수 없다는 이유를 댔다.
실랑이하던 다오는 결국 비행기에서 질질 끌려나갔고, 이 과정에서 코뼈가 부러지는 등 부상을 당했다. 이를 담은 동영상이 인터넷에 유포되며 유나이티드항공은 세계인의 공분을 샀다.
유나이티드항공은 왜 이렇게 행동했을까?
‘공차회송’을 위해서였다. 공차회송이란 승무원을 다른 공항으로 보내기 위해 승객 자리에 앉혀 이동시키는 것이다. 항공 노선 효율화를 위해 항공기 및 승무원 수를 최소화한 상태에서 운영하다보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일이다. 한마디로 비용 절감을 위해 공차회송을 지나치게 실행하다 사고가 터진 것이다.
유나이티드항공은 승객을 끌어내리고 그 자리에 이익을 채운 것이다.
10~20년 전만 해도 해도 ‘미국의 서비스’는 ‘고급 서비스’의 다른 표현이었다. 컨설팅, 금융, 의료를 ‘비싸고 질 좋은’ 서비스로 여겼다. 항공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미국 항공 서비스는 어쩔 수 없이 이용하는 저급 서비스로 여긴다. ‘연발과 연착이 잦다’는 불만이 컸다. 승객에게 고압적이고 불친절하다는 ‘명성’도 얻었다. 짐을 더 부칠 때마다, 간식을 더 제공할 때마다 핑계를 붙여 추가 요금을 받는다는 인상을 준다. 상황이 악화되다 고객에게 폭행 위협을 가하는 데까지 온 것이다.
미국 항공사들의 소비자 평판은 최악이다. 항공사 서비스 평가 기관 ‘스카이트랙스’가 승객 설문조사 등을 통해 발표한 2016년 세계 항공 서비스 순위에서 미국 항공사는 20위 안에 들지 못했다.
그래서 미국 항공사들은 지금 망해가는 걸까?
놀랍게도 그 반대다. 미국 항공사 경영은 점점 더 튼튼해졌다. 미국 항공사들의 승객 1명당 순이익은 2016년 22.4달러였다. 유럽이나 아시아 항공사들보다 월등하게 높다. 최근 격차는 점점 더 벌어졌다.
이익을 많이 내는 기업은 좋은 기업인가?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소비자 이익을 희생해 재무적 이익을 내는 기업이 좋은 기업인가? 대답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현재 자본주의 체제에서 답은 명백하다. 재무적 이익을 많이 낼수록 좋은 기업이다.
환경·사회적 이익은 ‘법을 지키는 수준’으로만 이행하면 충분한데, 왜 재무적 이익은 클수록 좋은가? 재무적 이익이란 ‘투자자’라는 이해관계자 그룹의 이익일 뿐인데 말이다. 왜 소비자·노동자·환경 등 다른 이해관계자 이익이 재무적 이익과 균형을 이루면 안 될까?
건설업체가 주거문제에 관심 갖게 하려면?현재 자본주의 기업에서 통용되는 관념은 ‘적절한 수준의 소비자 보호’와 ‘법을 어기지 않는 수준에서 환경 영향’만 달성하고 재무적 이익을 최대한 키우는 게 좋은 기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거꾸로 ‘적절한 수준의 재무적 이익’만 달성하고 제품이나 서비스가 만들어내는 사회적 편익을 최대한 키우는 기업이 더 좋은 기업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재무적 이익 바깥의 성과를 당연히 중시해야 한다. 사회적 관점에서 보면, 승무원을 덜 쓰면서 운행하느라 승객을 쫓아내야 하는 항공사가 재무적 이익을 많이 냈다고 해서 좋은 기업이라고 하긴 힘들다. 그보다 재무적 이익을 적절하게 내면서 승객에게 최대한 편익을 가져다주는 항공사가 더 좋은 기업이라 할 수 있다. 좀더 확장한다면 연료를 덜 쓰고 사고를 덜 내는 환경과 안전 성과까지 감안해서 항공사의 경영 실적을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
기업의 ‘재무적 성과’보다 ‘사회적 성과’ 전체를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논리적으로 설명 가능하지만 현실에서 작동하도록 만들긴 쉽지 않다. 가장 큰 걸림돌은 금융이다. 투자자는 재무적 성과만 요구한다. 그게 투자자의 이해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업은 투자자 없이 시작할 수 없다.
어떤 항공사가 승객의 불만이 크지만 재무적 이익을 더 잘 낸다면 당연히 투자자는 그곳에 돈을 몰아주려 한다. 승객 만족도를 극대화하지만 재무적 이익이 훨씬 낮은 곳은 제대로 투자받기 어려울 것이다.
사회문제를 해결할 때 무게중심이 있는 사업일수록 문제는 더 커진다. 예를 들어 주택건설 사업을 생각해보자. 대부분 주택건설 사업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계획과 승인 아래 이뤄진다. 시민들의 주거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사회적 목적을 띠기 마련이다.
이를 수행하는 주체는 대형 건설업체다. 이들은 재무적 이익 극대화를 목적으로 하는 주식회사다. 이들의 투자자도 일반 금융사와 재무적 투자자다. 주거문제 해결에는 관심이 없다. 결과적으로 건설회사의 재무적 이익을 적절하게 제한하면서 입주자에게 여러 혜택이 가고, 수명이 오래가며 환경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주택건설은 이뤄지기 어렵다. 법을 지키는 한도 내에서 건설사업을 벌이며 최대한 건설회사 이익을 챙기는 방식으로 일이 이뤄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재무적 이익뿐 아니라 다른 사회적 성과도 감안해 투자하는 금융이 있다면 어떨까? 주민공동체를 활성화하는 데 더 큰 비중을 둔 주택건설 사업 투자자가 있다면? 장애인에게 더 나은 일자리를 많이 제공할수록 사업성을 더 높게 평가하는 투자자가 있다면? 생산자에게 더 많은 혜택이 가도록 공정무역 거래질서를 지키는 유통업체에 더 낮은 이자로 돈을 빌려주는 투자자가 있다면?
그런 투자자가 존재한다. 우린 이들을 ‘임팩트금융’이라 부른다. 이익이 재무적 성과를 보여주는 지표라면, ‘임팩트’(영향)는 사회적·환경적 성과를 재무적 성과와 함께 보여주는 종합 지표다. 기업별, 사업별로 각각 해결하려는 사회문제에 맞게 임팩트 평가 기준을 세울 수 있다. 이익 대신 임팩트를 기준으로 투자하는 금융을 임팩트금융이라고 한다.
전세계 ‘윤리적 투자’ 확대 추세임팩트금융은 세계적으로 사례가 하나둘 쌓이며 확대되는 추세다. 영국 임팩트금융인 ‘빅소사이어티캐피털’(Big Society Capital)은 휴면예금 등을 활용해 공공기금을 조성한 사례다. 빅소사이어티캐피털은 2012년 설립 이래 다양한 금융사와 협업하면서 8억9천만파운드(약 1조2천억원) 규모의 임팩트투자를 진행했다. 투자 대상에는 사회적기업 및 비영리단체가 다수 포함됐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1980년대부터 순수하게 민간 영역에서 임팩트금융의 씨앗을 뿌린 네덜란드 트리오도스은행도 있다. ‘윤리적 투자’를 내세운 트리오도스는 2016년 현재 134억유로(약 16조8304억원) 규모의 자산을 운용한다.
최근 이를 국제적으로 확산하려는 움직임이 커졌다. 미국·독일·일본·러시아 등 주요 8개국(G8) 정상모임에서는 ‘임팩트투자 태스크포스’를 2013년 만들어 운영했다. 태스크포스는 ‘세계임팩트투자그룹’이라는 모임으로 확장돼 가입 국가를 13개국으로 늘리며 활동 범위를 키웠다. 여기서 활동하는 일본·오스트레일리아가 최근 임팩트투자기금을 적극적으로 만들었다.
한국에서는 서울시에서 사회투자기금을 설치하며 임팩트금융 실험을 벌였다. 그러나 이 시도는 지방자치단체 및 지방의회의 출연금 원금 보전 원칙 때문에 위험한 투자를 원천 배제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한계를 보였다. 상환이 확실한 대출을 중심으로 기금을 운용하다보니 성과도 제한적이었다. 그럼에도 사회주택 등의 분야에서 의미 있는 임팩트투자 실험을 진행한다.
임팩트금융에 대해 다른 각도에서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주거든 환경이든 노동이든 재원이 필요하면 국가가 지원금을 통해 사업하도록 해주는 게 낫지 않을까?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다양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새로운 실험이다. 국가가 모든 사회문제를 해결하던 기존 방식은 한계에 부닥쳤다. 국가 행정구조상 유연한 실험은 불가능하다. 보조금 지급 방식도 마찬가지다. 까다로운 감사를 거치고 경직된 항목에 맞춰 집행해야 한다.
구글과 테슬라가 미국 정부의 보조금으로 사업했다면 알파고도 전기차도 나오기 어려웠다. 충분한 시간을 주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하며 결과만 묻는 금융투자를 활용했기 때문에 실험과 혁신이 가능했다.
사회문제 해결도 마찬가지다. 위험을 감수하고 실험하며 자유롭게 활동하도록 하는 금융투자 형태의 재원은 필요하나 찾기 어렵다. 적정한 위험을 지면서 공익을 추구하되 성과에 따라 보상을 거두는 인내자본 성격의 임팩트금융이 필요한 이유다.
한국에서도 아직 규모는 작지만 관심이 커지고 있다. 임팩트금융을 확산시키려는 민간단체인 임팩트금융추진위원회가 최근 출범했다. 에스오피오오엔지(sopoong) 등 소셜벤처를 키우는 투자자들도 내공을 키우고 있다.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움직임이라 기대가 더 크다.
공공사업에 사회적 성과 요구해야과제는 많다. 우선 법제 변화가 필요하다. 재무 성과의 극대화가 아니라 사회문제 해결이 목적인 임팩트금융은 현재 행정체계상 미아에 가깝다. 정부의 태도 역시 바뀌어야 한다. 민간에 공공사업을 위탁할 때 사회적 성과를 분명하게 요구하고 평가하면서도 수행 과정은 더 자유롭고 실험적으로 짤 수 있는 여지를 남겨줘야 한다. 그래야 금융의 역할이 생긴다. 금융권에서도 임팩트금융이 체계적으로 자리잡아 좀더 손쉽게 투자자를 모집할 수 있어야 한다.
1968년 미국 상원의원이던 로버트 케네디는 이렇게 연설했다. “국내총생산(GDP)은 우리 아이들의 건강과 즐거움도, 시나 지성적 토론이나 진실한 공직자들이 뿜어내는 아름다움도, 우리의 유머감각과 열정과 헌신도 포함하지 못한다.”
이익만 많이 내면 우리가 맞닥뜨린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새로운 가치를 실현하라고 말하려면, 새로운 가치를 평가해줘야 한다. 임팩트금융은 GDP가 평가하지 못하는 새로운 가치를 평가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원재 경제평론가·여시재 기획이사 wonjae.lee@fcinst.org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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