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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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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진에 비친 내 모습

자기 내면과 소통하고 사물과 교감하며

감정의 닫힌 문 여는 사진 찍기의 힘
등록 2017-02-15 21:43 수정 2020-05-03 04:28
사진치료를 받은 ‘콩새’는 놀이공원의 밝은 마당 사진을 찍은 뒤 “나도 이제 저 빛 속으로 가고 싶어요”라고 소감을 밝혔다. 콩새 제공

사진치료를 받은 ‘콩새’는 놀이공원의 밝은 마당 사진을 찍은 뒤 “나도 이제 저 빛 속으로 가고 싶어요”라고 소감을 밝혔다. 콩새 제공

오래전 기억 하나를 들추었다. 무심코 검색엔진을 돌리는데 부질없이 몇 개의 숫자부터 눈에 들어왔다. 당시 기준 재산피해액 2700여억원, 부상 937명, 실종 6명, 그리고 그 자리에서 생이 끊긴 이들은 모두 502명. 사태의 수위를 가늠케 하는 숫자의 나열이 아프게 눈을 찔렀다.

‘삼풍 붕괴’ 사고 현장에서의 이틀

1995년 6월29일 오후 5시52분. 서울 서초동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수많은 사람이 그 자리에서 죽거나 다쳤다. 기억을 수치 나열로 표현하기엔 턱없이 난망하다. 역사에 기록된 피해 규모에서 보듯 당시 상황은 참으로 암담했다. 누구나 그랬듯 뉴스 속보를 보며 내 눈을 의심했다.

아스팔트를 누비던 얼치기 ‘386’이었다가 언론사 입사 3개월을 갓 넘긴 초짜 사진기자의 공명심이 몸을 놔두지 않았다. 황급히 차를 몰고 달려간 그날 밤부터 꼬박 이틀, 낮과 밤을 현장에서 보냈다. 현장 상황은 새내기 사진기자의 혼을 죄다 갉아먹었고 갈피를 못 잡을 만큼 참혹했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는 이미 멀어진 과거의 일이다. 그럼에도 일부러 들춘 이유는 인간이 저지른 탐욕을 탓하거나 피해 규모를 회상하려는 게 아니다. 누구나 아는 일이고 다시 있어서는 안 될 일에 논의의 여지는 없다.

다만,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백화점 붕괴 사고 이후 ‘그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6명의 실종자 가족들은? 그들의 친구들은? 생존자 937명을 비롯해 안타깝게 생명을 잃은 502명의 가족들, 그들과 절친했던 지인 모두 어떤 신체적·감정적 상태로 삶을 살아내고 있을까.

생각해보니 그 질문을 던질 데가 없다. 세월이 약이려니 다 잊었는데 들쑤실 필요가 있을까. 마음의 생채기에 무딘 우리 정서상 꾹 참고 넘겼을 당사자들은 얼마나 버겁고 힘겨웠을까.

벽이 무너지고 사방이 주저앉은 채 구호와 비명이 난무하던 현장을 목도한 나는 떨리는 심장을 추스르며 한동안 어지럼증에 시달렸다. 하물며 당사자는 어땠을까. 한동안 그들의 안위를 염려의 눈길로 바라보는 시간이 길게 이어졌다.

뒤늦게 상담심리를 공부하고 전문 사진심리상담사로서 치유자의 삶을 사는 지금 ‘왜 이 길인가’에 대한 자문을 늘 잊지 않고 지낸다. 작가적 관점으로서 사진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쓰임’의 도구로서 사진행위의 의미와 폭을 넓히고 싶다는 생각은 이제 뚜렷하고 명확한 나의 방향성이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어렴풋이나마 그 역할을 찾아가는 시작점이었다면 치유자로서의 변화를 결정적으로 도모한 된 계기는 운명처럼 다가왔다.

카메라로 세상과 조우한 정신장애인들

2005년 여름 나는 경기도 수원정신보건센터에서 ‘카메라로 세상 마주보기’라는 프로그램으로 1급 정신장애인 5명과 만났다. 센터 내 사회복지사 선생님의 제안을 받고 나름 진지하게 받아들이면서도 흥미로웠던 이유는 프로그램 참여자가 ‘후천적’ 정신장애를 앓고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들은 보통의 사회생활을 유지해오다 어떤 계기 때문에 조현병이나 우울증, 강박성 장애를 갖게 된 공통점이 있었다. 마치 밀실에 갇힌 듯 세상과 의식의 담벼락을 쳐놓은 상태에서 스스로 유폐 생활을 하는 상황이랄까.

당연히 일상생활이 어려웠다. 이들이 ‘후천적’으로 발생한 장애를 지녔기에 과거 기억, 즉 세상과 교감하고 소통하고 지내던 원래 자기 모습의 회상을 조심스럽게 권했다. 이것이 현재의 어려움을 다소 호전시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5명 모두 묵이, 범돌이, 솔리나, 올빼미, 콩새 등 각자 맘에 드는 닉네임을 정해 서로 불러주면서 친근감을 키워나갔다.

당시에도 지체장애인이 사진가의 도움을 받아 세상을 관찰하고 경험하면서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법을 익히거나 사진 찍는 재미를 얻는 강좌가 더러 있었다. 나는 사진을 멋지게 찍거나 일종의 놀이로 국한되기보다 사진 찍는 행위 안에서 어떤 만족이나 회복의 감정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랐다. 사진 특성상 몸을 움직여 어떤 대상 앞에 서는 상황을 그들 스스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했다.

감정적 폐쇄 상태로 사회에서 고립된 채 살아가는 이들에게 사진은 세상과 적극적으로 조우할 수 있는 연결고리로서 색다른 기회를 부여했다. 누군가의 권유보다 스스로 의미 있는 행위를 소망했다. 가벼운 문화·예술 활동뿐만 아니라 희미해진 자기감정을 확인하고 회복해가는 치유 행위가 되기를 바랐다.

그들의 반응은 소리 없이 적극적이었고 느리지만 진중했다. 집과 센터만 오가던 그들의 걸음은 낯선 거리와 골목으로 향했고, 번잡한 시장통 상인과 손님들의 대거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 수원 시내 옛 성곽길을 넘나들었으며 도심을 벗어나 산과 들의 아름다운 풍경 속으로 몸을 누이기도 했다. 놀이시설에 가서 청룡열차를 타며 비명도 지르고 인형옷을 입은 무용단의 춤 솜씨에 열심히 박수를 치기도 했다.

어느 순간부터 그들은 고개를 들어 사방과 사물을 보았고 대상의 반응과 변화에 따른 미묘한 흐름을 알아채기 시작했다. 계절의 변화가 보여주는 도심과 자연의 색깔에 눈이 번쩍 뜨였고 그때마다 카메라 셔터 소리를 냈다. 발걸음이 닿아 대면하는 모든 것은 자신과 더불어 하나의 존재적 일체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을 그들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점차 섬세해졌고 남들이 보지 못한 것을 자기만의 시선으로 보는 시간이 늘어갔다.

사사로운 것에서 특별한 느낌을 얻고 별것 아닌 데서 자기만의 별것들을 찾아내는 재미를 터득해나갔다. 그렇게 여름이 지나고 가을을 거쳐 겨울바람이 차게 불었다.

“이제 빛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어요”
‘올빼미’는 이 사진을 찍은 이유로 “문을 열고 저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서”라고 썼다. 사진은 그렇게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올빼미 제공

‘올빼미’는 이 사진을 찍은 이유로 “문을 열고 저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서”라고 썼다. 사진은 그렇게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올빼미 제공

참가자 모두 강좌 시간 내내 충실했다. 각자가 내면과 깊이 소통하면서 공간과 사물 속에 편안함을 느끼는 대상을 찾아 교감을 이루는 시간들이었다. 나 역시 그 곁을 지키며 감동의 여운을 품을 수 있었다.

그중 ‘올빼미’님은 의과대학 본과 졸업을 앞두고 병을 얻었다. 아프기 전에는 “탁구 치는 것을 좋아하고 등산을 즐겼다”는 그는 조용한 성격으로 말수가 적었다. 왜 웃지도 않느냐, 혹시 프로그램이 재미없느냐고 질문하면 그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양 볼을 눌러 올렸다. 웃을 줄 안다는 그의 최선을 다한 감정표현이었다.

그가 찍은 사진들은 쓸쓸하고 고즈넉했다. 도심보다 한적한 시골 들녘에서 한결 편안해했다. 그가 어느 들녘에서 찍은 텃밭 입구 문짝 사진이 인상 깊었다. 그는 자신의 작업노트에 이 사진을 찍은 이유를 “문을 열고 저 안에 들어가고 싶어서”라고 썼다. 굵은 나뭇가지를 잘라 얼기설기 만든 문짝은 그에게 다른 세상을 향한 호기심이자 닫힌 세상을 여는 용기를 제공하는 기제와 다름없다. 프로그램 과정이 끝나고 ‘올빼미’님은 사진을 통해 주변의 아름다운 것들을 찍는 기쁨을 얻었다면서 시작할 때는 몰랐던 자신감이 생겼다고 그제야 활짝 웃어주었다.

특히 ‘콩새’님과의 기억이 강하게 남았다. 우선 그의 병세가 가장 컸다. 불안과 조현증이 수시로 찾아왔고 늘 가만있지 못했다. 경계심이 강해 가끔 내게 걱정스런 눈빛으로 조폭들이 선생님을 때릴지 모르니 조심하라고 충고했다. 나 또한 그의 얘기를 진지하게 들어주었다. 종종 내 부주의한(그의 입장에서) 발언 때문에 걱정을 싸안고는 몇 주간 결석해 한동안 미안한 마음을 갖기도 했다.

감정 변화 증폭이 있지만 사진만큼은 열심히 매달렸다. 항상 뛰어다녔고 여기저기 관심 있는 곳이면 득달같이 달려가 몇 컷 찍고 좋아했다. 가장 놀라운 점은 대충 찍은 것 같던 그의 사진이 가장 표현에 충실하면서도 자기감정에 깊이 이입돼 있다는 것이다. 특히 어항에 갇힌 바닷게를 찍고 “나도 갇혀 있어요”라거나, 건물 그늘에서 놀이공원의 밝은 마당을 향해 사진을 찍고 “나도 이제 저 빛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어요”라고 소감을 썼을 때는 커다란 감동이 밀려왔다. 다른 참가자에게서도 못지않은 감흥이 보태졌음은 물론이다.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다

프로그램 제목은 ‘카메라로 세상 마주보기’였지만 ‘사진치료’라는 이름을 붙여 진행한 첫 시도이기도 했다. 이론적 체계 없이 그저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치른 이 프로그램을 통해, 사진이 이미지의 미적 귀결에만 얽매이지 않아도 충분한 가치가 있음을 깨달았다. 최소한 내게는 그렇다. 사람에게 내재한 감정은 모두 다르다. 그 감정에 몰두하는 과정에서, 행위에 따른 성찰과 수용의 시간에서 나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힘이 생길 수 있음을 확신한다. 자기정체성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낼 사람은 바로 자신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임종진 사진심리치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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